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44)
Chapter 243 – 243. 거울 치료
●
빅토리아 에바트리체는 얼빠진 기색으로 본인의 개인실에 멍하니 누워있었다.
이쪽에서 의식을 되찾은 게 바로 방금의 일이다.
“…”
물론, 의식을 되찾은 게 방금이라고 해도, 기억은 대단히 똑똑히 남아있었다.
그녀가 멍하니 입술을 메만졌다.
그러니까, 방금.
이걸로, 뭘 했더라.
“…”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 뒤쪽으로, 방금 전까지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그러니까.
뭔가 넋이 나간 기색으로, 다우드 캠벨에게 제발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애원하더니.
그대로 아양 떨 듯이, 그 인간의 손에다가-
“…”
아.
그러니까.
“…!”
빅토리아의 눈이 확 크게 떠졌다.
감정 표현이 드문 그녀로서는 이례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얼굴에 확연한 홍조가 드리운 상태기도 했다.
“…나한테, 무슨 수작을 부린거야…!”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는 있었지만.
냉철한 이성은 그런 말을 실시간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그랜드 어쌔신이라는 호칭은 카드 쳐서 따낸 것이 아니다. 정신 간섭계 술식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런 관점에서.
그 남자는, 딱히 아무 수작도 부리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뭔가 하긴 했는데, 그건 결코 그녀를 ‘강제로’ 굴복시켜서 행동을 조종하는 종류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솔직하게’ 만드는 선에서 그친다고 해야 할까.
“…익.”
그녀가 그런 소리를 저도 모르게 흘렸다.
그러니까, 그거 말이지.
솔직히 말해서.
다음에 또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또, 하지 않을까.
“…이이익…”
지금와서 다시 반추해 봐도.
아무런 혐오감도, 불쾌함도, 하다못해 수치심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짓을 할 때, 가슴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충족되는 만족감과 쾌감을-
“이익, 이이익…!”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빅토리아가 이를 악물고 베개를 줘패기 시작했다.
애꿎은 베개는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다 봉변을 당한 격이었으나, 쏟아지고 있는 빅토리아의 분노는 가라앉을 기색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건, 안 좋은 일의 책임 소재가 남한테 없을 때라고 어떤 현인… 비스무리한 누군가가 말한 바 있다.
남 탓도 못 하니까.
빅토리아의 경우에도 그게 똑바로 적용되는 말인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녀가 언니에게 흉흉하게 발하던 살기도 접고 저지른 그런 부끄러운 일이 그녀 ‘본인’의 의사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본때를 보여주겠어…”
뭘 어떻게 보여주겠다는 건진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당장 이런 말이라도 중얼거리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본때를 보여주겠어, 다우드 캠벨…!”
대단히 강력한 원한과, 그것 이상의 부끄러움으로 똘똘 뭉친 조그마한 수인 소녀의 외침이 방 안으로 맹렬히 떨어졌다.
●
[생각을 좀 해봤는데 말이야.]“네?”
다음 날 아침.
어떤 녀석들이 하도 열심히 핥아대는 바람에 살짝 불어있는 손가락을 닦아내고 있자니, 문득 그런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너도 결국 그쪽 못 죽인 건 매한가지 아니냐?]“…”
[아직 승부 진행 중이잖아?]어.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애초에 기분 좋은 걸로 죽이겠다니, 그게 대체 뭔 해괴망측한-]“아니, 그게 원래대로는 안마 열심히 해주다가 세라스 입에서 ‘이러다 죽어요’ 같은 소리 나오면 그걸로 카운트하려고 했는데…”
[…]“그게 말이 되냐고 안 물어보셔도 괜찮습니다. 우기면 보통 어떻게든 되니까.”
꼬우면 ‘죽는다’는게 뭔지 제대로 성문화해서 덤볐어야지.
아무튼, 뭐.
“그쪽도 이제 함부로 덤벼들진 않겠죠. 당장은 그거면 충분합니다.”
한 번 된통 봉변을 당했으니까 당분간은 그쪽도 세라스에게 접근하는 것보단 거리를 두고 살피는 쪽을 택할 것이다.
빅토리아 자체가 나 이상으로 안전주의 성향이 강한 녀석이거든. 뭐든 신중하게 가져가려 할 거다.
‘…그러면 조금 더 극적으로 준비해도 괜찮겠지.’
세라스와 빅토리아가 한 번 마주친 걸 보고 떠올린 생각 한 가지.
저 자매 사이의 골은, 생각보다 깊다.
아무리 악마의 조각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지만, 설마하니 ‘진짜로’ 그렇게 칼을 꽂겠다고 다짜고짜 달려들 줄은 몰랐다.
기껏해야 애증 수준에 걸친 관계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보이지 않나.
[그러면, 어떻게 하게?]“화해를 주선해야죠.”
목표는, 엘판테 학예회를 기점으로 저 둘을 화해시키는 거다.
거기에서 곧바로 메인 퀘스트인 제국 대분란으로 이어질 테니, 그 이후로는 나도 신경을 써주기 힘든 게 사실이다.
둘이 이미 메인 퀘스트의 핵심 인물이 될 거라는 시스템 메시지까지 떠오른 판국에 계속 저 상태로 내버려 둘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다리 놔주는 것도 양쪽이랑 다 시아가 좋아야 가능한 것 아니야?]내가 그 아가씨면 너한테 그런 일을 당하고도 좋아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그런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내 표정도 찡그려진다.
확실히, 그게 문제다. 그것부터 해결해야 할 방법을 생각해야겠지. 좀 골 아프긴 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창이 떠오르기 전까진.
[ System Message > [ ‘스킬: 치명적인 매력’이 발동합니다! ] [ 대상의 호감도가 ‘관심 1단계’로 격상합니다!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 대상 관련된 이벤트가 곧 발생합니다! ]“…”
하도 오랜만에 보는 창이라 나도 모르게 눈을 끔뻑거린다.
아니, 그러니까.
딱히 이게 뜬금없이 떠오르는 상황에 대해선 이제 별로 관심도 안 간다. 지금까지 숱하게 있어 왔으니까.
그거보다 놀라운 점이라면, 역시 마지막 문장일 것이다.
‘관련된 이벤트’라는 것 말이지. 바꿔 말하면…
“…아직도 내가 꼬실 여자가 남아있다고?”
[…방금 그 대사 끝내주게 난봉꾼 같았어.]칼리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눈앞의
“…몇 명 남았죠?”
[파란 녀석, 붉은 녀석, 황제 폐하, 그리고 그 공녀님.]“…”
하나같이 다 무시무시한 인간들뿐이네.
특히 마지막은 뭘 들고 올지 짐작조차 안 된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어떻게든 될 겁니다.”
지금까지 전부 다 그렇게 넘겨오지 않았던가.
여태 살아남아온 내 존재 자체가 그게 가능할거라는 내 능력 증명서나 다름없다.
[사실 나도 요즘 그런 생각하기는 해.]“예?”
[그 총장님이 너한테 하렘 만들라고 부추기는 것 말이야. 나도 요즘엔 슬슬 이해가 가거든.]“…뭐가요.”
악한 놈들에게서 강제로 사랑받는 내 체질 때문에 한 말 아닌가.
그걸 이제와서 이해한다는 건 또 무슨-
[넌 하반신으로 세계 평화를 이룩할 수 있어.]“…”
[농담 아니니까 한 번 진지하게 이 문장에 대해 생각해보도록-]“아가리.”
적당히 쏘아붙이며 나갈 채비를 마친다.
몸에 살짝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세라스와 빅토리아의 ‘승부’는 학예회까지 미뤄놓는다 치더라도, 다른 인간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한테 승부라는 걸 들이밀지 모른다.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개인실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대단히 껄끄러운 인간과 마주쳤다.
“선배님 아닌가!”
“…”
“짐… 아니, 본녀 좀 따라오거라!”
후배는 선배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황제 폐하.
그렇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걸 걷어차서 내려보내는 대신 싱글벙글 웃고 있는 황제 폐하에게 그대로 손목을 붙잡혀 질질 끌려간다.
“잠깐만, 폐ㅎ…!”
“세실.”
“…예?”
“세실이라고 부르게나. 어떻게든 돈을 모아 엘판테에 입학한 평민 학생. 그게 바로 나일세.”
“…”
뭐라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 손목을 끌고 가는 황제 폐하의 얼굴에 서린 단호함은 거의 대쪽 같은 수준이었다.
표정이야 웃고 있지만, 이 ‘컨셉’을 방해하면 내 머리통이 쪼개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 정도는 간단하게 불어넣을 수 있을만큼.
“…예, 세실.”
“승부 내용을 정해왔네!”
그 말을 듣자마자, 내 표정도 살짝 진지해진다.
‘…생각해보면.’
아직 이 사람이 우리 동아리에 입부하려고 한 ‘진짜 목적’은 듣지 못했다.
다짜고짜 이런 웃기지도 않은 컨셉질을 하면서 학원에까지 들어온 걸 보면 분명 뭔가 노리는 게 있다고 봐야 타당한데.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는 말게나. 나는 정말 목숨을 걸고 그대에게 이기려 달려들 생각은 없다네. 그거보단… 지금 이 시간을 즐기는 게 우선이지.”
“그러면,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승부에서 나한테 편파 판정을 내리도록 매수해둔 심판이 있는 곳으로.”
“…”
즐기러 왔다며.
이길 생각 만만이잖아.
“그거야 만약 승부에 져서 꼼짝없이 그대 말을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된다면,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 중 절반은 못 하게 될 것 같단 말일세.”
“…”
“그러니 얌전히 패배해주면 안 되겠나?”
“…일단 들어나 봅시다, 폐ㅎ…”
찌릿하는 시선에 간신히 말을 바꾼다.
“…세실.”
내 말을 들은 폐하가 싱긋 웃었다.
사전에 고지한대로 나를 데려간 곳은 고문실이다. 원래대로는 우리 동아리의 고문을 맡기로 한 페르시가 앉아있어야 할 곳이다.
심판으로 매수했다는 게 이 사람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폐하가 거침없는 동작으로 교수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물론이고 황제 폐하의 몸이 동시에 굳었다.
“어서오시지요, 다우드 학생. 세실 ‘학생’.”
마지막 학생에 웃기지도 않은 짓 좀 하지 말라는 듯 악센트가 들어간 문장이 인사말로 날아왔다.
지금 여기까지 오면서 얼굴에서 한 순간도 미소가 사라지지 않던 황제 폐하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싹 지워지기도 했다.
“…설리번 재상. 지금 여기에서 뭘 하는 건가.”
“어머, 재상이라니요?”
윤기있는 금발에 화사한 브로치와 머리띠를 추가한 설리번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나이를 생각하면 주책이라는 말 들어도 할 말 없을 만큼 대책 없이 발랄한 스타일링이다.
그걸 마치 뽐내듯이 한 번 찰랑이며, 설리번 재상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번에 아카데미에 신임 교사로 취임한 설리라고 합니다만.”
“…”
“오늘부로 퇴마부의 고문을 맡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폐하, 아니, 세실의 얼굴이 마치 메슥거리는 광경을 본 것처럼 급격하게 구겨졌다.
점심으로 먹던 샌드위치에서 바퀴벌레가 기어 나오는걸 구경해야 저것의 근사치에 가까운 표정이 나오겠지.
“…체면과 품위를 좀 알게, 설리번. 주책이라는 생각 안 드나.”
“…제국 위정자 주제에 여기에 잠복해 있는 당신이 그런 소릴 지껄입니까?”
“애초에 설리라니 그게 대체 무슨 역겹기 짝이 없는 이름인가. 짐이 즐기고픈 한 순간의 유흥도 똑바로 협조 못 해준단 말인가-!”
“그 유흥이 저 남자를 끼고 이뤄지는 것만 아니었으면 저도 신경도 안 썼습니다-!”
험악한 기색으로 격한 말을 연신 주고받는 여자 두 명을 두고,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이게 거울 치료인지 뭔지 하는 그거냐?
[맞을걸?]그렇죠?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