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14)
Chapter 213 – 213. 공략 (3)
●
엘리야의 자존감이 박살나건 어찌되었건, 상황은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광휘 안에서 입자가 모여들어, 사람의 형상을 빚어내기 시작한다.
6쌍의 날개. 머리 위에 떠 있는 헤일로. 발목까지 치렁하게 내려오는 머리카락. 몸에 착 달라붙는 하얀색 옷.
누가 봐도 천사의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할만큼 전형적인 외모였지만.
“…어라?”
훌쩍거리고 있던 엘리야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꺼내 들었다.
아니, 이거.
어쩐지 생겨 먹은 게.
‘…나랑 좀 닮았는데?’
자의식 과잉이 아니고, 스스로가 봐도 자신의 모슴을 몇 년 정도 성장시켜서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면 딱 이런 모습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묘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광휘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후 계속 눈을 감고 있던 치천사가 천천히 눈을 밀어 올렸다.
그 시선이 이내 엘리야와 마주친다.
“…”
엘리야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그 시선을 보니까 확실히 알 것 같다.
이건, 그녀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그녀가 개미처럼 느껴질 만큼 압도적으로 거대한 ‘뭔가’다. 그런 압력이 느껴진다.
[너구나? 나를 깨운 게.]“…어, 네, 그…”
쟁반 위에서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미성에, 엘리야가 목 졸린 것 같은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천사님께서 말을 거셨는데…!
[귀여운 애가 몸서리치도록 부끄러워하는 모습, 잘 먹었어~]“…”
[앞에 다른 용사놈들은 하나같이 다 재미없는 놈들뿐이라 짜증만 났는데, 이번에는…]치천사가 엘리야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치 ‘품평’이라도 하는 것처럼.
시선이 가슴께나 허리, 그 외에 둔부에 조금 오래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다행이야~]초승달처럼 눈이 휜 치천사가 흡족스럽다는 기색으로 흘리는 목소리에, 엘리야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분명히 날개고, 헤일로고, 전부 다 달려있는 천사의 특징에다가. 생긴 것도 자기랑 이상할 정도로 닮아있는 주제에.
방금 그 말을 꺼낼 때는 소름 끼치는 성희롱범 바이브가 전신에서 물씬 풍겼으니까.
치천사?
이게?
‘장난하냐?’
엘리야가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씩 웃고 있는 치천사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쪽이 허리 위로 양손을 올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 서로 자기 소개는 앞으로 천천히 하면 될 것 같고…]이어서.
[…당장은, 조금 ‘치워야’ 할 게 있는 모양이네?]그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아무튼, 풍기고 있는 분위기가 어찌되었건.
이건 치천사다.
이면계에 있는 모든 천사들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
악마들이 판데모니엄의 왕이라면, 치천사는 이면계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 존재다.
[힘 좀 써 볼까.]그리고 그런 말과 함께 펼쳐진 광경은, 그런 칭호가 허투루 부여된 게 아니란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꺼내놓은 말과 다르게, 마음먹고 힘을 휘두른 게 아닌 건 누가 봐도 분명해 보였다.
그저 가볍게 제자리에서 손을 틀어쥐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맙소사.”
루미놀 대주교가 신음처럼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 -!! -!!!!!!!!!
그 주먹을 쥐면서 뿜어져 나온 광휘만으로, 주변에 존재하던 모든 차원문이 일제히 산산히 부서져 내렸다.
근처에 존재하던 모든 판데모니엄의 생명체들도 순식간에 짓이겨져 바스러진다.
유황내 가득한 검댕으로 물들었던 대지도, 일순간에 ‘정화’된다.
힘을 개방한 악마의 존재가 그것만으로도 주변을 판데모니엄 비슷하게 바꾼다면, 천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것들을 정화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면계에 모든 존재들은 물질계에 간섭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제한된다.
그런데, 그런 막대한 제약이 붙은 상태로도 이 정도의 위력이러니!
‘…전 차원에서 유일하게 악마와 수를 맞춰갈 수 있는 위상에 닿은 존재.’
괜히 그런 칭호를 받은 게 아니란 걸 루미놀 대주교가 곱씹으며 전율했다.
그리고, 그걸 바꿔 말하면.
‘악마의 그릇’ 여러 개가 있는 현재 상황에서 그런 존재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으, 아.”
지금까지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유리아가, 그 모습을 보고 스스로의 몸을 감싸안았다.
긴장, 공포, 불쾌함, 적의, 증오.
그런 것들이 한 데 뒤섞여 흘러나오는 이런 경험은, 그녀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의 폭류였으니까.
세라스도, 리루도, 모두 제각각 비슷한 감정을 겪는 듯 혼란스러운 기색으로 비틀거렸다.
어째서 이런 느낌이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건지, 본인들도 똑바로 알 수가 없다는 기색이 역력한 몸짓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감정을 느끼는 인간이 있었다.
“…불쾌하군.”
엘노어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그렇게 답했다.
모습을 보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독기가 심장 근처에서 뿜여저 나오는 느낌이다.
몸 안쪽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운을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신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당장 저쪽에 가서 저 빌어먹을 존재를 찢어발기라고. 그 존재 자체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라고.
불구대천.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라는 느낌이, 치천사의 존재를 보자마자 격렬하게 뇌를 물들이고 있다.
[…화난 애들이 많은 것 같네?]치천사가 주변을 둘러보며 실소를 흘렸다.
[하여간, 판데모니엄 애들은 항상 우리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니까? 무서워 죽겠어, 아주.]“…”
글쎄.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본인도 잡아먹을 것처럼 주변에 있는 그릇들을 노려보고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엘리야가 그걸 지적하기도 전에, 불기둥 안에서 페이놀의 몸이, 급작스럽게 격렬하게 굽었으니까.
머리를 감싸고 다리 사이에 파묻는 것 같은 모습이다.
마치, 뭔가를 슬퍼하는 것처럼.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흐느끼는 것처럼.
“저건…!”
엘리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런 말을 꺼내자,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치천사가 다시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아- 저거 그거네. 합일.]“…네?”
[정신끼리 합친 거야. 아마 심상 세계 안쪽에서, 저기 있는 ‘열쇠’랑 그릇이랑 아주 찐~한 교감이라도 나누고 있나본데.]“…”
엘리야가 새파래진 얼굴로 치천사를 올려다보았다.
다우드를 열쇠라고 칭하는 건 또 뭔 소리인가 싶었지만, 당장 그것보다는 찐하게 교감을 나눈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가 더 중요했으니까.
[아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닌데~? 변태~]“…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치천사님.”
[아니라고 하지 마~ 표정에 다 써져 있었으니까~]“…”
공중에서 두둥실 날아와 엘리야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능글맞게 말하는 모습이 어지간히 얄밉다.
애초에 그녀를 수치사 시키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의 수단으로 각성한 것도 그렇고. 그냥 성격 자체가 밉다.
[뭐, 그래도.]엘리야가 그런 감상을 곱씹는 사이, 치천사의 시선이 다시 날카롭게 빛났다.
[…이건 또 처음 보네.]“예?”
[저거, 악마가 교감 중에 ‘동요’했다는 소리야. 감정의 틈을 보여준 거라고.]바꿔말하면.
‘설득당했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세상을 불태우려던 악마가, 저 안쪽에서 저 남자와 뭔가를 대화하면서 스스로의 의지를 반쯤 단념했다는 뜻이다.
대체.
무슨 광경을 보여줬길래.
인간이, 어떤 폭력적인 수단도 없이 대화만으로 악마를 설득했단 말인가.
“…아, 그러고 보니까!”
엘리야가 마공학 손목 시계를 보고 급박하게 그런 말을 꺼내들었다.
분명히.
다우드가 이때쯤에 맞춰서, 페이놀에게 ‘틈’을 만들어준다고 했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페이놀이 갑자기 저런 격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신호’라 생각하는 게 타당하겠지.
“치천사님, 힘을 빌려주세요!”
[…흐음?]“선생님이 이때 맞춰서 마기를 제압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성검의 주인 자격으로, 저 악마를 봉인해야 합니다!”
[뭐,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치천사의 눈이, 불기둥 안에서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 다우드에게 가서 꽂혔다.
틀림없이.
이면계 안에서도, 저런 존재에 대해서라면 흥미를 가질 이들이 여럿 있을 테니까.
●
“…”
난감하다는 기색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칼리반, 울어요?”
[…닥쳐.]소울 링커 안에서 훌쩍이는 목소리가 올라왔다.
부정은 안 하는 걸 보니까 조금 울기는 한 모양이다.
사실 칼리반 상태가 조금 심각해서 그렇지, 붉은 악마의 모습도 그리 멀쩡하게 보이진 않는다.
“…너는.”
붉은 악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들었다.
“이런 걸, 다 겪고도.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냐고?”
“…”
무언의 긍정이 돌아왔다.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는다.
“멀쩡하지는 않지, 솔직히.”
지금도 무섭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다치는 꼴 볼까 봐. 험한 꼴 볼까 봐.
죽을까 봐.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랑 비슷하게, 멀쩡해 보일 정도로는 살 수 있을 정도로. 내가 페이놀을 바꿔놓을 순 있어.”
전부 다 보여준 건 아니다.
다만, 단편적인 이미지 정도는 전부 보여줬지.
사창가. 고아. 부랑자. 생존. 살인. 진창에서 굴러다니는 쓰레기의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인생.
그리고, 구원.
마지막에 막바지에.
아주 조그마한 호의에서 비롯된, 인생이 바뀔 정도의 충격.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멀쩡한 인생을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페이놀 또한 나처럼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그런 의도를 담아서, 이 녀석에게 내 ‘과거’를 좀 보여줬을 뿐이다.
“…이제, 나를 좀 믿을 수 있겠어?”
그리고, 내가 그렇게 남한테 받은 걸 페이놀에게 좀 베풀 뿐이다.
물론 이 녀석의 과거를 들춰보면 개같은 일 투성이겠지. 이 녀석의 ‘보호자’같은 포지션을 자처하는 붉은 녀석이 이 녀석의 감각을 전부 지워버린 것도,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을 거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할 정도로.
“…”
녀석이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한 번에 신뢰를 사진 못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내가 방금 이 녀석에게 보여준 내 ‘옛날 모습’은.
적어도 내가 말한 ‘페이놀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라는 다짐에 설득력 정도는 넘치도록 부여해줄 것이다.
내가, 정확하게 똑같은 과정을 겪어봤으니까.
“…이 아이가.”
붉은 악마가 침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울 일이 생긴다면. 상처 받는다면. 네가 충분한 버팀목이 되지 않는다면.”
하지만, 목소리 안에 들러붙은 심지는 대단히 단단한 게 틀림 없다.
“난 언제든 다시 나올거야. ”
“…”
참.
악마란 놈들, 그릇에 대해 지극정성이다.
그 정체에 대해 고찰하는데 참 많은 도움이 되는 특성이긴 하다만.
아무튼.
“…걱정하지 말고.”
윙크하며 답변한다.
“너하고, 얘. 둘 다 나한테서 절대 못 벗어나게 만들 테니까.”
“…”
“아까도 말했지만, 앞으로 천천히 알아가보면 되잖아. 서로.”
그래도 방금 내 과거를 보여줌으로서, 서로 마음 정도는 열었다는 확신은 생긴다.
남은 건 이 녀석과 시간을 쌓으며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거지.
페이놀도 포함해서.
와, 한 가지 몸에 두 가지 맛.
“…”
붉은 악마가 나를 말 없이 노려보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신기하게도.
온몸이 새빨간데도 얼굴에 홍조가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은 확실하게 파악되는 게 참 묘하다.
“…나가 죽어. 바람둥이 쓰레기 같으니.”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피식 웃는다.
‘칼리반.’
[어?]‘얘 보다 보니까 좀 귀엽지 않아요?’
하는 짓 하나하나가 왠지 정통파 츤데레 느낌이 좀 난단 말이지.
생긴 것도 가장 내 취향이고, 앞으로 호감도 좀 차곡차곡 쌓아올릴 동기부여는 확실히 되는-
[뇌가 녹았냐?]“…”
“…”
그러네.
물어볼 대상이 잘못되긴 했다.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