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85)
r 184 – 184. 두번째 시련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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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마수의 한 종류인 팩은, 사실 크기만 따지고 보면 대형이라고 불러도 될만한 놈들은 아니다.
물론 크기만 봐도 어지간한 가정집 크기의 늑대들이긴 하지만, 이전에 마주쳤던 대형 마수들은 대부분 두세 객체가 모이면 공성도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은 놈들이란 걸 감안하면 너무 과한 분류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
그럼에도 이 녀석들이 그런 등급으로 분류되는 건, 반드시 무리 지어 활동하는 이 녀석들의 전투력이 중형 마수 치고는 대단히 뛰어나기 때문이다.
늑대와 닮은 생김새에 걸맞게, 팩은 타고난 사냥꾼들이다.
단단한 강철마저 손쉽게 찢어버리는 발톱. 추적자를 지옥 끝까지 쫒아 갈 수 있는 기동력과, 대상이 숨더라도 손쉽게 탐색할 수 있는 강력한 후각.
무력화장 내부에서 능력이 지워진 상태라면 이런 것들에게 대항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살살 죽여줘—!!”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난 맨살을 전부 드러내고 그쪽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인간의 피와 살점을 주식 삼는 마수에게 있어, 지금 내 모습은 잘 도축되서 정육된 고기가 제 발로 걸어서 자기 입으로 달려오는 모습이겠지.
“…?”
상식을 벗어난 상황에 녀석들의 눈동자가 잠깐 멍해졌지만, 그래도 마수는 기본적으로 본능의 외침에 충실한 녀석들이다.
[ System Message >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수준으로 판단합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EX등급으로 적용합니다. ]이내 적대적으로 변한 기색으로, 싯누런 침을 줄줄 흘리던 녀석 중 하나가 곧바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사나운 안광을 주변으로 흩뿌리며, 바위도 분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세로 나에게 앞발을 휘두른다.
-!
-!!
그렇지.
첫 녀석이 휘두른 앞발에 얻어맞아 공중을 체공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일단 이 녀석들이 나한테 온전히 집중하는 시점에서 계획의 절반은 성공이다.
만약 나를 무시하고 다른 녀석들에게 달려갔다면 그게 가장 안 좋은 상태다. 아마 그대로 후퇴하거나, 그마저도 못해서 죽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테니까.
좀 이상하게 보이긴 했겠지만, 옷까지 전부 다 벗어 던지고 달려든 게 다행이었지.
일반인이라면 맞는 즉시 상반신과 하반신이 두 쪽이 났겠지만, 절체절명이 발동된 상태에서는 내구도까지 큰 폭으로 올라간다.
[ Mastery Info > [ 특성: 철인鐵人 ] [ 등급: 범용 ] [ 현재 숙련도: 0% ] [ 부족 연합의 전사들은 항상 극한 상황에 자신을 내몰아 대처 능력을 기르는 훈련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위험하지만, 효과는 확실합니다. ] [ ■ 각종 부상과 고통에 대한 내성이 높아집니다. 통증의 정도를 줄여주고, 심한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도 보다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 [ ■ 회복력이 통상 상태보다 훨씬 좋아집니다. ] [ ■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경우, 통각을 차단하여 생존 확률을 높입니다. ] [ ■ 효과는 내구 스텟에 비례합니다. ] [ System Message > [ 치명적인 부상이 감지됩니다. ] [ ‘특성: 철인’에 의해 통각이 차단됩니다. ]거기에 더해, 이런 특성까지.
현재 나는 절체절명에 의해서 내구도까지 상당히 강화된 상태다.
다른 녀석들에 비해, 절체절명과 특성만큼은 아무런 이능의 능력을 받지 못 한다.
법술이고 신성력이고 아무것도 못 쓰더라도, 내 신체 능력 하나만큼은 귀중한 자산이 되어준단 거다.
“…흡!”
할 일은, 최대한 오랫동안 버티는 거다.
다시 앞발을 휘두르려는 늑대의 공격을 흘려내며 최대한 녀석의 공격을 ‘살살’ 맞는다.
그렇게 오랫동안 버티면, 아마 혼자서는 힘들어 보이는 동료를 도와주기 위해 다른 마수들도 하나 둘씩 합세할 거다.
내가 노리는 점은 그거지.
최대한 나한테 많은 마수가 달라붙는 것.
[…그래서, 왜 이런 짓을 하는 건데?]‘설명할 시간 없어요. 나중에!’
[애초에, 살아 나갈 수단은 있냐고?!]“…”
생각해보면, 이 사람도 좀 겉과 속이 다른 면이 있다.
겉으로는 타박하는 것처럼 보여도, 속을 뜯어보면 다 날 걱정해주는 거다.
‘그거야 당연히 있죠.’
난 이 세계를 믿는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 세계가 세이비어 라이징이라는 게임 시스템의 토대 위에 구축되었다는 걸 믿는다.
적어도 이상한 부분에서 그런 ‘법칙’은 항상 통용되었거든.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할 짓은 분명히 먹힌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에서 팩이 달려드는 걸 바라본다.
“…”
버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온 몸에서 감각이 느껴지는 곳이 점점 더 없어진다.
[ System Message > [ HP 1% 이하! ] [ 사망 직전입니다! ]그런 메시지가 떠오르더라도.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버틴다.
계속, 계속 버틴다.
근처에 있는 마수들이 내가 있는 위치에 전부 모여들 때까지.
그리고.
그렇게 됐다는 확신이 생김과 동시에.
“지금이야!”
그런 말을 내뱉는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다른 녀석들에게 주기로 했던 ‘신호’다.
그리고, 그런 말을 내뱉으며, 나도 소울 링커 안에 내장되어 있는 스킬을 발동시킨다.
[Item Info> [ 소울 링커 ] [ 전용 장비 ] [ 인챈트: 에픽 ] [ ‘영웅의 파편’ 융합 ]◎ 내장 스킬 ◎
■ [ 심상 세계 ] [ 스킬 등급: A ] [ 영체를 소환하여 주변 일대에 고유 영역을 형성합니다. 영역 안에서는 영체가 가진 능력을 일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의식 개방 수준이 높아질수록 영역의 범위가 넓어지며, 사용 가능한 능력의 개수가 늘어납니다. ]
– 현재 사용 가능한 능력
[ 특성: 연대 ] [ 기사에게 전우란 곧 가족입니다. 본인에게 걸린 버프를 주변 인물들에게 일부 전파시킬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스킬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써먹기엔 대단히 적합하지.
칼리반의 심상 세계가 순간적으로 주변에 깔리며, 나에게 적용된 절체절명이 녀석들에게도 공유된다.
[ System Message > [ HP 0%! ] [ 가사 상태로 접어듭니다! ]그 사이에, 부상이 누적된 덕분에 내 눈앞으로 그런 메시지가 떠오른다.
시야가 슬슬 꺼져들지만.
그 전에.
-!
-!!
-!!!
시야 전체가, 엘리야가 휘두른 검풍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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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자마자 가장 먼저 본 것은, 눈물 맺힌 눈으로 나에게 포션을 들이붓는 엘리야다.
“…미쳤어요?!”
“…”
소리지르지 마. 머리 울려.
힘겹게 몸을 일으켜 내 몸을 살핀다.
그렇게 박살난 상태에서도 회복용 포션 좀 뿌려두니 그래도 거동이 가능해진다.
철인 특성 만만세다. 회복력이 확실히 인간 범위는 아니다.
물론 그거랑 별개로, 지금 도끼눈을 치켜뜨고 날 노려보는 엘리야의 기색이 굉장히 매섭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자고 하셨어요. 진짜로 죽을뻔했잖아요!”
“…어, 아니, 그냥.”
잔뜩 당황하여 말을 꺼내놓는다.
사실 한 번 죽은 거 맞다. HP 0%까지 떨어져서 가사 상태까지 갔다왔으니까.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는데.”
“…뭐라구요?”
“말했잖아. 애초에 한 번 죽는 건 예상하고 왔다고.”
“…”
기껏 마수를 전부 한 곳에 모아둔 골든 타임을 만들었는데 내가 휩쓸린다는 이유로 그걸 놓치는 게 말이나 되나.
맨몸으로 이 녀석들에게 달려들어 주의를 끈 이유 자체가 그거였는데.
이 녀석들이 나를 공격하려고 한 군데에 뭉침으로서 엘리야와 페이놀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이 녀석들을 ‘잡기 쉽게’ 한 자리에 모아놓는 것.
게임 좀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전문 용어로 몹 몰이라고 하지.
기동력이 워낙 좋은 놈들이라, 한순간에 잡으려면 그런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한곳에 뭉쳐놓지 않으면 잡는 것 자체가 힘들다.
하물며 아무리 내 스펙이 좋아도, 급한대로 얻어맞기만 하면서 한 곳에 홀딩 해두는 단순무식한 계획을 성립시키려면 HP가 바닥을 치는 건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고.
[…아니, 애초에 잡으라고 만들어놓은 놈들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싸우는 것 자체가 죽으라는 짓이니까 최대한 열심히 숨고 피해다니라는 것 아니냐? 이딴 상황을 조성한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가지만, 그래도 이유를 따져보면 취지가 딱 그쪽인데?]그건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엘리야를 마지막 시련으로 보내려면 녀석이 돋보여야 하는 건 필수다.
단순히 시간 안에 살아남기만 하는 건 조금… 그렇잖아.
확실한 경우의 수는 되지 못한다.
안 멋있어서.
“…”
[사람 한 명 돋보이게 만들어주려고 자기 목숨 아무렇지도 않게 거는 놈은 대륙을 뒤져도 너 정도밖에 없을 거다. 자살 희망자라도 되냐, 진짜?]“…”
[그것 때문에 별로 엘리야가 돋보이지도 않아. 니가 제일 정신 나간 녀석 같아서.]아니.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칼리반의 말에 당황스러워하고 있자니.
전방에서는 엘리야와 탈리온, 심지어 페이놀까지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너네들은 왜.
잘됐으니까 다 괜찮은 것 아니야?
“아니, 내가 저번에 해 보니까.”
뭔가 기괴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애써 웃는 얼굴로 말을 꺼내든다.
“심정지 상태로 10초 정도 죽어있는 건 괜찮더라고.”
게임 안에서도 몇 번 겪은 거고, 이전에 유리아한테 반쪽이 나면서 실제로도 적용된다는 걸 얻은 지식이다.
HP가 0%로 수렴했음에도, 완전히 사망하기 전에 어떻게든 숨통만 붙여놓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
이번에도 내가 살아남음으로서 확실하게 증명된 법칙이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신음처럼 말했다.
“시체꼴이 되기만 해도 안 죽기만 하면 OK라구요? 천의 하나, 만의 하나라도 잘못되면 어떻게 하려구요?”
“실패할 생각을 왜 해. 너랑 관련된 일인데.”
“…”
싱긋 웃으면서 엄지를 치켜든다.
“죽어도 성공시켜야지.”
“…”
당연하다는 듯 그런 말을 꺼내는 나를 보고, 엘리야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깊은 고통이 담긴 몸짓이 틀림없었다.
“…저기요, 선생님.”
“응?”
“저, 예전에 라나 씨를 인간 소모재로 사용한 것에 대해 뭐라고 대화 나눈 적 있었잖아요.”
“…그랬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다가간 엘리야가, 양손으로 내 어깨를 턱 잡았다.
“그때 했던 말 다 사과할게요.”
“뭔 소리야.”
“선생님은 인간성이 마모된 게 아니라, 그냥 그게 될 것 같은 인간은 누구든 그렇게 써먹을 수 있는 진성 정신병자였던 거였어요.”
“…”
“세상에 그게 된다고 자기를 그런 상황에 몰아넣는 인간이라면, 남도 그렇게 쓴다는 발상을 떠올릴 만해요. 최소한 공평하다고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
중얼중얼 흘러나오는 엘리야의 외침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친다.
얘, 눈동자가 죽어있다.
초점조차 없는 상태로 그런 말을 속사포처럼 쏘아붙이는 모습을 보니 오싹하기까지 하다.
“…그, 뭐냐, 잠깐 진정하고.”
“못 해요.”
“…”
“선생님, 일단 앉으세요.”
“…왜?”
“정신머리부터 똑바로 고쳐드릴 테니까.”
“…”
“선생님은, 본인이 타인한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좀 자각할 필요부터 있어요. 와중에 자꾸 사람 마음에 불을 지르는 소리를 자꾸 내지르는 성향도 좀 고쳐야 하고. 기분은 좋은데, 지금 타이밍에 듣기엔 좀 속 터지거든요?”
“…”
칭찬인가?
“똑똑히 들으세요. 버르장머리부터 고쳐드릴 테니.”
“…”
아닌가 보네.
얘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심한 소리를 하는 건 처음 본다.
뭔진 모르겠지만.
나 지금 혼나는 것 같은데. 맞나?
[맞아.]“…”
[그리고 넌 좀 혼나도 싸. 그냥 혼나는 것도 아니고, 눈물 쏙 빼서 죽기 직전까지.]이런 부분에서는 남매가 닮아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엘리야가 폭풍처럼 쏟아내는 갈굼을 멈출 때쯤, 난 거의 눈물을 뽑아내기 직전까지 간 상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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