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64)
r 163 – 163.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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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여기죠?”
엘리야가 눈앞에 있는 거대한 비석을 보고 그런 말을 꺼내놓았다.
첫 번째 시련이 이루어지는 던전의 최심부에 도착했다는 증거다.
모든 던전의 최심부에 박혀있는 ‘신비의 심장’.
보통 저기에 접촉함으로서 던전의 지배자를 소환해 일전을 치루게 되지.
말하자면 보스 소환용 장치다.
“아하, 인조 던전이라더니 이런 것까지 구현해놓은 모양이지 말임다?”
그렇게 말한 라나가 비석 앞으로 다가가 근처를 원형으로 걸으며 그걸 이리저리 살폈다.
여기까지 오면서 온갖 험한 꼴을 다 당한 덕분에 입고 있는 성황국의 교복이 거의 거적 대기가 된 모습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쪽을 보고 있자니, 옆에 있던 엘리야가 가늘게 뜬 눈으로 내 옆구리를 퍽 쳤다.
순간 숨이 턱 틀어막힐 만큼 강렬한 일격에 몸이 휘청인다.
“…왜.”
“아뇨. 자기 때문에 저렇게 너덜너덜해진 애를 음흉한 눈으로 보는 느낌이라.”
“…”
음해하지 마라.
“…그런 적 없다.”
“흐음.”
내 말에 깊은 콧숨을 내쉰 엘리야가 눈을 가늘게 뜬 상태로 라나 쪽을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나 험한 꼴을 당했으면서 그야말로 터럭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다. 화를 나거나 뭐
“자기가 다치는 건 아예 신경도 안 쓰는 건가요, 저 애는.”
“…그러게.”
얻어맞은 옆구리를 문지르며 간신히 수긍하자니.
“선생님.”
엘리야가 힘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평소답지 않게 죄책감이 잔뜩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우리, 나중에 꼭 저 애한테 사과해요.”
“응?”
“아무리 아파하지도 않고, 본인도 별 말 없이 수긍했다지만… 그래도 순수한 호의를 이용하는 꼴 같아서요.”
“…”
그러니까 나도 그런 일을 한 거긴 하다.
쟤는 그런 걸 해도 전혀 신경도 안 쓸 게 분명하니까.
덕분에 다른 놈들은 비교 근처도 안 올만큼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던전을 돌파하기도 했고.
[야.]문득.
소울 링커 안에서, 칼리반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너, 살짝 이상한데?]‘예?’
[내가 농담 삼아 쓰레기니 뭐니 놀려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 뭔가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라.]‘아뇨, 뒷감당이라면 오히려 저 녀석이 제일 안전-’
[그런 문제가 아니야.]칼리반의 말에 잠깐 멈칫한다.
평소 이 사람이 나를 놀릴 때 취하는 분위기완 그 느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으니까.
[너, 평소라면 이런 방법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시도도 안 했을 거다. 아무리 저 녀석이 싫어하지 않았다고 해도, 다른 사람 다치기 꼴 보기 싫다고 자기 몸 팔아먹던 게 다우드 캠벨이었는데.]‘…’
[맨날 급박한 상황에 휩쓸려서 험한 짓을 자주 하다 보니까 혼동하기 쉽지만, 그래도 네가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경우는 없었다고.]듣고 보니.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평소의 나라면, 아무리 아픔을 못 느끼고 본인도 괜찮다고 해도 내 목적을 위해서 이런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진 않았을 거다.
이 사람 말대로, 그렇게 ‘남을 다치게 하는 일’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많이 낮아진 상태라는 거지.
[이유가 뭔지는 알 것 같은데, 그거. 너도 이미 알고 있을 것 같고.]그런 말이 한숨과 함께 이어졌다.
[너, 니 손으로 종족 자체를 바꿔버렸으니까. 그거 부작용이지?]‘…’
[몸뿐만이 아니라 정신도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고.]확실히.
이건 ‘악마’에게 인격을 잠식당하기 시작하는 인간들이 가장 먼저 보이는 증상이다.
남에게 폭력을 들이미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극단적으로 낮아지는 것.
어떻게 아냐고 하면.
‘봤었지.’
게임 안에서 악성惡性에 잠식당한 그릇들이 가장 먼저 보여주는 증상이라 그렇다.
주변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명목 하에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는 것에 거부감이 점점 옅어지지.
대표적인 예가 엘노어였고.
그리고, 그건.
‘…나도 비슷하게 변하는 건가.’
타천의 인장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받기 시작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한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래.”
엘리야의 말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꼭 사과하자.”
“…헤헤. 역시 선생님은 말씀하시면 들으실 줄 알았어요.”
실없이 웃으며 답하는 엘리야에게.
이어서, 추가로 말을 덧붙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예?”
“앞으로는, 그래도 마땅한 놈들 외에는 절대로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거야.”
티천의 인장은 선각자의 존재 때문에라도 그 능력을 성장시키는 건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거기에 영향을 받아서, 내가 이번같이 ‘원래대로는’ 안 할 방법을 택할 수도 있을 거고.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변화는 원래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오는 거다. 칼리반과 엘리야가 동시에 지적해주는 게 아니었으면 나도 라나를 그렇게 ‘써먹은’ 것이 가장 효율적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만약 내가 또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것 같으면.”
그러니까.
멋쩍게 볼을 긁적이며 엘리야에게 말한다.
“네가 균형을 잡아줘라.”
“…예?”
“이 부분에선 네가 가장 믿음직스러우니까.”
“…”
적어도.
내가 아는 인간 중 가장 ‘인간다운’ 녀석이라면.
내가 엇나가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겠지.
“…선생님.”
엘리야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했던 말에 뭔가 깊은 감명이라도 받은 듯, 눈망울이 흔들린다.
“왜 쓰레기 같은 짓을 그만둔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죠?”
“…”
“진짜 이제는 갱생의 여지조차 스스로 포기하시는 건가요? 사고 방식이 일반인과는 완전히 달라졌나?”
남매가 닮아서 그런가.
날 갈구는 솜씨가 둘 다 점점 매섭게 변하고 있다.
“…아니, 그냥.”
예감 같은 거다.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짓을 하게 될 거라는 직감이랄까.
[어쩔 수 없이?]‘…’
[지금도 내 여동생한테 숨쉬듯이 작업 들어가는 새끼가?]시끄러워.
이게 무슨 작업이야.
“…하아. 이런 사람이라는 거 알고 코가 꿰였으니까 어쩔 수는 없는데…”
“뭐라고?”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 멍텅구리야.”
그렇게 말한 엘리야가 콩, 하고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왜 때려.
“…그래도.”
이어서, 녀석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믿어주셔서 고마워요, 선생님.”
틀림없이.
“제가 꼭, 선생님을 지켜드릴게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숨길 수 없는 뭉클함이 배어 나오는 문장이었다.
정말, 정말로 기쁘다는 듯.
[그거 아냐.]‘…또 뭘요.’
[생각해보니까 너 그냥 폐기물 맞는 것 같아.]‘…’
[나가 죽어라, 제발.]쓰레기라고 하는 건 장난으로 하는 거라며.
왜 목소리는 그렇게 진심인데.
!! Butterfly Effect !!
[ 대상 ‘엘리야’의 호감도 체크가 성공합니다! ] [ ‘악마의 그릇’들의 현재 상태를 확인합니다! ] [ 모든 조건 충족! 나비 효과가 발생합니다! ] [ 당신이 행한 모든 행동의 결과로서 ‘첫 번째 분기점’이 곧 발생합니다! ] [ 해당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해결한다면 ‘엔딩’의 일부가 변화합니다! ]“…”
느닷없이 떠오른 창에 멍하니 눈을 꿈뻑거린다.
갑자기 또 뭔데.
칼리반 말에 액이라도 꼈나,
분기점은 뭐고, 특별 이벤트는 또 뭐고.
무엇보다.
‘…엔딩?’
느닷없이 떠오른 단어에 눈을 찌푸리며 문장을 훑는다.
너무 두서없이 튀어나와서 대체 이게 뭔가 싶지만.
머지 않아 큰 일이 일어난다는 느낌은 물씬 풍기는 문장이었다.
“어라?”
그리고, 거기에 대해 뭔가 깊게 생각해보기도 전에.
라나의 난감하다는 목소리가 툭 떨어졌다.
이어서.
녀석이 둘러보고 있던 비석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딱 봐도 위협적인 검은색의 마력이 주변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걸 보아하니 뭔가 잘못 건드린 게 분명한 모습이다.
“…뭐하신 거에요?”
“뭔가 ‘누르세요’ 같은 느낌으로 튀어나온 버튼이 있길래 꾹 눌러버렸지 말임다?”
“…”
아, 그거.
보스 소환 버튼이다.
“…그걸 왜 누르셨는데요?”
“…누르면 안 되는 거였슴까?”
“…”
“그리고 뻑뻑해서 잘 안 눌리길래 서너 번 정도 눌렀지 말임다.”
“…”
“…여러 번 누르면 안되는 거였슴까?”
내가 알기로, 그거 여러 번 누르면.
[ 도전자의 도발적인 의지를 확인합니다. ] [ 최고 난이도의 ‘던전 수호자’를 소환합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난이도가 대폭등한다.
“…”
“…선생님.”
엘리야가 조용히 머리를 쓸어넘겼다.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오른 기색이었다.
“…일단 사과는 좀 나중에 해도 될 것 같아요.”
“…”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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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군.”
엘노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에 검은색 마력이 뭉쳐 소환되는 ‘것’을 바라보았다.
루시엔에게 던전 내부 출입 허가를 받자마자 미리 최심부에 도달하여 대기하고 있던 덕분에 직관하게 된 모습이었다.
본인 말로는 다우드의 능력이라면 무조건 1등으로 도착할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나.
-…어, 다우드 씨가 1등을 못 하실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럴 리가 있겠나.
엘노어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었지.
-안 되면 내가 그렇게 만들 건데.
-…어떻게 만드신다는 건데요?
-그건 비밀일세. 다만 그 남자가 바라는 일이라면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도울 생각이지.
-…부정행위에 그렇게까지요?!
쓰레기 짓에 목숨을 건다는 점에선 천생연분이다.
대륙 단위로 일어나는 초대형 행사에도, 반한 남자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부정행위를 저지르겠다는 인간이라니.
아무튼.
“인조 던전에 정말로 ‘정령체’까지 박아놨다고?”
엘노어가 황당하다는 어투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검은색으로 일렁이며 형태를 갖추는 대상을 바라보았다.
“…정령체가 그렇게 위협적인 건가요?”
“그렇지. 위협적이기 보다는 ‘무찌르기가 불가능하다’에 가까워서 그렇네만.”
일반적으로 물질계가 아닌 다른 차원의 존재들은 기본적으로 그 전투력이 일반 마수들에 비해 한 단계 높게 평가된다지만, 그 중에서도 정령 같은 사념체는 존재만으로도 반쯤 재앙 취급을 받는 존재다.
적어도 ‘잡기 힘들다’는 면에선 궤가 다르니까.
일단 아예 다른 세계의 존재라는 성질 때문에 물질계의 법칙 대다수를 적용받지 않는 존재이며, .
무찌를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물질계에서는 정령체가 쏟아내는 모든 공격을 ‘견뎌내며’, 마력이든 신성력이든 고등한 수준의 운용을 통하여 정령이 품고 있는 ‘정신 세계’안으로 돌입하고, 거기서 벌어지는 전투에서도 그쪽을 무찌르는 것.
어떻게 보면 용사 선발에 취지에 가장 알맞은 상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투 실력, 이능의 운용, 그리고 정신력의 강함까지 한꺼번에 종합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엘노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리 중얼거렸다.
아무리 다우드의 실력이 출중할지라도, 정령체는 ‘정신’과 직접 연결된다는 면에서 리크스가 대단히 높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직접 튀어나가서라도 도와줘야 하겠지.
“…음, 애초에 저걸 상대해야 하는 건 용사 후보인 엘리야 씨 아닌가요?”
“그건 그렇네만, 그대가 보기에 저쪽이 다우드보다 더 강할 것 같나?”
“…”
그건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네.
유리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리 떠올리자니, 엘노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조금 더 가까이 가도록 하지.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니.”
“네, 네에…”
그렇게 말하며 엘노어가 몸을 일으키자, 유리아가 덩달아 포복해 있던 바닥에서 일어섰다.
덕분에 시야가 확 트인다. 정령체를 보고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다우드의 모습도 눈에 잘 들어온다.
“…”
그래, 틀림없이.
눈에 잘 들어온다.
“…유리아 양?”
갑자기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 유리아를 보고 엘노어가 의아하다는 목소리를 흘렸지만.
유리아의 시선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한 곳에 가서 틀어박혀 있었다.
가면을 쓰지 않은 다우드의 ‘맨얼굴’에.
“…아.”
경탄과 환희가 섞인 신음이, 저도 모르게 유리아의 입에서 비어져 나왔다.
이어서.
“[찾았다.]”
그녀가 달뜬 문장을 내뱉었다.
‘하얀색 숨결’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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