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87)
r 186 – 186. 황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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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실로 돌아와, 설리번이 전달해준 서신을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본다.
기억을 좀 복기해보면.
엘리야가 가장 큰 연을 두고 있는 국가인 제국의 수뇌부임에도, 세라 본편에서 황궁을 밟을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
황제라는 인간 자체가 엘리야보다 엘노어와 훨씬 더 깊숙하게 엮여있는 인간이고, 본편에서 등장하는 방식도 그렇게 유쾌하진 않으니까.
몇 번이고 말하는 사실이지만, 그쪽은 엘노어의 멘탈을 터트리는 게 시나리오 안에서 가장 큰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따지고 보면.
적에 더 가까운 인간이다. 세실리아 11세는.
게임상에서 엘리야에게 배정되는 악역은 재상님이었지만, 엘노어를 지옥행 급행열차에 올려버리는 건 이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 타이밍에 나를 불렀을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침대에 눕는다.
용사 선발 시련 중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인 나를 황궁에 불러들여 치하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내용 자체가 이상한데.’
불렀다면 내가 아니라 엘리야를 불렀어야 정상이다.
행사 자체가 ‘용사 선발’이다. 포커스는 보조 역인 수행원이 아니라 용사 후보에게 가서 쏠려야지.
그럼에도 황제가 굳이 내 이름을 서신에 박아넣었다는 건, 우리가 용건이 있는 건 너니까 도망갈 생각은 얌전히 접어두란 뜻이다.
“…”
안 좋은 냄새가 난다.
처음부터 나에게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던 것도 그렇고, 굳이 마지막 시련이 치러지기 직전의 타이밍에 나를 부르는 것도 그렇고.
괜히 재상님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말리는 게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갈 거냐?]“…가야죠.”
안 가면 그게 더 큰 일이다.
설리번이 이를 악물고 제발 가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애초에 나 때문에 내전이니 뭐니 터지는 것보단 불길하더라도 적진에 머리를 들이미는 게 더 낫다.
“칼리반.”
[음.]“…예상되는 위협 요소는요?”
내 말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칼리반이, 이내 실소를 흘리면서 답했다.
[너, 지금 황제 폐하한테 충성을 맹세한 황실 근위대한테 황궁의 위협 요소를 묻는 거냐?]나도 마찬가지로 피식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오는 문장이다.
엄밀히 따지면 이 사람 말이 맞긴 하다.
가디언도 아무튼 엄밀히 따지면 황실 근위대 소속이지.
하지만.
“복마전이잖아요. 그 안쪽.”
그렇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대상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봤기 때문에, 그 추악함을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몇 번 말한 적 있지만, 제국은 세만 따지면 세 패권국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국가다. 세라의 주인공 진영인 이유가 있지.
그럼에도 세 개의 국가가 팽팽하게 균형이 이뤄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뇌부가 개판이라서.’
법황의 도덕성 여부야 예외로 두더라도, 성황국은 철권 통치로 교통 정리라도 깔끔하게 끝나기라도 했지.
이쪽은 수뇌부가 권력의 대다수를 쥐고 있는 주제에 가장 혼잡하고 가장 썩어있다.
밸런스 패치 한 번 기가 막혀, 아주.
[…장로급 대귀족들이 문제지. 트리스탄 공작가, 켄드리드 변경백 정도가 그나마 괜찮은 사람들이지만. 그 외의 인간들은 엮이지도, 만나지도 마라. 독사 같은 인간들이니까.]당장 칼리반도 내가 생각하는 말을 그대로 꺼내지 않나.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듣고 있자니, 다시 문장이 이어졌다.
[폐하 자체는… 좋은 분이야. 온화하신 분이지. 유약하다고 평가하는 놈들도 있지만, 그건 본인들이 남을 끌어내려서 배를 불리고 싶어 하는 아귀 새끼들이라 그런 거고.]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칼리반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런 분도 유일하게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 분야가 딱 하나 있지.]“…뭔지는 알 것 같습니다.”
아마 제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볼만한 내용일 테니까.
직접적으로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거의 없겠지만, ‘용의 후손’을 자칭하는 황가에 떠도는 끔찍한 저주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할 걸. 아마 너한테 관심 가지는 것도 그쪽 관련 이유일 거고.]“…”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다.
용혈.
거기서 파생되는 저주.
유리아의 몸을 파먹고 있든 단절의 저주와는 비슷하면서 다른 종류지.
유리아가 저주받은 물건인 단절자를 만짐으로써 수명이 줄어드는 쪽이면, 황제는 온몸을 흐르는 ‘용’의 피를 인간의 육신이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다.
가장 순수한 마력 생명체라고 불리는 용은 세라 세계관에서도 손꼽히게 강력한 종족이니까.
그 종의 정점에 선 용제 정도 되면 조각 세 개짜리 그릇과도 비등하게 비빌 수 있는-
[…그렇게 보니까 악마들 별로 안 세네?]“예?”
[아니, 그렇잖아. 생각보다 맞먹을 수 있는 존재들이 많은 것 같은데. 저번에 그 무슨 언령술사도 그렇고, 용제라는 놈도 그렇고, 무슨 맞먹을 수 있는 놈이 그렇게 많아?]그렇게 질문하는 칼리반의 말에 쓴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시선을 창문 바깥으로 돌린다.
내 개인실은 꽤 고층이었고, 덕분에 치천사가 펴 놓은 결계 너머로 공허 지대가 희미하게나마 시선에 들어왔다.
“결국 그릇과 조각이라는 건 악마의 힘을 한곳으로 모으는 역할이거든요. 진짜 악마 ‘본인’이 아니라요.”
[뭐?]“악마의 완성은 조각 세 개 모인 그릇이 공허 지대에 있는 악마의 ‘본체’와 맞닿으면서 끝나는 거에요. 조각 세 개 다 모인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리고 그게 완성되는 순간.
농담이 아니라, 바로 세계가 망한다.
내가 특히 현재 시점에서 페이놀을 주의 깊게 살피는 이유기도 하지.
현시점에서 가장 세계 폭발 엔딩 시나리오에 가까운 인간이 그쪽이니까.
악마가 최강이라면서 생각보다 맞먹을 수 있는 놈들이 꽤 많은 것도 그런 연유다. 결국에 그쪽의 완성은 한참 멀었으니까.
[…넌 그런 개념을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건데? 볼 때마다 신기한 놈이네.]“…그런 게 다 있습니다.”
두루뭉술하게 말을 흘리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용혈의 저주라…’
확실히, 칼리반의 말대로 황제는 온화한 인간이다. 굳이 뭔가에 이렇게 이해가 안 갈 정도의 관심을 보이는 거라면 그쪽이 가장 밀접한 이유겠지.
“…”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 가는 건 매한가지지만.
아무리 내가 눈에 띌 만큼 어마어마한 짓을 자주 했다 하더라도, 결국 아직은 일개 학생이다. 재상과 더불어 대륙에서 제일가는 권력자가 나한테 이 정도까지 집착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모르겠다.”
일단 가보면 알겠지.
언제 내가 바라는 대로 일이 풀린 적 있었다고.
상황에 맞춰 대응하면 그만이다.
●
“…”
“…”
재상님의 시선이 따갑다.
황궁 안으로 들어가는 마차 안에서, 건너편에 앉아있는 설리번이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모습에 식은땀이 난다.
재상 님이 타는 호화스러운 마차답게 안쪽의 공간은 널널했지만, 그럼에도 내부의 공기는 숨 막히듯이 푹푹 찌는 느낌이다.
“…”
“…”
한참동안 그렇게 침묵이 흐르다가.
그걸 먼저 깬 것은 재상님이었다.
“…너무 그렇게 눈치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재상님이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예?”
“당신은 일관적으로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인간이었으니까요. 자기 희생을 당신만큼 실현하는 인간도 별로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압도적인 고평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이었나…?
“하지만.”
내가 떨떠름하게 미소 짓는 사이, 재상님이 단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황궁 안에서는, 반드시 제 도움이 필요하실 겁니다. 무슨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저한테 의지해주세요.”
“…”
사실, 정말 위험하게 된다면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긴 했다만.
새삼 느끼는 건데.
이 사람, 나한테 친밀도가 높아도 너무 높지 않나.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날 볼 때마다 시선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게 신혼한지 얼마 안 되는 부부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다.
-제 곁을 떠나지 말아 주세요.
황궁에 들어오기 전에, 재상님이 날 만류하면서 꺼냈던 문장을 떠올린다.
‘…말이 이상하잖아.’
곁을 떠나지 말아 달라니.
마치, 이전에는 서로가 ‘긴밀한’ 사이였다는 것처럼 말하지 않나.
이전부터 뭔가, 어긋나 있는 느낌이 있다.
내가 이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경험과, 이 사람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모르는 ‘나 자신’의 일면을, 저 사람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나저나, 의외군요.”
그런 생각을 곱씹는 사이, 재상 님이 나에게 고개를 슬쩍 들이밀었다.
답지않게 재미있다는 웃음이 얼굴에 걸린 모습이었다.
“황궁행이라면 반드시 트리스탄 공녀를 대동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쪽은 내버려 두고 저와 동행하시다니요.”
“…”
그거야 황제하고 엘노어하고 붙여뒀다간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그렇지.
몇 번이고 말했지만, 그쪽은 엘노어 멘탈을 터트리는 기폭제다. 기드온과 다르게 굳이 사이를 개선시켜줘야 할 이유조차 없는.
“…황궁 방문은 재상님과 함께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을거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여러 이유로.”
“…”
내 말을 들은 재상님이 침묵했다.
입을 다물고, 잠시 나를 바라본다.
쭉.
눈을 동그랗게 뜨고.
“…”
뭐지.
나 뭐 잘못 말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그거.”
재상님이 고개를 내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내밀었다.
얼굴에 걸린 웃음이 좀 더 진해지던 참이었다. 볼 근처로는 살짝 홍조가 들어차 있기도 하다.
“제가, 트리스탄 공녀보다 더 의지가 된다는 뜻인가요?”
“…”
“역시 그런 풋내나는 숫처녀보다는 제가 더 든든하지 않습니까.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다우드?”
아니, 그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는데.
엘노어한테 걸리면 반쪽으로 쪼개질 문장은 조금 자제해주셨으면 좋겠다.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애써 웃고 있자니, 마차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황궁에 도착했다는 뜻이겠지.
“…하아.”
한숨을 내쉬면서 마차 안에서 내리자마자.
목을 한참 뒤로 꺾어도 꼭대기가 안 보이는 으리으리한 건물이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
압도당한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이루어진 사회의 이미지가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나로서도, 이 정도로 거대하고, 호화스럽고, 장엄하기까지 한 건물은 본 기억이 없다.
‘…이게 전부 한 사람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 그거지.’
물론 국가의 위신이 걸린 공관이라는 상징성도 있겠지만, 건물의 본 목적이 ‘황제의 집’이라는 것만큼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내 옆에는, 이게 집인 사람과 대등하기 파워 게임을 펼칠 수 있는 인간이 있고.
새삼, 재상이고 황제고 얼마나 무지막지한 권력가들인지 피부로 체감이 된다.
이전 삶과 지금 삶을 다 포함해도 나랑은 아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 그거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도 결국엔 남작가의 자제-
“…”
아, 지금은 자작가지 참.
‘…아버지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내가 먹은 자작령은 아버지한테 던져두고 그대로 관심 끄고 있었는데, 방학 때 돌아가서 한 번 상태를 확인하던지 해야겠다.
“캠벨 자작가의 다우드. 맞습니까?”
마차에 내려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니, 느닷없이 그런 목소리가 날아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곰 같은 인상을 주는 사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등 뒤로는 그런 신장에 어울리는 거대한 검을 맨 채로.
기억에 남아있는 모습이다.
라드 알렉산더 바르폰.
현대의 검성.
“…”
어이가 없네.
무력 수위를 따지면 대륙 전체를 뒤져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고작 나 같은 자작가 학생 하나 마중하자고 튀어나와?
“…여기는 무슨 일입니까, 라드 경?”
설리번이 그쪽을 보자마자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에스코트입니다, 설리번 재상. 폐하께서 직접 명령하신 일이죠.”
“…”
설리번의 눈가가 가늘어진다. 미간도 같이 찌푸려지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기분이 나쁜 기색이었다.
“…이 남자는 황궁에 초행길입니다. 여독도 많이 쌓였을 테니, 내일 일정을 잡도록 하지요.”
“…”
사실을 따지자면 아니긴 하다.
공간 이동 전이석으로 장거리를 이동한 덕분에 실제로 이동한 시간은 기껏해야 한 두시간이 전부다.
대놓고 괜히 건드리지 말라고 설리번이 으르렁거리는 모습이겠지만, 검성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을 받았다.
“허나 폐하께서는 오늘 당장 이 남자를 뵙길 원하십니다. 황명으로 취급해도 무방하죠.”
“…”
설리번의 인상이 더더욱 찌그러졌다.
대놓고 상대방이 세게 나오는 모습에 기분이 대단히 안 좋아진 모습이다.
“…이제 저녁 시간입니다. 아무리 황가라지만 손님을 초대했으면 이 시간에 부르는 건 예의가 아닐 겁니다. 잘 곳을 마련하고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 게 상식-”
이번엔 목소리가 진짜로 으르렁거리듯 낮아진 모습이다.
잔수작 부리지 말고 꺼지라는 기색을 담은 것이겠지만.
이번에도 담담하게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목소리다.
이어지는 말이 뭔지 생각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색이었지만.
“폐하의 침실에서 하룻밤 재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
예?
어, 뭐.
뭐라고?
“…어, 어디라고 하셨죠?”
“침소요. 침대를 두고 잠을 자는 곳 말입니다.”
“…”
“폐하께서, 당신과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걸 원하셨습니다. 다우드 캠벨.”
설리번의 입이 쩍 벌어졌다.
내 것도 마찬가지였다.
“…”
아니.
오자마자 뭔데,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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