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40)
Chapter 239 – 239. 야밤의 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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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가 이쪽에 입부한 목적은, 분명히 자기 언니를 죽이고 싶어하는 거라고 했던가.
[…다시 들어도 너무한 것 아니냐?]‘…진심은 아닐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에서 손님 대접을 위한 차를 준비하는 빅토리아를 바라본다.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가는 무표정만 시종일관 짓고 다니는 녀석치고는 대단히 상식적인 손님맞이다.
‘제국에서 아인종에 대해 엄격한 차별법 시행 중인건 아시죠?’
인간 안에서도 특히 ‘다른 종’의 특질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걸 아인종이라고 한다.
일전에 대충 한 번 봤지만, 세라스 머리 위로 드러난 동물귀만 봐도 대충 무슨 소릴 하는 진 이 사람도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한다.
[알지. 역겨운 법이라고 생각해.]“…”
정의와 선을 일생토록 지키기로 마음 먹은 가디언들의 수장이었다지만, 이렇게 시원스레 수긍할 줄은 몰랐으니까.
보통 성취를 이룬 기득권층은 기성 제도를 감싸고 도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이 사람 정도면 그래도 그런 층에 들어갈 정도니까, 뭐라고 변명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애초에 그거 구시대 악습같은 거잖냐. 폐지하기에는 남은 아인종 숫자가 너무 적어서 화제로 올라오는 경우가 없었을 뿐이고.]‘…그럼 이야기하긴 편하겠네요.’
최소한 내가 무슨 말을 꺼냈을 때 이 사람이 거품을 물면서 반박하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눈앞의 빅토리아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하고 세라스는, 그 얼마 안 남은 아인종 일족의 생존자입니다.’
[…]‘생존자’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날아오는 침묵에, 나도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이 사람도 그 단어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알아차렸을 테니까.
아인종은 기본적으로 인간처럼 생겼고, 인간처럼 행동하지만, 제국법에 의해 ‘인권’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동물 취급이랑 똑같다고.
바꿔 말하면.
그걸 ‘재미 삼아’ 사냥하는 인간 말종들도 더러 있었을 거란 뜻이다.
[뭐?]못 들을 걸 들었다는 칼리반에게는 유감이지만, 아인종 사냥은 일부 귀족들에게 실제로 유행했던 ‘스포츠’다.
특히 그 신체 능력과 은밀함을 살려 암살자로 활약하던 일이 잦았던 ‘수인종’들은 그런 악독한 짓거리에 표적이 되기도 쉬웠을 테고.
학살 행위에 ‘정의를 위한 숙청이다’, ‘미래를 위한 포석이다’ 따위의 고리타분한 헛소리를 붙이기에 딱 좋다는 소리다.
[…그딴 일들이 실제로 있었다고?]서슬퍼런 분노가 담겨있는 목소리에 나도 말을 삼킨다.
제국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던진 이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세라스와 빅토리아는 그 피해자고.
이 녀석이 자기 언니를 죽이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의 근원은, 그렇게 생존자로서 본인이 살아남았던 과거에 적을 두고 있다.
‘자기 언니 때문에 자기 가족이 다 죽었다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하는 소리일 겁니다.’
[…야, 잠깐. 잠깐만. 설명이 엄청 생략되어 있긴 한데.]칼리반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 것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방금 얘 진심이 아닐 거라며. 그런 사정이 있으면 누가 봐도 진심이 될 사유가 충분한데?]‘정확히는, 그렇게 의심만 하고 있는 거에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으니까.’
복잡한 감정이겠지, 자기도.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다. 불구대천의 원수로 취급하려고 해도 불확실한 심증만 가지고서는 그 정도까지 험악하게 굴기 힘든 법이다.
다 우린 차를 담긴 잔 두 개를 들고 오는 빅토리아를 보며 문장을 잇는다.
‘그러니, 아마 그렇게까지 심각한 소리를 할 확률은 꽤 낮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다시 건너편에서 말이 날아들었다.
“먼저 언니를 죽이는 쪽이 승리하는 걸로 하죠.”
“…”
빅토리아가 그런 말을 주워섬겼다.
배가 고프니 밥을 먹자는 식으로. 너무 당연해서 뭐라고 말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그리고 그런 태도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빨조차 들어가지 않을만큼 확고한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도 확실히 느껴진다.
[…진심 아닐 거라며?]‘…음.’
[눈이 한없이 진심인데?]‘그러니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겠죠.’
나도 지끈거리면서 몰려오는 두통을 애써 가라앉히며 그렇게 답한다.
시야 끄트머리에 걸려있는 것은, 자색 기운이 올라오고 있는 빅토리아의 눈동자다.
세라스 관련된 화제를 꺼낼 때에 맞춰 이 녀석을 마치 ‘잠식’하는 것 같은 모양새다.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는 듯이.
전에도 말했지만, 악마의 조각은 서로 합쳐지려는 성질이 있다. 각자 조각을 하나씩 품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합일’을 위해 그릇을 부추기는 상황이야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단 거지.
그리고 내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기간이 길어지자, 건너편에 있던 빅토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눈에 들어온다.
“승부를 제안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종목은 자유롭게 정해오라고 하셨으니, 그쪽을 먼저 죽이는 쪽이 이기는 걸로도 바라시는 ‘승부’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뭐가 문제냐는 어투다.
승락하는데 뜸 들일 이유가 있냐는 것처럼.
[…거절하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칼리반이 머리가 지끈거린단 기색으로 그런 말을 꺼내들었다.
[누굴 죽이느니 어쩌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짓에 협력하는 건 둘째치고, 애초에 말장난이잖아. 입부 목적이 자기 언니를 죽이는 거라면서 이런 걸 요구하는 건 좀-]확실히, 그렇기는 한데.
그런 말을 듣고 있으니 번뜩이는 게 있다.
“하자, 그러면.”
칼리반의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이런 대답이 튀어나온 건 그 영향이었을 것이다.
“…”
빅토리아의 손이 덜컥 멈췄다.
방금 자기가 뭘 잘못 들었나- 하는 기색이다.
“…예?”
반응을 보아하니, 본인이 정말로 그걸 하고 싶어한다는 것과 별개로 내가 이렇게 쿨하게 OK할 줄은 몰랐다는 기색이다.
아마 이런 말을 던져서 내쪽에서 아쉬운 소리를 뽑아내고, 그걸 기반으로 뭔가 ‘협상거리’를 제안할 생각이었겠지만.
“하자고. 네 언니 죽이는 거. 누가 먼저 하나.”
씩 웃으며 말을 받는다.
내 말을 들은 빅토리아가 처음 이 녀석의 제안을 들은 내 꼴이 되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잇는다.
“대신 내가 한 약속도 똑바로 지켜야 한다?”
‘승부에서 패배할 경우 내게 복종한다’라는 것 말이지.
“…”
빅토리아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내 문장에서 뭔가 불길함을 느낀 게 분명한 모습이었다.
●
[…]“…”
[…]“…”
복도를 걷는 도중에, 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푹 내쉰다.
소울 링커 안에서 날아오는 침묵이 따갑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 있는 느낌이다.
“…칼리반.”
[음?]“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세요.”
[아니, 이제 나도 물어보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건 알거든.]“…”
[‘대체 무슨 생각이냐?’같은 거 물어봐서 뭐하냐. 어차피 이번에도 또 무슨 미친 씹지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텐데…]“…”
이 사람 안에서 내 평가는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거냐는 질문이 순간 떠올랐지만, 굳이 입 바깥으로 꺼내놓지는 않는다.
이 사람 말대로,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아는 것이 있거든.
“…빅토리아는 하자고 한 이상 진짜로 하긴 할 겁니다.”
자색 악마의 영향을 받는 것도 있고, 저 녀석도 두 말하는 녀석은 아니니 이렇게 서로 말이 맞춰진 이상 진짜로 세라스에게 한 번 달려들긴 할 거다.
다만.
“준비는 좀 필요하겠죠.”
당연한 일이다.
빅토리아 본인도 대륙 제일의 암살자로 꼽히는 그랜드 어쌔신의 반열에 들어간, ‘사람’을 쳐죽이는 일이라면 달인의 영역에 접어든 놈이지만.
세라스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런 칭호를 유지하고 있던 기간을 생각하면 녀석 쪽이 더 압도적으로 길기도 하고.
동선도 확인하고, 역량도 가늠하고, 가장 확실한 때를 찾아서 못 피할 일격을 꽂아넣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가닥이 잡힌 시점에서 내가 이긴 거다.
나는.
당장 ‘저지를’ 생각이거든.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의 문에 노크한다.
“네- 나가요-”
이 시간에 누구야, 진짜-
그렇게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빼꼼 열렸다.
“…어, 서, 선배…?”
현관 안쪽으로는 내 방문에 당황하여 말을 더듬는 세라스의 모습이 보인다.
빅토리아와 말을 끝내자마자 곧장 이쪽에 방문하긴 했지만, 그래도 꽤 늦은 시각이다. 머리 위에 수면 모자를 쓰고 땡땡이 무늬가 새겨진 잠옷을 입고 있는 게 눈에 띈다.
“…”
취향 한 번 파멸적이네.
내 주변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유리아조차 애 취급하냐고 진절머리를 치며 도망갈 옷이었고, 본인 또한 그런 꼴로 내 앞에 선게 어지간히 부끄러운지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이, 이건, 그러니까… 잘 때는 편한 게 좋아서-”
“들어가도 될까?”
녀석의 말을 툭 자르며 그런 말을 꺼내든다.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단둘이.”
“…”
내 기색을 본 녀석의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이 눈에 그대로 들어온다.
내 기색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지.
야밤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자기 방으로 찾아온 남자. 심지어는 반드시 단둘이 이야기 해야 한단다.
거기에.
“중요한 용건이야. 너랑 나 사이에서만 할 수 있는.”
“…아, 네, 네에에…?”
이런 말까지 들으니, 아마 제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것이다. 하얀색 땡땡이 잠옷에 수면 모자를 쓴 덕분에 얼굴에 깃드는 홍조가 더욱 대비된다.
귓볼까지 붉어진 게 토마토조차 상대적 창백함을 느낄 수준이다.
“들여보내줄래?”
“…그, 그럼요…”
녀석이 홀린듯이 나를 방안으로 들였다. 이미 이런 차림으로 나와 마주친 게 쪽팔리느니 어쩌느니 하는 건 뇌리에서 떠난 모습이다.
머릿속으로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하고 가늠이 안 가서 망상이 폭주하고 있을 게 분명하지.
그리고, 음.
솔직히 말해서.
그런 망상에서 아주 크게 벗어난 상황은 아니다.
현실감이 없다는 표정으로, 녀석이 방 안에서 양초를 부스럭거리면서 꺼내놓았다.
최소한 서로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자는 뜻이겠지만.
‘…필요 없을 텐데.’
내가 지금부터 이 녀석과 할 짓에는, 오히려 조명이 있으면 불편하다. 서로 그렇겠지.
양초에 불을 붙이려는 녀석의 손목을 턱 잡는다.
“세라스.”
“이히이이익-!”
“…”
그렇게까지 놀랄 건 없지 않냐.
귀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화들짝 놀란 녀석이 이내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눈에는 살짝 눈물까지 맺혀있다.
“…네, 네에 선배애…”
녀석이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꺼내놓는 대답에,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쉰다.
상태가 별로 안 좋아보이는 걸. 굳이 이야기를 길게 끌면 좋을 것도 없겠다.
그러니.
“우리, 기분 좋은 일 할까?”
직설적으로 펀치를 꽂아넣는다.
“…”
녀석의 입이 떡 벌어진다.
소울 링커 안의 칼리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리는 것 같은 기색이다.
“…서, 선배?”
세라스가 팽글팽글 돌아가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기분 탓인지, 녀석의 시선이 자꾸 본인의 침대와 나를 번갈아가며 왕복하는 느낌이긴 하다.
마치 내가 한 말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그쪽에서 상관 관계를 느낀 것처럼.
“그, 그러니까,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 그, 그런거죠? 네?”
“…음.”
인상을 찌푸리며 턱을 쓰다듬는다.
그래. 그게 저렇게 오해할 수도 있는 말이라는 건 이해한다.
조금 더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야겠지.
“죽을만큼, 기분 좋게 해줄게.”
“…”
[…]다시, 세라스와 소울 링커 안의 칼리반이 동시에 침묵한다.
[…죽인다는 게 ‘그거’로 죽이는 거였어?]아니.
‘어떻게’ 죽이라고는 말 안 했잖아.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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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