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94)
r 193 – 193. 사자의 성채
●
“…저기요. 학생회장님.”
“뭔가.”
“제발 표정 좀 푸세요.”
“고려해보지.”
응.
고려를 하나도 안 한다는 건 잘 알겠다.
엘리야가 조여오듯 엄습하는 관자놀이의 통증에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황제 폐하 상대로 그런 시선을 보냈다가는 무슨 트집을 잡혀도 몰라요.”
“유념하지.”
“…”
그러니까.
유념하면 죽일 듯이 황제와 재상 쪽을 쏘아보는 건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자세히 보니 눈에 핏발까지 서 있다.
“…”
무섭다. 진짜.
“…연극이라고 하잖아요. 연극. 제발 과몰입 좀 하지 마세요.”
엘리야가 핀잔을 주듯이 그렇게 말했다.
다우드가 주목받기 위해서 일부러 재상과 황제를 양옆에 끼고 입장할 거라는 건 이미 들은 바가 있다.
굳이 보고 싶은 꼴도 아니라서 연회장에 올 생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 사람이 또 사고칠 것 같아서 안 따라올 수가 없었다.
‘…격세지감이네.’
권성에게 수련을 받은 이후로, 이 사람에게 어느 정도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검을 제대로 뽑지도 못하고 얼어버렸던 것 같은데.
‘…물론.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엘노어의 문장이 툭 떨어졌다.
“…그대 눈에는 저게 연극으로 보이나?”
“…”
솔직히, 이상할 정도로 진심이 섞인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당장 다우드가 보거트 후작과 사라진 지금도 뭐가 어쩌니 저쩌니하고 황제와 재상이 설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그 부분은, 나중에 신경 써도 될 일이잖아요.”
엘리야가 애써 화제를 그렇게 전환했다.
“지금은, 나중에 덜미 안 잡히도록 눈에 안 띄는 게 더 중요해 보이는데요.”
엘리야가 그렇게 말하며 입고 있는 드레스를 어색하게 만지작거렸다.
사실, 이런 행동거지 자체도 그리 좋은 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물론 용사 후보나 트리스탄 공녀쯤 되는 사람이라면 이런 황궁에서 열리는 사교회라도 지켜야 할 격식 정도는 모두 알고 있기 마련이니까.
괜히 여기서 안 좋은 꼴을 보였다간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을 지 몰랐지만, 그럼에도 이런 복장은 하도 어색해서 자기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그대는 평민 출신 아니었던가?”
“그렇게들 아는 사람 많은데, 제가 또 마냥 진짜 평민은 또 아니거든요.”
“…? 그대, 귀족이었나?”
“그건 아니구요.”
엘노어가 눈을 끔뻑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가족 친지가 황실 근위대 소속의 기사라면, 보통 준 귀족의 신분으로 올라옵니다! 영지를 소유하진 못 하지만, 제국 법상 모든 귀족의 특권은 향유 가능한!”
“…”
엘리야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실눈처럼 느껴질 정도로 싱글싱글 웃고 있는 남자가 그쪽에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엘리야 크리사낙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당신, 누구죠?”
늘 둥글둥글한 친화력을 자랑하는 그녀 답지 않게 대단히 날이 서 있는 목소리였다.
엘노어조차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볼 만큼.
“보거트 후작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엘리야가 말없이 그쪽을 노려보았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탐색하려는 모습이 분명했다.
그 사이, 보거트 후작의 문장이 이어서 떨어졌다.
“오빠에 대한 정보를 왜 알고 있는 지 묻고 싶으시다는 표정이네요!”
“…”
물론, 그런 문장을 듣자마자 살짝 얼굴이 멍해졌지만.
“물론 알려드리지는 않을 테지만 말입니다!”
“…”
뭐라고 대답할 틈새도 없이 그런 말이 이어서 떨어졌다.
엘리야가 표정을 굳히며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괴상한 위화감이 들고 있었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제멋대로 말을 지껄이는 점부터가 그렇지만.
그것 이상으로.
‘…익숙한 분위기.’
마치.
‘선생님이랑, 비슷한데?’
그녀의 마음을 전부 꿰뚫고 있는 것 같은 언동이 그렇다.
스스로의 ‘계획’에 끼워 맞추기 위해 남을 자기 입맛대로 휘두르는 느낌.
뭐든지 ‘미리 알고’ 자기 입맛대로 상황을 주도하는, 그런.
다우드 이후로, 이런 느낌을 주는 사람은 처음이다.
“음, 아마 당신이 찾고 있는 오빠의 거취를 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건 알려드릴 수 있을 테지만요.”
보거트 후작이, 여전히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관심 있으십니까?”
“…”
엘리야가 말없이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급작스러운 인간이다.
등장도 그렇고, 뜬금없이 그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역린을 건드리는 것도 그렇고.
이쪽과 대화를 나누는 건, 대단히 꺼림칙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처음 뵙겠습니다, 보거트 후작님. 아직 인사도 못 했네요.”
솔직히.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이신가요?”
그냐로서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어 보이는 말이었다.
●
황궁은 엘판테만큼의 연식을 자랑하는 오래된 건물이다.
“읏…차…”
힘겹게 건물 외벽을 기어오른다.
원래대로는 근처에 오지도 못 하도록 접근 차단의 결계가 둘러진 곳이지만, 그쪽은 보거트에게서 받은 열쇠로 해결한 참이다.
보여주자마자 경비병의 얼굴이 새파래지는 게 볼 만 했지.
[그래서. 여기가 어딘데?]“말했다시피, 당신이 아니면 못 들어갈 곳이요.”
외벽 근처로 둘러져 있는 건 현대로 따지면 노란색 폴리스 라인일 것이다.
‘접근 금지!’라는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셈이지.
이 안쪽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곳’이란 뜻이렸다.
그쪽을 넘어, 건물 안뜰에 탁 착지한다.
[그러니까, 그런 곳을 왜 가냐고. 쓸만한 물건 찾으러 간다며?]“보면 알아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쓱 둘러본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주변으로 둘둘 감겨 있는 것 같은 폐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익숙한 곳이죠?”
이전에, 칼리반의 기억을 들여다볼 때 한 번 들른 곳이다.
가디언들의 본부. 통칭 ‘사자의 성채’.
[…]소울 링커 안에서 침묵이 전달된다.
정적 너머로, 뭔가를 잔뜩 억누르고 있는 칼리반의 기색이 전달된다.
기억에 짓눌린 사람 특유의 분위기다.
“…”
나도, 따로 뭐라고 말을 꺼내놓지는 않는다.
당장 주변을 둘러보기만 해도 이 사람이 뭔가… ‘한’이 많이 맺혔을 거란 사실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다 무너져 가는 건물. 여기저기에 자라난 잡초. 온갖 곳에 피어난 거미줄.
자기 신념을 위해, 제국민 지키겠다고 전원이 희생당한 인간들이다.
어딜 어떻게 봐도 명예로운 전사자들의 예우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잊혀지고, 방치되고, 모두가 신경을 꺼버린.
그런.
[…여기는 왜 왔는데?]“…말했잖아요. 당신만 해줄 수 있는 게 있다고.”
그렇게 말하며, 눈앞으로 창 하나를 띄워올린다.
[Item Info> [ 소울 링커 ] [ 전용 장비 ] [ 인챈트: 에픽 ] [ 위대한 혼령이 깃든 장비입니다. 동기화율을 높여 혼령의 의식을 깨울 수 있습니다. ] [ 위대한 혼의 영향으로 항상 마력을 머금고 있습니다. ] [ 현재 충전된 마력율: 100% ] [ 현재 동기화율: 40% ]그런 창을 쭉 읽어내리며, 마지막에 붙어있는 스킬을 확인한다.
■ [ 수호자의 혼 ] [ 스킬 등급: S ] [ 가디언은 예로부터 정의와 도덕의 수호자로서 모든 이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악성을 가진 인물을 제압할 때마다 특수 스택을 얻습니다. 스택을 전부 채운다면 영혼을 일정 시간 동안 현세에 강림시킬 수 있습니다. ] [ 사용 가능 시간: 5분 ]
이전에 이 사람의 동기율을 올리며 같이 해방시킨 스킬이다.
원래대로는 아에 사용 불가능이었지만, 두 번째 시련에서 암살자들도 때려잡으면서 어느 정도 사용 시간이 충전된 모습이다.
[ System Message > [ ‘수호자의 혼’ 스킬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 Y/N ]망설임 없이 Y를 터치.
그와 동시에, 소울 링커 안에서 누군가의 육신이 불쑥 튀어나왔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육신이라기보단 요술 램프에서 튀어나온 지니 같은 모습이지만.
혼령이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외양이다.
“어, 어? 뭐야 이거?”
당황한 칼리반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는 게 눈에 들어온다.
엘리야와 똑같은 주황색 머리카락. 얼굴 전체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
그리고 무엇보다.
“…”
뭔데 잘생겼냐, 재수없게.
엘리야도 물론 어디 가서 못나 보일 일은 거의 없는 미녀라지만, 이 사람은 그걸 그대로 남자로 전환한 것 같은 미남이다.
짜증날 정도로.
“…안녕, 칼리반.”
아마 인사를 하는 내 목소리가 불퉁한 건 그런 이유가 꽤 되겠지.
“뭐냐. 이거 어떻게 한 거야?”
“한시적으로 강령술을 쓴 거랑 비슷한 효과로 보시면 돼요. 물질계에 어느 정도 간섭하실 수 있을 겁니다.”
혼령계 마수와 비슷한 상태라고 보면 된다.
본인이 직접 뭔가를 만지거나 움직이는 건 가능하지만.
‘빙의’하는 것 정도는, 한정적으로 가능하다.
“제 몸에 ‘들어와서’ 움직이는 것 정도는 어느 정도 가능하실 거에요.”
그리고, 내가 알기로.
이 사자의 성채에는 그런 능력에 도움을 받아야 할 난관이 분명히 있다.
“…그런 능력으로 해주셔야 할 게 있-”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니.
누군가가 숨을 집어삼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
흠칫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온다.
잘못 들었나?
“…뭐야? 왜 그래?”
실체화한 칼리반이 던진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뇨. 아무것도.”
그래. 상식적으로 여기까지 따라올 인간이 누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
“…”
엘리야가 입을 틀어막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오빠.’
방금은, 너무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숨어버렸다.
보거트 후작에게 ‘이쪽을 찾아보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발걸음을 옮기긴 했다만, 설마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칼리반 크리사낙스.
그녀의 유일한 혈육이, 방금 저기에 있었다.
‘…강령술?’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는 술법.
다우드는, 방금 그것과 ‘비슷한 것’을 통해 칼리반을 불러냈다고 했다.
그렇다는 말은.
그녀의 오빠가.
‘…아니. 아니야.’
엘리야가 눈을 질끈 감고 도리질을 쳤다.
지금은, 아무것도 모른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저런 형태로 불러내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불길한 생각은 그만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아니, 하지만.’
다우드는 대체 오빠와 무슨 사이란 말인가.
왜 그렇게나 찾아다니던 인간과 저렇게 친밀해 보이는 사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
왜, 자신에게 그런 걸 알려주지 않았지.
엘리야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문득, 칼리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이 상태면 너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모습이 보이는 거 아니냐?”
“그렇…겠죠? 갑자기 왜요?”
“아니. 그럼 나 엘리야 만나면 팰 수 있는 거야?”
“…”
다우드가 그대로 침묵했다.
숨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엘리야도 마찬가지로.
“…뜬금없이 뭔 소린데요, 그게. 가족한테 할 말이야?”
“아니, 패고 싶은데 어떻게 해.”
다우드의 어이없다는 목소리에, 칼리반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너는 니 여동생이 다른 남자 꼬시겠다고 약혼자니 뭐니 구라치는 걸 보면 화가 안 나겠냐?”
그런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엘리야의 얼굴에 급속도로 홍조가 차올랐다.
“…어.”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머릿속으로는 그동안 자신이 다우드를, 그러니까.
‘공략’하기 위해 저질렀던 일들이 주르륵 떠오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이라고 함은, 칼리반이 말한 그거겠지.
-선생님이랑 저, 사실 약혼한 사이에요.
다우드가 기억을 잃었을 때, 그런 거짓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을 되찾은 이후로는 기억을 잃었을 당시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걸.
자신의 오빠가 봤단 말이지.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다우드 역시 그것에 대해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단 소리렸다.
“…”
엘리야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아마도.
그렇다는 건.
지금까지 그녀가 다우드에게 꼬리를 쳤던 모든 일을 오빠가 직관하고 있었다는 말이겠지.
약혼자니 뭐니 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
엘리야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죽을까?”
생각보다도 더 진심으로 나온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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