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83)
r 182 – 182. 두 번째 시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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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
상황부터 정리해야 한다.
다른 녀석들은 전부 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나 혼자 깨어서, 다 죽어가는 모닥불의 불씨를 뒤적이며 두통에 시달리는 머리를 감싼다.
생각해야 할 게 좀 많거든.
‘…상황 점검부터.’
두 번째 시련이 시작된 시점이라면,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당장 내 위치는 투쟁의 용광로 근처에 있는 마수의 숲이라거나. 당면한 목표는 이 안에서 3일 동안 생존이라거나.
이 근처에서 마경의 지배자들까지 갈아버린 입장이니까 솔직히 여기서 뭐가 그리 위협이 크게 되겠냐 싶은 생각은 있지만.
그건 ‘일반적으로’ 시련이 진행됐을 때 이야기고.
“…”
찌푸린 표정으로 부지깽이를 휘적거리며 생각을 잇는다.
용사 선발이 그렇게 만만하게 진행될 리가 없다. 애초에 ‘순위’를 매기는 게 중점인 행사라는 걸 생각하면, 그런 말랑한 환경에서 진행될 리가 없는 건 더더욱 확실하고.
‘애초에…’
‘3일 동안 생존하라’는 목표 자체가 그냥 허울뿐인 소리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최대한 오래 버텨라’고 알아듣는 게 맞지.
내일부터 시험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간다는 말은, 애초부터 여기 참석한 인간들 전원을 탈락시키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단 소리다. 거기서 얼마나 오래 버티냐가 중점인 시련이고.
‘메인은 내가 아니야.’
착각하지 말아야 할 점은 그거다.
결국 이번 시련에서, 내 포지션은 엘리야의 조력자로 국한되어야 한다. 이전처럼 내가 가장 눈에 띄면 안 되지.
첫 번째 시련은 단순히 배점만 높게 받으면 되니 상관 없었지만, 마지막 시련을 앞둔 교두보인 두 번째 시련은 온전하게 성검을 쥘 수 있을 지 말지 본격적인 평가가 들어가는 시점이다.
단순히 잘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잘 하냐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라 그거지.
그런 고로, 이 시련에서는 내가 아니라 엘리야의 역량이 검증되는 게 맞다.
그렇다는 말은, 내 행동지침은 이전에 이어지던걸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 목숨을 일부러 위협에 노출시켜, 녀석의 능력치를 향상 시키는 것.
그거야 하면 하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그걸 하려면 높은 확률로 나와 엘리야가 떨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엘리야와 페이놀이 나라는 중재자 없이 단 둘이 붙어있게 된다.
“…”
겉보기로는 아무 문제가 없지.
페이놀도 따지고 보면 악마의 그릇 중 가장 이성적인 축에 속하는 녀석이고, 엘리야도 남한테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걸고 다닐 녀석은 아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그쪽에 싸움을 걸 이유가 아주 큰 게 하나가 있어서 문제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칼리반.”
슬슬 정신을 차린 게 분명한 칼리반에게, 침침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 든다.
[뭐가.]“엘리야가 붉은 악마랑 마주쳤을 때 제정신 유지할 확률은요.”
[…]한참을 침묵하던 칼리반이, 이내 쓴웃음과 함께 말을 받았다.
[…없지. 가능하겠냐?]“역시 그렇죠?”
내 얼굴에도 마찬가지로 고소가 걸린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가족의 원수다.
이 사람조차도 처음 그쪽과 마주쳤을 때는 아예 문답 무용으로 손잡는걸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당신은 요즘에 좀 태도가 많이 유해진 것 같은데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근 이쪽은 페이놀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물러진 느낌이 난다.
물론 이전에도 내 말을 듣고 페이놀과 협력 관계로 지내는걸 참아줬다지만, 요즘은 간간이 저 녀석과 얽히는 걸 투덜거리던 것조차 빈도가 줄어드는 것 같아서.
[아니.]내 말을 들은 칼리반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여서.]“…”
[옆에서 쭉 두고 보니까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무슨 느낌이요?”
[힘에 도취 되어서 함부로 남을 해칠 사람처럼 안 보여. 나쁜 사람처럼도 안 보이고.]“…”
[감정 다 깨워서 빨리 죽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그렇고, 제대로 안 하면 붉은 악마의 힘이 풀리니까 빨리 좀 하라고 재촉하는 것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오히려 그쪽을 꺼리는 느낌이란 말이지.]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칼리반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히려 자기혐오가 좀 강한 축에 들어가는 사람 아니냐?]“…”
정확한 분석이다.
페이놀의 심리 기제는, 기본적으로 자기 같은 존재는 세상에서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을 기본으로 이루어지니까.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선언했음에도 그런 근본적인 사고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 사정이 좀 있었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페이놀을 바라본다.
악마의 그릇들 중 안 그런 놈들이 없다지만, 페이놀의 과거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암울한 축이다.
“…”
키워드 몇 개를 떠올린다. 게임 안에서 본 배경 설정 몇 개가 스쳐 지나간다.
시골 마을의 처녀. 마탑의 마법사. 이단심문소의 심문관.
모든 악마의 그릇 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배경을 가진 게 페이놀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그 주변이 싹 다 초토화됐다는 말 못할 사정이 있다.
아마 녀석은, ‘자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생각하고 있을 거고.
그러니 자신 같은 건 세상에서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래 보이긴 해. 생각해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더라고.]“예?”
[예전에 적야 사태 때 마주쳤을 땐 대화고 뭐고 한 마디도 나눠본 적이 없어서. 내가 목을 날릴 때도 그냥 이성을 잃은 상태였거든?]“…”
이 사람이 자기 입으로 이렇게 직접 과거 이야기를 하는 건 또 처음 있는 일이다.
하물며 페이놀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건 더욱.
아마 스스로 페이놀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대단히 낮췄다는 반증이겠지.
[생각해보면, ‘어쩌다가’ 저 녀석 안에 있는 붉은 악마가 폭주 했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 들었단 말이야.]“…”
[네 주변에 있는 그릇들 보면, 그게 그렇게 쉽게 터져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너라는 변수만 없었으면 아예 자신이 그런 걸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사람도 꽤 될걸?]칼리반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물론, 지금도 난 붉은 악마란 녀석을 혐오해. 그때 당시에 억울하게 휩쓸려 죽은 사람들에 대한 죗값은 분명히 치러야지. 그래도, 구분할 건 구분해야지.]여전히, 평탄한 목소리다.
문장에 내포되어 있는 고결함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악마가 나쁜 놈이라고. 저 페이놀이란 아가씨가 나쁜 게 아니라.]여전히, 놀란 눈으로 소울 링커를 바라본다.
내 귀를 의심할만한 말이다.
도저히, 일반인이라면.
자기를 죽이고, 자기 가족마저 휩쓸릴 재앙을 만든 사람한테 내릴 수 있는 평가가 아니다.
아무리 상대방의 사정을 이해했다지만,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순순히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신도 진짜 가디언은 맞네요, 칼리반.”
고결함과 정의의 상징이라고 불리던 인간들.
가장 이상적인 ‘기사’의 표본.
[…그럼 평소엔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다는 건데?]“글쎄요. 동네 바보형?”
[…]“아니면 광대?”
[닥쳐.]칼리반의 반응에 낄낄거리고 있자니, 눈앞으로 느닷없이 창 하나가 떠올랐다.
[ System Message > [ ‘소울 링커’에 깃든 영혼의 정신적인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 [ 대상 영혼과의 ‘동기율’이 올라갑니다! ] [ ‘두 번째 기억’이 개방됩니다! 원하실 때 영혼과 동기하여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마지막 기억인 ‘세 번째 기억’까지 개방한다면, 특수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찡그린다.
이거… 분명히 그거지.
이전에 소울 링커를 강화할 때 살짝 들여다 본 칼리반의 기억.
“…”
특수 이벤트라.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이게 이번 메인 퀘스트의 열쇠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세라 고인물의 직감이라도 해도 좋겠지.
이전에, 이번 메인 퀘스트는 특히 이 사람 관련된 것들이 대거 열리는 느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말없이 잠들어 있는 페이놀의 얼굴을 바라본다.
바로 옆에 엘리야와 착 달라붙어 잠들어 있다. 겉으로 보면 사이가 좋다고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엘리야도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을 텐데요.”
아마, 높은 확률로 이번에 저 둘만 남아있는 상황이 생길 거다.
내가 혼자 어그로를 끌면서 돌아다녀야 엘리야가 돋보일 확률이 높아지니까.
그때, 뭔가 비상 상황이 안 터졌으면 좋겠다는 게 내 유일한 바람이지만.
[넌 항상 입이 방정이야. 알아?]“…”
[여태 니가 그렇게 바라서 한 번이라도 뭐가 안 터진 적이 있어?]“…”
비겁하게 팩트로 때리지 마라.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인다.
‘그래도…’
최소한 페이놀까지 붙어있으면 첫 번째 시련 때처럼 유리아에게 급습당하는 등의 ‘불상사’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메인 퀘스트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겠지.
“…뭐, 그래도 시련 자체는 그럭저럭 편하게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며 그런 말을 꺼내자마자.
-!!
-!!!!
“…”
일단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진짜로 내 입이 방정이라는 것.
‘악랄하게도 들어오네.’
그래, 분명히 ‘오늘부터’ 난이도가 어려워진다고는 했는데.
적어도 사람들이 똑바로 활동할 수 있는 대낮에 풀어주지, 이렇게 새벽에 악의를 가득 담아서 기습할 줄은 몰랐다.
아무리 용사 선발이라지만 참여자들 대부분이 학생이라는 사실은 까먹고 있는 건가.
“팩Pack… 골치 아픈 놈을 쓰네요. 시련 주관하는 놈들은 다 가학증이라도 있나?”
대형 마수 중에서도 특히 사냥과 추적에 특화된 놈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일어서자.
“…”
문득, 눈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푸른색의 ‘장막’.
“…”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지만.
다시 봐도 확실하다.
분명히, ‘그거’다.
“…지랄.”
그걸 보자마자.
얼굴에서 여유가 싹 지워진다.
이어서, 곧바로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을 내지른다.
“일어나-!”
“어, 엣, 어, 뭐, 뭐에요 선생님?!”
“…형님?”
“다우드 씨…?”
곤히 자던 녀석들이, 내 고함에 식겁하며 동시에 일어났다.
“당장 일어나서 장비 챙겨! 조금이라도 늦으면 죽어!”
내 목소리에 담긴 다급함을 감지한 모양인지, 녀석들이 당황한 와중에도 각자의 무기와 장비를 챙겨 들었다.
상황을 생각하면 대단히 기민한 대처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걸 바라보는 내 속은 버쩍버쩍 타들어 가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저게 뭔데?]‘…무력화장입니다.’
유저들은 자기장이라고 부르던 초고위 술식이다.
안쪽에 있는 모든 ‘이능’을 통째로 무력화시키는 미친 기술이지.
[…뭐?]칼리반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를 꺼내들었다.
[그딴 게 어떻게 가능해?!]세라 세계관에서 모든 힘의 근원은 이능에서 통한다.
물질계에서는 심지어 악마나 천사같은 규격 외의 존재들의 힘조차 이능으로 묶이게 되어 있고, 저 무력화장은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원래대로는 지옥 난이도의 챌린지 컨텐츠에나 종종 보이는 기믹이지, 기껏해야 4챕터에서 휙 튀어나와도 될 놈은 절대 아니다.
“…”
이가 부드득 갈린다.
아무 능력도 못 쓰는 상황에서 대형 마수들을 풀어놓는 건, 진짜 말 그대로 죽으란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딴 걸 왜 갑자기 풀어놓냐고?! 이건 용사 선발 시련이지 사형 집행 장소가 아니잖아!]‘몰라요, 저도.’
저걸 인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내가 알기로 한 놈밖에 없다.
제국의 황제. 그 곁에 있는 당대의 검성.
즉.
지금 제국의 지배자가, 솔선해서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르고 있단 의미다.
‘…생각은 나중에.’
황제가 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진 나중에 알아보면 될 노릇이다.
지금 당장에도 풀려나온 대형 마수들이 근처의 인간들을 찾아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일단은,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지만, 여기 있는 전원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서, 선생님, 뭔데 그러세요!”
“일단 당황하지 말고 잘 들어.”
누가봐도 당황하고 있는 엘리야의 어깨를 꽉 잡으며 말한다.
“여기 있는 놈들이 전부 살아남지는 못 해.”
“…”
“그러니까 내가 한 번만 죽을게.”
“…”
“걱정 마. 여러 번 해봤어.”
불행히도, 당황이 가라앉는 기색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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