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96)
r 195 – 195.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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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황제 입장에서는 꽤 즐거운 사교회였다.
몸을 좀먹고 있는 지병인 용혈의 저주 때문에, 황제의 대외 행사는 꽤 제한되는 편이다.
얼마 전에 용사 선발 시련에 직접 참관한 것도 행사의 중요성 덕분에 움직인 것이지, 원래대로는 황궁에 틀어박혀 주치의의 권고 대로만 움직여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런 면에서, 아무리 속이 시꺼먼 아귀들이 들어찬 장소라지만, 이런 곳에 나오는 것 자체는 그녀에게 즐거운 경험이었다.
악단의 연주, 독한 술, 기름진 음식과 사람들의 말소리.
모든 종류의 자극을 제한 당하는 입장 상, 이런 것들은 항상 그녀에게 미지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새로운 경험이다. 마다할 리가 없지.
“파티는 잘 즐기셨습니까, 폐하?”
그러니까.
방금 전만 해도 그랬다는 소리다.
세실리아 11세의 얼굴에 은은하게 걸려있던 웃음이,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싹 지워졌다.
“보거트.”
“새로 데려오신 친구분을 제 마음대로 빌려 간 건 죄송하게 됐습니다.”
예법이고 뭐고, 마치 친구를 대하는 것 같은 허물 없는 말투다.
이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황제의 앞좌석에 털썩 앉는 것만 봐도 그런 ‘격식을 차리지 않는’ 성향이 눈에 띌 정도지.
불경죄를 물어 처벌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황제고 보거트고 아무도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장로회의 핵심.
재상파와 황제파를 제외한 ‘전원’을 긁어모은 제국 파벌의 수장.
대놓고 붙었다가는 제국 전체가 사분오열 될 만한 권력의 소유자라는 건, 보거트 본인과 황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이건 선물입니다, 폐하. 여기까지 오시는 것도 힘드셨을 텐데.”
황제가 말없이 보거트를 바라보는 사이, 그런 말이 툭 떨어졌다.
“겨우살이의 숨결. 제국 극동의 보물 불리는 술이죠. 최소한 통증을 덜어내는 역할은 충분히 해줄 겁니다.”
“…”
겉으로 보기에는 와인과 전혀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확실히 일반 술과는 다르게 신비한 푸른색을 띄고 있는 모습이다.
코르크를 제거한 와인 끄트 머리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황제 앞에 놓여있는 잔에 천천히 채워졌다.
“그래서.”
보거트가 평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싸우실 겁니까?”
“…”
“내전 말입니다. 조만간 한 번 일으키려고 합니다만.”
황제의 표정이 비틀렸다.
‘…어지간히 미친놈이군.’
이 남자를 주축으로 한 장로회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담담하게 그런 의도를 밝혀낼 줄은 몰랐다.
“어라. 왜 놀란 기색이십니까.”
보거트 후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차피 이미 알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세실리아 11세의 얼굴이 꿈틀했다.
“…무슨 소린 지 모르겠군.”
“다우드 씨에게 도청 장치든 뭐든 붙여서 보냈을 것 아닙니까. 처음부터 그쪽을 장기 말로 써먹을 속셈이었으면서.”
“…”
“폐하도 그쪽에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침묵하고 있는 세실리아에게, 그런 말이 연속해서 떨어졌다.
“구도 한 번 기가 막히게 짜셨습니다. 가련한 황제. 나라를 집어삼키는 간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장로회의 수장.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껌뻑 속겠어요.”
“…”
“그 남자는 특히나 스스로에게 먼저 호의를 비춘 사람에게 약하죠. 주변 사람이라고 인식하면 어떻게든 보호해주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이니까요. 그걸 노리신 게 아닙니까? 교활하게. 남의 약점을 파고 들듯이.”
여전히, 싱글싱글 웃는 표정을 얼굴에 걸고 있는 주제에.
폭언의 연속이다.
불경죄를 넘어 목이 메달릴 수도 있을 수준의 발언들이 쭉 쏟아져 내린다.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괴물인 건, 당신도 결국 똑같으면서.”
세실리아 11세는 별다른 대답을 꺼내놓지 않았다.
대신, 보거트가 가져다 준을 들어올려, 그대로 바닥까지 비웠을 뿐.
그 모습을 본 보거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참으로 용감하십니다, 폐하! 역시 제국의 주인다운 기개십니다!”
“…”
이건 또 무슨 반응인가. 황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으니, 다른 문장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정적이 내놓은 물건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들이키다니, 제가 극독이든 뭐든 탔으면 어쩌시려고 그러셨습니까!”
“…글쎄.”
세실리아 11세가 한숨을 폭 내쉬며 답했다.
“아무리 그대라 할지라도 그런 극악한 짓을 저지를 리는 없지 않은-”
“거짓말.”
황제의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그런 말이 툭 떨어졌다.
웃음이 얼굴에서 지워진 보거트였다.
아무 것도 없는 얼굴이다.
눈동자에 담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은 안광을 제외한다면.
그 시선이, 옷 바깥으로 살짝 나와있는 황제의 맨살을 훑었다.
정확히는, 그 아래로 얼핏 관찰되는.
저주에 침식당해 거뭇거뭇하게 변한 혈관을.
“그 저주만 지울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으니까 마신 거면서.”
“…”
세실리아 11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독이 들어있든 뭐든 그냥 신경을 안 쓴 거죠? 어차피 길어봐야 겨우 한 달 버틸 몸이니까.”
“…”
끝까지, 황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부정할 필요성조차 못 느낀다는 듯.
“…선물 고마웠네, 보거트.”
대신, 그런 말만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설 뿐.
“그리고 그렇게 자기 보신에 신경 쓰시는 우리 황제 폐하에게 충고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그대로 등을 돌려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황제에게, 그런 말이 이어서 떨어졌다.
“장로회가 이렇게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가장 커다란 요인이 뭔지 아십니까, 폐하?”
“…좋은 저녁 되시게나.”
황제가 무시하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려했지만, 상대방은 말을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적야 사태입니다.”
“…”
“당시의 황가가 보였던 대처는 최악이었죠. 트리스탄 공작가가 가디언들에게 먼저 머리를 숙이며 제발 도와 달라고 빌지 않았다면 붉은 악마가 제국의 어디까지 태워버렸을지 모를 정도로요.”
“…”
“그런 지도력의 부재 덕분에 황가에게 불신을 느낀 귀족들이 꽤 됐을 겁니다. 그런 녀석들이 전부 장로회에게 붙은 거구요.”
아무래도, 순순히 놓아주진 않을 모양이다.
황제가 속으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겐가, 보거트.”
“아니요. 폐하께서는 그때와 뭐가 다를지 참으로 궁금하거든요.”
보거트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곧 붉은 밤이 올 겁니다. 다시. 이전보다 훨씬… 화려하게.”
“…뭐라고?”
“아마, 제가 내전을 일으킨다면 그때 근처가 될 거구요. 이전에도 ”
“…”
당당하게 터져 나오는 반란 선언에 황제의 표정이 멍해졌다.
“…”
미친 놈이다.
다르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황제에게, 보거트가 살짝 윙크했다.
“부디 대처 잘 해주시길.”
보거트가 그런 말을 내뱉으며 와인을 들이켰다.
우아한 기색이다.
틀림없이.
맑은 눈으로 미쳐버린 자만이 취할 수 있는 제스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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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뭘 이렇게 도망치듯 혼자 나오고 있는 거냐?]황궁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마차 안에서, 칼리반이 그런 말을 속삭인다.
사교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마차 잡아타고 달려나오는 내 모습을 보면 그렇게 틀리 말도 아닐 것이다.
“준비해야 할 건 이것저것 있는데… 시작은 얼마 안 남았거든요.”
[그래도 너 때문에 황궁까지 따라온 사람들도 있는데엘노어와 엘리야를 말하는 거겠지.
확실히, 그쪽에다가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이렇게 단독으로 행동한다면 나중에 혼나겠지.
그래도, 나름 다 이유가 있다.
“일단 일정이 바빠요. 그거까지 다 따라와 달라는 건 무리고…”
당장 이틀 안에 엘판테를 찍고 바로 성황국으로 넘어가야 한다.
첫 번째로는 신성학부의 학장인 월터한테 부탁할 일 한 가지.
두 번째로는 성황국으로 넘어가 루미놀 대주교에게 볼 일이 한 가지.
그리고 그렇게 바쁜 일정보다도.
“…엘리야가 이상하게 절 피하던데요.”
이번 메인 퀘스트에서는 아무튼 녀석이 주역이니까 똑바로 대비시켜주려고 했는데.
아예 만나는 걸 완강히 거부하는 느낌이다.
딱히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왜 그럴까.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다만,’
세 번째 시련은 사실 시련이라고 부르는 것도 애매하다.
던전에 쑤셔넣는다던가, 마수들이 들끓는 숲 한복판에 던져놓는다던가 하는 무시무시한 액티비티가 동반되는 이전 시련들과 달리, 여긴 말 그대로 ‘점검’이 전부다.
과연 이 인간이 성검을 만지고도 안 죽을 수 있는 녀석인가. 그거에 대한 정밀 검사.
딱히 내가 도와줄 것도 없지.
[…뭐, 그걸 직접 봤으니까 무리도 아니지.]“예?”
[기분 좋은 일이랑… 가슴이 찢어지는 일 두 가지를 동시에 봤으니까. 아마 제정신이 아닐거다. 내버려 둬.]“…”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칼리반이 신경 쓰지 말라는 듯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뭘 준비하는데?]“…뭐, 할 거라면 이것저것 있는데.”
루미놀 대주교는 이번 시련 내내 나한테 이런저런 장난질을 많이 치지 않았나.
거기에 대한 복수와… 마지막 시련에서 써먹을 ‘무대’를 하나 준비하러 간다.
그렇게 생각하며 품 안에 있는 사자 머리 흉갑을 만지작거린다.
그쪽의 도움이 없으면, 이걸 붉은 악마한테 꽂아넣기는 꽤 힘들 게 분명하니까.
[…]“…왜요.”
물어보는 거에 성실하게 답변해줬는데도 불퉁한 기색으로 돌아오는 침묵에 반문을 던진다.
이에 칼리반이 불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굳이 두 번째 것부터 대답해준 걸 보면, 첫 번째 질문은 너도 별로 말 안 하고 싶다는 거잖아. 그렇지?]“…”
[아마 황궁에서 가져나온 내 흉갑에 뭔갈 하려는 거겠지. 그 월터인가 뭔가 하는 그 이상한 놈을 찾아가는 거면 거기에 뭔가 부여하려는 거고.]“…”
[말해 봐. 너 내 유품에다가 뭔짓을 할 생각이야. 뭘 꾸미길래 나한테 말 안 하려고 하는데.]“…”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나랑 가장 가까이에서 붙어다니는 사람답게 내 성향에 대해 줄줄이 꿰고 있다.
무섭다, 무서워,
“…”
사실, 말하는 게 꺼림칙하긴 하다.
이 사람에게 좀 못할 짓을 시키는 느낌이거든.
소울 링커에 발카서스와 칼리반을 발라넣었듯이, 흉갑에도 ‘촉매’ 역할을 해줄 녀석이 하나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생각하는 대로 써먹을 수 있거든.
문제는 그걸 위해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 Iten Info > [ ▲ 타티아나 그라첼 ] [ 가공됨 ] [ 특기: 저주 ] [ 형태: 혼령 ] [ 가공 옵션 ]▶ 사역마로 종속
▶ 강화형 재료로서 아이템에 부여
▶ 온전한 형태로 재소환 (1회 사용 이후 소멸)
“…”
눈앞으로 떠오른 창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저, 칼리반.”
[음?]“…여자 조교해 본 적 있어요?”
무시무시한 침묵이 소울 링커 안에서 전달되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얘를 좀, 그, 뭐냐. ‘교육’해서 써먹어야 하거든요?”
[…]“당신이 좀 도와주셔야 해요.”
[…새삼 느끼는 건데.]칼리반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너 진짜 사람 새끼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긴 해.]“…타천의 인장에서 오는 영향은 항상 경계하고 있-”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아.]“…”
[그거 없었어도 넌 그냥 사람 새끼가 아니야.]심한 말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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