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
r 1 – 1.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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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쩌다가 이런 일이 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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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벨 남작가는 제국 변방의 조그마한 남작령에 위치한 약소 귀족 가문이다.
세라 본편에서도 글귀 한 문장으로 겨우 언급되는 수준이었던가.
제국 곳곳에 깔린 마수가 등장하는 던전도 없어. 주력 산업도 낙농업이라는 잔잔한 산업이야. 영주와 그 가족들도 사실상 친근한 이웃 사람에 불과하다.
캠벨 남작령이 아주 조그마한 사건 사고에도 세상이 뒤집히기라도 한 것처럼 시끌시끌해지는 동네가 되어버리는 건 필연적인 과정일 것이다.
즉.
영주의 아들이 황립 아카데미에 입학한다는 대형 사건이면 영지민들 전원이 떠나갈 듯이 꺼이꺼이 울어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는 소리다.
“드디어 떠나는구나, 다우드.”
“예, 아버지.”
아르민 캠벨 남작. 후덕하고 인심 좋은 이웃 아저씨 바이브를 전신으로 흩뿌리는 중년 남자가 글썽거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를 포옹했다.
“너는 우리 영지의 자랑이란다. 부디 몸조심하고 무사히 졸업해다오.”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든든한 만점짜리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를 밀어낸다.
아니, 이 사람 겉보기에는 이래도 이거 죄다 근육이다. 가까이 붙으면 딱딱해.
낙농업이랑 농사가 뒤지게 힘든 일이라서 몸이 싫어도 단련되거든.
“하지만 결코 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단다. 황립 아카데미는 제국 각지에서 지체 높은 자제분들이 모이는 곳이야. 우리 같은 남작가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최선…”
“진짜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미소에 깃든 든든함 지수를 두배로 증폭시키며 시즌 1823718029837호 잔소리를 컷한다.
뭐, 이유가 아예 없는 걱정은 아니다. 당장 세이비어 라이징의 본편 진행만 생각해도 그렇거든.
위세가 약한 귀족 집안은 온갖 권력 다툼에 잘못 휘말렸다가 통째로 풍비박산나는 이벤트가 심심하면 터졌었지. 힘 있고 성격 괴팍한 것들이 어디 고위 귀족 중에 한 둘인가.
다행이라면, 나 역시 아버지의 조언을 티끌만큼도 어길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 Status Info >「다우드 캠벨」
근력: F
민첩: F
내구: F
행운: F
권력: F
[ Skill Info > [ 보유 중인 스킬 없음 ] [ Mastery Info > [ 보유 중인 특화 숙련도 없음 ] [ Special Gift > [ 미개방 ]“…”
그것 참 눈이 시리도록 깔끔한 상태창이구나.
올 스텟 F는 내가 세라에 갈아 넣은 그 모든 플레이 타임 중에도 단 한 번도 튀어나온 적이 없는 전대미문의 쓰레기 스타트 라인이다.
‘아무리 그래도 좀 위험하단 말이지…’
쓴웃음을 지으며 상태창 옆에 조막만하게 붙어있는 창으로 시선을 돌린다.
[ 메인 퀘스트 ] [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반을 배정받으세요! ]이것도 게임 안에서 자주 봐오던 창이라 반갑기는 하지만, ‘퀘스트 창’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메인 퀘스트가 존재한다는 건 깨야 할 시나리오가 있다는 소리고, 그렇다는 말은 내가 입학할 아카데미는 온갖 악당들의 음모가 소용돌이 치는 복마전이 될 예정이란 소리니까.
‘메인 퀘스트를 그냥 스킵할 수도 없고…’
아마 게임 시스템을 생각해보면 이걸 실행하지 않는 순간 ‘게임 오버’가 될 텐데.
그게 나한테 절대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진 않거든.
최소한 죽음에 준하는 뭔가가 기다리고 있겠지.
‘그렇다고 내가 직접 퀘스트를 깨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애초에 내가 가진 첫 번째 행동 원칙은 ‘절대 내 생존에 방해가 되는 짓은 하지 말 것’이다.
내가 왜 여기에 처박혔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세계 멸망을 막아내는 해피 엔딩까지는 몸 성히 달려야 할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내가 스치기만 해도 죽어나갈 이벤트가 숨 쉬듯이 발생하는 메인 이벤트에 이 쓰레기 스펙으로 직접 엮이는 건 미친 짓이지.
그나마 아직 개방되지 않은 스페셜 기프트라는 항목이 있긴 하지만, 이거에 기대를 걸기도 힘들다.
애초에 내가 이 게임에 빙의한 이후로 어떻게 개방시키는지 단서조차 못 찾았으니까.
‘분명히 캐릭터마다 특수한 행동을 하면 자동으로 열리는 고유 기능이었는데…’
플레이어 캐릭터라면 몰라도, 이딴 엑스트라 캐릭터의 기프트 조건을 내가 알 리가 없지.
그럼 그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뭐다?
엑스트라의 본분에 충실할 것.
절대 눈에 띄지 말고, 나대지도 말고, 적당히 자기 몸 건사할 수준만 유지하면서 납작 엎드리는 거다.
그럼 뭐, 주인공이 어차피 다 알아서 해줄 것 아니야?
“걱정 마세요, 아버지!”
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새삼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는 조언이 그렇게 현명하게 들릴 수가 없어보인다.
잔소리니 뭐니 할 게 아니네?
“절대로 아카데미에서 눈에 띄지 않도록 열심히 겉돌겠습니다!”
“…어, 아니, 그 정도까지 바라지는…”
“영지의 명예를 드높이겠다는 쓰잘데기 없는 야망은 절대 품지도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그래, 딱히 그쪽은 바라지 않는 게 맞기는 한데…”
대충 그런 대화를 주고 받으며 영지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나를 배웅하는 영지민들과 아버지의 표정이 처음과 달리 조금 묘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좋은 게 좋은거다.
절대 눈에 띄지 않는 자발적 아싸의 아카데미 생활은 지금부터 개봉박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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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참으로 희망찬 미래를 그리고 있었지.
아, 꿈에 가득 차 있던 나날들이여.
“의원이 필요한가? 표정이 좋지 않군.”
“아뇨, 괜찮습니다.”
사실 괜찮지 않다.
엑스트라의 본분에 충실하기로 마음 먹은 나에게 눈앞에 있는 상대방은 마주치는 것 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사람이니까.
“…”
무표정하게 일간지를 읽어내리며 홍차를 홀짝거리고 있는 상대방을 슬쩍 훑어본다.
엘노어 에리나리제 라 트리스탄.
최종 보스 후보군 중 가장 유력한 대상.
‘어쩌다가 이런 사람이랑 같이 타게 됐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황립 아카데미 엘판테로 향하는 기차는 2인 1실을 쓰는 구조거든.
같은 객실을 쓰는 학생이 누군지는 철저하게 무작위라 어쩔 수 없지만, 같이 쓰는 사람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사람이라면 한탄 정도는 해도 괜찮겠지.
불운도 이 정도면 기가 막히는 수준이니까.
‘애초에 공작가 영애 정도 되는 사람이 왜 변방 남작가도 써먹는 저렴한 칸에 타는 건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느닷없이 건너편에서 대답이 날아왔다.
시선은 여전히 일간지에 고정시킨 상태였다.
“트리스탄 공작가는 대외적인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니 말이다. 고귀한 집의 자제라고 일등석을 타는 것보다는 친근한 이미지 메이킹에 더 힘을 쓰자는 계산이지.”
“…”
“생각한 걸 그대로 입에 담거나 하는 멍청한 실수를 한 건 아니니 안심하거라. 표정이 재미있군.”
학생회장님이 그런 말을 줄줄이 꺼내놓으며 피식 웃었다.
“나와 같은 칸에 타는 인간들이 하는 생각이야 전부 비슷하지. 그대 역시 그들과 비슷한 기색을 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습니까?”
어째 이래저래 많이 시달린듯한 기색이네.
하긴, 트리스탄 공작가의 영애쯤 되면 거의 왕족 버금가는 대형 유명인이다. 그냥 동석하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을 느낄 사람들이 많겠지.
“그대가 나와 연루된다고 하여 딱히 피해를 볼 일은 없을 것이니 안심하거라. 걱정시켜서 미안하군.”
“…”
하지만 보통 그런 걸 느끼게 하는 당사자가 상대방한테 이 정도로 신경 써주던가.
‘내 기억이랑은 좀 다른데?’
이 사람, 분명히 게임 안에서는 아예 다른 사람을 잘 신경도 안 쓰는 느낌이었는데 말이지.
모든 대상을 가치로 판단하는 능력주의. 흠결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 그리고 언제나 남들을 자신의 아래로 보는 고압적인 분위기.
내가 기억하는 엘노어의 키워드는 그 정도다.
그런데, 지금 나한테 보여주는 이 섬세할 정도로 사려 깊은 모습은 대체 뭐란 말인가.
본인의 말마따나 이미지 메이킹이라도 생각해도 틀림없이 신기한 모습이다.
“납득한 분위기는 아닌 것 같네만. 그밖에 궁금한 점이라도 있나?”
“아니요. 그냥 의외로 좋은 분 같아서 말입니다.”
엘노어의 시선이 처음으로 일간지에서 떨어졌다.
눈동자가 살짝 가늘어진 것이 뭔가 의아하다는 기색이다.
“의외로라니?”
“예?”
“그대,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라도 들었나? 이전에 만난 적이라도?”
“…”
그거야 내 입장에서는 그쪽이 세상을 멸망시킬 후보 중 하나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본격적으로 악역 전환을 시작하는 건 주인공을 만난 이후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훨씬 상회하는 재능을 가진 주인공에게서 비롯된 열등감에서부터 모든 게 비틀리기 시작하지.
물론 사람이 열등감 좀 가진다고 무슨 세상이 망하냐 싶겠지만, 이 사람이 품고 있는 ‘저주’가 문제다.
‘회색 악마.’
트리스탄 공작가, 나아가 이 사람이 몸 안에 품고 있는 존재의 이름을 생각하며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창세 신화에도 얼굴을 비출 정도로 세계관 끝판왕급 악역인 ‘악마’ 중에서도 최악의 존재.
그게 풀리는 순간 사실상 이 세계는 끝장난 거나 마찬가지다. 트리거는 이 사람의 ‘인격이 무너지는 순간’이고.
시나리오 내내 지속적으로 주인공과 마찰을 빚다가 이 사람의 멘탈이 무너지고, 악마가 엘노어의 몸을 잠식. 그 뒤로는 뭐…
세계 멸망 직행이지. 최종 성장을 마친 주인공을 제외하곤 전 세계가 달려들어도 못 막는다.
“…”
그리고 난 지금 그런 걸 품고 있는 사람한테 ‘성격 터지신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네요?’ 같은 소릴 지껄인 거다.
미쳤나봐 진짜.
“…그냥 엄격하단 소리를 많이 들었을 뿐입니다.”
즉석에서 지어낸 변명도 그렇게 잘 먹힌 모양은 아닌지, 엘노어가 한참 동안 나를 쏘아보다가 이내 한숨을 살풋 내쉬었다.
“이상한 사람이군, 그대.”
“예, 뭐. 그런 소릴 자주 듣습니다.”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창 바깥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 이상 커뮤니케이션 이어지는 건 내 입장에서도 지양하고 싶으니까.
아무튼 나는 주인공한테 메인 퀘스트만 짬 때리는 게 목적인 입장이다. 시나리오에 자주 얼굴 비치는 사람들이랑 괜히 엮여서 좋을 게 없지.
평화롭고 얌전한 학원 생활 하는 게 목적이니, 일단 창 바깥으로 밀려나는 풍경을 보며 마음을 좀 진정시켜보자.
완숙하게 피어오른 봄의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시야에 잡히는 모든 사물에 향기로운 꽃 내음이 묻어있는 느낌이다.
저기에 피어 있는 꽃망울, 땅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는 산천초목, 너른 들판, 그리고 지금 객실 창문 쪽으로 쏜살같이 날아드는 거대한 돌덩이에도 봄의 싱그러움이-
“…”
마지막 건 뭔데, 시발.
“학생회장님.”
“음?”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엘노어의 품에 와락 안긴다.
“…?!”
엘노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게 시야에 포착된다.
아무리 이 사람이라도 느닷없이 이딴 식으로 달려드는 인간을 만나면 당황할 수밖에 없나 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거기에 대해 변명할 필요도 없이 상황은 즉각적으로 이어졌다.
-!
-!!
-!!!!!!!
객실쪽으로 날아든 집채만한 바위가 그대로 충돌하여 열차 칸의 대부분을 뜯어버렸다.
달리는 도중에 이런 충격을 받은 기차가 크게 요동친다. 이어서 선로에서 이탈한 차체가 극심하게 기울어진다.
-!
-!!!
-!!!!!!!!!!!
열차 전체가 완전히 데굴데굴 굴러버린 덕분에 이어진 아수라장 같은 회전 몇 번.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조차 곧이어 따라오는 굉음에 뭉개진다.
땅바닥에 열차 전체가 내동댕이 쳐지면서 나는 소리겠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나와 엘노어는 멀쩡하다.
딱히 운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고, 지금 이 사람 주변에 펼쳐져 있는 은은한 푸른 색의 보호막 덕분이다.
성인의 유골을 기반으로 만든 대상 인식 방어구.
‘이 사람이 이걸 상시 소지중이라는 걸 알아서 살았지…’
속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만약 나 혼자서 아무것도 없이 저거에 직격당했으면 곧바로 사망이다. 내 능력치로는 어림도 없지.
“…그대, 괜찮은가?”
“네? 아, 네. 괜찮습니다.”
“그럼 위쪽에서 좀 비켜주겠나. 슬슬 무거운데.”
아래쪽에서 엘노어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내가 지금 온몸으로 이 사람을 끌어안고 있는 꼴이라는 걸 깨닫는다.
“…”
생각보다도 엄한 자세라 후다닥 일어난다. 잠시 후 학생회장님도 스르륵 몸을 일으킨다.
헝클어진 머리와 제복을 사락사락 정리하며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기분 탓인지 목덜미와 얼굴이 살짝 붉어진 느낌이다.
그, 뭐냐.
일단 사과부터 하는 게 맞겠지?
“죄송합니-”
“됐네. 구해주려고 한 일이겠지.”
뭣이?
“남성과 이런 과격한 접촉은 처음이네만, 고맙네. 의도를 알고 있으니 사과는 하지 않아도 좋네.”
“…”
그게 그렇게도 해석되나.
나는 그냥 이 사람이 방어막을 가지고 있는 걸 아니까 덕 좀 보려고 달려든건데.
엘노어 입장에서는 충격에 대비해 보호한 것처럼 보였나 보다.
하긴, 내가 보호막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다곤 짐작조차 못 할 테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엘노어한테서 다시 문장이 날아왔다.
“그대, 이름은?”
어라.
이 사람, 설정상 이름을 물어보는 건 마음에 드는 상대한테만 하는 행동 아니던가.
뭔가 여기서 대답하면 앞으로도 자주 엮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대, 이름은?”
그렇다고 눈앞에서 눈동자를 똘망똘망하게 빚내며 나를 쳐다보는 사람 앞에서 ‘알아서 어따 써먹으시게요?’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지 않나.
오히려 그게 더 안 좋은 선택지다.
“다우드 캠벨입니다.”
“다우드, 다우드, 캠벨, 캠벨.”
눈을 감고 이름을 몇 번 입 안에서 굴려본 엘노어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절대 잊지 않도록 하지. 나중에 꼭 사례하겠네.”
아니, 그냥 잊어도 되는데.
우리 최대한 엮이지 않으면 안될까?
어색하게 웃으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눈앞으로 느닷없이 창 하나가 떠올랐다.
[System Message> [ 악당의 호감을 샀습니다! ] [ 스페셜 기프트 개방 조건 충족! ] [ 스킬 ‘절체절명’과 ‘치명적 매력’이 주어집니다! ]…뭐라고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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