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81)
r 180 – 180. 두 번째 시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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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라 세계관에 빙의한 이후로 참 별별 위기가 다 있었더랬다.
마인이랑도 싸워보고, 잊혀진 술법을 완전히 숙달한 소년왕이랑도 싸워보고. 다른 차원의 고대 신이랑도 싸워보고.
그리고 그런 별별 꼴을 다 본 나라고 해도.
이 상태에서만큼은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
“…”
침묵이 흐른다.
“…야.”
“네?”
“왜 이런 자세냐…?”
어떻게든 그런 말을 꺼내놓았지만, 내 한쪽 팔을 붙잡고 메달려 있는 엘리야는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불만이 유일한 조명이었고, 덕분에 내 옆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엘리야의 얼굴에 음영이 더 쉽게 지고 있었다.
녀석의 얼굴에는 언제나 걸고 다니는 쾌활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
다만, 조명과 함께하니 평소보다 훨씬, 뭐라고 해야하나.
음흉해 보인다.
[실제로도 음흉한 거 맞아.]“…”
[너도 이미 속으로는 알고 있는 것 아니냐?]알기는… 안다.
애초에 모를 수가 없다.
애초에 지금 이 녀석의 기색이 심상치 않은건 장님이 아니면 다 알 수 있는 사실이니까.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둔 육식동물 같은 느낌이랄까.
[이걸로 세 명 째네.]‘…예?’
[니 초야권 가져가겠다고 너한테 달라붙는 여자들 말이야.]‘…’
[내 동생까지 거기에 포함될 줄은 몰랐는데.]나 없는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으음.”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그런 의문점을 품는 사이, 엘리야가 다시 그런 소리를 내면서 뭉그적거렸다.
껴안고 있는 팔을 더욱 더 깊게 끌어안는다.
“…너무 가까운데.”
애써 그런 말을 꺼내놓았지만, 엘리야가 표정을 한 터럭도 바꾸지 않고 받아쳤다.
“추워서요.”
“…”
“선생님은 따뜻하잖아요.”
그러기는커녕, 이런 소리를 하며 오히려 더 몸을 가까이 붙인다.
종국에는.
“얍.”
아예 내 앞쪽으로 돌아와 품 안으로 파고드는 모양새다.
녀석의 뒤통수가 내 가슴팍에 닿는다. 주황색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냄새도 코를 간질인다.
“…선생님.”
“음?”
“제가 지금부터 무슨 일을 할 건진 이미 알고 계시죠?”
“…”
깜빡이도 안 키고 훅 들어오는 문장에 그대로 입을 다문다.
그래, 모를 수가 없다.
애초에 이 녀석과 나, 아까부터 눈치를 죽도록 굴리고 있다는 건 피부로 느껴졌으니까.
이 녀석이 지금 뭘 노리고 있는지도, 내가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무슨 말을 꺼낼지도 서로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다.
“…또, 안 된다고 하실 거죠?”
“…”
씁쓸한 기색으로 그렇게 말하는 엘리야를 말없이 바라본다.
“…이해는 해요, 선생님.”
녀석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위험하니까요. 다른 여자랑 손만 잘못 잡아도 눈 까뒤집는 분들이 주변에 즐비하잖아요?”
“…”
그렇기는 하다.
악마들한테 아직 맹렬하게 집착받고 있는 입장에서, 그게 누구든 이성적으로 일선을 넘는 건 자살 급행 열차를 타는 짓거리나 다름 없다.
하지만.
“나도 난데, 네가 더 문제야.”
한숨을 내쉬며 답한다.
“예?”
“나랑 선 넘으면 악마들이 나보다 너한테 더 험악하게 달려들걸.”
“…”
나뿐만 아니라, 이 녀석한테도 그렇지.
같은 악마도 아니고, 그들이 반한 주체도 아닌 나도 아니라면.
이 녀석은 지금 나와 선을 넘었다간 일곱 악마의 분노를 단신으로 뒤집어쓰게 된다.
“…”
말이 안 된다고, 그거.
나도 그건 절대 살아남을 자신이 없는 고난이다.
“너를 죽게 둘 수는 없어. 상황이 다 끝난 뒤에 이런 식으로 오는 거면 몰라도.”
“…에에, 또 그런 식으로 미루기만 하시고.”
엘리야가 다시 입술을 삐죽였다.
“빈말로라도 그냥 저를 좀 좋아해 주신다고 하시면 어디 덧나나요. 예전에는 저한테 소중하니 뭐니 말씀하셨으면서-”
“빈말로 할 생각 없는데.”
“…”
엘리야의 동작이 딱 굳었다.
입술을 삐죽이던 표정 그대로 멈춰있다가.
눈동자를 잠시 아래로 깔았다가.
잠시 침묵한다. 방금 내 말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처럼.
그리고.
“…”
얼굴이 미친 듯이 붉어진다.
귀끝까지 홍조가 차오른다. 머리 위에서 스팀이라도 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녀석이, 턱턱 막히는 숨을 간신히 진정시키는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예?”
“빈말 아니라고. 너 좋아한다는거.”
그 모습에, 담담하게 답한다.
“…”
녀석이 아예 고장나기라도 한 것처럼 느닷없이 손발을 주변으로 이리저리 흔들었지만.
진심이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내 특성 때문에 개연성까지 깡그리 다 뭉개며 나에게 반한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이 녀석만큼은, 그 어떤 특수한 힘의 개입 없이 ‘본인 의지’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이 녀석은 다른 녀석들과 확실하게 다른 차별점을 가진다.
어떤 요소도 섞이지 않은 본인의 ‘진심’이란 거지.
그러니까, 나도 내 진심을 확실하게 전달해야겠지.
“하자.”
“…예?”
“상황만 해결되면, 동침이든 결혼이든 뭐든 하자고. 전부 들어줄 테니까.”
“…”
“나도, 너랑 그런 거 하고 싶어. 정말로.”
엘리야가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이 정도로 시원하게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는 기색이다.
“너는,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니까.”
단순히 시나리오 안의 중요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대한다는 게 아니다.
이 녀석도, 과정이야 어쨌건 전심전력을 다 해 나한테 부딪히는 녀석이다.
지금 받아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대답을 돌려줘야 할 녀석이고, 그렇다면 나한테 ‘인간적으로’ 소중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게 말하니.
엘리야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조명의 한계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진 모르겠지만, 얼굴이 전체적으로 붉어졌다는 건 알겠다.
“…선생님.”
“음?”
“선생님은, 본인이 무슨 처지인지 좀 알고 계셔야 해요.”
다음 순간.
천지가 뒤집혔다.
“…”
정확하게 말하면, 엘리야가 내 몸을 통째로 뒤집어 메쳤을 뿐이다.
이어서, 녀석이 물 흐르는 것 같은 동작으로 내 복부 위로 올라탄다.
“…너 임마, 무슨…!”
식겁해서 그런 말을 꺼내드니, 녀석이 숨을 헐떡이며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제서야 녀석의 표정이 보인다.
아까에 비해, 명백하게 ‘이성’이 옅어진 모습이다.
“…”
사실 그것도 좋게 말해준 거고.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발정난 표정이다.
심각할 정도로.
“선생님, 본인이 얼마나… ‘연약한 남성’인지 알고 계신가요?”
“…”
아마 악마 단위랑 부대끼는 인간한테 그런 말을 쓸 수 있는 네가 괴물인 것 아닐까.
물론 절체절명이 안 켜진 상태의 나는 그런 취급을 받아도 할 말 없는 전투력이긴 하지만.
“그렇게 연약한 주제에, 그런, 그런…! ‘맛있어 보이는’ 말을 계속 하시면…! 먹힐 수밖에 없다구요…!”
“…”
뭐라는 거야.
“…너, 방금 내가 한 말 듣기는 했…!”
“네. 들었어요.”
엘리야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근데 그거, 제가 악마들 전부 물리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
뭔 미친 소리야.
뜨악한 표정으로 녀석을 보고 있자니, 녀석이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성검, 제가, 제가 잡아서, 자격을 인정 받고 용사가 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죠?”
“…그렇기는 한데…!”
제정신이 아닌 와중에도 용케 핵심을 꿰뚫는 소리를 하긴 한다.
성검을 잡고 용사로 발돋움한 엘리야는, 그런 비슷한 짓을 할 수 있는 괴물로 성장하기는 한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된다고 확정된 것도 아닌데, 왜 벌써부터 위험 부담을 지려고…!”
“일단 저지르고 나중에 수습하면 되죠!”
“…”
“선생님도 여태 그렇게 했잖아요!”
“…”
맞는 말이긴 한데.
그걸 말하는 이 녀석의 눈에 초점이 풀려있다.
얘도 지금 생각 깊게 하고 내뱉는 말은 아니란 거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소울 링커 안에서 벽력같은 고함이 터져나왔다.
[나 안 보는데서 하라고 씨발년놈들아-!!!!!!!!!!!!!!!]“…”
아니, 나 이 사람이 이렇게 멘탈 나가는 거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그쪽을 바라보고 있자니, 칼리반이 세상 다 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 죽는다. 나 지금부터 기절한다. 말 시키지 마.]그런 말을 마지막으로, 소울 링커 안에서 그대로 반응이 끊겼다.
진짜로 의식을 꺼둔 거다. 스스로를 기절시키는 거랑 비슷한 짓거리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눈을 부릅뜨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엘리야 쪽을 돌아본다.
이미 눈에 초점이 없다. 본인 교복의 앞섬이 흐트러져 자기 가슴도 반쯤 드러내놓은 숭한 몰골이지만, 그런것조차 신경 쓰지 않을만큼 욕망의 물결에 휩쓸린 것 같은 모습이다.
“…일단 진정하고.”
“진정한 상태인데요…!”
“…”
아니.
절대 진정 안 했어, 너.
절체절명.
스킬은 안 터졌지만, 진짜로 절체절명이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건 힘으로 밀어내는 것 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엘리야를 있는 힘껏 밀어내려고 했지만.
“…뭔가요? 애교 부리시는 건가요?”
“…”
얘 뭐가 이렇게 강하냐.
밀려나는 티조차 안 난다. 절체절명이 없는 나는 진짜 손가락 하나로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의 격차가 느껴진다.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기색으로 나한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접근하는 엘리야를 바라본다.
“하늘 올려다 보면서 별 개수라도 좀 세고 있으세요.”
“…”
“그, 금방, 금방 끝낼 테니까요…!”
눈동자가 풀린 상태로 내 가슴팍을 찍어누르는 엘리야를 보고 눈을 질끈 감는다.
제발.
누가 좀, 구해줘…!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정말이지.”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뭐하고 계시는 건가요, 두 분.”
익숙한 ‘붉은 화염’이.
근처에 환수목을 일제히 날려버렸다.
●
“…”
“…”
“…”
아까보다 세 배는 더 끔찍한 침묵이 캠프에 흐르고 있었다.
와중에 탈리온만이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온 고기를 모닥불 위에 굽고 있었다.
“형님이랑 엘리야는 식사 안 하십니까?”
“…됐어.”
“…나도 됐어.”
동시에 음울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치심과 어색함이 동시에 뒤섞여 있는 목소리였다.
폭주하기 직전의 상태에서 간신히 제지당한 엘리야도 그렇고, 차마 남 보여줄 수 없는 민망한 몰골로 발견당한 나도 그렇다.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봐야겠지.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찾아온 거야?”
“페이놀 씨가 찾으셨습니다. 형님의 영혼이 다시 돌아오는 걸 느끼셨다나요.”
“…”
그 말을 듣고 페이놀 쪽을 돌아보자, 완전히 무표정한 얼굴이 이쪽으로 돌아왔다.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녀석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틀림없이,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애초에 화가 났다는 걸 숨길 생각도 없어보인다.
“…”
야.
너 감정 못 느낀다며.
왜 이렇게 피부가 에이는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데…?
“그보다, 형님한테 알려드리고픈 게 있습니다.”
“…음?”
느닷없이 탈리온에게 날아온 말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녀석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재상님으로부터 전달받은 정보입니다. 내일부터 시험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간다 들었는데요.”
“…”
“…”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온 기밀 유출에 나와 엘리야의 얼굴에 쓴웃음이 동시에 걸렸다.
여기까지 뻔뻔하니까 오히려 아무 생각도 안 든다.
‘…아니, 애초에.’
용사라는 타이틀에 걸려있는 이권을 생각한다면 이런 짓을 안 하는 게 바보짓이겠지.
사실 그런 것조차 시련의 일부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용사 후보를 물밑에서 밀어줄 수 있는 각국의 국력도 함께 본다는 느낌이지.
“자세한 설명은 천천히 드려야하니,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탈리온이 잠시 침묵하며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
“…”
“…”
여전히, 아까부터 이어지던 파멸적인 침묵이 묵직하게 깔려있었다.
서로 뭔가 대화를 나눌만한 의지조차 없어보인다.
이에, 탈리온이 헛기침을 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말을 하기는 해야겠다는 모습이다.
“…아마 내일은 저희와 함께 다녀야 할 성 싶은데…”
“…”
“…네명이서 난관을 헤쳐 나가죠.”
아.
이 멤버로 말이지.
화가 잔뜩 난 페이놀과, 그쪽이랑 열심히 신경전중인 엘리야를 데리고.
“…”
아.
그냥 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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