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32)
Chapter 231 – 231.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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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학부의 학장인 월터는 이전에도 한 번 마주친 적 있지만, 꽤 지조 있는 또라이다.
어지간히 과격한 방법을 보여주더라도 그냥저냥 납득해준단 소리지.
[…그걸 그렇게 해석하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학장 앞에서 또 뭔가 과격한 걸 보여준다고? 여기서 더?]아니, 뭐.
솔직히 말해서 이제 와서 내 평판 같은 걸 신경 쓰기에도 한참 늦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리고 애초에.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하는 일이고 말이야.’
내 목적은, 결국 내 주변에 있는 악마의 그릇들 전원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주변 인식부터 조금씩 개선해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하면 못 할 것도 없다.
비록 스케일은 조금 작지만, 이렇게 ‘공식 선상’에서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는 건 나름 의미가 있는 일이란 소리지.
“그래서.”
눈앞에 죽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리루와 세라스에게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계획은 다 숙지했지?”
“…”
“…”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시선 두 개가 동시에 돌아왔다.
“한 번 하고 나면 그 뒤로는 안 해도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우드 선배님.”
세라스가 부들부들 떨면서 그런 말을 꺼내놓았다.
표정을 보니 어지간히도 수치심을 느끼는 모양인지, 붉게 물든 얼굴은 토마토도 상대적 창백함을 느낄만한 수준이다.
“진짜로 할 거에요?”
“그럼.”
씩 웃으며 대답을 돌려준다.
“애초에 보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너무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
그렇게 말하며 ‘시연회’를 할 강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문장이 끊긴다.
“…”
사실, 상황만 보면 사전에 고지받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는 하다. 월터 학장과 소수의 ‘참관인’으로 이루어진 평가단이 있을 뿐이지.
다만, 그 평가단이라는 게.
“…폐하.”
미친듯이 몰아치는 두통에 머리를 짚으며 그렇게 말하자, ‘참관인’이 에게서 대답이 돌아왔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대?”
방실방실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세실리아 11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두통이 훨씬 더 심해진다.
이 사람 여기서 뭐해.
제국 황제라는 게 이렇게 일이고 뭐가 다 팽개쳐놓고 돌아다녀도 될만큼 만만한 직책이던가.
“아, 짐은 말 그대로 ‘참관인’으로서 참가한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나. 평가에는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않을 것이네.”
“그런 한가한 용무로 이런 곳에 오셔도 되는 건지 여쭈어도-”
“그것만 있는 건 아니지. 미리미리 같은 장소에 와둬야 나중에 빨리 적응하지 않겠는가.”
“…예?”
이 사람이 엘판테에서 적응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영겁은 필멸자에게 허락된 사치가 아니니.”
그런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문득 월터 학장으로부터 헛기침과 함께 그런 문장이 날아들었다.
아, 그래.
신경 쓰지 말고 발표나 똑바로 하라는 뜻이겠지.
“…뭐, 좋아.”
머리를 긁적거리며, 세라스와 리루를 바라본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두 녀석이 동시에 움찔했지만,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쪽에 손짓한다.
“이리로 나와. 보여드려야지.”
“…”
내 말에, 그 두 명이 죽을 맛인 표정으로 무대 위에 어기적어기적 걸어나왔다.
“동아리 창립 요건으로서 발표할 연구 주제는.”
그런 녀석들의 앞에 서며, 자신감 가득 찬 목소리로 월터 학장에게 문장을 떨어트린다.
“악마를 ‘길들이는 방법’입니다.”
“…”
“…”
그런 말을 듣자마자.
황제와 월터 학장의 표정이 동시에 미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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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엘판테 정도 되는 교육 기관이라면 이래저래 정규 학기에 들어오는 신입생 말고도 온갖 종류의 편입생들이 수시로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런 학생들은 보통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특수한 루트로 입학하는 부류라, 괴짜들도 꽤 많이 마련이고.
하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이런 요구를 하는 학생은 처음이다.
“…으- 음-…”
신입생 기숙사의 사감인 오필리아 경이 난감하다는 기색으로 말하며 상대방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니까, 이름이-”
“빅토리아 에바트리체입니다.”
옥쟁반 위에 유리 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미성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목을 뒤덮는 새하얀 머리카락. 붉은 눈동자. 작달만한 신장이 특징적인 여학생이었다.
어딜 어떻게 봐도 엘판테에 입학하기에는 너무 어린 게 아닌가 싶지만, 아마 이 여자와 눈을 마주치고 그런 말을 정면으로 꺼내놓을 수 있는 인간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 눈동자가.
그 붉은 시선에 응축되어 있는 예리함은, 글쎄.
“…”
오필리아 경이 말없이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이 본능적으로 느낄만한 것이고, 실전에 여러번 서 본 그녀는 더욱 확실하게 느껴지는 사실이겠지.
이건, 살인자의 눈이다.
사람을 여러 번 ‘도축’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
학생 중에서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건 아마 학생회장인 엘노어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하지만, 오필리아 경이 별다른 반응 없이 말을 이어갔다.
상대방의 뒷배경에 대해서는 그녀가 참견할 바가 아니었다. 엘판테에 입학해 학생인 이상, 그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으니.
“…제국 출신이 아닌 학생이랑 같은 방을 쓰고 싶다고-?”
“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오필리아 경으로서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요구였지만.
세상에, 제국의 교육 기관에서 제국 출신이 아닌 룸메이트를 찾는 건 너무 가혹한 요구 아닌가.
‘…잠깐만.’
문득, 머리 어떤 정보가 스쳐 지나가는 느낌에 오필리아 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씨가, 에바트리체라고-?’
분명히 그녀의 기억에 남아있는 이름이었으니까.
오필리아 경이 학생부를 뒤적거리며 관련된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아- 여기있네-”
“네?”
무표정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오는 대답에, 오필리아 경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세라스 에바트리체라고, 너랑 똑같은 성씨를 가진 학생이 있어서 말이야- ”
그 말을 들은 빅토리아의 눈길이 급속도로 가늘어졌다.
“마침 제국 출신이 아닌 성황국의 학생이니, 둘이 같은 방을 쓰는 건 어떨까-?”
“…”
못마땅한 기색이 다분한 모습이다.
“…글쎄요.”
여전히, 평탄한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서 꺼내는 말은 전혀 그런 것에 어울리는 내용이 아니었지만.
“오필리아 경한테도, 저에게도 별로 좋은 결정은 아닐 것 같군요.”
“으음-? 그게 무슨 말이니-?”
“그 여자와 같은 방을 쓴다면, 저나 그쪽 둘 중 하나는 죽을 확률이 높아서 말입니다.”
“…”
상상도 못 한 대답에 오필리아 경이 멍하니 굳어있자니, 다시 평탄한 목소리로 문장이 이어졌다.
“사이가 별로 안 좋은 가족이라서 말입니다.”
“…사이가, 안 좋다고-?”
대체 가족끼리 얼마나 사이가 안 좋으면 이런 말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농담처럼 말한 걸 수도 있지만, 이런 눈동자를 지닌 학생이 말하니 도저히 그런 식으로는 안 들린다.
“글쎄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일 수도 있겠군요. 마지막으로 본 게 10년도 넘었으니, 이제는 그냥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는 편이 적절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런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진다면 더더욱.
오필리아 경이 한숨과 함께 학생부를 덮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줄래-? 적절한 학생을 찾으면 내가 다시 알려줄게-”
“알겠습니다.”
이번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인 빅토리아가, 문득 생각났다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참, 그럼 기다리는 동안 한 가지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뭔데-?”
“다우드 캠벨이라는 남자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
말을 이어가려던 빅토리아의 문장이 순간적으로 툭 끊어졌다.
여태 온화했던 오필리아 경의 얼굴이 순간 피곤함에 녹아내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겠지.
“응? 아, 미안해- 최근에 그런 부탁을 너무 많이 들어서 말이지-”
“…예?”
“그 학생이 어디갔는지 수시로 물어보는 여학생들이 못 해도 다섯 명은 넘어서 말이야- 이제 슬슬 이름만 들어도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표정이-”
“…”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말하는 오필리아 경의 모습에, 빅토리아의 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글쎄. 자신의 ‘고용주’인 보거트 후작에게 얼추 전해듣기는 했지만.
이 남자, 정말 파멸적으로 난봉꾼인건 분명한가 보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오필리아 경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이제 슬슬 그 학생도 상급생이라 신입생 기숙사는 벗어나겠지만, 글쎄. 오늘 어디에서 뭘 하는지는 들은 것 같아. 분명히 동아리 관련해서 무슨 활동을 한다고 했었나-”
“동아리, 말씀이신가요?”
“응, 이름이 퇴마부랬었지, 분명-?”
“…”
그 말을 들은 빅토리아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어서, 그녀가 조용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장소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되도록 꼭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분명히, 보거트 후작이 그녀를 엘판테에 잠입시키면서 내린 지시는 ‘악마’ 관련해서 그 남자의 행동을 모조리 다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일이기도 하고, 그것과 별개로도.
‘…개인적으로 흥미가 좀 생기는 군요.’
빅토리아 본인도, 그 다우드라는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다.
의뢰 대상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고용주에게 전해듣기로는, 다우드 캠벨은 ‘악마’ 관련해서 이 대륙 전체를 격동시킬만한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고 들었다.
마냥 과장된 표현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게,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제국, 부족 연합, 그리고 성황국의 수뇌부가 모두 그쪽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정보가 시시각각 들어온다.
그런 쪽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암살자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
그러니, 그런 남자가 ‘퇴마부’라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동아리를 창설하는 건 대체 무슨 일을 꾸미나 궁금해서라도 정보를 수집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빅토리아가, 오필리아 경이 알려준 강당의 문을 빼꼼 열었다. 분명히 오늘 이쪽에서 동아리 관련된 활동을 한다고 했던가.
“실례합니-”
조심스럽게 인사하며 강당 안으로 들어서던 빅토리아가, 문득 동작을 멈췄다.
사실, 상황 자체만 놓고 보면 그렇게 이상할 것은 없다.
아마 무슨 ‘발표’ 도중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강당이 있고, 그 위에 발표자가 올라와 있으며, 관객석에는 그걸 보고 있는 두 명의 인원이 흥미롭다는 듯 그걸 보고 있었으니까.
다만.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사람이, 그녀의 ‘가족’만 아니었어도 그랬겠지.
‘…아니.’
물론, 그녀가 익히 알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아니었다.
온몸에 ‘보라색 기운’을 뭉게뭉게 두르고, 얼굴에 마치 애교부리는 강아지 같은 표정을 걸고 있는 모습은, 적어도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그 냉혈한 암살자의 이미지와는 백만 광년 떨어져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하물며.
지금 그 꼴이.
“…”
무대 위에 발랑 누워, 배를 그 앞에 있는 남자에게 보여준 상태로, 팔과 다리를 바동거리고 있는 언니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륙에 그녀와 더불어 단 둘밖에 없는 그랜드 어쌔신의 모습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런 상태로 혀까지 빼물고 헥헥거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기색이 한가득이다. 자신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수치심조차 못 느끼고 있다는 것처럼.
빅토리아가 입을 쩍 벌렸다. 암살자로서 격한 감정 표현은 지양하는 그녀였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세라스?”
자기도 모르게 그녀가 얼빠진 목소리로 꺼낸 말에.
무대 위에 올라와 있던 세라스의 얼굴이 그녀쪽으로 휙 돌아왔다.
“…빅토리아?”
문득.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세라스가 그런 말을 꺼내들었다.
그 몸에 둘러져 있던 자색 기운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 표정에 깃들어 있던 그 괴상한 분위기도 사라진다.
마치 방금 빅토리아의 모습을 보자마자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처럼.
이어서.
“…”
“…”
파멸적인 침묵이 강당 안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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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