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51)
Chapter 250 – 250. 접촉
●
“엘리야.”
“…”
“엘리야!”
“…”
“대답 안 하면 부수고 들어간다?! 지금 진짜로 급한 일 있어!”
어라.
보통 이런 대사는 엘리야가 다우드한테 하는 편인데, 남한테 들으니까 좀 색다르긴 하다.
침대에 누워 흐린 눈으로 천장을 쳐다보던 엘리야가 멍하니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야, 너 정말로…! 됐어, 진짜 들어간다!”
그런 말과 함께, 정말로 문이 부서지듯이 열렸다.
“너 지금 며칠째 뭐 하는 거야! 오늘은 아예 수업도 다 빼먹…!”
그런 문장을 이어가다가 할 말을 잃어버린 표정의 트리샤가 엘리야의 흐린 시야 너머로 간신히 포착되었다.
어느 것을 보고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는 그녀로서도 잘 알 수 없었다.
고주망태가 되어 속옷만 달랑 입고 대자로 뻗어있는 그녀 본인인지, 아니면 침대 옆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빈 술병의 피라미드인지.
“…”
한참을 침묵하던 트리샤가, 이내 두통이 올라온 게 분명한 이마를 양손으로 감싸며 신음처럼 말을 흘렸다.
“…내가 너 옆에 붙어있어야 했는데.”
“…엉?”
“이제 용사라고 독실 쓴다고 갈 때부터 걱정되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게 뭐야. 너 은근히 마음 약한 거 내가 알고 있었는데…”
“…”
사실, 조금 억울한 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야가 매사에 이런 식으로 구는 건 아니었으니까.
굳이 감정을 눈으로 볼 필요도 없었다.
매사에 싹싹하고 똘똘하게 구는 엘리야가 이 정도로 비정상적이 되는 이유라면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또 그 다우드 씨 때문이지?”
그러니까 말이지.
사랑이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든다는 건 트리샤도 아주 잘 아는 사실이다. 감정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그녀보다 그런 걸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폐인이 되어 버릴 건 또 뭐란 말인가.
“대체 왜 그러는데. 뭐가 문제야?”
“…”
엘리야가 그 말에 말없이 술병을 다시 입으려 기울이려고 했다.
트리샤가 득달같이 그걸 채어가 버려서 원하는 바를 이루진 못 했지만.
“뭐야, 뭐하는-”
웅얼웅얼 따지려던 엘리야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수그러들었다.
호랑이를 방불케 하는 기백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트리샤의 눈을 마주친다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당장 말해. 아니면 진짜 화낼거야?”
“…”
늘 생글생글 웃어주며 말을 잘 받아주는 착한 친구일수록, 이런 협박을 할 때 파괴력은 어마무시하기 마련이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엘리야는 떠듬떠듬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나, 선생님한테 고백했거든.”
트리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 그래서? 뭐라고 하셨는데?”
“…몰라.”
“…뭐라고?”
“아직 대답 못 들었어.”
트리샤의 눈이 쭉 가늘어졌다.
그러면 대체 이런 꼴을 하고 있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아직 대놓고 차인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하며 뭐라고 한 마디 더 얹으려던 트리샤의 입이, 문득 딱 다물렸다.
시야 끄트머리로 엘리야의 감정이 미묘하게 움직이는 걸 봤기 때문이다.
저 움직임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
아니, 설마.
설마 싶긴 하지만.
“엘리야.”
“응?”
“너 지금, 그냥 ‘차일까봐 무서워서’ 이러고 있는 거야?”
“…”
엘리야의 입이 딱 다물렸다.
실제로 찔끔한 것처럼 감정의 기복이 팍 튀어 오른다.
트리샤가 기가 막히다는 기색으로 엘리야를 노려보다가 이내 머리를 감싸쥐었다.
“화상아. 이 화상아. 아무리 콩깍지가 씌여도 그렇지, 아무 대답도 못 들었는데 지레 겁먹어서 폐인이 되는 인간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어? 용사가, 인류의 희망이 고작해야 남자 한 명한테 이러고 있단 소리 들으면 지나가던 개가 웃어!”
“아직 그게 맞단 소린 안 했는데.”
“그럼 아니야? 다른 이유가 있어?”
“…선생님한테 고작 남자 한 명이라고 하지 마.”
반박이 나오는 대신에 그런 중얼거림만 소심하게 흘러나오자, 트리샤가 기가 막히다는 시선으로 엘리야를 노려보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트리샤가, 이내 마른 세수를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고, 거기에 대해 뭐라 왈가왈부 따지는 건 나중에 해도 좋으니까. 빨리 옷이나 입어. 용사가 이런 꼴로 있으면 지금 찾아오는 사람한테 웃음거리도 안 되니까!”
“아, 그래. 황제 폐하라도 되신데? 거기까진 내가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는데.”
“…뭐?”
“이상한 소리 하러 오는 거면 쳐낼 수도 있고. 선생님 관련해서 이상한 소리 할 거면 조금 목소리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
“…최근 그쪽이 선생님 보는 시선이 조금 심상치 않-”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옷이나 입어!”
엘리야의 입에서 더 불경한 소리가 튀어나오기 전에, 트리샤의 기함과 함께 엘리야의 얼굴로 바지와 제복 상의가 날아들었다.
결국 엘리야가 늘어지는 표정으로 일어나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는 사이, 트리샤는 엄청난 속도로 어지러운 방 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상급생 기숙사를 맡고 있는 전속 메이드들이 보았다면 후배로 삼겠다고 벼를 만큼의 속도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오길래 이렇게 호들갑이야?”
“만나보면 알아!”
“…어차피 좀 후줄근한 상태여도 용사한테 그런 불만을 토할 사람은 없을 텐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렇겠지, 평범한 사람이면!”
엘리야가 늘어지는 목소리로 꺼낸 대답에, 트리샤가 비명 같은 목소리로 답했다.
엘리야도 문득 눈을 가늘게 뜰 만큼 묘한 기색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중에서도, ‘평범한’ 보다는 ‘사람’ 쪽에 좀 더 비중이 쏠린 것 같은 말투다.
평범하지 않은 게 문제가 아니라 같은 사람인 게 의심된다는 듯이.
“지금 찾아오는 분은-!”
다행히, 그런 의문을 오래 지속시킬 필요는 없어보였다.
트리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개인실 안쪽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자마자, 엘리야의 입도 쩍 벌어졌으니까.
‘그것’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끔찍할 정도의 이질감이 실내로 떨어졌다.
세계를 이루고 있는 어떤 일정한… ‘법칙’에서,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존재.
걸음을 걸을 때마다 쿵, 쿵 울리는 웅대한 소리와 더불어, 일반인의 수 배는 자랑하는 덩치.
수도승을 연상케하는 로브에 가려져 있지만, 그 ‘신체’의 모든 것이 매끄러운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다.
‘…아니, 아니, 그냥 강철이 아니라…’
정교하게, 그 아래 수많은 ‘기능’들을 숨기고 있는 강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강철의 거한에 가까운 형태.
아마, 다우드라면 ‘사이보그’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렸을 모습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용사.”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주섬주섬 머리를 매만지던 엘리야의 팔이 딱 멎었다. 옷 아래로는 절로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고 있었다.
딱히 목소리에서 어떤 대단한 아우라가 느껴져서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분위기라던지, 감정이라던지.
‘인간성’의 편린이라고 할 만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번에도 다우드가 봤다면 ‘기계음’이라는 단어를 단박에 연상시킬 소리겠지.
“만나서 반갑습니다, 용사. 마탑의 집행관 알파-11이라고 합니다.”
마탑의 집행관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그것’이, 강철로 만들어진 기계 의수를 그녀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음새조차 없는 매끄러운 통짜 강철로 만들어진 의수.
“만날 사람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만.”
“…”
그런 문장에 엘리야는, 문득 어떤 운명마저 느끼고 있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느닷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찾아오면 항상 한 쪽과 관계가 있었으니까.
“혹시, 찾으시는 분이 누군지 여쭈어도-”
“다우드 캠벨입니다.”
“…”
그럼 그렇지.
●
사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건 루시엔에게 있어 천직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대규모의 종교 행사, 가끔씩 있는 사교회, 하다못해 매일 있는 소소한 미사든 기도회든 성녀라는 직책에 앉아있는 이상 그런 것들을 주도하는 건 항상 그녀의 역할이었으니까.
“…잠깐만. 저거 성녀님 아니야?”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어, 이 사람이. 그런 으리으리한 분이 이런 곳에 나올 이유가 뭐가 있단 말-”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지나치던 행인 두 명이 문득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진짜 같은데…?”
“그렇지…?”
“…”
본인이 맞긴 하다. 아마 지나가는 사람은 열이면 열 그녀의 외모를 보고 그녀를 알아봤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녀가 진짜 성녀가 맞는지 의심하는 이유라면.
“그런데, 그러면 성녀님과 같이 있는 인간은 누구란 말인가…? 그 옆에 있는 조그마한 여자는 또 뭐고…?”
다우드와 유리아다.
루시엔은 지금, 이 인간들과 더블 데이트를 한다는 항목으로 지금 시가지를 걷고 있다.
“…”
자매를 양팔에 끼고 대로변을 활보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부터가 뇌를 새하얗게 만들지만, 그것 이상으로 루시엔이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녀는 연애 금지 아니었나…?”
“그, 그렇지…? 그러면 저게 진짜 성녀님일 리가 없지.”
그러니까, 그녀가 몸을 움츠러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성녀라는 직책은 내려놓은지 오래였지만, 지금도 길에 나서자마자 근처에서 쏟아지는 행인들에게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를 제대로 밝힌다면 그녀의 평판은 그야말로 나락에 처박힐 것이다…!
‘부끄러워…!’
눈이 팽글팽글 돌아간다. 전신에 열감이 깃든다.
만약 누군가 그녀가 ‘진짜’ 성녀라는 걸 확신하고, 이런 꼴을 하고 있다는 게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걱정 마십쇼.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관심이 없어요. 괜히 유명 인사들이 조금만 꽁꽁 싸매고 나가도 사람들이 잘 못 알아 본답니까.”
“…다우드 씨.”
“네?”
“제가 지금 ‘이걸’ 차고 있지만 않았어도 이 정도로 무서워하진 않았어요…!”
그녀가 눈물 맺힌 눈으로 부들부들 떨며 그런 말을 뱉어내었다.
손가락은 자신과 유리아의 목 근처를 가리키고 있다.
여기에 채워져 있는 건, 그러니까.
‘투명 목줄’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안 보이겠지.
엑토플라즘을 넣어서 불칸 교수에게 외주를 맡겼다나.
“…”
대체 그녀와 유리아에게 목줄을 채우고 걷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그런 고급 재료를 퍼부어서 투명 목줄까지 만들었단 말인가.
“그럼 뭐, 제가 진짜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유리아한테 목줄 채우고 애완견 산책시키는 것처럼 굴 줄 아셨습니까?”
“…어느 정도는요.”
“세상에,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당신이 여태 해왔던 짓을 생각하고 말씀하세요-!”
그럼 안 하는 게 더 이상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이 남자가 쌓아온 사회적 평판을 생각하면 오히려 정말 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
왜 이제 와서 상식적인 척이란 말인가.
그런 문장이 루시엔의 머릿속으로 순차적으로 떠오르는 사이, 옆에서 암전히 걷고 있던 유리아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난 괜찮은데.”
“…”
“언니는, 싫어…?”
“아, 아니, 그, 그렇게 싫지는 않아…”
루시엔이 볼을 파들거리면서 그렇게 답했다.
요 근래 유독 상태가 안 좋았던 동생에게 모진 소리를 차마 할 수가 없었으니까.
대신, 그녀가 뾰로통한 기색으로 다우드에게 다시 쏘아붙였다.
“하, 하지만! 당신도 좀 적당히라는 걸 알아야 해요! 아무리 저희가 당신이 하자는 건 전부 다 해주고 있다지만, 이런 식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
“…제가 요구한 건 아닌데요.”
“…”
루시엔이 멍청하게 입을 다물었다.
간신히 말을 이을 수 있었던 건 한참 뒤였다.
“…예?”
“제가 한 것 아니라구요.”
“그럼 누가…?”
그 말에, 다우드 대신 유리아 쪽에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이거 내가 다우드 씨한테 하자고 한 건데.”
“…”
“언니도 같이 하자고 한 것도 나구…”
루시엔의 머릿속으로 벼락이 꽂히는 수준의 충격감이 찾아들었다.
눈앞에 그거 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다우드의 모습이 유독 꼴 보기 싫었다.
“…왜, 왜 이런 짓을…!”
“배덕감이 있잖아.”
“…”
“주인님, 아, 아니, 다우드 씨한테 이런 식으로 당하는 건, 꽤, 기, 기분 좋단 말이야…”
“…”
“언니한테도, 알려주고 싶어서…”
잔뜩 붉힌 얼굴로.
하지만 꽤 또렷한 얼굴로, 숨길 수 없는 열감이 녹아있는 그 목소리로, 그런 말을 중얼거린다.
“…”
루시엔이 거의 혼절하기 직전의 상태가 된 사이, 다우드는 만족스러운 눈으로 눈앞의
지금 이 상태가 어찌되었건, 당장 아무튼 소기의 목적은 확실히 달성하고 있었으니.
‘…고속충전기가 따로 없네.’
하얀색 악마의 마기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차오른다.
대상과 ‘긴밀한 접촉’을 하면 할수록 인장의 마기가 더 빠르게 충전된다고 했다.
그래서 유리아를 찾아가 가장 하고 싶었던 걸 물었더니, 이거란다.
언니랑 같이 목줄 차고 산책.
“…”
나중에 어떤 종류로든 정신 교육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장은 이걸로 된 게 틀림없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생각을 떠올리는 그의 눈앞으로, 문득 그림자가 드리웠다.
느닷없이 하늘이 어두워진 건 아니고, 그 눈앞으로 갑자기 ‘거체’가 나타났기 때문이겠지.
“…”
저도 모르게 위를 올려다 본 다우드가 곧바로 움찔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볼 거라곤 상상도 못한 존재가 거기에 있었으니까.
“…사이보그?”
“죄송합니다만, 그런 존재는 식별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과 헷갈리신 것 같군요.”
심지어 목소리까지 기계음이다.
다우드가 눈을 끔뻑거리며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사이보그가 문득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루시엔으로서는 문득 정신이 번쩍 드는 시선의 움직임이었다.
그녀의 목과 다우드의 손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마치 그걸 ‘연결’하고 있는 게 뭔지 눈에 보이는 것처럼.
“엑토플라즘 목줄이라. 신기한 장비군요. 고급 재료를 그렇게나 써서 그런 잡동사니를 만들다니요. 틀림없이 특정한 목적이 있겠지요.”
“…”
“성녀님께서는 무슨 연유로 그런 걸 착용하고 계신건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루시엔의 얼굴이 폭발할 것처럼 새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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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