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63)
r 162 – 162. 첫 번째 시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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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탈리온이 그렇게 말하며 페이놀을 멈춰세웠다.
전방으로는 어두컴컴한 복도가 놓여 있었다.
“돌아가는 게 낫겠습니다. 이쪽으로 진입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커요.”
타당한 판단일 것이다.
던전에서 이런 종류의 통로를 만난다면 그대로 지나가는 건 자살 행위다. 도처에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게 던전이니까. 시계가 확보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죽을 확률도 폭등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페이놀 라이펙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릿느릿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페이놀 씨? 잠깐, 지금 무엇을-”
식겁한 탈리온이 그렇게 말을 붙이려고 했지만.
뭐라고 문장을 완성시키기도 전에.
사방에 놓여 있는 함정, 인공 마수, 그리고 정교하게 설치된 마력 교란 장치들이 일거에 튀겨지는 소리가 어둠 속으로 울려퍼졌다.
그냥 페이놀이 저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일어난 일이었다.
“…거기서 뭐 하고 계신 건가요?”
페이놀이 등 뒤에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탈리온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뭐가 문제길래 거기에 혼자 뒤처져 있냐는 기색이었다.
“…”
한참을 멍하니 그쪽을 바라보던 탈리온이, 이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괴물인지 잠깐 까먹고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던전을 진행하는 와중에, 이 여자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쓸어버린 장애물이 대체 몇 개란 말인가.
느닷없이 이쪽의 ‘수행원’으로 발탁되어 용사 선발에 참여하게 된 지는 며칠 째지만, 여전히 이 여자의 용력에는 적응이 안 된다.
“…아뇨. 이 너머는 아무것도 안 보여서 말입니다.”
“그런가요.”
페이놀이 쓴웃음을 지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슬픈 일이라고 해야할지.
그녀는 자신의 오감에 의존하는 타입은 아니다. 항상 신기에 가까운 마력 운용을 통해 그런 걸 대체하는 것에 더 익숙한 인간이다.
조명 같은 건 제대로 체감하지도 못 하는 게 분명하지.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냐고.’
기사학부 중에서도 강체술을 극한까지 익힌 이는 신체 기관 중 대다수가 망가지더라도 거동이 가능한 인간들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칠 일도 많고 그런 상태로 전투를 속행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강제로 갖춰야 하는 덕목이다.
마법사의 마력같이 전혀 계통이 다른 능력으로 그런 걸 하는 건 상대방이 어느 정도로 고등한 능력을 가졌는 지 알려주는 내용이렸다.
“…”
하지만.
그런 탈리온의 감탄과는 다르게, 더 당황하고 있는 건 페이놀 본인이었다.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은데.’
붉은 악마가 한 번 죽은 그녀를 되살리는 대가로 가져간 것은 그녀의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바꿔 말하면 감정이 다시 깨어나기 시작한 지금은 그런 지배력이 점점 더 약해졌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 악마의 기운을 딱히 일으키고 있는 게 아님에도, 지금 그녀가 운용하는 마력에는 자연스럽게 마기가 깃들어 나가고 있었다.
마치, 악마의 권능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처럼.
‘…이상해.’
떠오른 이유라고는 그쪽 때문이다.
다우드 캠벨.
그 남자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선언한 뒤로. 감정이 깨어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몸 안에 있는 악마 역시 같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당초 예상했던 현상과는 전혀 다른 효과일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조각이 다 모인 악마가 폭주하는 걸 막으려던 원래의 계획을 생각하면 그 남자와 접촉하는 걸 당장 그만둬야겠지.
하지만.
-제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페이놀. 당신에게 거부권은 없구요.
“…”
이전에 들었던 말을 떠올린 페이놀이 조심스레 입가를 쓰다듬었다.
저도 모르게 미소를 띄우게 될 것 같았으니까.
적어도 상식이 안 통하는 인간인 건 분명했다.
말하는 걸 보니 자신이 과거에 ‘무슨 짓’을 저질렀고, 무슨 이유로 죽겠다고 하는 건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런 말을 꺼내 들다니.
“…”
무엇을 믿고,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하려는진 모르겠지만.
그 남자라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이상 현상’ 마저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면.
‘…조금만 더.’
믿어보도록 하자.
더, 그 남자를 볼 때마다 심장에 들어오는 고동에 집중하도록 하자.
만약 그 남자가 자신에게 정말로 ‘행복’을 돌려줄 수 있다면.
그녀 역시, 그에 걸맞은 ‘값’을 그 남자에게 지불할 것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옆에 서 있던 탈리온이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마 저희가 지금 제일 빠르게 던전을 돌파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장애물 만나는 족족 돌파해버렸으니까.”
“그러면 조금 쉬었다 갈까요.”
페이놀의 말에 탈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휴식…을 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유를 부릴 타이밍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용사 후보들도 하나 같이 다 대단한 사람들 아닙니까?”
“…글쎄요.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데요.”
페이놀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답했다.
“전 용사가 누가 될지는 처음부터 관심도 없어서요.”
“…예?”
“딱 한 번 만난 당신을 수행원으로 뽑은 것도, 누가 제 파트너건 아무래도 좋아서구요.”
“…”
느닷없이 튀어나온 괴상한 화제에 탈리온이 멍하니 반문했다.
“…그럼 선발에는 애초에 왜 참여하신 겁니까?”
“그러라고 명령 받았으니까요.”
그거야 그녀는 이단 심문소 소속이고, 그 집단을 총괄하는 설리번 재상이 강력하게 밀어붙였으니까 그렇지.
열심히 하건 안 하건 반드시 ‘이 자리’에는 있으라고 했던가.
애초에 이번 후보에 그녀가 선발된 것도 그쪽의 입김이 대단히 강하게 들어간 결과물이다.
“…”
이유야 대충 알 것 같다.
이번 선발에 재상이 그렇게나 신경 쓸 이유는 하나 밖에 없을 테니까.
‘…재상에, 트리스탄 공녀에, 그랜드 어쌔신에…’
그 남자를 ‘탐내는’ 인간들의 리스트를 쭉 작성하던 페이놀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요, 탈리온 씨.”
“예?”
“다우드 씨는 나중에 몇 조각으로 쪼개질 것 같나요?”
“…예?”
“주변에 후리고 다니는 여자들의 숫자가 숫자인데, 어째 하나같이 다 위험한 면면들이라…”
“…”
탈리온이 턱을 쓰다듬었다.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기색이었다.
“…일단 20조각 정도는 넘지 않겠습니까?”
“…농담이었는데요.”
“농담처럼 안 들리는 질문을 하시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
그건 그렇지.
“하지만 형님도 형님이니까, 아마 목숨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온갖 미친 짓이나 기행을 하실 게 분명-”
“야후우우우우-!”
“…”
“…”
던전에 울려 퍼지기엔 너무 해괴한 소리에, 탈리온은 물론이고 페이놀까지 답지 않게 멍한 표정으로 그쪽을 돌아보았다.
지금 그들이 택한 진입로보다 한참 아래쪽에 거침없는 속도로 내달리고 있는 일행이 있었다.
“…저기, 분명히 마수가 몇 백 단위로 쏟아지던 곳이라 저희도 돌아왔던 진입로죠?”
“…”
탄탄한 개활지에 다른 진입로와는 다르게 최심부까지는 탄탄대로인 곳이라, 제대로 달릴 수만 있으면 최단 기간의 진입 기록을 보장하지만.
페이놀의 출력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만큼 무시무시한 적이 쏟아지는 곳이라, 탈리온의 브리핑을 듣고 그녀조차 방향을 꺾었던 진입로다.
지금도 사방에서 쏟아지는 마수들의 발걸음 소리의 규모는 누가 듣더라도 오싹함을 느낄 정도다.
그런데.
“…저거, 지금 그러니까…”
탈리온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미끼로 써서, 마수 웨이브를 ‘조종’하는 겁니까?”
전방에 엘리야가 누군가를 업고 달리는 건 여기서도 훤하게 보인다.
그 뒤에 다우드가 따라붙어서 달리는 것도, 그들이 엄청난 숫자의 마수에게 쫒기고 있단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엘리야에게 업혀있는 누군가가 막대기에 줄로 ‘묶여’ 있다는 점이다.
마치 물고기를 낚기 위해 떡밥을 걸어놓는 것 마냥.
“선생님! 이대로 가면 따라잡혀요!”
“…줘 봐.”
그렇게 말한 다우드가 엘리야가 업고 달리던 막대기와 거기에 묶인 라나를 넘겨받았다.
“훠이.”
그런 말과 함께, 라나의 몸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만신창이가 된 몸에서 흘러나온 혈향의 냄새에 마수들의 눈이 더욱 희번득거리기 시작했다. 본능에 이끌려 그들의 몸이 라나가 흩날리는 쪽으로 쏠린다.
“어떻게 줄 좀 흔들거린다고 애들이 다 낚일 수가 있지…?”
“어렸을 때 낚시를 좀 열심히 해봤거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될 실력이 아닌 것 같은데?!”
“그거라도 못 했으면 굶어 죽어야 했어.”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는 행동과 결을 같이 하는 평탄한 대화였지만, 그런 것에 비해 효과는 굉장했다.
마치 서커스에서 맹수를 조련하는 것처럼, 휘청거리는 라나의 몸에 따라 웨이브 전체가 흔들거린다.
한 번이라도 라나를 때리거나 물어뜯으려고 달려드는 마수들 때문에 무리 전체의 대열이 무너지고 속도가 줄어든다.
자연스럽게 거기에서 도망가고 있는 다우드와 엘리야 역시 훨씬 수월하게 도망치게 되고.
자연스럽게 미끼가 된 라나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났지만, 정작 그런 험한 짓을 당한 당사자는 뭐라고 화를 내는 대신에 쾌활한 웃음을 터트렸다.
“와하하하하하하-! 캠벨 씨는 진짜 재밌는 사람이지 말임다! 저를 이렇게 쓰셔서 통과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처음 봤음다!”
그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강산성 강에서는 저를 뗏목으로 써서 건너시고, 분쇄 트랩에서는 저를 계속 쑤셔 넣어 트랩을 고장 내어 건너시고, 대규모 마수 웨이브에선 아예 제 몸 전체를 미끼로 사용하시다니!”
“…”
“전 바보라서 이런 제 몸을 이렇게 쓰는 방법은 상상도 못 했을 검다! 정말 대단하심다!”
“…대단하긴 하지.”
엘리야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다우드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인간 낚싯대’를 회수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쭉 보고 있던 탈리온이, 멍하니 입을 열었다.
“…저기요, 페이놀 씨.”
“예.”
“24조각도 너무 후하게 쳐준 것 아닐까요?”
“…”
“…”
암묵적인 동의가 두 명 사이에 묵직하게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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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엄청 빨리 돌파하고 있긴 하네요.”
엘리야가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도 그런 말을 꺼내들었다.
마수 웨이브까지 돌파하고 나니, 이제 정말로 던전 최심부가 코앞이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석문만 넘어가면 바로 목적지지.
‘…좋아.’
이대로 저기까지만 돌파하면, 첫 번째 시련은 무난하게 돌파다.
참으로 마음이 쿡쿡 찔리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꽤 수월하게 헤쳐나가고 있는-
[ System Message > [ 기가 막힐 정도로 인성이 파탄난 행위! ] [ ‘칭호: 폐기물’이 추가됩니다! ] [ 장착 시 당신이 악행을 저지를 때 상대방이 분개하는 효과가 증대됩니다! ]“…”
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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