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24)
Chapter 223 – 223. 수라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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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으로 보드 게임의 커버를 잡는다.
아무튼,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선택지가 별로 없는 상황이 분명했으니까.
이런 보드게임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모인 것이 파토 난다면, 이후 이어질 분위기는 상상도 하기 싫은 무언가가 될 것이 틀림없지 않나.
“…할게요?”
“…뭐, 음. 그러게나.”
“…와아, 재밌겠다.”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대답을 연속으로 들으며, 울며 겨자 먹는 기분으로 커버를 개봉한다.
이내 심플한 디자인의 정육면체 주사위 2개와 캐릭터 카드, 그리고 메인 보드가 차곡차곡 세팅되었다.
승리 목적은 돈이나 연애 수치가 일정 이상 모이면 이기는 시스템이라는 간단한 구조다. 이해하기 아려울 것도 없지.
그리고 얼떨결에 마스터 역을 맡은 내 진행에 따라, 각자가 캐릭터 카드 하나씩을 뽑아 들었다.
마석으로 만들어진 카드가 각자의 앞으로 하나씩 분배된다. 한 명씩 그걸 잡자마자 각자의 캐릭터 정보가 적힌 문자열이 그 위로 쭉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게임판 위로 각자의 생김새와 흡사하게 생긴 가상 말 여러 개가 쑥 떠올랐다.
‘…오.’
이런 것까지 재현되나.
이런 거 보면 참 이쪽 세계관 기술력은 신기하긴 하다.
안 그럴 것 같은 곳에서 뜬금없이 하이 테크놀로지가 휙휙 튀어나오니까.
“어, 캐릭터 카드 소개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일단 엘노어부터.”
“…그런가. 내 캐릭터는-”
엘노어의 표정이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바람둥이 남편을 둔 초혼 신부라는군.”
“…”
잠깐 일동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지만, 내가 다시 한번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여 있는 힘껏 입을 열었다.
“…어, 그렇습니까. 그러면 일단 주사위를 한 번 굴려서, 현재 상태를 설정해야 한다는데요.”
“…알겠네.”
엘노어가 어쩐지 아까보다 살짝 험악해진 동작으로 주사위를 굴리자, 테이블 위로 정육면체 두 개가 또르르 굴러갔다.
표시된 숫자를 살피고, 다시 룰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니까, 저 숫자면…”
횡경막이 수축하는 느낌이 그대로 내게 엄습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내용을 의식하는 티를 내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더 나쁘겠지. 눈을 질끈 감고 내용을 말한다.
“…최근 들어, 서로 사이가 조금 소홀해졌습니다. 언제든지 남에게 신랑을 뺏길 수 있는 위기 상황입니다.”
“…”
“…”
“…그러니까, 제 캐릭터 카드는요.”
이대로 있다간 그대로 자리가 터져나갈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담아, 어떻게든 쾌활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다른 캐릭터에 비해 연애 수치를 쉽게 올릴 수 있다는 것 같네요. 설정은 가만히 있어도 여자가 꼬이는 바람둥이… 라는데요. 저랑은 별로 안 어울리는 것 같…”
“…”
“…”
실제로는 아무런 물리력 행사도 없었지만, 곧바로 전신이 터져나갈 것 같은 강도의 압박력이 내게 쇄도했다.
“…주사위 굴릴게요.”
그러니, 얌전하게 입 다물고 주사위나 굴린다. 뭐라고 입 여는 순간 그대로 죽을 수도 있을 느낌이라.
“보자, 제 상태는… 그냥 단순히 독신이네요. 별다른 특성은 없고, 언제나 새로운 만남에 열려있다-”
(-바람둥이한테 딱 어울리는 상태네.)
귓가에 코웃음을 섞어 날아오는 베아트릭스의 말은 일단 무시한다.
이 사람, 나에 대한 혐오 수치가 왜 이렇게 높지.
[그럼 낮겠냐?]“…”
[스스로 반박할 수 있으면 한 번 해보지 그래. 자기 절친 꼬셔두고 한 손으로도 다 못 셀 여자를 다 후리고 다니는 놈이-]시끄럽고.
칼리반이 왱알왱알거리는 사이, 자기 캐릭터 카드를 바라보며 주사위 까지 한 번 굴린 엘리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질문했다.
“선생님, 게임에 혹시 결혼이란 시스템이 있나요?”
“아, 여기 적혀 있네. 각 플레이어끼리는 특정 칸에서 결혼을 할 수 있고, 결혼한 플레이어끼리는 연애 수치를 2배씩 획득한다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엘리야가 피식 웃었다.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이 불길함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웃음이었다.
“제 캐릭터는 결혼한 커플에서 남자 쪽을 제 하수인으로 부릴 수 있다는데요. 요부래요.”
“…”
“현재 상태는, 이미 맺어진 커플 사이를 깨트리는 걸 즐기는 중. 근처에 있는 멋진 남성은 누구나 환영-♥”
그렇게 말하며 내 쪽으로 엘리야가 윙크한다.
“-이라고 적혀 있네요.”
“…”
이후에 곧바로 그렇게 말하며 표정을 싹 바꾸는 게, 진짜 구렁이 같은 능청스러움이다.
얘 전에도 이런 낌새가 조금씩 있긴 했는데, 지금은 엘노어 놀리려고 일부러 그러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실제로, 그 모습을 보자마자 엘노어가 눈을 부라리며 입을 열었다.
“왜 굳이 아양을 떨면서 읽는 건가, 그대는.”
“적혀 있는 걸 그냥 그대로 읽었을 뿐인데요?”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대 이 자리에서 정말 나와 결착을-”
“베아트릭스 씨, 소개 부탁드립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이 이어지기 전에 어떻게든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런 내 필사적인 모습을 본 베아트릭스가 이내 피식 웃으며 주사위를 굴린다.
애 쓴다, 애 써.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기색이다.
본인의 캐릭터 카드를 쭉 훑으며 주사위를 굴린다.
“보자, 내 상태는…”
하지만.
본인의 캐릭터 카드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자마자 그 웃음이 싹 사라진다.
“베아트릭스?”
“…”
“뭔데 그러나.”
“…어, 아니, 그게…”
당황해서 우물쭈물거리는 베아트릭스의 모습에 엘노어의 눈이 곧바로 가늘어졌다.
베아트릭스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 캐릭터 카드를 낚아챈다.
“엘노어, 자, 잠깐만!”
그렇게 당황한 목소리에 이어서, 싸늘하게 식은 엘노어의 문장이 떨어졌다.
“대상은 결혼에 굶주린 독신 여성입니다. 근처에 있는 독신 남성이 있다면 반드시 그쪽과 맺어집니다.”
“…”
모두의 시선이 게임판 위로 날아갔다. 베아트릭스의 말 근처에 있는 독신 남성 말이 뭔지 확인하기 위해.
이어서, 그걸 보자마자.
“…선생님이네요?”
엘리야가 엘노어와 버금갈 정도로 싸늘한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럼, 선생님하고 베아트릭스 씨하고 결혼한 상태네요?”
“…”
“저하고 학생회장님 둘 다 버려놓고서?”
“…”
“…”
아까보다 훨씬 파멸적인 침묵이 주변으로 떨어졌다.
반대급부로, 소울 링커 안에서는 칼리반이 폐가 찢어지도록 웃고 있는 밉살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넌 어떻게 하는 일마다 다 이러냐?]“…”
동의한다.
진심을 담아서.
●
베아트릭스가 긴장된 표정으로 주사위를 굴렸다.
보통 굳은 얼굴이 아니다. 거의 이 자리에 있는 내내 생사의 갈림길에 시달리던 수준이었던 나와 비견될 정도다.
“제발 낮은 숫자, 제발 낮은 숫자, 제발 낮은 숫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베아트릭스가 주사위 두 개를 던진다.
이어서, 딸그락거리며 멈춘 주사위의 숫자를 급한 시선으로 훑는다.
숫자 6이 두 개.
나올 수 있는 최대치다.
“…”
“…”
나와 베아트릭스의 표정이 동시에 썩는 사이, 게임판 위에 올라와 있는 나와 베아트릭스의 말이 서로 부둥켜안으며 볼을 비볐다.
행복한 표정이 양쪽에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다. 현실의 우리들과 다르게.
곧바로, 내가 베아트릭스를 공주님 안기로 들쳐 업고 침대 위로 던지는 모습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게임판 위로 자체적으로 모자이크라도 하는 것마냥 만화스러운 연출로 커튼이 슬쩍 펼쳐지더니, 그 위로 하트 수십 개가 쏟아지듯이 떠오른다.
이어서, 게임판 안에 내재된 진행자의 음성이 쾌활하게 울려퍼졌다.
[부부간의 금슬이 너무 좋습니다! 아이를 연달아 세 명이나 낳았네요!]“…”
“…”
“…”
“…”
[모두에게 축하금을 받습니다! ‘다우드’와 ‘베아트릭스’의 사랑이 온 천하에 빛나고 있네요! 현재 1등입니다!]게임판을 부수고 싶다.
농담이 아니라, 다 엎어버리고 없던 일로 하고 싶을 정도다.
안 그래도 땀이 줄줄 나오는 손바닥이 홍수라도 난 것처럼 축축하다.
아까부터 게임판 위를 바라보고 있는 엘노어와 엘리야의 얼굴에서 점점 생기가 없어지고 있다. 동시에 눈동자의 빛깔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에 소름이 끼친다.
내가 있는 힘껏 눈치를 보는 사이, 엘리야가 죽은 눈동자로 나한테 게임 화폐로 쓰이는 토큰 몇 개를 내밀었다.
“…축하금이에요.”
“…”
“…”
나와 베아트릭스가 마른 침을 삼키며 그걸 받는다. 이어서, 엘리야의 고개가 슬쩍 돌아간다.
“…학생회장님도 내셔야죠.”
“…”
그 말에, 엘노어도 떨리는 손으로 축하금을 내밀었다. 테이블 위를 스르륵 미끄러져 오는 토큰에는, 딱 봐도 복잡한 감정 여럿이 섞여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약혼자가 절친과 결혼하고, 사이가 너무 좋은 나머지 애를 쑴풍쑴풍 낳고 있어서 그걸 축하해줘야 한다는데. 게임이라고 해도 그걸 웃으며 받아들일 여자가 누가 있을까.
‘…어쩌다가 이렇게…!’
사실, 게임 초기만 해도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세팅이 이렇게 됐을 때만 해도 당사자인 나와 베아트릭스는 바짝 긴장했지만, 정작 엘노어와 엘리야는 처음에 조금 언짢았던 것에 비하면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특히나 걱정했던 엘노어는 오히려 답지도 않은 농담까지 던지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려는 시도를 보여주기까지 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농담을 던진 것도 일부러 스스로의 기분을 풀기 위해 시도했던 일 같기도 했다.
그 뒤에 이어진 일련의 상황을 보면 아무래도 좋은 사실이지만.
“내 차례군.”
엘노어가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릴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며 주사위를 집어 들었다.
이어서 그 주사위가 또로록 굴러가고, 엘노어의 말이 뽈뽈거리며 게임판 위를 달려 나와 베아트릭스가 같이 묶여있는 칸에 도달한다.
[다른 말들과 접촉합니다. 구애 신청!]게임판 위로, 문 바깥에서 꽃다발을 기다리고 서 있는 엘노어의 말에게 격렬하게 고개를 젓는 내 말의 모습이 비춰진다.
[남성에게 구애해보았지만, 철저하게 버림받았습니다! 오히려 상대방 커플의 사이만 더욱 돈독해집니다!]“…”
그런 말과 함께, 잉잉거리며 우는 엘노어의 말을 깔깔거리며 놀리는 베아트릭스의 말이 게임판 위로 떠올랐다.
그걸 보자마자, 엘노어의 얼굴 위로 핏줄 하나가 굵직하게 튀어나왔다. 눈에도 거의 핏발이 선다.
그걸 본 나와 베아트릭스의 얼굴은 거무죽죽해졌고.
“…저, 엘노어?”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그쪽으로 말을 건다.
“…음.”
“게, 게임이니까요.”
“…신경 안 쓰네.”
거짓말이다. 죽을 만큼 신경 쓰고 있다.
나와 베아트릭스가 오들오들 떨고 있는 사이, 엘리야가 여전히 죽어있는 눈동자로 주사위를 잡았다.
“…후우…”
녀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 한숨이지, 온몸에서 차오르는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스팀이라도 빼는 것 같은 모습이다.
“갑니다.”
그런 말과 함께, 주사위가 다시 게임판 위로 또르륵 굴러간다. 타박타박 게임판 위를 걸어가는 엘리야의 말이, 이내 모두가 모여 있는 칸에 도달한다.
[다른 말들과 접촉합니다. 구애 신청!]이번에도, 엘노어 때와 똑같은 이벤트가 발생.
엘리야의 말이, 내 말을 향해 요염하게 또각또각 걸어온다. 요부라는 캐릭터 특징을 반영한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단히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이다.
나한테 손키스를 날리며 윙크하는 모습에, 순간적으로 내 말이 얼굴을 붉힌다. 하지만, 손에 낀 반지를 보고 이내 눈을 감고 고개를 휘휘 젓는다.
[‘요부’ 특성에 의해 구애에 추가적인 이득을 얻습니다!] [하지만 상대방 부부의 금슬이 너무 좋습니다! 대상 ‘다우드’가 구애에 저항합니다!] [주사위를 굴려 저항 성공 여부를 정하세요!]그런 말과 함께, 주사위가 내쪽으로 탁 튀어나온다.
“…”
떨리는 손으로 그걸 휙 굴린다.
숫자 1이 두 개가 나온다.
[저항 실패!]“…”
[대상이 ‘바람 피우기’ 상태에 접어듭니다. 아직 아내에겐 들키지 않았지만, 들킬 경우 연애 수치가 대폭 삭감됩니다!]그런 말이 떠오르자마자, 게임판 위의 내 말이 헤롱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빼서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이어서 우후후, 하는 웃음을 짓고 있는 엘리야의 품에 쏙 안긴다. 그리고 마치 천생연분을 만난 것처럼 금슬 좋게 서로 키스를-
“…어머.”
엘리야가 얼굴을 붉히며 살짝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는 사이.
“…”
“…”
베아트릭스의 쓰레기를 보는 것 같은 시선이 내쪽에 틀어박힌다. 역겨운 거라도 보는 얼굴이다.
사실 여기도 여긴데.
엘노어가 잡고 있는 테이블의 끝자락이 으지직, 하면서 금이 가고 있다. 이제 전신에 숨길 수 없는 떨림이 찾아오는 수준이다.
배신당한 건 게임 안의 베아트릭스인데, 더 열받은 건 틀림없이 이쪽이다.
아마 내가 ‘반지’를 빼고 ‘엘리야’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에서 버튼이 눌렸겠지.
“…”
아니.
아니, 내가 한 게 아니라.
게임 상의 연출이라고.
내가 한 게 아니라고…!
[…아무도 안 들어줄 분위기인데?]“…”
[야, 게임 재밌네. 이거 언제까지 하냐?]칼리반의 유쾌한 목소리와 함께, 옆에서 엘노어의 입에서 뭔가 부드득 갈리는 것 같은 소리까지 들으며.
혼절할 것 같은 기분으로 기도한다.
제발.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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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