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07)
r 206 – 206. 적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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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가… 아까랑은 좀 다른데요?”
엘리야가 그런 말을 꺼내 들자, 옆에 서 있던 다우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영체를 걷어내면서 여기저기 다친 모습이었지만, 본인은 별다른 신경도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마치, 앞으로 펼쳐질 일에 비하면 이 정도 부상은 신경 쓸 것도 못 된다는 것처럼.
“이제부터가 본격적이란 거지.”
2페이즈인 악마 본체 소환이 대다수의 세라 유저들에게 악몽으로 남아있는 까닭은, 애초에 이 이벤트는 기획 의도가 악마의 ‘위력’을 플레이어에게 똑똑히 각인시키려는 의도니 그럴 테다.
눈앞의 불기둥은, 이제 마기를 흩뿌리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근처의 환경 전체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타오른 불꽃이, 주변을 붉게 물들이는 걸 넘어.
유황 냄새. 불타버린 초목 냄새.
그런 것들과 함께, 불타버린 것들로부터 퍼져나온 시꺼먼 기운이 주변을 뒤덮기 시작한다.
그 대지와, 대기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의 것처럼 느껴지는 환경으로.
“…이건?”
“테라포밍.”
다우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존재 자체가 이 주변을 판데모니엄과 똑같이 바꾸는 거야.”
말도 안 되는 능력이지.
살상 능력으로 따지자면,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세계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이다. 판데모니엄의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그 안에 원래 있던 생명체 밖에 없으니까.
이딴 걸 ‘기본 패시브’로 공통적으로 달고 있는 게 악마라는 존재고.
“…”
다행히, 당장은 그 효과 범위가 대륙 단위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다. 악마의 본체가 직접 강림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원래대로는 물질계에 존재할 수 없는 ‘강대한 존재’를 불러내는 것만큼은, 충분히 가능하지.
-!
-!!!
차원문이 근처에 하나 생성되었다.
하지만, 이전에 열린 것들이랑은, 그 격이 다른.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압도할만한 ‘기운’을 담은.
-!!
-!!!
그 안쪽에서 걸어나온 건, 인간을 닮은 형태를 달고 있는 마수.
온몸에 ‘갑주’처럼 보이는 마력을 두르고 있으며, ‘무기’를 장비하고 있는 그 모습은.
“…기사?”
엘리야가 그렇게 중얼거린 말에, 다우드가 피식 웃었다.
수긍하는 것 같은 기색이었다.
“왕이면, 경호원 하나씩은 다들 달고 다니잖아.”
다우드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악마. 판데모니엄의 왕.
그럼 그 강함에 이끌린 생물들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비슷한 거야.”
헬 가드. 지옥의 근위병.
판데모니엄 안에서도 순위권에 들도록 강력한 생명체.
이면계의 천사들이 사용하는 오토마톤 비슷한 느낌이지만, 그 전투력과 살상력은 격이 다르다.
“…”
그걸 보자마자, 엘리야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못 이겨…!’
절망적일 정도의 격차가 느껴진다.
다우드와 함께 별별 미친 것들을 다 만나보긴 했지만, 저건 그중에서도…!
“엘리야.”
“네?”
엘리야의 정신이 아득해지기 직전에, 낮게 가라앉은 다우드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두들겼다.
“다시 말하지만, 마지막엔 네가 해야한다.”
“…”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 뒤돌아 보지 마. 반드시 끝까지 가는 거다. 알겠지?”
“…”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이 사람이, 틀림없이 험한 꼴을 본다는 뜻이다.
“…저거, 얼마나 강한데요?”
“…”
다우드가 침묵했다.
차마 말해줄 수 없다는 듯.
“우리 둘 다 못 이겨. 지금은.”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 명이라도 앞으로 가야지.”
“설마, 또 저걸 혼자 상대 하신다는 말씀이세요?”
“그래.”
엘리야가 이를 악물며, 간신히 말을 자아냈다.
“…선생님.”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죽어요.”
“…”
“…진짜로, 죽어요.”
확실하게 느껴진다.
이번만큼은, 이 사람도 별다른 계획이 없이 무작정 부딪히는 거다.
그저 ‘그래야만 하니까’ 하는 거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하지만.”
다우드가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해야 하잖아.”
“…”
“빨리 앞으로 가. 여긴 내가 맡을게.”
엘리야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
세실리아 11세가 사나운 시선으로 보거트 후작을 노려보았다.
늘 온화한 웃음만을 띄고 있는 그녀로서는 이례적인 모습이겠지만, 이 남자 상대로는 그런 겉치레가 필요 없다는 건 이미 넘치도록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말이지.”
이어진 말만 봐도 그러했다.
“후작위에 불과한 자네가 다짜고짜 황제의 거처로 찾아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불경죄라는 건 알고 있는 건가.”
“그래서, 폐하!”
물론, 상대는 들은 척도 똑바로 하지 않고 있었다.
표정이 대놓고 썩어들어가는 황제 앞에서, 보거트 후작이 싱글벙글 웃으며 그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책상 위로는 영상을 쏘아 올리고 있는 수정 구슬이 놓여있었다.
아마 세 번째 시련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 근처의 영상이리라.
“…”
세실리아 11세가 그쪽에 잡히고 있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하늘도, 땅도.
근처에 있는 건 전부 불사를
아마 근처에 바다가 있었다면 그것까지 전부 태워버렸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적야.’
붉은 악마의 폭주.
이 남자가 언젠가 일어날 것이라 지적했던 범국가적 재앙.
“저 불기둥 말인데요, 폐하.”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황제에게, 다시 보거트의 말이 떨어졌다.
“계속 강해지고 있지 않나요?”
“…”
“이대로 둔다면 치천사의 결계까지 깨지겠죠?”
“…”
“조각 세 개짜리 악마의 그릇이 폭주해서 결계가 박살, 그리고 공허 지대 안에 있는 악마의 본체와 접선… 와, 세계 망하겠다.”
가벼운 목소리에 농처럼 지껄이는 모습에 열이 좀 올라오기는 하지만.
그건 틀림없이 미증유의 위기다. 진심으로 세계 멸망 위기라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본체와 각성한 그릇이 만난다면,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악마 강림’이다.
그 모든 일곱 악마 중에서, 단 하나만 그런 일에 성공해도 대륙 전체가 파멸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이미 제국 안에서도 인원들이 파견됐네.”
황제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 최정예 인원들이니-”
“아뇨.”
보거트가 그녀의 말을 툭 자르며 들어왔다.
“전부 쓸모 없습니다. 폐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
“애초에 성황국이 이런 위치에 시련 장소를 정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폐하?”
“…”
“되도록 본인들의 인력은 아무도 휩쓸리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이 사태를 묻어버리겠다는 의사 표명입니다. 어차피 그쪽에서 무슨 힘을 쏟아부어도 상대가 악마인 이상 전부 다 무의미하니까.”
보거트 후작이 여전히 싱글벙글 거리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악마 폭주 사태입니다. ‘인간’ 규격 안에 있는 것들은 전부 의미가 없어요.”
“…”
“항마降魔 관련해서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그럴 정도입니다. 제국 인원들 가지고는 뭐라도 할 수 있으면 기적이겠죠.”
정론이다.
물론, 정론이라고 해서 화가 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황제가 말 없이 그를 노려보고 있자니, 보거트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나마 그게 가능했던 게 인간 중에서 최종 진화한 녀석들만 모아뒀던 느낌인 가디언들이었는데…”
그 눈동자가, 음험하게 빛난다.
“전부 다 갈아버렸죠? 당신이 직접.”
황제가 피가 나오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
“트리스탄 대공을 통해서 직접 명령을 하달하셨죠. 전부 사지로 내몰았잖아요. 악마 사태 진압하려고.”
한참을 침묵하던 황제가, 간신히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이랑은 관련 없는 얘기 같군.”
“아, 그렇죠! 죄송합니다.”
뻔뻔하게 수긍하는 보거트를 사나운 시선으로 노려보던 황제가, 이내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걸 보여주는 이유가 뭔가, 자네.”
“폐하께서 눈독 들이시는 힘이 뭔지 똑바로 보는 게 좋으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뭐라?”
“다우드 캠벨이란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건, 그가 ‘악마’ 관련해서 어디까지 힘을 낼 수 있는지 궁금하신 것 아닙니까?”
“…”
“그 몸에 돌고 있는, 부모에게 물려받으신 ‘죽은 피’를 빼내기 위해서는-”
〔자네 말이지.〕
보거트가 재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그는 선을 타고 다니는 방법을 기가 막히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처럼.
황제의 몸에 ‘비늘’이 돋아나고, 눈동자가 파충류의 것처럼 쭉 찢어지고, 몸 근처로 마력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한다면.
이 이상 긁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란 뜻이다.
〔입을 좀 조심하는 게 좋겠군. 명줄을 길게 유지하고 싶다면 말이야. 참아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네.〕
그 목소리에 담긴 압력에, 보거트의 몸이 납작 짓눌렸다. 어떠한 마력의 작용도 없다. 그저 서로 간의 ‘격’이 차이나기 때문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공기가 진동한다. 주변에 있는 유리에 금이 가고, 바닥이 갈라지며, 내구도가 약한 물건들은 전부 다 박살이 난다.
어이가 없는 건, 이게 그냥 상대방의 ‘기척’만으로 일어나는 일이란 거다.
용혈.
그 중에서도 특출난, ‘지배자’의 위엄이 섞인 기척.
물질계에 있는 생물 중 최고 존엄. 모든 마력의 근원체.
“…죄송합니다. 실언으로 생각해주시죠.”
순순히 흘러나온 대답에, 황제가 그를 노려보면서도 기운을 거둬들였다.
아무튼, 이번 대답에서는 최소한 장난기가 섞여있지는 않았으니.
“그래서, 아무튼.”
황제가 기가 차다는 시선으로, 기운이 사라지자마자 다시 싱글벙글 웃고 있는 보거트 후작을 바라보았다.
이 인간, 진짜 심줄이 뭘로 만들어져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그런 상황이라면, 악마의 강림을 저지하는 건 이 남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과 함께, 화면이 휙 돌아갔다.
주황색 머리의 여자 한 명과, 그 옆에 만신창이로 달리고 있는 남자 한 명.
“…”
황제의 눈이 동그래졌다.
모를 수가 없는 얼굴들이니까.
“용사 후보, 엘리야 크리사낙스. 그리고 악마들의 영원한 인기남 다우드 캠벨. 괜찮은 조합 아닙니까?”
경박한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황제가 영상을 자세하게 훑어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만큼은 그녀의 시선을 똑바로 사로잡고 있었다.
“…몸이.”
그녀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우드 캠벨의 몸은, 척 봐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단순히 ‘다쳤다’라고 표현하기도 힘들다. 마치 뭔가 전신을 ‘좀먹히고’ 있는 것 같은.
“…”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건.
영상 너머로도 그 위압감이 전해지는 압도적인 강적.
“헬 가드Hell Guard… 와, 악마가 강림하려니까 저런 것까지 나오나 보네요.”
“…아는 생명체인가?”
“자세히는 모릅니다. 이름만 알죠.”
보거트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거 본 놈이 다 죽어서 기록도 남아 있는 게 별로 없거든요. 애초에 역대 용사 중 저거랑 싸우다 죽은 양반도 있을 텐데? 기록은 소실됐겠지만.”
“…”
왜 소실된 기록을 ‘직접 본 것’마냥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황제가 어이없다는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보거트가 또 아무렇지도 않게 문장을 이어갔다.
“위기 상황인 건 틀림없어 보이는군요. 애초에 ‘붉은 밤’을 형성하고 있는 마기 안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인간들도 별로 없을 테니, 당장 도움을 바랄 수도 없을 테구요.”
“…”
황제가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저대로 간다면 죽을 걸세. 저 몸 상태로 저런 강적과 싸울 수는 없어.”
“그런가요?”
“도와줄 이도 없다고 하지 않았나.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
“쉽게 죽을 남자는 아닙니다.”
보거트 후작이 심드렁하게 답변했다.
마치 황제의 걱정이 하등 쓸모 없다는 기색이었다.
“설리번 재상도 그렇고, 그 가면 쓴 기분 나쁜 여자도 그렇고, 이상하게 저 남자가 죽는 걸 많이 걱정하더라구요. 진짜 걱정해야 하는 건 다른 쪽인데.”
“…무슨 소리지?”
“이 세계가 망하는 경우의 수는 대부분을 저 남자가 쥐고 있긴 하지만, 그게 어떤 ‘형태’로 이루어 질 지는 굉장히 많은 가능성이 있단 소립니다.”
“…”
이 남자는, 가끔 이렇게 혼자만 아는 소리를 잘난 듯이 지껄일 때가 있다.
참으로 짜증나는 특성이지.
황제가 그런 감정을 담아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그러거나 말거나, 보거트 후작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적어도 이번 ‘사건’ 안에선, 저 남자가 죽는 일은 없어요.”
실제로.
수정 구슬 안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황제의 걱정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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