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93)
r 192 – 192. 사교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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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질문이 엄청 많아 보이시지만, 일단 이 이야기부터 들어보세요!”
여전히 정신없는 기색으로, 그런 문장이 이어서 흘러나왔다.
녀석이 곧바로 품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열쇠?’
비취로 고급스럽게 치장되어 있는 열쇠다.
박혀있는 마크로 보면 황궁 내부 시설을 여닫는데 쓰이는 물건이지.
“이게 있으면 황궁의 어디든지 출입할 수 있을 겁니다! 장로회에서 관리하는 물건이니까, 당신에게 이 물건의 소유권을 드리겠습니다!”
“…”
“그리고, 아마.”
보거트 후작이 윙크하며 열쇠를 나에게 내밀었다.
“황궁은 사람도 많고, 노는 물건도 많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장소니까! 맘에 드는 물건 한 두 개 정도는 가져가셔도 상관 없을 겁니다!”
“…”
“들키면 장로회에서 시켰다고 거짓말해도 상관 없습니다!”
말만 들어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휙 던져줄 물건은 아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은 더더욱 그렇고.
“…그런 짓을, 왜?”
“그래야지 당신이 용사 선발의 마지막 시련을 통과할 수 있을 테니까요!”
“…”
“당신이라면 황궁 안에 뭐가 ‘잠들어’ 있을지도 훤하게 꿰뚫고 있을 것 아닙니까?”
보거트 후작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틀림없이,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물건도 있을 겁니다!”
“…”
뭔가.
뭔가 이상하다.
왜 갑자기 이런 호의를 베푸는지 그 의도는 차치해놓고서라도.
이 녀석, 내 ‘행동 원리’와 ‘목적’에 대해 대단히 명확하게 알고 있는 느낌이다.
사건에 앞서, 그걸 쉽게 해결하기 위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미리 계획을
내가 이쪽 세계에 대한 지식을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본인도 꿰뚫고 있는 느낌.
“…제가 가져와야 할 물건이라도 있나 봅니다.”
“네!”
보거트 후작의 시선이, 내 팔에 묶여있는 아뮬렛에 날아와 꽂혔다.
“…‘가디언’과 함께라면.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겁니다!”
“…”
이 녀석.
칼리반에 대한 것도 알고 있다.
표정을 굳히며 말없이 상대방을 바라본다.
이런 녀석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 나온건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왜 이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보거트 후작.”
낮은 목소리로 상대방에게 읊조린다.
“제가 당신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건 본인이 제일 잘 아실 것 같은데요. 전 당신과 대립중인 정적들의 측근입니다.”
오죽하면 내가 이런 말까지 꺼내게 만들까.
한 번 속이라도 좀 털어놓으라고 내가 이 녀석을 두드리게 만들만큼, 지금 이 녀석은 존재 자체가 불가사의다.
“…가장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 당신?”
심지어는.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런 말을 꺼내놓는 것도 그렇다.
“그걸 물어본다면, 왜 이런 짓을 하는 지에 대한 답도 어느 정도 같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살짝, 이를 악문다.
이 녀석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느낌이라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가장 커다란 의문을 입에 담는다.
“…어머니를, 알고 있습니까?”
내 아버지, 아르민 캠벨 자작에 대한 거라면 꽤 상세하게 알고 있어도 그다지 이상할 건 없다.
제국 귀족들의 음흉한 습성을 생각해보면 내가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부터 내 신상 정보는 A부터 Z까지 다 털렸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다만.
‘다른 쪽’ 부모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알다마다요.”
내 질문에, 보거트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이어지는 질문을 말할 때도 여전히 그렇게 여유로운 기색이었다.
“당신은요?”
폐부를 깊숙하게 찌르고 들어오는 질문이다.
“…기색을 보면 말이죠.”
그런 문장이 이어졌다.
“당신도, ‘전부’는 알지 못하는 모양인데요. 그렇지 않나요?”
대답 없이 녀석을 쏘아본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보거트 후작이 다시 싱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르민은 절대 그쪽에 대한 이야기를 당신에게 순순히 할 녀석이 아니죠. 어렸을 때부터 그랬으니까요.”
“…”
“곰 같은 녀석. 착실하고, 성실하고, 아마 아스트리드도 그런 점에 끌렸던 게 분명합니다.”
주먹이 꽉 쥐어진다.
아스트리드.
아스트리드 캠벨.
내 어머니의 이름.
유일하게 그쪽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는 정보.
“그리고, 전 아르민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보거트 후작이 부드러운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녀석이 말하지 않았다면, 저도 당신한테 아스트리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 생각은 없어요.”
“…이미 이런저런 티는 다 내신 것 같은데요, 후작님.”
싸늘하게 그런 문장을 던진다.
어떤 형태로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깊숙하게 엮여 있다는 걸 이 정도로 티 내놓고 나몰라라 하는 건 또 뭐냐. 놀리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런 내 태도에도.
보거트 후작이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깨만 으쓱였다.
“…그럼 그렇게 티를 낸 김에, 선심 써서 한 가지만 더 알려드릴까요.”
이어서, 녀석의 얼굴에서 웃음이 떨어져 나갔다.
보거트 후작이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이 녀석을 만난 이후로 처음 보는 묵직한 기색이다.
“…아스트리드에게 부탁받은 게 있거든요. 저는.”
짜증이 확 솟구친다.
“아까부터 자꾸 빙빙 돌려서 말 하시는데-”
“제 속내를 알아보러 오셨죠? 황제와 재상이 저를 견제할 생각 만만일 테니까요.”
“…”
내 눈이 가늘어진다.
폐하, 라는 말이 빠져있다.
제국의 신하된 자로서 본다면, 이건 솔직히 당장 불경죄로 처벌당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폭거다.
이걸 바꿔 말한다면.
대놓고 ‘적의’를 드러낸 거나 다름없는 언사고.
“…무슨 생각이십니까, 보거트 후작.”
갑작스레 이런 말을 꺼내놓는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황제나 재상이나 자기를 탐탁치 않게 보고 있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을 텐데.
대놓고 그쪽에 줄을 대고 있는 내쪽에 이렇게 책잡힐 짓을 보여주는 이유를 모르겠다.
“제국의 장로회의 현재 동향이 심상치 않다. 황제와 재상, 그리고 장로회로 나눠진 제국의 상황에서 한 쪽이 크게 불을 지르면 겉잡을 수 없는 내전이 발발할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
나도 다 아는 내용이다.
당장 그게 5 챕터의 배경이니까.
“그거, 맞는 말입니다.”
“…”
귀를 의심하며 눈앞의 인간을 바라본다.
한 방 먹은 기분이네.
물론 현재 상황에서 5챕터의 ‘대분란’을 일으킬 녀석은 이 놈밖에 없지만, 이 정도로 담담하게 인정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왜?’
결국, 돌고 돌아 그런 의문이다.
지금 이 타이밍에 이런 말을 꺼내서 이득이 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다우드 캠벨.”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그런 말이 뚝 떨어졌다.
“아스트리드가 저에게 무슨 부탁을 하셨는지 여쭈셨습니까.”
“…예?”
“녀석과의 약속이니 확실히 말 하지는 못 하겠지만… 단서 정도는 드릴 수 있겠네요.”
보거트 후작이 들고나온 글래스에 담겨있던 와인을 홀짝거리며 말했다.
“아스트리드는 ‘당신’을 저에게 부탁했습니다. 본인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걸작품을.”
“그게 무슨-”
“간단하게 말해서 전 당신을 ‘위대하게’ 만들 생각이에요.”
“…”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잔뜩이다.
세라 세계에 빙의한 이후로, 선각자만큼이나 예상이 안 가는 ‘변수’는 이 녀석이 처음이겠지.
표정을 잔뜩 찡그리며 상대방을 바라본다.
이어서.
뭐라고 대답할 틈새도 없이, 다음 문장이 이어졌다.
“황제와 제상에게 그대로 전하셔 됩니다. 똑똑히 들으세요.”
틀림없이.
이번에도, ‘예상 범위’ 안쪽에 있던 문장은 절대 아니었다.
“전 제국을 불태울 겁니다. 전부.”
“…”
사실, 말하는 기색이 너무 담담해서 한동안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전같이 시시한 게 아니에요. 제 목표는 옥좌가 아니니까요.”
가볍고, 당연한 사실의 토로처럼.
“열 살 이상의 제국민이라면 전부 다 죽일 겁니다. 남자, 여자, 아이, 어른. 모두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전부 다. 하나도 빠짐 없이.”
마치 내일 아침엔 산책을 나갈 거라는 말을 전달하는 것처럼.
“이 나라 전체를, 무無로 되돌릴 겁니다.”
“…”
그래서.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을 때는, 격렬하게 호흡이 말려 들어왔다.
“…당신.”
차라리 광인의 선언이거나,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악당의 결의였으면.
이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녀석은.
맨정신으로.
말도 안 되는 미치광이의 게획을.
건조하게.
꼭 해내야 할, 자신에게 부여된 과업이라는 것처럼.
“그리고, 당신이 그걸 막아주셨으면 해요.”
정말로.
“부탁입니다.”
담담하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
“…하아아…”
보거트 후작과 헤어진 다음.
테라스 바깥으로 걸어나와, 복도를 걷는 사이.
이쪽으로 넘어온 뒤로는 한 번도 뱉어본 적이 없는 깊은 한숨이 입에서 뽑혀 나온다.
손안에는 보거트 후작에게 사교회장에서 받아온 열쇠가 쥐어져 있었다.
‘…뭐하는 놈이야, 그 놈.’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 정도로 막막한 느낌은 선각자를 만난 이후로 거의 처음 받는다고 할 정도로.
특히, 나도 모르는 어머니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건, 오싹할 정도다.
[…그러고 보니, 너도 얼마 전에 네 모친 쪽에 대해서는 모르는 편이 더 좋다고 그랬었지.]소울 링커 안에서 그런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그쪽에 대해 알고 있으니까 한 말 아니냐?]“몰라요.”
[뭐?]황당하다는 듯 대답하는 칼리반에게, 쥐어 짜내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습니다. 알고 있는 건 딱 한 가지뿐이에요.”
어렸을 적.
아주 어렸을 적 이야기다.
내가 ‘다우드 캠벨’에게 빙의하기도 전의 이야기.
원래 이 몸의 주인이 제대로 거동도 하지 못할 만큼 무지막지하게 아팠던 것 말이야.
[아, 그래. 일곱 살 때 기적적으로 치유됐다며?]“아뇨. 치유된 게 아니에요.”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받는다.
“엄밀히 말하면, 저 그때 한 번 죽었습니다.”
아버지의 서고에서 찾아본 적 있다.
여섯 살. 다우드 캠벨은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완전히 사망했었다.
장례사를 불러 식을 치루려고 했던 기록까지 남아있었으니까.
‘기적처럼’ 살아났다는 건, 절대 빈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일으킨 게 우리 엄마랍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죽은 사람을 되살렸다구요.”
물론 죽음에서 살아돌아온 묘기야 나도 여러 번 부렸지만, ‘완전히’ 죽은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점에서 그 궤가 다르다.
아스트리드 캠벨은.
완전히 죽었던 본인의 아들을, 되살려냈다.
[…뭐?]칼리반이 혼이 나간 목소리로 반문했다.
[온갖 기적을 다 부린다는 성황국의 대신관들도 그따위 짓은 못 해. 법황 본인도 그건 절대 못 해. 무슨 소설 같은 소리를…!]“그런데, 그걸 해냈으니까 제가 지금 여기 있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그러니까.
그걸 나도 모른다.
“…”
그래.
판타지 세계관에서도 판타지 같은 일이긴 하지.
사자 소생이라니, 이건 악마들의 권능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류의 기적이다.
그나마 가능성 높은 추측은, 애초에 내가 죽은 게 아니라 가사 상태에 빠진 걸 착각했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아버지가 그 정도도 구분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모른다고. 어머니에 대한 건. 아무것도.’
대체 무슨 수를 부려서, 죽었던 몸을 되살린 건지.
어머니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애초에 아버지와 어떻게 만난 사람인지, 결혼은 어디서 했고, 어떤 생활을 했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아버지가 말해줬던 어머니에 대한 정보는 그게 전부니까.
방금 보거트가 말한 대로, 아버지는 지독할 정도로 어머니에 대한 언급을 아꼈었다.
“…뭐가 어찌되었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모르면,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방법은 그것뿐이다.
녀석이 뭐하는 놈인지, 어머니에 대한 건 어떻게 알고 있는 지 확인하려면.
직접 부딪혀야지.
“폐하와 재상님께는 양해 좀 구하고. 곧바로 이 사교회는 탈출할까요, 칼리반.”
[…어디 가게?]“들러야 할 곳이 있어요.”
보거트 후작에게 받은 열쇠를 손아귀 안에서 한 바퀴 돌린다.
“당신과도 관련된 곳입니다, 칼리반.”
정확히는.
당신이 아니면 못 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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