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72)
r 171 – 171.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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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쪽은 지금 하얀 악마랑 같이 뒤엉켜서 안쪽에 갇혀 있단 말씀.”
[주변에 다른 그릇들의 동태는 어때.]“말해 뭐해. 기억 잃어버린 그놈 쭉 빨아먹으려고 다들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들고 있지.”
토커, 선화륜이 화상 화면 너머에 선각자에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이어지는 문장엔 거의 실소마저 섞여 있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치열한 게 또 웃겨. 그만한 여자들이 나를 독차지하겠다고 싸우는 건 무슨 기분일까?”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거야, 토커?]살짝 가시 돋친 목소리로 돌아오는 대답에, 토커가 속으로 낄낄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 물론 대장이 여기에 끼지 못해서 아쉬운 건 알겠지만. 그래도 일단 그 녀석 인공 영혼 들어간 가짜 인격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런 감정이 좀 덜 하지-”
[헛소리는 집어 치워. 그거 말하려고 연락한 거야?]“장난이야, 장난. 화내지 마.”
따지고 보면 선각자가 그에게 맡긴 임무를 실패했음에도 당당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지만, 선각자나 본인이나 그 사실에 그렇게 신경 쓰지는 않는 태도였다.
애초에, 동방 서방 양 대륙에서 동시에 전설로 남아있는 역대 최강의 언령술사다. 어느 정도 맞먹고 들어가는 건 양자 모두 신경을 안 쓰는 모습이겠지.
그런 면에서.
“…대장, 그 녀석 생각보다 더 위험한 변수인데.”
그런 인간이 진지하게 이런 말을 꺼낸다는 건, 생각보다 꽤 심각한 상황이란 거겠지.
얼굴에는 항상 걸고 다니는 실없는 웃음이 걸려 있었지만, 그 눈동자는 진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놈이 모든 악마들의 ‘열쇠’ 노릇을 한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악마들이 그놈 주변에 꼬이는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고.”
[…]“원래대로는 하얀 악마가 그놈을 가두는 건 ‘다른 세계선’에서도 이쯤해서 일어날 일이라지만, 그 사이에 다른 그릇들까지 이 정도로 친밀해진 상태는 없었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선각자를 향해, 토커가 말을 이었다.
“이대로면.”
이 문장을 꺼낼 때만큼은.
“우리가 뭐 손쓰기도 전에, ‘종말’이 와버린다?”
그가 항상 걸고 있는 웃음마저 지워진 모습이었다.
“시간 얼마 안 남았어, 대장. 악마들이 더 풀려나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해.”
[…알아.]선각자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답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도 알아. 그러니까.]낮게 깔렸지만, 그 ‘결의’만큼은 틀림없이 잘 느껴지는 목소리기도 했다.
[…쓸 방법을 슬슬 고려해야겠지. 열쇠를.]열쇠가 하는 일은 두 가지다.
자물쇠를 푸는 것. 자물쇠를 잠그는 것.
지금까지 다우드 캠벨이란 ‘열쇠’는 전자의 일은 아주 기가 막히게 해온 것이 틀림없다.
그 영혼의 체질을 가지고 이만큼 악마들에게 급속도로 사랑받으며 생존한 경우는 토커가 알기로도 전례가 없었으니까.
다만.
선각자와 토커가 하려는 건, 자물쇠를 ‘푸는’ 쪽이 아니라 ‘잠그는’ 쪽이지.
“…”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웃긴 일이다.
악마 숭배자들의 수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여자가, 알고 보면 모든 악마들을 잠궈 버리는 데 가장 열성이라는 아이러니를 알고 있는 이들은 대륙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좋아. 열쇠를 쓰는 건 쓰는 건데. 그러려면 일단 그놈이 하얀 놈한테서 풀려나는 것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 악마가 작정하고 영혼을 구속하려고 하면 빠져나올 수가 없을-”
[그건 상관없어.]“…뭐?”
[이번 그릇의 성별은 전부 여자잖아. 내가 봤을 때 그 남자가 이 정도까지 선방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거든?]“…”
[하얀 악마도 여성체인 이상 어떻게든 돼.]이 굳은 신뢰는 뭐란 말인가.
마치 상대방이 여자인 이상 그 남자에게는 승산을 점칠 수가 없다는 굳은 확신이 묻어 있는 목소리다.
그런데.
그거 말이야.
느낌이 좀.
“…왠지, 대장. 그거 꼭 본인의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것 같은 확신인데-”
[그보다, 붉은 악마의 현재 상태는?]토커가 말하려던 걸 가차 없이 끊어버린 선각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누가 봐도 이쪽 화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 싫단 기색이라, 토커도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붉은 악마면… 그놈이잖아. 페이… 뭐였지? 페이놀? 그놈은 왜?”
지금 모든 악마 중에서 가장 얌전한 놈이 그 놈이다. 나머지는 그 다우드란 녀석 벗겨먹겠다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에 비해, 그쪽은 대체 뭐하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니까.
굳이 신경 쓸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쎄. 나라면 그렇게 생각 안 할 텐데.]“…뭐?”
[그쪽을 좀 주의깊게 봐둬, 토커. 하얀 악마 다음으로 사고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게 그쪽이니까.]틀림없이.
[원래 얌전해 보이는 고양이가 제일 먼저 사고 치는 법이거든.]의미심장한 울림이 담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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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성하가 오는 게 바로 며칠 뒤입니다.”
앞서 걷던 꼬맹이 유리아가 잔뜩 가다듬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 들었다.
엄격한 표정과 말투…라고 자기 딴에는 생각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 안에 당신에게 완벽한 예도를 주입하여 제 수행인으로서 부끄럼 없는 모습을 보이도록 할 거에요. 아시겠나요?”
엄격한 게 아니라 엄격 호소인처럼 느껴지는 게 문제긴 하지만.
아까 전에도 느낀 거지만, 이 녀석 은근히 이런 말투를 쓰는 게 어색하다.
단순히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누가 들어도 익숙하지 않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게 팍팍 느껴진다.
소심한 녀석이 안 어울리는 짓을 어떻게든 견지하고 있다는 게 뻔히 보일 정도로.
“…왜, 왜 그렇게 이상한 표정으로 절 바라보는 거죠?”
“…”
녀석이 그렇게 말하자,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짓느라 풀려 있는 입가를 메만진다.
[ Event Info >▶달콤한 연극◀
[ 대상 ‘유리아/하얀 악마’를 설득하십시오. ] [ 3일의 제한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 안에 배역을 깨거나, 심상 세계에서 탈출하지 못 한다면 영원히 해당 세계에 갇힙니다! ] [ 당신에게 부여된 ‘역할’은 ‘유리아 아가씨의 전속 시종’입니다. 배역을 깨지 마십시오! ]아무튼 이런 제약이 붙어있는 입장이다.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겠지.
“우, 우습게 보는 건가요? 제 말 한 마디면 당신 같은 건…!”
어이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씩씩거리는 유리아에게, 몸을 낮춰 눈높이를 맞춘다.
이 녀석은 어린 몸인데, 나는 바깥에서 장성한 남자 몸 그대로라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럴 리가 있나요, 아가씨.”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뭐라고 소리를 지르려던 녀석이 입이 곧바로 다물렸다.
그래도 눈물 맺힌 눈으로 주먹을 붕붕거리는 걸 보니 기분이 다 풀린 모양은 아니라, 그 손을 가져와 살짝 입을 맞춘다.
분명히, 이러는 게 올바른 예의범절이라고 했었지.
“그럼요, 아가씨. 맡기신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노력하겠습니다.”
“…!”
내 말에 급속도로 표정이 밝아진 녀석이, 이내 아차 하는 기색과 함께 재빠르게 표정을 관리했다.
“마, 말로만 하는 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실적으로 보이도록 하세요!”
아예 코로 흥, 하는 소리를 뿜어내면서 종종걸음으로 앞서 걷는 걸 보니 다시금 풀어지려는 표정을 관리한다.
“…”
물론.
그런 감각에는 찝찝한 의문이 계속 따라붙고 있긴 하지만.
이런 녀석이.
도대체 무슨 일을 겪길래.
이렇게 속이 뻔히 보이지만 천진한 어린애가, 그렇게 모진 환경에 내던져져 우중충한 성격의 외톨이로 자라나게 됐을까. 그렇게나 외로움을 심히 타게 되었을까.
“…”
말없이 주변을 둘러본다.
이상한 점이야 계속 느껴지긴 했다.
어린 유리아를 에스코트하는 명목으로 끌려 나오면서 느낀 건, 여기가 성황국 내부에서도 가장 음침한 건물 중 하나라는 것.
겉보기로는 아무 탈 없는 귀족 저택이다. 사용인들이 있고, 그들 모두 유리아를 만나면 친절하게 대해준다.
다만.
평범한 집이라면 저런 게 있을 이유가 없지.
따스하게 내리쬐는 정원, 그리고 그 나무 위에서 이쪽의 움직임에 맞춰 고개를 돌리는 새들을 바라본다.
모르는 인간이 본다면 전혀 문제없을 요소들이지만.
새들의 눈에는 전부 마석을 이용한 ‘진’이 박혀 있다.
단순한 날짐승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 호문쿨루스라는 뜻이다.
그리고 저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떤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감시하기 위한 것들이 저택 곳곳에 다 배치되어 있다.
심지어 저택 바깥으로 나가는 길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설계상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처럼.
그런 것들을 보면 더욱 확실해지는 점.
이건, 집이 아니다.
말하자면 새장이다.
어떤 녀석을 철저하게 가둬놓고 사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유리아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자니, 앞서 나가며 저택 내부의 구조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하던 유리아가 일순 발걸음을 멈췄다.
“아, 여긴…”
검은색 문이다.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운 저택 안에서도 남다른 존재감을 자랑하는 재질로 처리된 모습이다.
“…성하의 집무실이에요.”
유리아가 살짝 겁먹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들었다.
“여, 여긴… 저도 잘 모르는데…”
“예?”
“어, 언니하고 성하가, 여긴 절대 얼씬도 하지 말라고…”
아마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는 식으로 교육을 여러 차례 받은 모양이다.
눈물이 대롱대롱 메달려 있는 모습이 퍽 안쓰럽다.
“못 들어가는 곳이면 나중에 알려주시면 되죠, 아가씨.”
“…안 돼요.”
내 말을 들은 유리아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 사용인을 교육시키는 건 제 일이니까.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
쓸데없이 책임감은 또 투철하다.
안 되면 그냥 내가 알아서 하면 되는데.
“기, 기다리고 계세요. 한 번 들어가도 되는 지 다른 분들에게 여쭙고 오겠습니다!”
“아, 잠깐…”
뭐라고 말릴 새도 없이 유리아가 후다닥 복도로를 내달렸다.
그 녀석 참. 행동력 한 번 좋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고 있자니.
“아, 저기.”
근처에서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나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는 사용인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번에 새로 전속 시종으로 들어오신 분이죠?”
“…예. 제가 뭔가 잘못이라도 했나요?”
느닷없이 말을 걸어올 이유로는 그런 거밖에 생각이 안 난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상대방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딱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조언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계신 것 같아서.”
“아, 알려주신다면 정말 감사히 듣겠습니다.”
이거 착한 사람이네.
그런 생각을 하며 상대방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가씨를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런 말이.
느닷없이 튀어나왔다.
“…”
그 말을 하는 사용인을 빤히 쳐다본다.
아까 전에, 유리아와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쪽에 인사했던 녀석이다.
겉보기에 이상한 건 아무것도 없었지.
그런데 느닷없이 왜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낸단 말인가.
“…”
속이 살짝 뒤틀린다.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 간신히 참으며 말을 이어간다.
아무튼,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부터 뜯어내야 하니까.
“…가까이 하지 말라니, 무슨 뜻이죠?”
“당신이야 이제 겨우 저택에 들어온 사용인이니 잘 모를 법도 하지만…”
그렇게 말한 남자가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년, 부모 없이 태어난 괴물이거든요. 저주 받은 생명체죠.”
“…”
“곁에 있다간 당신도 좋은 꼴은 못 볼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용인의 얼굴엔.
숨길 생각도 없는 경멸과 역겨움이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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