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13)
Chapter 212 – 212. 공략 (2)
●
“떨어져-!!”
노기가 가득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붉은 악마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시선이 내쪽으로 날아와 꽂혔다.
“네가…”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마치 상처받은 짐승이 포효하는 것 같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알기는 안다.
설정집에서 글자로 적혀 있는 정도지만.
[…아주 잔뜩 화가 났는데?]‘그럴만하죠.’
저쪽 입장에서 보면 처음보는 놈이 튀어나와서 입술을 도둑맞고, 행복하게 해주느니 어쩌느니 하는 이상한 말까지 들은 상태다.
‘신기하지 않아요, 칼리반?’
[뭐가?]‘악마라는 것들이, 이렇게나 인간의 감성에 가까운 걸 하고 있다는 게요.’
예전에, 권성님께도 한 번 했던 기억이 있는 말이다.
악마라는 것들 말이야.
정말로, 생각보다 인간을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하려는 짓도 분명히 먹힌다.
“…상대해주는 것도 지쳤어. ”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심상 세계의 모습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적당히 바스라져서 죽어. 벌레 같은 인간 주제에…”
주변 환경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나를 에워싸서 집어삼키려는 것처럼.
하지만.
[ System Message > [ ‘타천의 인장’이 악마의 기척에 반응합니다! ] [ 상대방의 기운이 적대적입니다. 내재된 기운들이 자동으로 저항합니다! ]저쪽의 의도와 다르게, 내 상태에는 그렇게 커다란 변화가 없다.
대신, 가슴팍에 있는 인장이 빛난다. 그쪽에서 흘러나오는 탁한 빛이 주변에서 나를 향해 날아오는 붉은 빛들을 전부 차단시킨다.
그 모습을 본 붉은 악마의 눈이 살짝 커졌다.
“…회색이구나.”
이어서, 녀석이 이를 부득 갈았다.
“인간을 상대로 인장을 박아넣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야.”
“글쎄다.”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받는다.
아니, 사실 나도 진짜로 모르겠어.
이 인장이란거, 내 ‘종족값’을 바꿀 정도로 어마어마한 물건인데다가, 온갖 기능이 덕지덕지 달렸다는 건 알겠는데.
내 생각 이상으로 뭔가… 중요한 ‘기능’ 하나가 숨겨져 있는 느낌도 든다.
훗날 찾아올 아주 중요한 상황에 대비한 포석을 깔아둔 것 같은, 그런.
‘…아무튼.’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건.
“확실한 건, 네 생각보다 내가 쉽게 죽어 나자빠질 놈은 아니란 거지.”
나도 아예 무방비하게 악마에게 뛰어들 만큼 미친놈은 아니다.
하얀 악마, 회색 악마, 자색 악마, 푸른 악마의 마기까지 전부 먹어둔 인장이다. 심상 세계 안에서 악마와 직접 마주치더라도 잠깐이나마 저항할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벌어주겠지.
“…그러니까, 짧게 이야기 좀 할까.”
“…”
침묵하며 나를 노려보는 붉은 악마에게, 담담하게 말을 이어간다.
인장의 힘이 지속되는 동안은 마음대로 지껄여보라는 모습이다. 어차피 그 뒤에 죽일 수 있을 테니까.
[…겨우 그걸로 악마를 무찌르겠다고?]‘누가 무찌른데요.’
피식 웃으며 답한다.
애초에, 여길 들어온 게 처음부터 이야기를 하려고 들어온 거다.
싸우러 온 게 아니라.
“…마음대로 지껄여.”
붉은 악마가 팔짱을 끼며 안광을 빛냈다.
적색 홍채가 요사스럽게 반짝거렸다.
“그 지속시간이 끝나면, 네 영혼을 찢어 죽이고, 예정대로 일을 전부 진행시킬 거야. 바깥에 있는 잔챙이들로는 막을 수도 없-”
“세상을 전부 불태워서, 페이놀을 혼자로 만드려고?”
“…”
붉은 악마가 표정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내가 말한 건 이 녀석이 하려는 짓의 정곡을 찌르는 부분이었으니까.
공허 지대에 있는 악마의 본체를 되찾아 이 녀석이 가장 먼저 저지를 짓은, 내 말대로 세상을 잿더미로 만드는 거다.
이유는.
“…상처 입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게 나아.”
아무도, ‘이전처럼’.
페이놀을 상처 입히지 못하도록.
그 대상 자체를 지워버리는 거다.
첫 번째로 적을 두었던 시골의 작은 마을.
두 번째로 적을 두었던 마탑.
어느 쪽이건, 그건 페이놀에게 트라우마 가까운 기억으로 남아있을 게 자명하다.
게임 지식을 좀 떠올려 보면, 그쪽에서 페이놀이 당한 일은.
틀림없이 이 녀석이 이렇게 ‘상처 입을 바엔 미리 전부 다 태워버리는 게 낫다’라고 주장할 만큼 끔찍한 일들이었으니.
내가 이 녀석을 보자마자 모질게 대할 수가 없었던 건 그런 과거를 알고 있기 때문이고.
하지만, 그래도.
“내가 못 하게 막을 거야.”
“…”
“세상이 멋진 곳이라는 건, 얘도 알아야 하니까.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라는 데에는 그것도 포함이야.”
세상이 원래 그런거다.
끔찍한 일을 겪을 수 있다면, 멋진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내가 예전에 누군가한테 배웠던 것처럼.
“…어이가 없군.”
붉은 악마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을 받았다.
“페이놀이 무슨 고통을 겪었는지, 얼마나 진창 속에서 기어다녔는지, 네가 뭘 얼마나 이해하고 있다고-”
“나는.”
녀석의 말을 담담한 목소리로 끊는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쓰레기통에서 탯줄을 목에 감은 상태로 발견됐어.”
“…”
“그게 내 첫 번째 기억이야. 인생 엿 같다는 게 뭔지는 그럭저럭 알아.”
나는, 지금부터.
이 녀석을 설득할 거다.
붉은 악마를 그냥 무찌르기만 하는 걸론 의미가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이 뭔지 알려줘야 의미가 있지.
그러기 위해서는 이 녀석의 마음이 먼저 열려야 하고.
그러니.
“…조금만, 아주 잠깐이면 좋으니까.”
이 녀석에게만큼은, ‘보여줘도’ 될 것이다.
“해묵은 이야기를, 좀 들어줄래.”
내 옛날 이야기를.
●
성황국 안쪽에서 대주교라는 직책까지 올라갈 정도라면, 루미놀 대주교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인간이라는 건 틀림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으로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데.
다우드 캠벨이란 놈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놈이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91개째라니까?”
“네 꿈에서나 그러시겠지.”
권갑을 끼고 주먹을 휘두르는 푸른 머리의 여자와 양손에 단검을 들고 있는 여자가 그런 대화를 교환한다.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근처로는 이 둘에게 휩쓸린 판데모니엄의 생명체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그대들, 사실 사이가 꽤 좋은 편 아닌가?”
그리고 그런 말을 얹어내는 트리스탄 공녀와, 그 옆에 붙어있는 흑발 소녀 쪽도 만만치 않다.
서로 검을 쓰는 방법은 다르지만, 그 칼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용은 둘 다 충분히 달인에 영역에 들어갔다는 걸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위력들이었으니까.
“…부탁이니까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삼가주세요, 엘노어 선배님.”
“이하 동문이야!”
그리고 그런 네 명이 합심해서 전투를 이어가니, 저런 시덥잖은 대화를 하면서도 지금 주변으로는 시체의 산이 쌓이고 있다.
전투도 뭣도 아니다. 거의 장난처럼 상대를 짓이기고 있을 뿐.
“저, 아버지.”
“왜 그러니, 라나?”
“…세계가 끝장날 수도 있는 위기다, 같은 어마어마한 사태라 듣고 도와주러 오긴 했습니다만.”
라나 레이 델비움이 난감하다는 기색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희가 필요하긴 한 검까, 이거?”
“…”
루미놀 대주교도 뭐라고 대답하는 대신에 그냥 말없이 턱만 쓰다듬었다.
아직 헬 가드를 제외하곤 꽤 심각한 생명체가 풀리진 않았다지만, 그럼에도 따지고 보면 라나의 말대로 재앙 그 자체인 상황이다.
판데모니엄의 차원문이 열린다니.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갈 인간들이 제법 있겠지.
그런데.
그걸 이 정도로 손쉽게 제압하는 여자들이 있다니.
‘…동정심마저 드는군.’
딸한테 그렇게나 험한 짓을 한 남자가 상대라지만,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듣기로는 저 여자들 전원이 다우드란 남자를 놓고 쟁탈전을 벌인다고 들었다.
이런 인간들한테 둘러 쌓여서 눈치보며 줄타기를 하는 삶을 사는 건, 적어도 루미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끔찍한 모습일 게 분명하니까.
“…긴장을 너무 놓지는 마렴, 아이야.”
하지만, 그건 그거고.
루미놀이 그렇게 말하며 불기둥 안쪽에 있는 붉은 악마의 그릇에게 시선을 돌렸다.
문제는, 저쪽이지.
다우드가 저쪽에 접촉한 이후로, 그릇은 공중에서 몸을 웅크린 상태로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였다.
그 눈을 자세히 본다면, 마치 정신을 잃은 것처럼 초점이 없다.
얼핏보면 제압당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치고는 주변에서 열리는 차원문도 멎을 기미가 안 보이고, 불기둥도 사그러들지를 않고 있다.
이대로 둔다면.
틀림없이, 주변에 펴진 치천사의 결계에 손상을 입힐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용사 후보, 준비는 끝났나?”
“…아직이요!”
낑낑거리며 성검을 양손으로 붙잡고 있는 엘리야가 신경질적으로 답변했다.
단순히 들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성검이랑 뭔가를 ‘연결’하기 위해 힘겹게 마력을 주변으로 운용시키느라 나오고 있는 모습이었다.
“말 시키지 마세요! 선생님이 성검이랑 어떻게든 ‘교감’하는데 성공해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그거 미안하군. 하지만 그거 그렇게 쉽게 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성검 안에 있는 건 다른 것도 아니고 이면계의 천사들이 남긴 힘이다.
저렇게 마력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일깨울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럼 힌트라도 좀 주시던가요!”
“…애초에 성검을 잡은 인간 중 죽지 않으면서도 광휘가 일어나지 않은 경우는 네가 처음이라. 도움을 주기는 힘들겠군. 한 번이라도 광휘가 일어났다면 그 단서를 추측하는데 도움이라도 줄 수 있겠다만…”
그 말에 엘리야가 멈칫하며 루미놀 대주교를 바라보았다.
“…아까 전에요.”
이어서, 그녀가 머뭇머뭇 말을 꺼내들었다.
어쩐지 말하기 대단히 어려운 내용이라는 듯.
“그, 있잖아요. 선생님에 대해 생각하니까, 조금 빛이 난 것 같기도 한데요.”
루미놀 대주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 아닌가. 저 남자를 생각하다니, 어떻게? 어떤 식으로 떠올렸더니 광휘가 일어났나?”
“…”
얼굴에 살짝 홍조가 차오른 엘리야가, 잠시 심호흡을 했다.
이어서, 눈을 질끈 감은 그녀에게서 기어들어가는 것 같은 목소리가 떠듬떠듬 흘러나왔다.
“…선생님이, 그, 저한테, 엄청 소중한 존재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니까… 검에서 빛이…”
“어!”
문득.
라나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방금 그거, 빛나지 않았슴까?”
라나가 던진 말에, 엘리야가 눈을 뜨고 성검을 노려보았다.
“…뭐?”
“방금 엘리야 씨가 그 말했을 때, 살짝 빛난 걸로 봤슴다.”
“…”
엘리야가 믿기지 않는 시선으로 성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빛났다고?
이게?
방금 그런 말 했다고?
“한 번 더 해보시는 게 어떻슴까?”
“…뭐?”
라나가 뱉은 말에 엘리야가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답했지만, 오히려 라나 쪽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뇨, 다우드 씨에 대해 뭔가 사랑에 빠진 소녀같은 반응을 보이시니까 검이 반응하지 않았슴까. 그런 가닥으로 이어가 보시는 건?”
“…장난, 장난해…?!”
엘리야가 부들부들 떨면서 그렇게 말했지만, 루미놀 대주교가 다급하게 말을 받았다.
“아니, 내 생각에도 그게 맞아. 대주교의 이름을 걸고, 방금 그 빛은 성검의 광휘가 틀림 없었어!”
“…”
“그쪽으로 가닥을 잡고 해봐. 어서!”
장난기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진지한 기색에, 엘리야의 얼굴에 홍조가 급속도로 차올랐다.
“으… 으으…”
“엘리야 씨, 힘내십쇼! 하지만 당장은 하셔야 할 것 같슴다!”
계속된 재촉에, 엘리야가 수치심에 파들거리면서도 간신히 입을 떼었다.
“저… 저한테… 선생님은… 엄청 그, 멋지신 분이고…”
성검 안에서 빛이 살짝 일어났다.
하지만 아주 희미한 정도에 불과하다.
“어, 빛나긴 빛나는데 좀 모자람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해 보십쇼!”
“그… 머, 멋있고… 가, 가끔 저한테 웃어주실 때마다 가슴이 속수 무책으로 두근두근 거리고…”
다시 빛이 깜빡깜빡.
하지만 아직 환하다고 하기엔 한참 모자란 수준이었다.
“더! 조금 더 강한 말로!”
“여, 여기서 더…?!”
“예! 엘리야 씨는 다우드 씨를 얼마만큼 좋아하심까!”
라나의 외침에, 엘리야의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 얼마만큼이라고 하면… 어, ”
“그럼 그거 사랑하는검까!”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는 속도가 가속되었다.
“그, 그래…! 사, 사랑해!”
그런 말을 꺼내자마자 성검에 다시 살짝 빛이 들어왔다.
효과가 있다는 걸 확인한 라나가 오, 하는 탄성을 다시 꺼내놓았다. 이어진 문장이 더욱 과격해진 건 그런 영향일 것이다.
“사랑하면 결혼도 한 번 꿈꿔보셨겠죠! 애는 몇이 좋으십니까!”
“어, 어어…? 아, 아이?! 세, 셋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첫번째 아이는 가진다면 뭘로!”
“아.. 아아아… 처, 첫째는 딸!”
“허니문은 어디가 좋으십니까? 해변? 온천? 휴양지?”
“…오, 온천!”
“이유는? 솔직하게!”
“서, 선생님 생각보다 몸이 엄청 좋으셨어! 하,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연이어 날아오는 질문은 점점 더 과격해지고,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며 놓치기 직전의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답하는 엘리야의 문장도 점점 과격해지고 있었다.
“…”
“…”
슬슬 주변에서 쟤네 뭐하냐, 하는 시선이 날아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쪽으로 가닥을 잡아보라던 루미놀 대주교마저 눈을 가늘게 뜨고 두 명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하지만, 실제로 엘리야가 과격한 말을 꺼낼때마다 성검에서 흘러나오는 광휘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기는 했으니, 중간에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문답이 이어지기를 어느 정도.
“그럼 마지막으로 다우드 씨에게 바라는 점은!”
“솔직히 말해서, 한 번 저를 덮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노력이 헛된 건 아닌 모양인지.
엘리야에게서 눈물 맺힌 표정으로 절규처럼 터져 나온 문장과 함께, 환한 빛이 성검에서 터져나왔다. 빛무리가 주변으로 어지럽게 얽히면서 복잡한 문양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걸 본 루미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치천사의 광휘…!”
모든 천사 중 정점.
치천사의 문양이, 성검 위쪽으로 그려지고 있었으니.
“아버지, 이거 된검까!”
“…되다마다. 하지만 역대 용사 중에서 성검에서 치천사의 광휘가 나온 인간은 없었는데…!”
세기의 발견을 했다는 것처럼 그런 말을 꺼내는 루미놀 대주교의 옆으로.
“…나… 죽을거야…”
엘리야가 조용히 훌쩍이는 목소리가, 주변으로 숙연하게 퍼져나갔다.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