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05)
r 204 – 204. 적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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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나쁜 밤이네.”
탈리온 아르망드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원래대로라면 새로운 용사의 탄생에 축배를 올리고, 엘리야와 거하게 축배라도 들었어야 정상인 시기다. 여기까지 와 있는 것도 그쪽을 응원하기 위함이고.
그런데, 어제 저녁부터 뭔지는 모르겠지만. 시련에서 누가 이겼는지 발표도 없이 어영부영 시간이 끌리더니.
지금에 와서는.
다들 눈을 뒤집고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가 심호흡을 죽 내뱉으며 창을 회수했다.
근처로는 그가 때려눕힌 인간들이 즐비했다.
전부 평범한 인간들이다. 마력이고 신성력이고 아무것도 수련하지 않은 일반인들.
일순간, 이성을 잃고 극단적인 폭력성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마치 뭔가에 세뇌라도 당한 것처럼.
아마, 저것 때문이겠지.
시선을 슬쩍 돌리자, 거리가 꽤 떨어진 곳임에도 그 후끈한 열기가 이쪽까지 날아오는 불기둥이 성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제국민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광경이다.
적야 사태.
도시 몇 개가 하룻밤에 통째로 불타버린 최악의 재앙.
그때와, 완벽하게 똑같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이만한 사람의 숫자가 통째로 미쳐버리다니.’
“…솜씨가 기가 막힌데.”
옆에서 날아오는 그런 말에, 그가 창을 어깨에 지며 고개를 돌렸다.
전사 루카. 마법사 팔코. 사수 그리드. 사제 트리샤.
익숙한 얼굴들이다. 항간에서 ‘용사 파티’라고 불리는 엘리야의 친우들.
“이만한 숫자를 혼자 제압한 거야?”
“응.”
“…시원스럽게도 수긍하네.”
안경을 치켜올린 팔코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못해도 수십에 가까운 단위로 주변에 인간들이 널브러져있다.
아무리 이들이 이능을 수련하지 못 한 일반인이라지만, 지금은 근처에 자욱하게 풍기는 마기 때문에 광화狂化에 접어든 인간들이다.
신체 능력이 평소의 몇 배에 달하도록 증폭되었을 텐데, 이만한 숫자를 혼자 제압했다고?
“…이것보다 더 터무니 없는 것들도 많이 겪어서.”
탈리온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답했다.
솔직히, 그 남자 곁에 붙어다니면서 마인이고 고대신이고 별의별 걸 다 구경해봤다.
이제 와서 두 번째 적야 사태가 발생한다고 해도 당황하기 전에 대처 방법부터 생각하게 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덕분에 우리도 방법을 찾았으니까. 감사를 표해야겠지.”
“방법을 찾다니?”
전사 루카가 꺼내든 그런 말에, 탈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기에 저항하는 법 말이야. 지금도 네 몸 주변에 두르고 있잖아?”
“…”
틀림없이, 다우드가 ‘언젠가 써먹을 날이 있을 것’이라며 본인한테 한 번 알려준 적이 있는 것이다.
그걸, 그냥 보자마자 그대로 카피해서 본인들한테 적용했다고?
“…너희들도 보통 괴물은 아니군.”
다우드가 엘리야와 더불어 항상 이쪽을 눈여거 보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아직 그 본신의 위력은 대단한 수준까진 못 되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다우드조차 주의 깊게 살필만하다.
물론. 그래도.
“아니, 그런 걸로 불리기에는…”
팔코의 시선이 저 멀리 있는 쪽으로 슬쩍 돌아갔다.
마기에 영향을 받아 ‘차원문’이 열리고 있는 곳이었다.
가장 마기가 자욱하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안쪽에서 불길한 생명체들도 쏟아지고 있는 게 멀리서나마 관찰된다.
“…저쪽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리고.
그런, 군세라고 불러도 될만한 숫자를 한줌이 될만한 숫자로 여유롭게 틀어막고 있는 인간들이 있다.
사실, 틀어막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게 맞는 표현인지도 잘 모르겠다.
차원문에서 뭔가 나오는 족족 작살나서 가루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거의 연민까지 느껴질 정도니까.
“저 사람들 대체 뭐 하는 인간들이야? 우리랑 같은 학생 맞아?”
“…아마도.”
“응?”
“학생은 맞는데. 인간이 맞는 진 잘 모르겠군.”
“…”
흠.
사실 좀 심한 말인데, 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형님 주변에는 저런 사람들만 몰려있다 그거지.’
새삼 느끼지만, 본인이 그 자리에 들어가면 한달도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만한 인간들이 본인 하나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면, 솔직히 그 부담감에 짓눌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도, 저기 덕분에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 아니야?”
늘 나른한 눈을 유지하는 그리드가 그런 말을 꺼내들었다.
“…그리드. 불길한 대사는 그만 둬. 제발.”
“아니, 하지만 실제로 마기가 줄어들고 있는 느낌이-”
-!!
-!!!!!
“…”
“…”
그리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기둥이 마치 찢어지는 비명이라도 지르는 것처럼 그 크기를 더욱 키워나갔다.
모두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리드를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그만하라고 했잖아.”
팔코가 머리를 짚으며 그런 말을 꺼내 들었다.
그 사이, 붉은색의 기둥이 더욱 맹렬하게 그 기세를 확장한다. 피처럼 붉은 새빨간 색을 토해내는 마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탈리온이, 저도 모르게 신음 같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맙소사.”
지금까지 발산된 마기가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로 저주로 가득찬, 불가해한, 끔찍한 기운이 거기에서 줄기줄기 흘러나오고 있었다.
밤이, 점점.
피처럼 붉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라는 듯.
●
“244개.”
“…진짜로?”
“응.”
세라스와 리루가 등을 마주한 상태로 그런 문답을 주고받았다.
이제 와서 이런 사이좋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 딱히 사이가 좋아져서가 아니다.
그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주변에서 나오는 ‘적’의 숫자가 무시무시해지고 있었으니.
“…다시 물어보는 건데.”
리루가 슬슬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어깨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대체 얼마나 갈아놨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다. 그녀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단련을 한 신체라도 이 정도로 싸운다면 지치는 건 당연하다.
얼마 전에 반쯤 목숨을 걸고 치고받은 이 여자와 친근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그런 영향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같이 싸우면 서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드는 법이니.
“지금 차원문 안에서 튀어나온 괴물들 말고, ‘새로 생겨난’ 차원문 개수가 244개라는 거지?”
“그래, 이 뇌까지 근육인 년아.”
“…”
정정.
이 여자랑은 끝까지 친하게 못 지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있잖아, 우리 이거 그냥 싹 쓸어버리고 가면 안 돼?”
리루가 손에 묻은 검은색 육편을 탈탈 털어내며 그런 말을 꺼내놓았다.
찐득찐득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그리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판데모니엄의 생명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다 쉽게 타격을 입힐 수 없을뿐더러, 쉽게 죽지도 않아서 완전히 곤죽을 내놔야 겨우 움직임을 멈추기 마련이다.
몸 안에 있는 ‘푸른 것’의 기운을 전부 뿜어내면 전부 갈아낼 수는 있겠지만.
아까부터 각자 몸 안에 있는 색을 뿜어내려고 하면, 칼같이 제지하는 인간이 있다.
“솔직히, 슬슬 힘에 부친다고! 오합지졸이나마 그쪽 지휘에 따라주고는 있지만, 이대로는 못 버텨!”
리루가 비명을 지르듯 엘노어한테 그렇게 따지자, 엘노어가 조용히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어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이 흘러나왔다.
“…그대 말이지.”
엘노어가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붉은색 안광이 섬뜩하게 빛난다.
“화장하고 나왔나?”
“…뭐?”
“화장했냐는 말일세. 평소보다 얼굴이 좀 화사한 느낌이 드는데.”
“…”
어딜 어떻게 봐도 장소에 어울리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리루의 얼굴이 미친 듯이 달아올랐다.
마치 정곡이라도 찔렸다는 기색이다.
“그, 그게, 지금 이 자리에서 무슨 상관…!”
“…아니, 잠깐만. 너 진짜 화장하고 나왔어?”
엘노어의 질문에 세라스마저 황당하다는 기색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진짜로? 정말로? 부족 연합의 전사가? 싸움에?”
“…”
“미친 거 아니야…?”
세상에.
부족 연합의 여전사가 아기자기하게 얼굴에 복작복작 화장품을 바르고 전투에 나서다니.
싸움을 거의 종교 의식쯤으로 여기는 동네 출신이 이런 걸 하고 나오는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처음부터 전투가 아니라 ‘다른 쪽’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의사 표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아주 들떴다고 온 몸으로 표출을 하고 있군. 싸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초야권을 받자마자 당장 오늘 밤에 다우드 상대로 지지고 볶고 할 생각으로 만만이었다고 실토하지 그러나.”
“…”
리루가 입술을 오므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귀끝까지 들어찬 홍조에, 부끄러움에 눈물 맺힌 눈이 이리저리 돌아가는 걸 보니 차마 부정도 못 하는 모습이다.
“솔직히 말하게. 힘에 부치는 게 아니라 본인 혼자 앞서 나가고 싶어서 말한 것 아닌가.”
“…”
“스스로 생각했을 때 아마 비장의 무기라도 하나 들고 있는 모양이군. 대단하군 그래.”
“…”
“애초에.”
엘노어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온전히 우리의 전장이 아니네.”
“…”
“그 유령한테서 전해 들었네. 우리가 이 근처에서 이… ‘권능’을 자주 사용하면 위험할 것이라고. 그 남자가 결코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그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세라스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쓰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해진대도?”
“물론.”
“…”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흘러나온 대답에 세라스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혀를 빼물었다.
이 남자가 그쪽에 가지고 있는 맹목적인 ‘소유욕’은 무서울 정도다.
가끔은 그게 뒤틀렸다고 느껴질 정도로.
‘…뭐, 여기 나와있는 시점에서 나도 그렇게 자유로운 건 아니지만.’
세라스 본인이 그 남자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뚜렷한 호감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초야권’이니 뭐니 하는 걸 뺏겼을 때 찝찝해할 정도는 충분히 되는-
“그런 말 하는 것 치고는 그대도 꽤 인상 깊은 속옷을 입고 나온 것 같군.”
“…”
“프릴에, 레이스, 거기에, 흠. 차마 말로 하기엔 민망한 디자인인 것 같네만.”
“…”
“대족장의 따님을 보고 남 말할 처지도 못 되지 않나. 대체 무슨 음흉한 생각으로 그런 옷을 입고 나온 것인가.”
세라스의 입도 앙다물렸다.
곧바로 그녀의 얼굴에도 홍조가 차오른다.
“…”
이걸 들키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그녀가 더듬더듬 말을 꺼내놓았다.
“그, 그쪽도! 순수한 의도 가지고 그 남자 도우려고만 나온 건 아닌…!”
“그래. 아니네.”
“…”
“난 화장도 완전무결하고 끝내고 속옷도 승부 속옷으로 차려입고 나왔네. 치장을 망치기 싫어서 지금 최대한 간결하게 움직여서 적을 처리하고 있기도 하지.”
“…”
“솔직하게 말해서 난 처음부터 그 남자의 전부를 오늘 빨아낼 작정으로 왔네.”
“…”
미친 사람이다.
미친 변태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려나.
세라스와 리루가 동시에 아연실색하여 엘노어를 바라보는 사이,
하지만.
‘되도록 빨리 부탁하네, 다우드.’
엘노어가 검을 고쳐잡으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은 분명하니.’
지금은 여유롭게 만담이나 주고받고 있지만.
주변에 열리고 있는 차원문의 숫자가 심상치 않다. 앞으로는 더 많이, 더 강력한 생물을 소환해낼 것이 분명한 모습이니까.
아마, 다우드와 엘리야가 시간이 오래 끌린다면.
“…”
그녀의 몸 안에 있는 ‘이것’을.
쓸 생각도 해야할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
-!!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새하얗게 빛나는 ‘광휘’가 치솟아 올랐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불기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어?”
“저건…!”
놀람과 경탄이 섞인 목소리 사이로, 엘노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내뱉은 속삼임이 섞여들었다.
“성검?”
누군가가.
성검의 주인으로 간택 받았다.
틀림없이, 그런 것을 증명해내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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