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95)
r 194 – 194. 사자의 성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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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안에서의 기억을 생각해보면, 사자의 성채는 가장 직관적인 ‘미니 던전’ 중 하나다.
구성 자체가 단순무식하게 되어있거든.
세라의 메인 던전 공략 대부분이 키 아이템 탐색, 기믹으로 떡칠된 함정 돌파, 이후의 보스 공략이라는 3페이즈로 나눠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야.
여긴 혹시라도 이 안쪽에 누군가 들어올까봐 아주 심혈을 기울여 접근 방지책을 세워놓은 게 전부니까. 그런 평가가 어울리겠지.
하지만, 그런 간단한 구조이니만큼 트랩의 구조는 살벌하기 짝이 없다.
당장 머리 위에서 무더기로 쏟아지는 이 광선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전후좌우, 빈틈없이 쏟아지는 환한 빛이 주변을 가득 메운다. ‘침입자’를 발견하면 자동으로 추적하여 공격하는 술식들이다.
그냥 무작위로 날아드는 공격이 아니라, 반드시 필중으로 꽂히도록 촘촘하게 깔아둔 경로가 특징적이지.
“이건 좀 이상한데.”
“예?”
“여기에 이런 것들을 대대적으로 설치해놓을 필요성이 뭐가 있냐. 어차피 이미 뒈진 놈들이 쓰던 곳인데.”
“…”
“관리도 똑바로 안 된 것 같은데.”
스스로에 대한 죽음을 평가하는 것치곤 대단히 시니컬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 자체는 틀린 게 전혀 없다.
적야 사태에 투입된 가디언들이 전멸한 이후로, 이쪽은 어떤 파벌에도 속하지 않아 사후 처리조차 똑바로 되지 않고 금방 잊혀진 놈들이다.
세라를 플레이했던 당시의 기억을 좀 떠올려 보면, 가디언들에 대한 사후 조치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기는 했다.
가장 커다란 이유라면, 이쪽은 ‘아무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인간들이었으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세 패권국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지만, 자기들 세력만 신경 쓰는 제국의 현 상황이 명확하게 반영된 현상이라고 봐도 좋으리라.
“…그런데, 당신.”
“음?”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가 있는 겁니까…?”
틀림없이 그렇다.
애초에, 지금.
난 아까 말한 트랩 한 중간에 서서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받아내고 있는 입장이니까.
“이 정도면 할만한데?”
“…”
“나 현역때 훈련은 이거보다 훨씬 심했어.”
그렇게 말하며, 내 몸을 ‘조종하던’ 칼리반이 답했다.
사전에 칼리반에게 미리 부탁해둔 것처럼, 이 사람이 지금 내 몸을 대신 움직이는 거다.
상대방을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는 악의와 살의가 동시에 느껴지는 술식이 다중으로 전개된 와중에도, 바늘 한 틈 겨우 들어갈 틈새를 찾아내서 이리저리 몸을 휙휙 움직인다.
물론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니 EX급 절체절명이 켜진 상황이지만, 애초에 그런 것과 전혀 관련이 없을 정도지.
한 발자국 걷기. 고개 살짝 젖히기. 약간의 횡보.
전후좌우로 가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이런 살벌한 트랩을 돌파하는 걸 보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사방에서 총격이 날아오는데 방아쇠를 당기는 걸 보고 피하는 수준의 난이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그걸 이 정도로 수월하게 해내고 있다.
‘…그 괴물 같은 감각이 어디서 나온 건지 알겠네.’
성검을 잡은 엘리야는 그때부터가 잠재력이 폭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괜히 이 세계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처럼, 그때부터는 세계관 최강의 존재들인 악마들과 유일하게 동수를 이룰 수 있는 존재로 발돋움하니까.
그리고 그런 강력함을 뽐내게 해주는 녀석의 강점이 바로 순간순간 본능에 가깝게 튀어나오는 ‘전투 감각’이다.
지금 칼리반이 보여주는 것처럼, 매 순간순간 가장 정답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 말이야.
‘…이거보다 더 강한 놈들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 가네.’
칼리반보다 확실히 윗줄일 거라고 확신 시 되는 이들이라면 기껏해야 마탑의 주인이나 검성 정도 되는 이들처럼 성인聖人의 칭호를 받은 이들밖에 없다.
물론 켄드리드 변경백이나 트리스탄 대공 정도 된다면 맞수를 이루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확실하게
강자들이 세상을 보는 시선은 이 정도로 다르구나, 하는 감상마저 들 정도로.
“좋아. 이 함정도 통과.”
그렇게 말하며 주변에서 쏟아지는 광선들의 킬링 레인지도 벗어난다.
“근데, 네 몸 엄청 좋다. 이 정도면 살아남을 수도 있겠는데?”
“…”
그거야 쓸만하겠지.
EX급 절체절명이 터진 몸이다. 스텟이 버러지 수준인 나라도 세계관 최상위권 강자에 비빌 수 있게 해주는 사기 스킬.
살아남는단 건 뭔 소린지 모르겠다만.
“아니, 너 덮치려고 줄 서 있는 여자들 말이야. 당장 내 동생도 얼마 전에-”
쿨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칼리반의 말도 그와 동시에 뚝 끊겼다.
“…저기, 칼리반.”
“음.”
“제가 잘못 들은 것 아니죠?”
“아니. 나도 들었어.”
어쩐지, 아까부터 이상할 정도로 여동생을 패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칼리반이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어디선가 격한 반응이 돌아온다.
진지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면-
“…근처에 다른 영체가 있는 것 아닐까요?”
다른 가디언들의 영체가 아직 이 근처에 남아있는 거다.
물론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칼리반의 얼굴을 보니 이쪽은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아니, 너 가끔 좀 이상할 정도로 멍청해질 때가 있단 말이야.”
칼리반이 한숨을 폭 내쉬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저렇게까지 반응이 나오는 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
그렇게 말하려던 칼리반이, 문득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이내 내 얼굴과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번갈아 가며 바라본다.
“-흐으음.”
그리고 그런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등 뒤로 불길한 느낌이 치솟아 오른다.
“…뭡니까?”
칼리반이 그렇게 흘린 말에 의아하다는 기색으로 물어봤지만, 대답 대신에 칼리반이 씩 웃기만 했다.
“있잖아. 솔직히 내 입장에선 눈꼴 엄청 시긴 하지만. 내 입장에선 너랑 엘리야가 좀 긴밀하게 엮였으면 좋겠단 말이지.”
“…”
갑자기 무슨 소리야.
“당연한 거 아니냐. 내 유일한 핏덩이인데. 난 녀석의 미래가 행복했으면 좋겠거든. 그래도 너 정도면… 그렇게 나쁜 배우자감은 아닌 것 같아서.”
“…칭찬, 고맙습니다…?”
평소에 맨날 쓰레기니 바람둥이니 난봉꾼이니 극딜을 꽂던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게 좀 어리둥절하긴 하다.
이 사람, 나 그 정도로 좋게 보고 있었나?
“뭐, 쓰레기에 바람둥이에 난봉꾼은 맞아. 근데 최소한 엘리야 눈에서 눈물 뽑을 나쁜 남자 타입은 아니라서.”
“…”
“은근히 찐따잖아. 너. 여자가 먼저 대쉬하는 거에 맥을 못 추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전혀 모르겠다.
말을 하는 도중에 칼리반의 시선이 계속해서 뒤쪽으로 맴돌았다.
“그런 점에서 말이야. 너, 은근 함락당하기 쉽다고. 거칠게 밀어붙이는 쪽 말고 ‘진심’으로 부딪히는 데에 은근히 약해서.”
마치, 그쪽에 이 말을 ‘힌트’라도 주는 모양새로 일부러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하고 계시는데요?”
“그냥, 다시 생각해보니까 나도 유령이 맞는 것 같다는 이야기.”
“…”
이쪽 실체화시킨 뒤로 느끼는 건데.
이 사람, 은근히 이런 표정 지을 때마다 나랑 닮았다.
나한테 옮았나.
“짐작 가는 영체라도 있으십니까.”
“그건 모르겠는데.”
칼리반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이었다.
“말 나온 김에 좀 물어보자. 너, 엘리야 진심으로 어떻게 생각하냐?”
“…”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는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건 또 갑자기 왜요.”
“대답 안 하면 안 도와준다?”
“…”
한창 함정을 돌파하는 와중에 참으로 살벌한 소리다.
그러니까 나도 한숨을 내쉬며 답한다.
“…같이 있으면, 가장 마음이 편하긴 하죠.”
“좀 더 자세하게.”
“아무튼, 유일하게 저를 ‘지켜준다’고 말해준 놈이잖아요. 실제로 어느 정도는 의지하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구요.”
이 세계의 주인공 아닌가.
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외에도 최중요 인물이라는 건 중요하고, 그런 점에서 의지해야 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거, 좋아한다는 거야?”
근처에서 다시 누군가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진짜로 왜 자꾸 아까부터-”
“누군가에게 용기가 좀 필요할 것 같아서. 들이대는 것도 다 그런 게 필요하거든?”
“뭔 소리에요, 아저씨.”
“대답 안 하면 안 도와준다?”
“…”
이 사람이 진짜.
난처함을 느끼면서도 결국 대답한다.
“…따지고 보면, 네. 좋아해요.”
“좋아. 한 번만 더. 문장으로 명확하게.”
“아니, 이 미친 인간아. 지금 뭐 하자는-”
“안 도와준다?”
“…”
다시, 한숨을 내쉬며 답한다.
“네. 전 엘리야를 좋아합니다.”
근처에서 쿨럭, 켈록, 하며 기침하는 소리에 이어 숨을 헐떡이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다시. 좀 더 로맨틱하게.”
“…다우드 캠벨은 엘리야 크리사낙스를 좋아합니다.”
한 김에 자포자기해서 해달라는 건 전부 다 해준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자꾸 안 도와준다고 협박을 하는 데 어쩔 수 있나.
그 말을 듣자마자, 아, 아우우, 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소리까지 곁들여진다.
“아, 하아, 하아…”
“…”
나중에 가니.
유령이라면 결코 낼 수 없는 생동감 있는 숨소리가 들린다.
달뜬 기색이다. 온몸에 정욕이 잔뜩 올라와 있는 느낌마저 든다.
조금 심하게 얘기하면.
이거 그냥 발정난 여자 목소리다.
“…”
영체 맞나.
슬슬 나도 뭔가 이상하다는 게 느껴지는데.
‘…아, 몰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아주 절절하게 전달되지만, 당장은 트랩을 쭉 돌파한 덕분에 목표 지점에 도착했으니까.
“…여긴.”
그리고, 도착한 장소를 본 칼리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사자의 성채에 있는 최심부.
임무 중 전사한 가디언들을 모셔놓는 명예의 전당이다.
원래대로는 납골함과 비석이 늘어진 경건한 추모의 현장이 되어야 하겠지만.
“…”
“…”
칼리반과 내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주변으로 펼쳐진 광경은, 끔찍할 정도다.
박살난 비석. 불태워서 ‘정화’한 가디언들의 유품.
고인에 대한 존중이나, 안식을 기리는 예의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어.”
칼리반이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가디언들은 모두 붉은 악마가 만들어 낸 업화 속에서 사망했다. 유품이고 시신이고 모두 그 진득한 마기가 달라붙어 있단 소리지.
악마의 마기는 그 자체로도 극독이라고 할 만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나 물질계의 ‘생명체’에 적대적인 감정을 품은 붉은 악마의 마기라면 더더욱.
“…그 개고생을 하고 목숨까지 갈렸는데, 이런 꼴을 보는 게 그리 유쾌하지는 않지만.”
“당신들이 이룬 업적은 틀림없이 위대한 거에요, 칼리반.”
“제국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은데?”
맞는 말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이런 취급은 부당하기 짝이 없다.
가디언들은 영웅이다. 인간의 몸으로 악마에게 달려들어 결국 그걸 봉인하는 데 성공한 기적까지 일으킨.
그리고, 이건.
그런 기적까지 일으키며 제국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게 아니라, 전염병에 옮은 시체를 소각하는 수준의 비인간적인 행위겠지.
“…”
말없이 그런 광경을 지나.
‘목표한 물건’을 찾기 위해 제단 위에 올라선다.
칼리반 크리사낙스라는 이름이 새겨진 제단.
그 위에 올라가, 물건 하나를 회수한다.
이 사람이 생전 입었던 전신 갑옷이다.
노리고 있는 건, 중앙에 박혀있는 사자 흉갑.
“…그거 하나 찾자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거 아무것도 아닌데.”
칼리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이것 자체로는 아무 효과도 없다.
이건 그냥 갑옷에 박혀있던 부속품에 불과하니까. 무슨 대단한 능력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아뇨.”
담담하게 답한다.
“이게 핵심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창 하나를 불러온다.
[ System Message > [ ‘메인 퀘스트’가 업데이트됩니다! ] [ Quest Info > [ 메인 퀘스트 ] 〖 챕터 4 – 적야 〗 [ 대상 ‘페이놀’의 폭주를 막으십시오! ]1 챕터에서는 마인, 2 챕터에서는 소년왕, 3 챕터에서는 고대신.
그리고.
‘…4 챕터에서는 폭주한 악마의 그릇.’
그것도 조각 세 개짜리.
아마 성황국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용사 선발 시련에서, 페이놀은 반드시 폭주한다. 모든 분기에서 확정되어 있는 4 챕터의 ‘보스전’이니까.
‘본체’와 만나지 않았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지만, 조각 두 개짜리 엘노어가 폭주했을 때 투쟁의 용광로에서 무슨 개판이 벌어졌는지 생각한다면 위안거리라고 하는 것도 웃긴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확정되어 있는’ 미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둘 수 있다는 거지.
페이놀 본인이 악마를 폭주시키는 걸 대단히 경계하고 있을뿐더러, 붉은 악마 역시 한 번 ‘제압’당한 전적이 있다.
이 사자 흉갑을 착용한 가디언들에게.
두 개의 특성을 엮는다면, 폭주한 조각 세 개짜리 그릇도 어떻게든 진정시킬 수단이 생긴다.
“칼리반. 이런 꼴을 보고 있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이건, 아주 작은 비수다.
칼리반과 가디언들이 그 목숨을 다 바쳐서 악마를 한 차례 봉인하는데 성공함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그런 기적이 없었으면 결코 성립이 안 될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작고, 보잘 것 없고,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지만.
“…이게?”
“기대하셔도 좋아요.”
붉은 악마라는 거악의 심장에 확실히 꽂히는, 비수.
“당신들이 한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제가 꼭 증명할 테니까.”
그런 말과 함께, 내가 흉갑을 품에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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