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6)
r 15 – 15. 마수 소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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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 크리사낙스가 다우드 캠벨에게 가지는 인상은 한 단어로 요약 가능했다.
이상한 사람.
도저히 하나부터 열까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무슨 양파도 아니고 까면 깔수록 수상한 점만 나온다는 점도 그렇지만, 항상 예상과는 다른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화 나셨나?’
그리고 그건 지금 신입생 환영회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 모습에서도 그렇겠지.
어제까지만 해도 파트너 요청을 군말 없이 흔쾌하게 수락해주길래, 오늘 같이 다니면서 이것저것 대화를 해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 마디도 안 한다. 기껏 무슨 말을 걸어도 ‘응.’ ‘그러자.’ 수준의 단답뿐.
원래대로라면 조금 위화감을 느낄 법도 했지만, 그녀로서는 그런 인식을 저해할 ‘옵션’이 발라져 있다는 건 상상도 못하던 참이었다.
‘…화가 난 남자는 어떻게 대해야 하지?’
그리고 다우드로서는 다행이게도, 그녀는 이성을 대하는 데 있어선 유인원 수준의 사회성을 자랑하는 인간이었다.
차라리 업무 관계라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들이댈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대등한 관계에서 친구로 지내라고 하면 뇌가 정지되는 타입.
진짜로 화를 낸다고 해도 사실 어쩔 수는 없다. 첫 만남부터 자신이 이 남자를 두들겨 패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타이밍에 그것 가지고 화를 내는 건 조금 이상하지만, 그런 감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 그녀도 부정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쪽으로 조금 깊게 파고 들어야 트리스탄 공작가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버클리 회관의 지하에 도착해 있었다.
아마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사람 없는 곳으로 걷다보니 도착한 모양이지. 당장 이 근처에 있는 건 자기들밖에 없었다.
“우와…”
그녀가 얼굴을 찌푸리며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케이지들을 돌아보았다.
안쪽에 들어가 있는 건 살아있는 마수들. 전부 다 아카데미에서 연구 재료로 쓰기 위해 반입된 것들이 분명했다.
‘중형 마수도 섞여있네. 세상에.’
중형 마수면 적어도 정규 기사단 한 개 분대 정도는 파견되어야 상대가 가능한 레벨이다. 학생들로 가득한 아카데미 안에 산채로 잡아둘만한 레벨은 절대 아니지.
“교수진들도 참 무책임하네요. 아무리 특제 우리가 있다지만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가 혀를 차며 케이지에 가까이 다가가서 고개를 숙였다.
아마 그 덕분이었겠지.
겉으로 봐서는 절대 보이지 않을 위치에 붙어있는 마력 합성물을 발견한 것은.
“…”
그녀가 그걸 제대로 의식하기도 전에, 실전을 거치면서 비슷한 물건을 수도 없이 봐온 두뇌는 이미 연산을 마치고 있었다.
이거.
몇 초 안에 폭발한다.
“선생님, 피하셔야-!”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눈앞으로 폭염이 치솟아올랐다.
시야를 환하게 뒤덮은 불꽃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것과 동시에, 엘리야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원래대로라면 제법 민첩하게 회피 기동을 했겠지만.
코앞까지 다가온 새하얀 불꽃이.
그녀 머리 저편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던 기억을 다시 격발시키고 있었다.
-엘리야, 여기, 여기 숨어! 절대로 나오지 마!
-빌어먹을 악마 추종자 새끼들아, 이쪽이다! 한 번 죽여봐라!
폭발. 불꽃. 비명. 발자국 소리. 비릿한 냄새. 불타는 가족사진. 고인 피 웅덩이 위에서 번쩍이는 칼날의 반사광. 시체.
“…!”
하지만 그런 이미지들을 떨쳐내기도 전에, 코앞까지 다가온 불꽃이 그녀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위험…!’
그리고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이 어렴풋이 지나가는 사이.
누군가가 그녀의 몸을 통째로 들이받았다.
이어서 바닥과 격렬한 충돌. 우당탕탕 몇 바퀴 구른 엘리야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아야…”
다행이라면 다행인지, 그런 격렬한 고통 덕분인지 의식은 정상적인 사고를 가능할 정도로는 깨어난 모양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위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다우드 캠벨을 인식한 것도 그 덕분이겠지.
“…”
등 전체에 흉하게 올라와 있는 화상. 부러진 팔다리. 파편들에 베여나가 전신을 가로질러 나 있는 자상.
그녀를 폭발에서 감싸며 얻은 부상이다. 중상이겠지.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정도로.
“서, 선생님. 잠깐. 잠깐만요. 왜, 왜 그러셨어요?”
그 사실을 인식한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대체 왜?
이 사람,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자기한테 화난 것처럼 굴지 않았던가. 자신도 그럴 이유가 있다고는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
무엇보다, 본인도 트리스탄 공녀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쪽과 척을 졌다고 티를 철철 낸 그녀한테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
다우드 캠벨, 정확히는 그 클론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려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마 아무런 옵션이 적용되어 있지 않은 클론이었다면 원래 클론의 존재의의가 전투 중 가장 위협적인 일격을 먼저 맞음으로서 주의를 끄는 것이라는 걸 어떻게든 알아듣게 알려줬을 것이다.
포인트 상점에서 구입한 클론은 원래 그런 의도로 배치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차가운 젠틀맨’ 옵션이 적용된 클론은 그런 것이 별로 쿨하지 못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것보단 한 문장이면 충분하겠지.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
엘리야가 뭐라 대답도 꺼내놓지 못하고 눈가를 파르르 떠는 사이, 다우드의 클론은 만족스럽게 미소지으며 바닥에 푹 퍼졌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참으로 차가운 젠틀맨 같은 퇴장이었을 것이다…
-!
-!!
하지만 별로 젠틀하지 않은 괴성이 잇따라 이어지는 것을 들은 엘리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 폭발로 케이지가 파손되면서 그 안쪽에 있는 마수들 전원이 풀려난 것이다.
“…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는데.”
엘리야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일어섰다.
상태를 점검한다.
관절 여러 곳이 부어있다. 평소같은 움직임은 불가능하겠지. 무기도 없다. 기껏해야 철근이 박혀있는 쇠막대기가 전부.
상대는 모의전에서 만나는 마수가 아니라 진짜 마수. 개체는 6마리.
소형 마수 한 마리라도 성인 남자 여럿 정도는 우습게 찢어버리는 흉측한 생물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건 정규 기사라도 기겁을 하면서 도망갈 숫자다.
“…”
아마 그녀에게 전투 기술을 전수해준 켄드리드 변경백이 본다면 기함을 지를 것이다.
불리한 싸움은 피해야 한다. 도망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누누이 그렇게 강조하지 않었던가.
하지만.
“하.”
시선이 한 구석에 누워있는 남자에게 돌아간다.
웃기지도 않은 남자다. 뭐 위기에 처한 사람만 보면 구해야 하는 강박증이라도 있는 건가.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니. 진짜 웃기지도 않아.
벨트 안에서 시약병 하나를 꺼내든다.
원래대로는 켄드리드 변경백이 반드시 급한 상황에서 사용하라고 넘겨준 최고급 포션이다. 1년 1개 구하기도 힘들다던가.
원래대로는 자신에게 뿌리고 전투를 속행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
하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걸 다우드 캠벨에게 뿌렸다.
“원래 사람 구하는 건 용사가 하는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곳에서 죽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으음…”
부상당한 몸으로 마수 6마리라.
“별 것도 아니네.”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녀에겐 정말로 그런 일이었다.
●
[System Message> [ 메인 퀘스트를 갱신합니다! ] [ 메인 퀘스트 ] [ 마수 출현! 사태를 진압하세요! ] [ 너무 많은 숫자가 죽으면 시나리오상 막중한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 [ 보상: 전용 장비 재료 ]차라리 날 죽여라, 이것들아.
신입생들 우글우글 모여있는 곳에서 마수 한 무더기를 풀어놓고 사상자를 최대한 적게 내라고?
“잠깐,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해야 할 게 있어요! 회장님은 가서 사제 한 명 찾아다주세요!”
급하게 몸을 움직이는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엘노어에게 그렇게 전달한다.
“학생들부터 보호해야 하니까!”
그렇게 고함을 치며 몸을 움직인다.
‘우선순위부터.’
인명 피해를 줄일 사제는 엘노어가 불러온다 치고, 가장 중요한 건 초동 대처다. 마수가 지하실에서 뛰쳐 올라오기 전에 최대한 숫자를 줄여놔야 사상자가 덜 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지하로 후다닥 뛰어오자마자 발견한 건.
“…어.”
내구도가 다해서 흐물흐물하게 바닥에 퍼진 내 클론과 마수들 시체에서 악귀 같은 형상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엘리야였다.
6마리 중 이미 5마리는 잡아놓고, 마지막 녀석에게 마무리 일격을 날리기 직전인 상황이었다.
“…”
모의전의 인조 마수도 아니고 진짜 마수 5마리를 쇠막대기 하나 들고 죄다 쳐죽였다고?
얘 사람 맞아?
아니, 애초에 시나리오상 엘리야는 이런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캐릭터가 아니다. 본격적인 용사로 각성하기 전까진 어느 정도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면이 있는 녀석이라서.
그 전에 저 녀석이 저렇게 싸우는 경우는, 글쎄다. 꼭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로 한정이다.
“…”
그런데 여기 내 클론밖에 없지 않았냐.
왜 불길한 예감이 들지.
‘…지금은 일단 모르겠고!’
녀석이 눈치채기 전에 흐물흐물해진 클론을 회수한다. 똑같은 인간이 두 명 있는 걸 보면 누구나 이상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 사이, 마지막 마수에 마무리 일격을 날린 엘리야가 한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아내었다.
“휴우…”
그리고 클론을 회수한 상태로 엉거주춤 앉아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다.
“…!”
녀석의 표정에 확 화색이 돈다. 탈진해서 팔 하나 까딱 못 하는 상태로도 배시시 웃는 얼굴은 뿌듯함 마저 깃든 모습이다.
“…다행이다.”
[ 대상 ‘엘리야 크리사낙스’의 호감도 단계가 변화합니다! ] [ 호감도 단계가 ‘호기심’에서 ‘관심’으로 격상합니다!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추가됩니다! ] [ 두 번째 기프트의 개방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 중요 인물입니다. 메인 시나리오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
이어서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창이 주르륵 떠올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게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건진 모르겠지만.
“풀려나온 마수들, 이게 전부야?”
일단 그것부터 질문한다.
그러자 녀석한테서 어이가 없다는 분위기로 대답이 돌아왔다.
“선생님은 정신 차리자마자 그것부터 질문해요?”
“…?”
뭔 정신을 차려. 지금 도착했는데.
“혹시라도 빠져나간 마수 있으면 죽는 사람들 생기잖아! 빨리!”
메인 퀘스트가 우선이다. 시나리오상 막중한 페널티가 부과된다는 게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그렇게 피하려고 했던 상황인 건 틀림없으니까.
그렇게 녀석을 독촉하자, 엘리야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한결같네, 진짜. 원래 이런 사람인가.”
한숨과 함께 녀석이 바닥에 푹 퍼졌다. 아마 부상당한 몸으로 마수를 6마리나 때려잡느라 체력에 한계가 온 모양이지.
“중형 마수 하나 놓쳤어요. 아마 지금쯤 1층 플로어로 가고 있을 테니, 최대한 빨리 가면 막을 수 있…”
말도 다 잇지 못하고 중간에 졸도하는 걸 보니 확실하다.
“고맙다!”
어차피 듣지는 못 하겠지만, 녀석에게 그런 말만 남겨두고 1층으로 다시 최대한 빨리 올라간다.
저주받은 체력이라 그냥 계단 오르내리는 것도 지옥같이 힘들지만, 숨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뛰어오르니 간신히 상황에 맞출 수는 있었다.
엘판테 건물에 비상시 발동되는 ‘격리 결계’ 안쪽으로 학생들이 몰려있는 상황.
근처에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이끌고 간신히 결계 안쪽으로 대피하고, 간신히 결계를 유지하며 버티고 있는 형태다.
현명한 판단이겠지.
아마 지금쯤 난리가 난 걸 보고 받은 아카데미 내부의 전투 인원이 이쪽으로 오고 있을 테니, 괜히 싸웠다가 인명 피해를 늘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시간만 끌면 어차피 중형 마수라도 진압될 테니.
문제는.
-!
-!!
-!!!
곰을 닮은 중형 마수가 괴성을 지르며 앞발로 내려칠 때마다 실금이 쩍쩍 가고 있는 결계.
결계를 보강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음에도 이 모양이다.
애초에 중형 마수라는 게 정규 기사단에서도 어느 정도 각오하고 달려들어야 토벌이 가능한 객체니까. 저 정도로 버티는 게 오히려 신기한 수준이지.
‘사제는…!’
하다못해 엘노어가 사제라도 데리고 빨리 데리고 왔다면 그래도 괜찮겠지.
사제는 직업군 특성상 혼자서도 결계를 든든하게 보강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얼마든지 시간을 끌 수 있지.
간절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시야 끄트머리에 엘노어가 걸렸다.
법복을 입고 있는 사람과 같이 있는 걸 보니 진짜로 데리고 왔나 보다. 능력도 좋네.
“그러니까 지금 결계를 보강할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걸 막으려면 천사의 가호 정도는 필요하고, 맨몸으로 그런 걸 펼치는 건 자살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대로면 사람들이…!”
“그럼 대신하여 제가 죽으라는 말씀입니까?”
다만 티격태격하는 걸 보니 뭔가 잘 풀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가호를 못 펼치겠다는건가?’
학원에서 교직원을 하고 있을 수준의 사제라면 천사를 만나 직접 수여 받지 않더라도 기도를 통해 비슷한 수준의 가호를 불러낼 순 있다.
하지만 대신 그만한 ‘대가’를 치루게 되어있지. 자살 행위 운운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내가 일부러 가호를 내 몸에다 받지 않고 울트리마에 담아온 것도 그래서지만.
세계관에는 지금 시점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잡기술인데, ‘물건’에 가호를 담으면 효과는 떨어지는 대신 반작용은 아예 없거든.
‘근데 쟤 태도가 좀 뭐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실랑이를 이어가는 사제를 노려본다.
애초에 이런 긴급 상황에 사제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성물조차 챙기지 않은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마치 구실을 만들어서 일부러 거절하려는 모습 아닌가.
엘노어가 성난 목소리를 쏟아내는 와중에도, 법복을 입은 사제는 팔짱을 끼고 요지부동이었다. 심지어는 얼굴에 오히려 비웃는듯한 미소마저 걸려 있다.
‘하여간.’
이 아카데미는 뭐 어떻게 된 게 미친놈들 투성이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사제쪽으로 접근한다.
“그대, 이럴 때까지 정치적 이해관계를 끌고 오는 건가! 긴급 상황일세, 사람들 목숨이 걸려 있어!”
“하, 트리스탄 공작가는 이래서…”
“그러면 저 주세요.”
뭐라뭐라 설전이 오가는 사이로 그런 문장을 떨어트린다.
엘노어와 사제가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뭐라고?”
“성물 없어도 긴급용 제구는 있을 것 아니에요. 자기 목숨 아까운 줄은 아는 인간 같으니 그건 챙겼을 것 같은데. 그쪽이 가호 못 치겠으면 내가 합니다.”
침묵이 잠시 흘렀다.
“…이봐. 학생 주제에 대체 무슨, 가호가 뭔지는 알고 있…”
뭐라고 더 말하기도 짜증나서 사제 뒤춤에 있는 작은 로사리오를 거칠게 뽑아든다. 더 시간 끌면 진짜로 결계가 깨질거다. 일분일초가 아깝지.
그리고 녀석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곧바로 몸을 돌려 버클리 회관쪽으로 달린다.
그쪽으로 달려가는 와중에 엘노어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기색이 좀, 뭐랄까.
불안하긴 했지만.
[System Message> [ 대상 ‘엘노어’의 상태 변화가 임박했습니다. ] [ 지금 하려는 행동 이후에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 [ 대비하십시오! ]“…”
그리고 그 불안함을 배로 증폭시켜주는 메시지가 눈앞으로 떠오르니 식은땀이 나올 정도지만.
‘몰라! 나중에!’
어차피 이미 불안한 징조는 수도 없이 있었다. 그보다 메인 퀘스트다. 당장 이거부터 안 깨면 내가 큰일난다!
울트리마를 준비한다. 로사리오는 그대로 왼쪽 팔에 박아넣어서 피를 낸다.
화끈한 격통과 함께 로사리오에 푸른 빛이 감돈다. 모든 사제들이 긴급 상황에 대비해 가지고 있는 비상용 제구는 이런 식으로 혈액을 섞어 조그마한 마력 배터리로 사용할 수 있다.
“좋아.”
한숨을 내쉬며 로사리오를 향로 안으로 집어넣는다. 마력이 깃든 향로가 그에 감응하여 같이 푸른 빛을 내뿜는다.
[ 스킬 ‘고행’이 사용 가능합니다! ] [ 스킬 ‘신성 방패’가 사용 가능합니다! ]눈앞으로 연속으로 떠오르는 창을 확인하며 곧바로 중형 마수와 결계 사이로 몸을 던져넣는다.
“뭐, 뭐야?”
“학생! 무슨 짓이야! 당장 비켜!”
결계 뒤쪽에서 당황한 교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가 보기에도 미친 짓이니까 하는 소리겠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다.
이어서 다른 것들도 발동.
[ 스킬: 고행을 사용합니다. ] [ 모든 능력치 추가분을 내구로 전환합니다. ] [ 스킬: 신성 방패를 사용합니다. ] [ 쉴드를 생성합니다. ]눈앞으로 반투명한 푸른 방어막이 떠올랐다.
절체절명으로 추가된 모든 능력치분을 죄다 퍼먹은 방어막. 어느 정도로 단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중형 마수라도 쉽게 깨지지는 않을 거다.
“학생! 겨우 그걸로 뭐 어떻게 하겠다고! 당장 도망가! 여긴 우리들한테 맡…!”
“…갈 수가 없으니까 온 건데요.”
“…뭐?”
“학생들이나 건물 바깥으로 보내요. 제가 이걸로 시간 끌고 있을 테니까.”
그래, 뭐.
내 목적은 이걸로 시간을 끄는거다. 이 녀석을 죽이겠다는 게 아니라.
그 정도야 어떻게든 될 것이다.
“…”
곰을 닮은 마수의 눈길이 나한테 내려꽂혔다. 살의가 듬뿍 담긴 노란색 눈동자가 흉폭하게 이글거렸다.
그쪽과 눈을 맞추며 심호흡을 한다.
심신을 가라앉힌다.
실수하면 죽겠지만, 글쎄.
“덤벼, 임마.”
실수 안 하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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