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25)
Chapter 224 – 224. 수라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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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게임 안에서 온갖 해괴망측한 사건 사고들이 있었지만.
결과는, 결국 이거다.
[ 1등, 베아트릭스 & 다우드 커플! ] [ 마석 반지가 생성됩니다! 서로 오래도록 간직하세요! ]그런 말과 함께 게임판 위로 한 쌍의 반지가 떠올랐다.
쓸데없이 품질이 좋다. 비록 모조품이라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로 결혼반지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어서.
게임판 안에서 튕겨나온 반지가 나와 베아트릭스에게 각각 날아왔다.
곧바로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나와 베아트릭스의 손가락에 착, 하고 착용된다.
“…”
“…”
물론 게임적인 연출이겠지만. 나와 베아트릭스의 얼굴에 걸린 위기감은 그야말로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아니, 진짜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오히려, 그 반지를 보자마자.
엘노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심호흡을 하고,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더니.
“잠깐 바람 좀 쐬고 오지.”
그런 말이 테이블 위에 툭 떨어졌다.
공기가 꽉 찬 풍선에 입김을 불어 넣는 기분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던 내겐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사실 이런 조마조마한 분위기에선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다 해도 진짜 일어난다면 좋아할 사람 하나 없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말이 바람이라도 쐬고 온다는 것이지, 누가 봐도 자리를 파투 내고 갈 길 가겠다는 의미가 명확하게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말을 붙이기도 이전에, 엘노어는 이미 벌떡 일어서서 출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걸음걸이에서 혼자 내버려 두라는 싸늘함이 팍팍 풍기는 모양새다.
그쪽을 붙잡으려던 내가 자기도 모르게 동작을 멈추는 사이, 엘노어는 곧바로 출구 쪽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쫒아가도, 될까.
괜히 그랬다가 화만 더 돋구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잠시 머뭇거리려 했지만.
“…!”
아니.
뭐 하는 짓이냐, 나.
적어도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답이 대단히 명확하게 나와야 정상이다.
나 때문에 화났다면,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
“베아트릭스 씨.”
“…뭐야?”
“뒷수습 좀 부탁드립니다.”
여러 가지를 함축한 말이었지만, 다행히 이쪽도 눈치가 잘 굴러가는 인간이라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지 한 방에 알아들은 모양이다.
“용사. 그쪽은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할까?”
“…예?”
“수확제 관련 이야기야. 그쪽도 흥미가 있을걸.”
전력 질주를 시작하는 내 뒤편에서, 곧바로 엘리야의 주의를 곧바로 끄는 것만 봐도 그렇다.
[뭐하게?]‘가서 설득해야죠!’
그 사이, 복도를 한달음에 달린다.
트리스탄 공작저에 있는 사용인들이 이상하다는 눈길로 쳐다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달린다.
최근에 그래도 몸을 단련해서 체력이 꽤 올라왔다지만, 엘노어는 그릇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초인이다. 신체 능력의 격이 다르지.
그 짧은 사이에 이 드넓은 공작저 바깥으로 나갔는지, 테라스 바깥으로 가문의 인장이 박힌 마차를 잡아타는 게 눈에 들어온다.
“ㅇ…”
하지만 그 이름을 완성하기도 전에, 엘노어를 태운 마차가 순식간에 출발해버린다.
여러 가지 종류의 욕설이 내 성대 바깥으로 뛰쳐나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주변을 둘러본다.
당장 저기까지 가서 엘노어를 붙잡는 건 무리다.
그럼, 따라잡으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그 때, 내 시선 끄트머리에 뭔가가 포착되었다.
“…”
글쎄.
저거 아마, 위험하긴 하겠다만.
내가 언제는 그런 거 신경이나 썼던가.
●
한참을 달린 마차에서 내린 엘노어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트리스탄 공작저 뒤편에 위치한 야트막한 언덕은 엘노어가 어렸을 때부터 애용한 자신만의 비밀 장소다.
늘 우울하고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여기에 와서 한참이나 하늘을 바라 보았던가.
‘…뭐하고 있는 건가, 나는.’
엘노어가 그렇게 생각하며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미성숙한 짓이라는 건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놀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오히려 베아트릭스도, 다우드도, 하는 내내 자신의 눈치를 살핀 건 잘 알고 있다.
“…”
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그녀가 눈을 감고 자신의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쓰다듬었다.
다우드의 손에도 같은 게 끼워져 있을 반지를.
이건, 그와 자신만이 공유하는 증표였을 텐데. 다른 여자가 아무리 끼어들어도 그녀만이 독점하고 있는 그와 그녀의 ‘연결고리’였을 텐데.
그걸 남에게 침범당하는, 그런 느낌은.
설사 놀이라고 해도 참을 수 없다.
가슴이 미어진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몸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이다.
그래서, 홧김에 달려 나왔을 뿐이다.
도저히 그걸 눈에 담아둘 수가 없어서.
“…”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 내렸다.
글쎄. 당분간 여기에 앉아있다가 들어가면 좀 나을 것이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다우드는 특히.
엘노어가 그렇게 다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엘노어!”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부르는 다우드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내심 기쁨, 내지는 안도감을 느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짜증 나는 일이다.
마치 쫒아와주길 무의식적으로 바랬던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
글쎄.
얼굴을 보면 화가 날 것 같아서 되도록 마주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게 방금인데.
막상 목소리를 들으니 울렁이는 가슴이 매우 불편하다.
지금까지 그녀가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은 일에 있어서는, 단 한 번도 의사에 의지가 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
하지만, 엘노어가 저도 모르게 풀어지려는 표정을 간신히 붙들며 다우드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 번은, 매몰차게 대하자.
냉정하게 저 남자를 몰아내자.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표출해서, 한 번은 정신 차리게 만들자.
그럴 생각이었지만.
“다우드? 꼴이 그게 뭔가?!”
그쪽을 보자마자, 엘노어에게서 거의 비명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닌게 아니라, 얼핏 보면 전투라도 한 바탕 치루고 온 듯한 몰골이었다.
먼지투성이에, 몸 여기저기엔 시퍼렇게 피멍이 들어있다.
찢어진 손바닥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는데다가 얼굴과 전신에 실금처럼 그어진 생채기들에서도 피가 방울방울 맺혀 있고.
“아뇨, 마차를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다우드가 멋쩍게 말하며 엄지로 자신의 뒤편을 가리켰다.
말.
그냥 말이 아니라, 전투마다.
주인이 아닌 인간이라면 접근하는 즉시 걷어차는 생물이지만, 저것에게 계속해서 걷어차이면서도 어떻게든 길들여 그녀를 쫒아온 게 분명했다.
일반인이라면 골백번도 넘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한 짓이겠지.
“따라잡으려면 저거라도 타야했…”
“그대, 미쳤나?!”
엘노어가 다우드의 말을 끊으며 기성을 올렸다.
“나중에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면 될 걸, 그게 대체 무슨 멍청한 짓인가! 자기 몸 소중한 줄도 모르는 건가, 그대는!”
“…아뇨, 저 그래도 승마는 그럭저럭 배워본 적 있어서-”
“그걸 말이라고 하나!”
진심으로 터져나온 호통에, 다우드가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실제로, 그런 말을 하는 엘노어의 눈에 깃들어 있는 엄격함이 장난이 아니다.
성난 걸음걸이로 뚜벅뚜벅 걸어온 그녀가, 이내 그의 몸을 여기저기 돌리며 그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꼼꼼하게, 더 벌어지지는 않는지, 금방 아물 정도인지. 얼굴을 지척까지 들이밀면서 그 전신에 난 생채기들까지 전부 살핀 그녀가, 혀를 차며 그에게 말했다.
“일단 치료부터 받게. 이야기는 나중에…”
“미안해요.”
“…”
엘노어가 입술을 살짝 깨물고 다우드로부터 조금 멀어졌다.
시선을 조금 낮춘 상태로,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뭐가 말인가.”
“엘노어가 저한테 화날만한 부분은 전부 다요.”
신기할 정도로 가장 먼저 떠오른 문장은 ‘뭐 때문에 화났는지 알기는 하나?’였지만.
엘노어는 보다 직설적인 것을 선호하는 인간이었다.
“약혼자 앞에서, 다른 여자가 그대를 두고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데. 그렇게 가만히 있는 사람은, 그렇게 칭찬 받을 모습은 아니겠지.”
“네.”
“화가 난 게 아니라, 그냥…”
“네.”
“조금, 서운했다는 뜻이네. 그대에게.”
“네.”
버쩍버쩍 입 안이 타들어 간다.
따지고 있는 것은 엘노어 자신인데도, 왜 이상할 정도로 스스로가 잘못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건지 모르겠다.
자고로 남녀 관계는 먼저 반한 쪽이 지는 거라고 한다지만, 이건 누가 보아도 그녀가 다우드에게 화를 낼 요건이 그럭저럭 충족되는 사안이지 않은가.
“…”
그리고 똑바로 자신에게 시선을 맞추고 있는 다우드의 얼굴을 보자마자, 엘노어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 그렇군.’
그러니까,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이 남자에게만큼은.
절대적으로 을의 위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도. 마음도. 전부 다.
이 남자에게 저당 잡힌 지 이미 오래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것조차 불안한 것이다. 혹시라도 이런 말을 들었다가 다우드가 그녀에게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길까봐.
당연한 것조차 요구할 수 없을 정도로, 반대로 그녀의 것이라면 뭐든 이 남자에게 내어주고 싶을 정도로.
그 정도로, 푹 빠져버렸다.
“미안해요.”
그도 그럴 게, 단순히 좀 삐진 여자를 붙잡겠다고 자기 몸 축내면서 묘기를 부린 남자다.
상대방의 기분이 좀 나빠 보인다고 곧바로 피를 철철 흘릴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빠져들지 않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군.”
머뭇거리며 그렇게 대답한 엘노어가, 고개는 숙인 상태 그대로 시선만 살짝 올려서 다우드의 안색을 살폈다.
“있지 않나, 그대.”
“네?”
“…나를, 그, 얼마나 좋아하나?”
“…”
눈을 동그랗게 뜨는 다우드의 모습에, 엘노어의 얼굴로 열이 확 올라왔다.
이런 말을 꺼내는 게 가장 부끄러운 엘노어 자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서운하게 한 대가 정도는 똑똑하게 받아가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남자를 조금 골려주려고 만들어낸 문장이었다.
“…내가 납득 가게 말 해주면, 용서해주겠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다우드가 손을 들어 올려 살짝 입가를 매만졌다.
방금 전에 사과를 해 놓고 헤벌쭉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엘노어.”
“…뭔가.”
다우드가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불렀으면 말을 ㅎ-”
뭐라고 말을 이어가려던 엘노어의 문장이 뚝 끊겼다.
아마.
자신에게 뚜벅뚜벅 다가온 다우드가,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와락 끌어안았기 때문이겠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
익숙한 감각이다.
몇 번인가 겪어봤으니까.
하지만, 역설적으로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기도 했다.
다우드와 그녀와 입을 맞추고, 혀와 타액이 섞이는 감각은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질척거리고, 잡아당기고, 후끈거리고, 끈적하고, 농후했다.
홍조가 엘노어의 귀까지 확 올라오는 사이, 천천히 입을 떨어트린 다우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답이 됐을까요?”
“…”
엘노어가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대는, 진짜, 진짜로-”
반쯤 울먹거리며 주먹을 말아쥔다.
이윽고, 엘노어가 다우드의 가슴을 팡팡 두들겼다.
“너무, 너무한 인간이지 않나. 뭐든 다 이런 식으로 넘기려 하고…!”
마음만 먹으면 주먹 하나로 인간을 육편으로 분쇄할 수 있겠지만, 다우드의 가슴을 두들기고 있는 건 거의 솜방망이로 툭, 툭, 건드리는 수준이다.
이렇게 부끄러워하면서. 이렇게 억울해 하면서도.
혹시라도 그가 다칠까 봐 진심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니까, 한 번 더 한다.
다시, 입술과 입술이 부딪힌다. 그렇게 서로 얽히기 전에 엘노어가 힉, 하고 얕은 신음 소리를 내는 게 더없이 귀여웠다.
“…하아.”
한참을 그렇게 붙어있다가.
한숨 소리와 함께 다우드의 얼굴이 다시 멀어졌다.
엘노어가 할 수 있는 건.
주먹을 말아 올린 상태 그대로, 다우드의 가슴을 내려치기 직전인 모습 그대로, 얼굴 전체를 더 붉히고 뻣뻣하게 서 있는 것뿐이었다.
“…용서, 해주실 건가요?”
멋쩍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다우드의 모습에.
엘노어가 기름칠 안 된 기계처럼 뻣뻣한 동작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힌다.
항상 이런 식으로 이 남자에게 지고 들어가는 게 분해서 어쩔 수가 없다는 기색이었다.
“…다우드.”
엘노어가 씩씩거리며 입을 열었다.
“수확제 때, 두고 보세.”
“…”
“복수는 그때 이자까지 얹어서 넉넉하게 해주겠네.”
“…”
그러니까.
용서를 해주는 것 같긴 한데.
문장이 조금 묘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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