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80)
r 179 – 179. 두 번째 시련 (2)
●
“마기?”
그런 중얼거림이 누군가에게서 흘러나왔다.
아마 누구보다 알아보는 게 빨랐을 것이다. 전 대륙 단위에서 가장 이 기운에 민감한 게 이단 심문소와 성황국이니까.
“…전원 준비하도록.”
그런 말과 함께,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이 품 안에서 법구를 하나씩 꺼내들었다.
성수, 성물, 그리고 성인의 유품을 섞어 만든 방호구.
‘…치천사의 인장.’
그 겉면에 새겨진 인장을 본 엘리야가 이를 악물었다.
저거라면, 악마의 기운을 다룰 수 있는 인간을 상대로 달려드는 것도 이해가 간다.
아주 잠깐이지만 악마의 본체를 상대로도 일회성 정도로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 여겨지는, 성황국에서도 가장 귀한 방어구 중 하나로 취급되는 물건들이다.
본체보다는 훨씬 더 조잡할 것이 분명한 마기를 다루는 상대로는 특효약이겠지.
“…세라스 쪽 인원들은 아닌 것 같고.”
그 모습을 쭉 훑어본 다우드의 입에서 그런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성황국에서 장비만 지급 받은 외부 인원들 같은데. 맞습니까?”
“…”
굳이 입을 열어 그걸 수긍하는 얼간이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꺼낸 다우드 역시 뭐라고 더 말을 이어가는 대신에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초승달의 서약이 아니고 이 정도 실력이면… 태양의 사도겠네요.”
“정보상으로는 직접 악마의 권능을 행사하지는 못 하지만, 흉내 정도는 낼 수 있는 상대다. 각별히 주의하도록.”
“루미놀 대주교가 보낸 겁니까?
“전원. 공격 준비. 신호를 내리면 한 번에 간다.”
“…좀 들어주세요.”
다우드가 궁색한 기색으로 그런 말을 꺼내 들었지만, 그를 둘러싼 인간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들을 이끄는 리더가 한숨과 함께 답을 위해 입을 열기는 했지만.
“…말을 걸어서 시간을 끄려는 수법인 걸 모를 줄 아나. 한심한 수작이다.”
“…”
말하는 거야 공격적이긴 한데.
분명히 다우드가 하도 뻘쭘해하니까 그걸 달래려고 말해준 게 분명하다.
저 사람, 암살자치고는 공감 수치가 쓸데없이 높다.
어쩌면, 꽤 좋은 사람일 수도…?
“아니, 알면 좀 장단을 맞춰주지. 너무한 것 아닙니까?”
“…”
그에 반해, 그런 상대방의 배려를 받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이런 양심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인간도 있지 않나.
엘리야가 그렇게 생각하며 다우드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는 사이.
“시간을 안 주면, 저도 조절할 자신이 없어서요.”
“…뭐?”
“처음 써보는 거니까.”
다우드가 한숨과 함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그쪽 죽으셔도 전 몰라요?”
그런 뻔뻔한 소리와 함께.
회색과 흰색이 뒤덮인 마기가 순식간에 주변을 뒤덮었다.
“…!”
그 모습을 본 이들이 동시에 법구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
회색 기운이 들러붙은 법구가 순식간에 ‘으스러졌다’.
아주 손쉽게.
마치, 수분에 잔뜩 ‘침식’당한 바위가 아주 조그마한 충격에도 산산조각나는 것처럼.
“뭣…!”
누군가 흘린 그런 경악성이 제대로 끝나기도 전에.
그렇게 생긴 법구의 틈새로 하얀 악마의 마기가 파고들었다.
이어서.
-!
새하얀 섬광이 일대를 뒤덮었다.
●
“…선생님.”
“음?”
“방금 그거 뭐였어요?”
엘리야가 주변으로 널브러진 인간들을 보며 그런 신음 섞인 목소리를 흘렸다.
“…운이 좋았지.”
“…”
그런 대답을 들은 엘리야가 조용히 침묵했다.
성황국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나라 전체가 뒤집어 질 게 뻔하다.
아니, 그쪽 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대륙 전체가 뒤집어지겠지.
아무리 원본보다는 그 위력이 덜하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 인간들이 꺼내든 건 공허 지대 안에 있는 악마들의 ‘본체’까지 억누르고 있는 치천사의 결계를 본 따서 만든 물건들이다.
그걸 순식간에 뚫어버리다니.
‘치천사’ 관련된 힘을 흉내내는데 성공했다는 것만으로 이미 악마 관련해서는 절대적인 방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그런데.
아무리 원본보다는 한참이나 열화된 위력이라지만, 그런 방호 수단조차 뚫어버릴 수 있다는 건, 대단히 많은 사실을 시사한다.
악마들의 기운을… 통상적인 위력보다 더욱 ‘변칙적으로’ 다룰 수 있는 존재라는 거니까.
마치.
그런 존재들의 ‘상위’ 위상에 있는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
이 사람.
어쩌면,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엘리야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우드를 바라보았다.
정작 본인은 무표정하게 서 있는 암살자들에게 뭐라고 계속 속닥거리고 있었지만.
마치, 어떤 사실을 집요하게 ‘주입’시키려는 것처럼 계속 뭔가를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아까부터 뭘 하고 계시는데요?”
“세뇌 중.”
“예?”
“나중에 써먹을 밑밥을 뿌려두려고. 아직 쓸모 있는 인간들이거든, 여기.”
하얀 악마의 권능인 ‘유혹’을 이용하는 거라며, 담담한 설명이 따라붙었다.
침착하고 냉정한 기색이다.
마치 이런 인간들한테 습격받는 것도 이미 전부 다 계산 하에 있었다는 것처럼.
“…”
새삼 생각해보면, 이 사람 항상 자신이 따라잡지도 못할 구간에 머물러 있었던 느낌이 강하긴 했지.
이번에 권성에게 수련받으면서 진리의 눈을 깨우침으로서 조금 따라잡았나 싶었는데, 이 사람은 또 어딘가에서 이런 능력을 얻어와서 또 멀찌감치 멀어진 느낌이다.
“…하여튼, 재수 없는 양반이에요. 선생님. 알아요? 여긴 그렇게 노력해도 힘든 걸 항상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쓱쓱 해치워 버리시다니.”
그래서 허리에 손을 얹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핀잔을 주니.
“운이 좋았지. 실수했으면 꽤 힘들었을 거야.”
“…”
담담하게 돌아오는 대답을 들은 엘리야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라.
뭔지는 모르겠는데.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원래는 좀 재수 없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는데.’
엘리야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항상 뭐든지 이미 알고 있다는 태도로 미리 쓱쓱 처리한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인간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도 그렇게 같은 말을 내뱉고 있음에도 그런 거북함이 조금 덜하다.
겸손을 떠는 느낌은 아닌 것 같고.
뭐라고 해야 할까.
건조하다. 대단히.
마치, 아무런 감흥조차 없다는 것처럼.
이전보다 더 ‘감정’이 희미해진 느낌.
“…왜 그런 표정으로 봐?”
“아니, 원래 선생님이면 다른 사람들 어려운 거 해놓고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같은 복장 터지는 태도를 보여주시는 게 정상-”
“…넌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어이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엘리야는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뜬 상태로 다우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까보다도 진지한 기색이었다. 도리어 다우드가 더 당황할 만큼.
“선생님.”
“응?”
“…너무 바뀌시면 안 돼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진 자신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쩐지.
이 사람, 요즘 들어 하나둘씩 뭔가가… ‘인간’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만약 내가 또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것 같으면, 네가 균형을 잡아줘라.
얼마 전에는 그런 말을 하기도 한 걸 보니 본인도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런 게 계속 이어지고,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이 사람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는. 그런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하는 건 사실이다.
“…”
그런 말은 들은 다우드가, 말없이 그녀 쪽을 바라보다가 실소를 흘렸다.
“…걱정 고맙다. 그래도 괜찮아.”
“…”
“그렇게 안 되도록 나도 최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살 거니까.”
그렇게 돌아오는 대답에, 엘리야가 불만스럽게 입술을 씰룩거렸다.
이전에도 들었던 소리다.
하지만, 그거 가지고는 아직 납득하기 힘들다. 안심하기도 어렵고.
“…안 되겠어요. 역시 미리 제 말을 듣도록 고삐를 좀 채워놓지 않으면…”
“응?”
무슨 말을 중얼중얼 거리는 걸 본 엘리야를 보자마자 의아하다는 기색이 다우드에게서 돌아왔지만, 그녀는 더 자세히 설명하는 대신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단 움직이죠.”
뭔가 단단히 결심한 기색이었다.
“야영할만한 자리, 제가 미리 봐뒀으니까요.”
●
[ System Message > [ ‘회색 악마’의 마기와 ‘하얀 악마’의 마기를 합성 시도하셨습니다. ] [ 합성에 ‘대실패’하셨습니다! ] [ ‘회색 악마’의 기운과 ‘하얀 악마’의 기운이 통상적으로 강해지는 것으로 효과가 끝납니다! ] [ ‘회색 악마’와 ‘하얀 악마’의 마기는 재충전까지 사용이 불가능합니다.]“…흠.”
가늘게 뜬 눈으로 그런 메시지 창을 쭉 훑어본다.
아까 전에 엘리야에게 한 ‘운이 좋았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겉으로는 손쉽게 제압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쪽도 꽤 많은 출혈을 치룬 상태거든.
아마 저 법구가 조금만 더 위력이 좋았어도 뚫어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애초에 실패니 성공이니 하는 게 존재하는 기술이었어?’
어이가 없다는 기색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
그런 무슨 확률 같은 게 존재하는 줄 알았으면 애초에 이렇게 쉽게 쓰지도 않았다.
거기에 하얀 악마와 회색 악마의 기운을 어떻게든 다시 리필해오는 게 아니면 그때까지 아예 사용 불가능하다고 못까지 박아놓는 페널티까지 있었다면 더더욱.
애초에 그 리필이란 걸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에휴.”
한숨을 내쉬며 창을 치운다.
다만, 마냥 안 좋게 보기도 뭐하다.
아무튼 실패한 기술로도 상대방이 준비해온 비장의 수단을 무력화할만큼 위세가 대단했던 건 사실이니까.
그렇다는 말은.
‘…그럼 대성공하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데?’
아마, 상상을 초월하는 리턴값이 돌아올 게 분명하다.
통상적인 상황에 써먹기는 힘들지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껴뒀다가 도박수로 써먹기에는 적절한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걸 알아내는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며,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에 마른 장작을 한 아름 더 던져넣는다.
두 번째 시련이 벌어지는 ‘몽환의 숲’ 안에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건 원래대론 자살 행위지만, 그래도 안전한 스팟 몇 군데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당장 ‘환목수’가 근처에 무성하게 자라나 있는 이곳은 주변의 인식을 자동으로 저해시키는 효과가 있다. 아마 마수는 물론이고 다른 용사 후보들까지도 여기에 접근하기 쉽지 않겠지.
주변에 위험한 게 드글거리는 환경에서 여유롭게 불까지 피우고 있는 건 다 그런 이유다.
녀석, 용케도 이런 곳을 찾아냈네. 앞장 서서 여기서 하룻밤 지내자고 끌고 올 땐 뭐땜에 그러나 싶었더니.
“…”
그런데, 그건 그거고.
‘…왜 오랜만에 봤는데 인사 한 마디 없어요?’
그렇게 말하며 소울 링커를 내려다본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제일 시끌시끌했을 양반이 지금은 제일 조용하다.
‘칼리반?’
[시끄러.]‘…’
음울하게 목소리로 돌아오는 대답에 입을 다문다.
왠지 모르게 나에 대한 강렬한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다.
짐작해 볼 만한 건.
‘…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그렇게 물어보자마자, 한숨부터 먼저 흘러나온다.
이어서 음울한 목소리로 말이 이어진다.
[닥쳐.]“…”
아니.
반응이 이렇게까지 돌아오니까 내가 불안하다.
“…아니, 하다못해 이유라도 좀 말해주시면…”
[…할 이야기야 많은데.]칼리반이 침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냥 오늘 밤 상황 자체가 지옥같아.]“예?”
[며칠 동안 내 여동생의 망측한 꼴이란 망측한 꼴은 다 봤는데. 아마 오늘이 정점일 거란 느낌이 들어.]“…?”
왜.
기껏해야 오늘 여기서 하룻밤 자는 게 전부인데.
‘…음?’
말을 꺼낸 뒤에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나, 같이 자는 거지?
단 둘이서?
엘리야랑?
“…”
나, 지금까지 온갖 여자들이랑 엮이긴 했지만.
이렇게 한 번이라도 ‘단둘’이서 오랫동안 있는 상황에 노출되어 본 적 있던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저기요, 선생님.”
문득 등골이 서늘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작거리를 더 구하러 간다면서 잠시 자리를 비운 엘리야다.
“…”
근데.
장작을 가져왔으면 분명히 운동을 하고 온 걸 텐데.
왜 땀냄새가 아니라 좋은 향기가 나냐.
어디서 샤워라도 하고 온 것 같다. 머릿결도 상쾌하게 찰랑인다.
마치.
‘뭔가’를 대비해 열심히 몸단장을 하고 온 것처럼.
“…응?”
“저희, 단 둘이에요.”
그런 말을 꺼내놓는 녀석의 얼굴이 묘하게 붉다.
“…어?”
“환목수 덕분에 누군가 여기로 찾아올 일도 없을 거고, 내일까지는 단둘이 하룻밤을 자야 한다구요.”
“…그, 그런데?”
엘리야가 활짝 웃었다.
그에 반응하여 내 얼굴에서 쏟아지는 식은땀도 조금 더 많아진다.
“선생님.”
“…”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칼리반이 왜 여태 아무 말도 없이 조용했는지.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렇죠?”
“…”
너.
왜.
반드시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어투로 말하냐…?
[야.]칼리반이 거의 훌쩍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이니까 나 안보는 데서 해라.]“…”
오랜만에 말한다.
닥쳐.
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