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04)
r 203 – 203. 적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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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맞았어, 대장?”
“닥쳐.”
토커, 선화륜이 낄낄거렸다.
그가 선각자를 모신 건 꽤 오래되었지만, 이 정도로 뾰로통해진 걸 보는 건 처음이다.
다우드가 떠난 방 안에 앉아 턱을 괴고 그가 나간 방문을 노려보고 있다.
‘…이게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악마 숭배자들의 수장이라고.’
그보다는, 뾰로통해진 고양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다.
가면 아래에 있는 얼굴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입술이라도 삐죽 내밀고 있는 게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게 얘기했잖아. 꼬신다고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올 것 같은 놈은 아니라고.”
“닥치라고 했지.”
퉁명스럽게 돌아오는 대답에 선화륜이 간신히 터지려는 폭소를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이고, 화상아.’
틀림없이, 이 여자는 대단한 인간이다.
그 정도 되는 남자가 꼬박꼬박 대장이라고 부르면서 존중 해줄만큼.
이 세계 전체를 ‘비틀리게’ 만든 변수인 다우드 캠벨과 유일하게 변수를 이룰 수 있는 인간이니 오죽할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선각자가 여전히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남자, 조만간 한 번 죽어. 악마 때문에.”
“그게 회색 쪽이라는 확신은 없잖아?”
“제일 확률이 높은 건 그쪽인 건 맞아.”
선각자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선화륜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 여자가 아이러니하게도 악마 숭배자들의 수장 주제에 악마들한테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건 맞지만, 그중에서도 회색 악마에게 가지고 있는 적개심은 이례적일 정도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이 정도로 살의를 가지는 게 정상적인 일인가?
“대장이 ‘다른 세계선’의 지식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건 아는데 말이야.”
악마를 죽이고자 하는 것도, 그중에서도 특히 회색 악마에게 살의를 보이는 것도 아마 거기서 기인하겠지.
선각자가 관측해온 수많은 세계선 중에서, ‘가장 많이’ 다우드 캠벨을 죽인 것이 회색 악마일 테니까.
“항상 생각하는 대로 굴러간 적은 없었잖아? 그 남자가 저번에 타천의 인장을 새긴 것도 그렇고.”
그 말을 들은 선각자가 주먹을 꾹 틀어쥐었다.
마치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열받는단 기색이 물씬 전해져오는 느낌이다.
원래대로는 ‘자신의 것’이 되었어야만 하는 인간이, 다른 것에게 빼앗긴 것을 볼 때처럼.
“…어차피 이번에는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그 인간.”
이어서, 그녀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각 세 개짜리 그릇은 각성만으로도 주변 환경에 변화를 일으켜. 판데모니엄의 생명체는 그 남자라 하더라도 좀 힘들걸.”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애써 그런 사실을 되새기며 삭히는 느낌이다.
“가장 첫 번째로 맞닥트릴 장애물만 해도 그런 거야. 그 뒤에 있는 건 더 가혹할 거고. 그러니까 틀림없이-”
하지만, 그럼에도.
해줘야 할 말은 있기 마련이다.
선화륜이 법구를 손으로 감싸며 그렇게 말했다.
“글쎄.”
그가 법구 한 개를 손아귀에 쥐며 그렇게 말했다.
“아마, 그렇게 쉽게쉽게 굴러갈 것 같지는 않은데.”
진언을 통해 맺어진 단어 몇 개가 허공을 멤돌자, 법구가 투명한 ‘창’ 하나를 투사하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담은 영상이 그 안에 비춰지고 있었다.
“…뭐야 이거?”
선각자가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 들었다.
화면 안에 비춰지고 있는 장면은, 틀림없이 그런 말이 흘러나올만한 게 틀림없었다.
“대장, 분명히 악마의 그릇들이 놈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었지?”
악마의 그릇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입장이라면, 이게 얼마나 터무니 없는 광경인지 아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릇은, 좋건 싫건 악마의 본체에게 영향을 받는다.
대부분 서로 사이가 안 좋은 악마의 영향을 받아, 본인들끼리는 웬만해서는 사이가 안 좋은 게 대부분이란 소리다.
하얀 악마와 회색 악마, 푸른 악마와 자색 악마, 붉은 악마와 갈색 악마…
서로 간에 얽힌 갈등의 관계도는 거의 판데모니엄의 역사와 같이 한다고 봐도 될 정도로 유서 깊은 반목의 흐름이지.
그런데.
“…이거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붉은 악마의 각성으로 열린 판데모니엄의 게이트가 사방에 열려 있는 광경으로.
회색 기운을 담은 검격이 몰아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단순한 검격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침식’의 기운이다.
시공이 얼어붙는다. 안쪽에 있는 것들의 움직임이 극단적으로 느려진다.
유려한 움직임으로 검을 거둔 엘노어가 이내 다음 동작을 준비했다. 범위 안에 걸려들어 느려진 것들을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함이렸다.
하지만.
끼어든 ‘푸른색 기운’이, 느려진 스위퍼들을 일거에 작살내버린다.
“5점! 고마워!”
리루가 윙크하면서 그런 말을 내뱉었다.
이어서 다른 스위퍼들의 무리로 몸을 던지듯이 날려버린다.
“…저 도둑년이.”
엘노어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화면이 돌아갔다.
아직 악마의 기운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모양인지, 자색 악마를 뽑아내지 않고 양손에 단검을 들고 맨몸으로 싸우는 모습이었다.
앞서 엘노어가 거의 춤처럼 보이는 유려한 동작으로 스위퍼들을 박살내고 있었다면, 이쪽의 전투는 모두 군더더기 하나 없는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번 손이 나갈 때마다 하나의 생명이 꺼진다. 완전히 죽진 않더라도 최소 무력화 수준까진 우습게 만들어놓는다.
이격과 후퇴는 염두에도 두지 않는 대신, 일격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암살자의 전투 방식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봐도 좋겠지.
내장의 위치, 근육의 작동 방식, 급소와 약점까지 모두 다른 판데모니엄의 생명체인데도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건 그랜드 어쌔신이니 가능한 일이겠지만.
물론, 이쪽도 앞선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수월하게 사냥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무력화시켜둔 스위퍼들의 사이로, 누군가 ‘걸어들어온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범위 안에 있는 스위퍼들이 깔끔하게 전부 갈려나갔다.
마치 믹서기에 쑤셔넣은 과일이라도 된 것처럼.
“…”
“…”
세라스가 멍하니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마치 나중에 아껴먹으려고 꿍쳐둔 간식을 전부 서리당한 아이같은 얼굴이었다.
“…뭐하는 짓인가요?”
“3점.”
“아니, 그거 제가 나중에 한꺼번에 몰아 잡으려고 남겨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 유리아가, 이내 다시 말없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그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그 세 발자국 범위 안에 들어온 스위퍼들이 석석 갈려나간다.
풀린 눈으로, 아무 말도 없이, 중증 우울증 환자 같은 분위기로 그런 도살을 이어가는 모습은 가히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뭐 저런 괴짜가 다 있어?”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압도당한 세라스가 그렇게 투덜거리며 단검을 휘둘렀다.
저런 상태로도 그놈의 ‘초야권’은 넘기기 싫다고 이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데에서 나오는 어이 없음도 동작에 어느 정도 담겨있었다.
“…있잖아, 토커.”
그렇게.
게이트 안에서 튀어나온 생명체들이, 변변한 반응도 하지 못하고 학살당한다.
그 모습을 본 선각자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입을 열었다.
“응.”
“저거 판데모니엄의 생명체 아니냐?”
“그렇지?”
“…몇 십개만 풀려도 물질계에 재앙이 일어나는 것들 맞지?”
“그렇지.”
“…”
그런 것들이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학살당하고 있다.
오히려 불쌍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할 말을 잃고 그 모습을 쳐다보는 선각자의 모습에, 선화륜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있잖아. 대장이 봤던 ‘세계선’중에서, 이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어?”
“…”
“악마의 그릇들이 서로 ‘협력’한다고. 한 놈을 위해서.”
그릇 하나하나만 떼놓고 보면 서로 사이가 좋은 것 같진 않다. 이만한 인원들이 모였음에도 각개 전투의 느낌이 대단히 강하다.
그보다, 서로가 서로의 뒤통수 칠 느낌이 만만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이것 자체가 이미 상식을 아득하게 초월한 과정이다.
모든 차원의, 모든 위상의, 모든 지배자들의 윗선에 치천사들과 함께 서는 존재.
“…”
그런 것들이.
아무리 ‘본 인격’은 드러나지 않은, 그릇들이 그 권능을 살짝 빌려 쓰는 것에 불과하다지만.
악마들이.
전원이.
오직, 한 남자를 위해.
“아무래도, 덕분에 첫 번째 난관은 쉽게 통과할 것 같지?”
“…”
틀림없이.
반박할 수조차 없는 정론이었다.
●
“…”
“…”
급박하지만 어색하다.
엘리야 크리사낙스가 옆에서 같이 달리는 다우드를 보고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원래대로면 뭔가 이런 급박한 위기 상황이라면 서로 뭔가 우애를 다질만한 대화라도 오가야 정상이겠지만, 지금은 서로 말 없이 달리기만 하고 있다.
다른 악마의 그릇들이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생명체들을 틀어막는 사이, 그녀와 다우드는 함께 페이놀이 있는 곳에 당도해야 한다고 들었다.
-이번 사태에서는 네가 제일 중요해.
그런 말을 했던가.
평소라면 기쁨에 몸둘 바를 몰랐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아까 전부터 이어지는 이 어색함이 그 증거지.
“…”
아니, 정확히는 저쪽은 별 차이 없는데 엘리야 자신이 꺼리는 것이다.
시선은 계속해서 다우드의 손목에 걸려있는 아뮬렛에 가서 걸려있었다.
이전에는 굳이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지만, 진리의 눈까지 발동해서 살핀다면 틀림없이 ‘익숙한’ 기척이 느껴진다.
그녀가 그렇게나 찾아왔던.
한 번이라도
그리고, 지금까지 애써 부정해오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으로 보는 순간 더욱 확실해진다.
그녀의 오빠는, 이미 죽었다.
혼의 형태로서, 저 안에 ‘저장’되어 있다.
“…”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적야 사태. 그녀 최대의 트라우마.
자기 눈으로 확인하게 된, 자기 오빠의 죽음.
그리고, 분명히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그녀에게 밝히지 않았던 다우드.
하나부터 열까지, 멀쩡하게 정신을 붙들 수가 없는 요소들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머리를 감싸안고 주저앉고 싶다.
대체,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성검은.”
문득, 옆에서 같이 달리고 있던 다우드에게서 그런 말이 날아왔다.
“…”
중요하다, 고.
아까 전에 말했었지.
그거 어쩌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성검에게 선택받은 엘리야’로서의 자신이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런 느낌에, 엘리야가 저도 모르게 시무룩한 기색으로 답했다.
“…가지고 왔어요.”
그 목소리에, 다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윽고 다시 침묵.
서로 달리는 와중에 발소리만이 들린다. 조용하다.
“있잖아.”
그 침묵 사이로, 다우드의 목소리가 툭 떨어졌다.
“…묻고 싶은 게 많을 거다.”
“…”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 같은
“약속할게. 일이 끝나면 전부 다 설명할 테니까, 지금은 좀 참아줘.”
“…”
문득.
엘리야가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자신,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정말 한없이 약하구나.
이런 말을 듣자마자, 응어리져 있는 감정들이 사르르 풀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대체 얼마나 이 사람한테 무르면 쌓여있는 게 이 모양인데도 저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고 슬쩍 끄덕이기만 할까.
“그러니까.”
“…됐어요.”
뭐라고 말을 이어가려는 다우드에게, 엘리야가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선생님도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셨겠죠. 설명만 똑바로 할 수 있으시면 괜찮아요.”
“…그러냐. 고맙다. 그래도 이건 꼭 해야하는-”
“아니. 정말로 괜찮아요.”
엘리야가 씩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선생님 몇 대 쥐어패서라도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다 용서해드릴게요!”
“아니.”
환한 미소를 짓는 엘리야에게, 다우드가 손을 슬쩍 내밀며 말했다.
표정은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뭔 소리 하냐는 얼굴이었다.
“성검 지금 나한테 넘기라고 말하려는 거였는데.”
“…”
“나중에 돌려줄 테니까.”
흠.
그냥 지금 쥐어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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