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36)
Chapter 235 – 235. 심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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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노어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얼마 전의 일이 재생되고 있었다.
엘판테로 돌아오기 전, 그녀의 영지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캠벨 자작님.”
“…”
“이전에 한 번 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눈앞에서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새파랗게 질려있는 중년 남자를 본다면 누구나 이쪽을 괴롭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릴 법 하지만, 엘노어는 어디까지나 귀족의 예법을 통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숙인 각도.
황송하기 짝이 없는 대접일 것이다. 트리스탄 공녀쯤 되면 이런 짓을 해도 될만한 상대가 황제밖에 없을 테니. 애초에 호칭부터가 존칭이다.
…어떻게 보면 괴롭히는 건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고, 고개를 드시지요. 제가 면목이 없습니다.”
아르민 캠벨 자작이 안절부절하며 그런 말을 꺼내놓자, 엘노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정자세로 돌아왔다.
말 참 잘 듣는다 싶다.
분위기가 흡사 ‘친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새댁’같은 느낌이라는 게 아르민의 등골을 오싹거리게 만들고 있었지만, 아무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자작님.”
그렇게 생각하며 헛기침을 여러 번 하고 있자니, 건너편에 있는 아가씨한테서 침착한 기색으로 목소리가 떨어졌다.
“다우드와 동침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아르민이 마시고 있던 차를 전부 다 토해내고 한참이나 더 켁켁거렸다.
이어서, 멍한 눈으로 눈앞의 여자를 바라본다.
자기가 지금 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조차 안 간다는 기색이다.
“…자격을 증명하라고 하시면, 뭐든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엘노어가 서늘한 눈빛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느닷없는 행동에 아르민이 식겁하여 뒤로 물러섰다.
당연하게도 그를 베려는 움직임은 아닌 게 분명했지만, 검을 손에 쥔 트리스탄 공녀는 싸움과는 연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시골의 자작한테 이런 반응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뭣하면 이 팔 한 쪽을 내놓아도-”
“줘도 안 받습니다! 거, 검 집어넣으십시오!”
아르민이 기겁하며 그런 말을 꺼내놓자, 엘노어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집어넣었다.
솔직히 말해서, 방금 자르라고 했으면 진짜 잘랐을 것 같다. 그런 소름 끼치는 감각에, 아르민이 마른 침을 간신히 넘겼다.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트리스탄 공녀.”
“뭐든지요.”
“…왜 그런 질문을 하는 지, 일단 이유부터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 질문에, 엘노어가 오히려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하고 다우드 사이인데 그걸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
단호박처럼 떨어지는 대답에 아르민이 입을 다물고 있자니, 엘노어가 흠- 하는 콧숨과 함께 다시 말을 이었다.
“다만, 그 남자가 워낙에 목석이라 제가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어서… 분위기를 조성해도 넘어오지를 않고…”
“…”
아, 이미 해봤구나.
꼬시는데 실패했으니까 부모한테 조언을 구하는 거구나.
“…”
이게 맞나…?
아르민의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는 이내 헛기침을 하면서 적당히 말을 돌렸다.
아무튼, 그는 황제 턱밑까지 따라갈 수 있는 대귀족에게 말을 막 할만큼 심장이 커다란 사람은 아니었다.
솔직히, 어느 여자든 좋으니 눈만 마주쳐도 여자를 후리고 다니는 그 놈을 꽉 붙잡기만 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주의였고.
“…일단, 붙어있는 시간을 늘리는 게 좋겠지요.”
그러니, 생각할 수 있는 선에서 ‘건전한’ 조언만 얹어주도록 하자.
그런 취지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엘노어의 눈동자가 부담스럽게 불타고 있긴 했지만, 아르민은 어떻게든 떠듬떠뜸 말을 이어갔다.
“안 그래 보여도 항상 주변 사람 눈치 보고 있는 녀석입니다. 목석이라서 눈치를 못 챘다기보다는… 아마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을 확률이 높을 겁니다.”
“…”
그 말을 들은 엘노어의 눈이 동그래졌다.
한 번도 그렇게 접근해 본 적은 없으니 당연한 태도였다.
“…피하다니, 저를 말씀이십니까? 어째서-”
“아마 공녀님만 피해다니는 게 아닐 겁니다. 어렸을 때도 그냥 여자랑 엮이는 일 자체를 피해다니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정확히는, 그냥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라서 도망다녔다는 것에 가깝지.
그런 주제에 여기저기서 마구마구 페로몬을 흩뿌리고 다녔던 전적이 화려한 게 문제긴 하다만.
여난의 상은 그때부터 있는 게 확실했다.
“그러면 어떻게-”
“간단하죠. 10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라면 100번, 1000번 찍으면 됩니다.”
“…”
“제 안사람이 저한테 그렇게 넘어왔거든요. 그놈은 공녀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냥 소극적이거거든요.”
“…오.”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박치기 하시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다우드가 들었다면 그게 무슨 끔찍한 소리냐며 비명을 질렀을 조언이지만, 그걸 들은 엘노어의 얼굴로는 마치 깨달음을 얻은 기색이 뭉게뭉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이를테면… 글쎄요. 이맘때쯤 엘판테에는 동아리 활동이 한창 본격적일 때 아닙니까?”
“…예, 분명히.”
“둘이서 있을 기회를 거기서 많이 만들어보시지 그러십니까. 방과 후에 다들 필수적으로 참석해야 하니까 그러기도 쉬울 거구요.”
“…확실히!”
“그 녀석 은근히 강권하는 것에 약하답니다. 밀어붙이면 못 이기면서 다 들어줘요.”
엘노어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아버님, 아니, 스승님.”
대단히 진지한 목소리로, 엘노어가 진심을 담아 목놓아 외쳤다.
“평생을 다해 은혜를 갚겠습니다…!”
“…”
흠.
그 정도인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 아르민의 얼굴로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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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이 자리에 아득바득 나오게 된 이유고.
물론, 아탈란테 총장과의 지옥같은 푸대거리가 한 바탕 있기도 했다.
-트리스탄 공녀. 이건 학칙에 중대한 위반이 되는 사항입니다. 아무리 가문의 권위까지 끌어온다고 해도 이건 도저히 봐줄 수가 없는-
-퇴마부.
-…재고해보시지요. 총장 입장에서 이런 걸 받아줬다간 특혜를 봐주고 있다는 의혹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퇴마부.
-엘노어, 이 년아! 너 지금 학생회장이야! 연차도 처먹을만큼 처먹어놓고서 무슨 아래애들 푸닥거리는 동아리에 들어가겠다고-!
-퇴마부.
-그 다우드 새끼만 해도 죽을 것 같은데 왜 너까지 나한테 이래-! 나 정말 힘들-!
-퇴마부.
…누구에게 악몽같았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틀림없이 악몽같기는 했다.
그래서 그런 짓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이 남자와 같이 있을 시간을 늘리기 위해 나온 자리인데.
이 인간들은 뭐란 말인가.
그녀가 샐쭉하니 옆자리에 앉은 인간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탐탁찮은 기색으로 그녀의 입이 열린다.
“…폐하, 여기서 무슨-”
그러게 말하려던 엘노어의 입이 그대로 다물어진다.
늘상 실눈을 유지하고 있던 세실리아 11세의 눈길이 슬쩍 벌어졌기 때문이겠지.
쭉 찢어진 파충류의 동공을 연상케하는 홍채가 장난스럽게 번들거리고, 이내 황제가 입가로 손을 가져가며 쉿-하는 동작을 취한다.
이어서, 그런 기색에 어울리는 문장이 흘러나온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선배’님. 세실이라고 해요.”
“…”
세상에.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대충 눈치 챈 엘노어가 이마를 꾹꾹 눌렀다.
보통 그녀는 남에게 그런 걸 선사하는 쪽이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어쩔 수 없겠지.
“…무슨 장난질을 쳐서 학원에 들어오신 겁니까, 폐-”
다시, 쉿- 하는 동작에 엘노어가 한숨과 함께 말을 바꿨다.
“…세실 후배님.”
“장난질이라뇨? 저는 시골 농촌에서 자라나 특별 전형으로 입학한 신입생인데요?”
“…”
설정이 박살난 것도 정도가 있지.
엘노어가 표정을 한참 구기는 사이, 심사석에 앉아있던 다우드의 기색도 비슷하게 변하고 있었다.
빨리 이 난장판이나 끝내고 쉬고 싶다는 기색으로, 이내 의례적인 질문이 흘러나왔다.
“…1번 후보부터, 질문을 좀 하도록 할까요. 저희 동아리에 입부하고 싶은 동기는-”
“입부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박살낼 걸세.”
“…왜요?”
“그래야 여길 폐부시키고 그대를 학생회로 끌어올 수 있을 테니까.”
“…”
뭐라고 대답할 말을 한참이나 찾던 다우드가, 결국 포기하고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폐ㅎ-”
아, 이게 아니지.
세실리아 11세, 아니, 세실의 표정을 본 다우드가 말을 삼켰다.
“…2번 부호께서는 저희 동아리에 어쩐 일로?”
“학교 생활이란 걸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
“동아리 부장님이 그렇게 괜찮은 분이라고 들어서 입부하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다우드 선배님.”
제발 이 지옥에서 나를 꺼내달라는 얼굴로 고개를 돌린 다우드가, 페이놀은 아예 물어보지도 않고 스킵했다.
아까도 본 사실이지만, 잘못 건드렸다간 무슨 말이 튀어나올 지 모르니까.
마지막으로, 빅토리아 쪽에 고개를 마주친 다우드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대답은 그 전에 튀어나오고 있었으니까.
“언니를 죽이고 싶습니다.”
“…”
“겸사겸사 여기 한가득인 악마들에 대한 정보도 좀 얻어가구요.”
“그게 무슨-”
“그래야 저한테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빅토리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다우드와 엘리야가 어안이 벙벙해서 그쪽을 바라보는 사이, 빅토리아가 자신의 말을 재확인하듯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 가라앉은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난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눈을 한 번씩 마주친다.
그리고, 다우드의 눈에는 확실히 보인다.
그 빅토리아의 눈동자에 가라앉은 묵직한 ‘자색’ 빛을.
세라스에게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느낌을.
“…!”
틀림없이.
‘그릇’의 징조였다.
세라스와 똑같은 색깔의 악마를 품은.
“당신들이 그걸 협력해주셨으면 좋겠구요.”
“…”
이어서, 심사석의 다우드가 얼굴을 싸매는 모습이 보였다.
다 때려칠까, 씨발.
대충 그렇게 말하는 몸짓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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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