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51)
r 150 – 150. 초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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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놀이 무표정하게 식전주로 나온 와인을 들이켰다.
몇 잔째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열심히 서빙을 하던 웨이터가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바라보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많이 마셨나 보다.
어울리는 짓은 아니다.
술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고, 애초에 식전주를 이 정도로 마시는 건 무례와 기행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고 있는 수준의 행위다. 평소의 그녀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겠지.
‘…신기하네.’
하지만, 지금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페이놀이 코끝을 희미하게 스치는 포도향에 속으로 살풋 웃었다.
미각도 살짝 돌아온 게 분명하다. 전부 그 남자 덕분이겠지.
“불편하기라도 한 모양이지?”
그런 말이 옆쪽 자리에서 흘러나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트리스탄 공녀다. 언제나 얼굴에 걸고 다니는 무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확실히, 지금 그녀의 모습은 이상해 보이겠지. 그러니까 저런 말을 건내는 것이렸다.
“…옷이 좀 불편하네요.”
페이놀이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엘노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가슴 부분이 대단히 답답해 보이긴 하는군. 그대같이 도담한 흉부를 가진 자가 왜 그런 꽉 끼는 옷을 입었단 말인가?”
“…”
“확실히 그쪽 부위가 크면 불편한 일이 많긴 하지. 내가 요긴한 지식 몇 개 알려줄 테니 잘 듣게.”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트리스탄 공녀.”
크기는 자기가 훨씬 큰 주제에 뭐라는 거야.
페이놀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냥, 익숙한 자리가 아니라는 은유적 표현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감각을 잃어버린 상태였다가 이제 겨우 실낱만큼 그걸 느끼고 있다는 걸 실토하기 보다는 그냥 적당히 둘러대는 편이 났겠다는 생각에 맞장구를 친 것이었지만.
문장 자체는 틀림없이 진실이었다.
“전 평민이었으니까요. 이렇게 어마어마한 자리에 와 볼만한 기회가 있었을 리가 없죠.”
물론 기껏해야 석찬이지만, 대상이 황제와 버금가는 권력자다.
그 준비를 위해서 거의 사단을 방불케하는 인원이 주변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으니까.
“마탑의 도제라면 사교계에 발을 디딜 기회도 꽤 많았을 텐데.”
페이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엘노어 쪽을 바라보았다.
이 여자, 자신의 과거는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학생회는 모든 학생들의 인적 사항을 관리하는 업을 맡고 있지.”
엘노어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이어말했다.
“마도학부의 페르시 학장님과 연이 있다고 들었네. 아닌가.”
“…”
페이놀이 쓴웃음을 지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아픈 과거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을 만큼.
페르시 시스턴 레반틴의 이름은, 지금도 그녀의 가슴 안에 가장 커다란 흉터로 남아있다.
“…연고가 있는 분이긴 하죠.”
그러니, 당장은 그렇게만 흘려넘긴다.
엘노어도 그 말을 듣고 더 깊게 캐물어 보진 않았다. 그 말을 꺼낸 페이놀의 목소리에 묻어있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알아차렸기 때문이겠지.
“평민이라고 했나. 어디 출신이었지.”
“북부의 조그마한 마을이었습니다. 아마 말씀드려도 모르실 테죠.”
“그런가.”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꺼낸 페이놀이, 가라앉은 눈동자로 잔 안에서 찰랑이는 와인을 바라보았다.
피처럼 붉다.
“모종의… 사고가 있기 전까지는요.”
그녀 폭주하여 마을 전체를 태운 그날 밤의 광경처럼.
그 말을 들은 엘노어가 물끄러미 페이놀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그 시선을 피하며 와인 한 잔을 더 들이켰다.
술이 돌기는 하는 모양이다. 쓸모없는 소리까지 자진해서 입 바깥으로 꺼내는 걸 보아하니.
‘…뭐 하자는 거야, 페이놀.’
그녀가 속으로 그렇게 뇌까렸다.
이제 와서 평범하게 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기라도 하는 건가.
돌아갈 고향을 제 손으로 없애고, 갈 곳조차 잃어버린 자신을 거두어준 은인마저 상처입힌 그녀 같은 괴물이?
제국 최악의 재앙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는 적야 사태는 그녀가 일으킨 것이다. 그녀의 몸 안에 잠들어 있는 붉은 악마가.
“…재상 각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억지로라도 화제를 비틀어서 돌린다.
너무 자리에서 벗어난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그녀가 이 자리에 참석한 것도, 트리스탄 공녀가 여기에 있는 것도 다 그쪽 때문 아닌가.
엘노어도 잠시 침묵하면서 답하는 걸 보니 그녀의 분위기를 어렴풋이 알아차린 모양이다.
“…어렸을 때 몇 번 마주치긴 했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인간이라 더 잘 기억하고 있다.
“어떠셨나요?”
“재수 없을 정도로 잘난 인간이라는 감상 외에는 안 들더군.”
페이놀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대륙에서도 손 꼽히는 권력을 가진 대형 귀족 가문, 그 중에서도 검술 명가에서 역대급 재능이라고 칭송받던 그녀조차 2순위로 밀려나게 만드는 인간이겠지.
제국 귀족 중 가장 천한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살아갈 인생의 절반조차 밟지 못한 젊은 여자가 제국 최고의 통수권자라니. 몇 년 전만 해도 소설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설리번이 처음으로 두각을 드러낼 때까지만 해도 그랬겠지.
지금은, 그런 사실을 비웃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런 짓을 한 이들은 모조리 다 죽었으니까.
“…”
페이놀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엘노어의 말은 전부 다 맞다.
딱 한 가지만 빼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긴 아니죠.”
“음?”
그녀의 심장 안쪽에 잠들어 있는 붉은 악마는 모든 악마 중에서도 가장 난폭한 축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자주 나누지는 않지만.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악마를 품고 있다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원래도 시간만 주어진다면 재상 위치까지 올라갈 인간이 미래까지 알고 있는데 오죽 하겠습니까.”
설리번 재상은.
틀림없이 그녀와 ‘동류’라는 것이라든지.
“…뭐라고?”
엘노어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지만, 페이놀은 더 자세히 답하는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더 설명해줄 시간도 없어 보였으니까.
“각하 입장하십니다. 모두 기립하시오!”
그런 말과 함께, 근처를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용인들이 모두 일사분란하게 주변으로 흩어졌다.
얼굴에는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긴.’
그들이 마주하는 건 대적한 이 중에서 살아남은 인간이 단 한 명도 없는 철의 여인이다. 혹시라도 눈 밖에 날까 봐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래서.
철의 여인이, 다정하게 남자 한 명의 팔짱을 끼고 회장 안으로 걸어들어오자.
모두의 표정으로 숨길 수 없는 당황이 타고 올라왔다.
마치.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변에 과시하듯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어머.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재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내뱉는 사이,
페이놀이 거무죽죽한 얼굴로 질질 끌려오고 있는 다우드를 보고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그래. 지금까지 저 남자가 휘말린 일의 대부분은 자업자득이겠지만, 이번만큼은 틀림없이 피해자가 분명해보였다.
적어도 저 남자가 ‘지금’ 직접적으로 뭔가 저지른 건 단 하나도 없을 테니까.
‘…저런.’
하지만, 누구나 그 사실을 모르는 인간에겐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겠지.
팔짱을 한껏 끼고 있는 다우드의 모습을 본 엘노어의 표정이 급속도로 구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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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stem Message > [ 대상 ‘엘노어’의 타락 수치가 급속도로 상승합니다! ]“…”
미안합니다, 엘노어.
저로서는 막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며 재상님에게 질질 끌려가 옆좌석에 착석한다.
도중에 몇 번 탈출하려고 시도했는데, 그때마다 재상님이 죽은 눈으로 노려보길래 어쩔 수가 없었다.
그대로 갔다가는 진짜로 뭐 하나 저지를 것 같은 기색이라.
[근데, 악마의 조각이 없다며. 그럼 폭주도 못 하는 것 아니야?]‘그렇다고 해서 재상이랑 척질 짓 하는 미친놈이 어디에 있어요?’
[그건 그렇네.]칼리반이 피식 웃으며 수긍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차치해놓고서라도, 위험해요.’
애초에, 조각이 없다고는 해도 이 사람이 악마의 ‘권능’을 쓸 수 있을거란 느낌은 거의 확신에 가까울 정도다.
심지어는 대체 무슨 능력일지 짐작도 안 가는 게 문제다.
내가 알고 있는 악마는 6개체가 전부다. 그 외의 다른 악마는 들어본 적도 없어.
‘…그게 더 있을 수가 있나?’
나름 세이비어 라이징의 설정을 깊게 판 나도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악마다.
적어도 분명히 그 조각을 품었던 전적이 있다.
타천의 인장 덕분에 악마 모조품 비슷한 것으로 행세할 수 있는 나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지.
그 사이, 음식을 전부 세팅한 사용인들이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회장 안에서 퇴장했다. 아마 설리반이 미리 그렇게 하라고 지시해 둔 모양이지.
“…”
그리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내 속도 시꺼멓게 타들어 간다.
굳이 사용인을 물린다는 건, 지금부터 ‘남 들어봤자 좋을 것 하나 없는’ 이야기가 날아다닌단 뜻일 테니까.
“일단.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리스탄 공녀. 그리고…”
그렇게 입을 연 설리번의 고개가 살짝 돌아가 페이놀의 얼굴에 꽂혔다.
“…예상 못 했던 얼굴이 있습니다만. ”
트레이드 마크같은 온화한 미소와 함께, 다시 말이 이어졌다.
“뭐, 괜찮습니다. 어차피 당신도 들을 이야기니까요.”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각하.”
엘노어가 무표정하게 붉은색 안광을 흉흉하게 뿌리며 답했다.
아무리 공녀라 해도 재상에게 취하는 태도로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라고 해도 좋겠지만, 설리번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러려고 사람들을 물렸다는 것처럼.
그리고, 곧바로.
“이 남자 근처에 있는 다른 여자들한테도 전부 전달될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재상님께서 폭탄을 떨어트리셨다.
“제 낭군님한테 접근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고.”
“…”
“…”
엘노어와 페이놀이 동시에 눈을 끔뻑거렸다.
깜빡이도 안 키고 급작스럽게 튀어나온 말이라 화가 나기 이전에 아예 어이가 증발한 모양이다.
말을 꺼낸 재상님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얼굴에 걸고 천연덕스럽게 식기를 움직여 음식을 그릇에 덜어오고 있었다.
마치 그렇게 커다란 발언을 한 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아주 당연한 권리를 당연하게 선언한다는 모습이다.
“…”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뇌정지가 좀 세게 오네.
낭군?
대체 무슨…?
“…결혼이라도 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페이놀이 살짝 얼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질문했다.
감정이 아예 지워진 인간도 이 발언을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인가 보다.
애초에 이 사람 위치가 위치다. 전 대륙 단위로 파문을 몰고 올 게 분명한 발언이겠지.
하지만.
“예.”
너무나도 당연하게 대답이 흘러나온다.
마치 그런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기색까지 얹어서.
“…각하.”
엘노어가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이 싸늘하다 수준이지, 말에 물리력이 있었다면 지금쯤 설리반을 난도질하고도 남았을만한 살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느낌이다.
“그 남자, 저와 약혼한 사이입니다. 알고 하시는-”
“알고 있어요, 트리스탄 공녀. 그러니까 더더욱 당신에게 강조하는 겁니다.”
거의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엘노어를 상대하면서도, 설리번의 얼굴에선 온화한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거의 감탄스럽네.
“당신처럼 자격 없는 여자는 결코 이 인간에게 ”
“…자격이 없다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설리반이 얼굴에 걸고 있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트리스탄 공녀.”
마치 물어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당신 때문에, 잘못하면 조만간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
그 말을 듣자마자.
내 피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 든다.
이거, 게임 안에서도 고정적으로 흘러나오는 대사였으니까.
‘특정 이벤트’를 불러일으키는 도화선 같은 대사다.
‘칼리반.’
[응?]‘잠깐 자요.’
[뭐? 아니, 무슨-]황당해하는 칼리반의 말을 무시하고, 소울 링커를 팔에서 뗀 다음 아예 품에 집어넣는다.
지금부터 설리번이 꺼낼 이야기는.
절대 이 인간이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니까.
“…전쟁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트리스탄 공녀.”
이어서.
“혹시, ‘용사 선발’이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설리번의 그런 말과 함께, 눈앞으로 시스템창 하나가 떠올랐다.
[ System Message > [ 대상 ‘설리반’의 상태 개변으로 메인 시나리오가 변동됩니다. ] [ 〖 챕터 4 – 적야 〗의 시작 지점이 변동합니다! ]“…”
그래. 나도 아는 내용이다.
이거.
4챕터의 시작을 알리는 대사니까.
시나리오의 가장 큰 변곡점 중 하나를 만들어내는 챕터 말이야.
“…”
품 안쪽에 있는 소울 링커를 나도 모르게 쓰다듬는다.
4챕터가 시나리오 최대의 분기점인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 악마의 그릇 중 하나인 페이놀이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챕터인 것도 그렇지만.
‘…엘리야.’
이 세계의 ‘원래 주인공’이.
가장 크게 얽히는 챕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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