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9)
r 28 – 28. 정화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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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급 회복 포션 x2
[ 아이템: 소모품 ] [ 가격: 1,000pt ] x2 [ 가벼운 부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 [ 남은 포인트: 0pt ] [ !경고! ] [ ‘정화자’ 보스전 진행중입니다. 상대방이 내뿜는 마기의 영향으로 회복이 둔화됩니다. ]거 하급 주제에 더럽게도 비싸다.
세라 세계관은 포션이 워낙 희귀한 물건이라 그렇다지만. 그나마도 보스전 중이라고 효과마저 영 시원찮은 건 선 넘었지.
실제로 남은 포인트를 탈탈 털어 구매했음에도 그냥 뒤틀린 관절 몇 개에서 올라오는 통증이 약간 줄어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도 절실하다.
“…”
이를 악물고 내 쪽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한다.
세라 세계의 ‘챕터 보스’들은 다들 하나같이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
일반적인 상대에게서는 볼 수 없는 유틸리티가 덕지덕지 달려있다는 거지.
그리고 리버백 후작이 정화자라고 불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기인한다.
-!
엘노어의 몸 근처로 펼쳐진 보호막에 리버백 후작이 내뿜은 마기가 충돌하더니, 괴음을 내뿜으며 튕겨나간다.
성인의 유골을 기반으로 만든 보호막. 이전에 기차의 낙석 사고에서 나와 엘노어를 보호해주었던 물건이다.
〚어이가, 없군!〛
하지만 그렇게나 거대한 바위도 아무렇지도 않게 튕겨낸 보호막도, 다시 날아든 리버백 후작의 공격에는 완전히 산산조각나며 주변으로 비산했다.
그래, 이게 이 녀석의 능력이다.
상대방의 방어든 공격이든 반드시 원래 성능 중 일부를 ‘지워버리는’ 것.
마치 정화하는 것처럼.
“…아, 진짜 지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긴 하다만.
저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쉽게 깨질 방어막은 아니다. 마인으로 강화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도 강화된 게 분명하지.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수준으로 판단합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EX등급으로 적용합니다. ] [ !경고! ] [ 상대방의 고유 스킬 ‘정화’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의 등급이 하향 조정되어 C등급으로 적용됩니다. ]당장 이것만 해도 그렇다.
EX급 강화와 C급 강화는, 대략 미래의 용사를 한 방에 쳐날릴 수 있는 인간과 그냥 평소에 열심히 운동한 인간 정도의 차이다.
천지차이란 소리지!
속으로 그런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구른다. 중상을 입은 몸으로 하기에는 워낙 격렬한 행동이라 속에서 신물이 올라올 정도다.
[ ‘특성: 호흡법 – 부초’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건 얼마 전에 엘노어한테 받아온 특성 덕분이다. 이게 아니었으면 지금쯤 이렇게 몸을 움직일 생각조차 못 하고 있겠지.
내가 있던 자리로 검은색 광선이 꿰뚫고 지나가는 모습에 솜털이 곤두섰다.
그냥 가볍게 날린 공격인데 무슨 미사일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커다란 크레이터가 만들어진다.
이거, 따지고 보면 저 녀석의 기본 공격 같은 건데 말이야.
‘난이도 진짜 장난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정확한 타이밍에 지시를 내린다.
“엘노어, 왼쪽!”
나한테 공격을 하는 사이 생긴 빈틈으로 엘노어가 치고 들어갔다.
검 끝이 매섭다. 하늘에 닿은 재능이라고 불리는 엘리야조차 벽을 느꼈다고 묘사되는 인간의 일격이다.
그리고, 그런 날카로운 타이밍에 날아든 필중의 공격임에도.
〚하!〛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저지된다.
그저 리버백 후작이 마기를 살짝 ‘뿜어낸’ 것만으로 발생한 충격파에, 엘노어가 튕겨져 나가 내 옆으로 굴러왔다.
이쪽도 그리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장래의 최종 보스가, 지금 수세에 몰리고 있다.
먼지투성이에 흙투성이. 몸 곳곳에서 난 부상으로 기껏 차려입고 나온 원피스가 피에 흠뻑 젖어있다.
원작 기준으로 항상 완벽하고 멀끔한 모습만 보였던 이 사람에게선 상상도 할 수 없던 이미지다.
시계를 보니 전투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1분이 지난 시점이다.
그 정도만으로도, 지금 우린 밑천까지 전부 다 털리기 직전이다.
본심을 내지도 않고 가볍게 우리를 몰아세우고 있는 리버백 후작에게.
‘공략법은 내 기억이 맞아.’
후속으로 날아오는 공격에 엘노어가 나를 붙잡고 다시 몸을 던지는 사이, 어지러운 머리로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
타이밍은 맞다. 방법론 또한 맞다. 리버백 후작에게 공격할 수 있는 찬스는 전부 내가 기억하는 타이밍과 루트에 생겼으니까.
하지만.
방법은 올바르지만 그걸 수행할 ‘역량’이 모자라다.
마인의 몸은 그 자체로 바위를 부수고 공중을 날 수 있는 괴물이다. 지성이 퇴화되고 모든 능력치가 신체 능력에 몰린 마수들조차 명함을 못 내밀 정도지.
거기에 상처를 입힌다고 해도 정수에서 공급받는 마기로 금방 회복해버리고.
“…”
안 좋다. 상황은 최악이다.
이 전투에서는 나와 엘노어가 동시에 필요하다. 나는 저 녀석의 무력화 때문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수 없고, 엘노어는 저 녀석과 ‘싸울 방법’을 모른다.
저 녀석의 패턴과 공격 방식을 전부 알고 있는 건 나니까. 내 지시가 없다면 공략하기도 힘들지.
〚와서 싸워, 이 버러지 새끼들! 도망만 다니지 말고!〛
리버백 후작이 그렇게 외치며 이쪽으로 붕 날아왔지만,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예정이다.
‘일단 중요한 건 결계에서 이 녀석을 끌어내는 것.’
혹시라도 저쪽에서 싸우다가 눈먼 마기에 결계가 파손되기라도 했다간 큰일이다.
내가 리버백 후작이라면 누가 훼방 놓건 말건 결계를 부수는 것보다 우선시했겠지만, 이 녀석은 안 그래도 허영심과 자만덩어리다.
일단 방금 전에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나와 엘노어에게 멋지게 복수하는 걸 더 우선시할 거란 이야기다.
거기에 정수가 내뿜는 마기의 영향을 받아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졌을 터.
당장 평소의 젠체하는 존댓말이 아니라 성질 잔뜩 난 반말을 쓰는 것부터가 그렇다. 마인화로 평소의 이성적인 판단이 점점 흐려지고 있단 거지.
죽어도 젠체하는 컨셉질을 이어가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단 이야기는 뭐냐.
함정에 빠지기 딱 좋다는 이야기지.
“…아카데미 안까지는 끌어들여야 해요.”
나를 짐처럼 지고 나르는 엘노어에게 그렇게 속삭인다.
만월제 축제와, 그쪽에서 열린 비상 사태의 영향으로 지금 엘판테 외곽지역은 텅텅 비어있을 것이다.
학장이고 총장이고 지금은 전부 다 시가지 안쪽에 집중하고 있겠지. 지원도 기대할 수 없겠지만, 그 말은 내가 그 안쪽에서 부차적인 피해를 걱정할 필요 없이 뭔가 저질러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 노림수도 그쪽에 집중되어 있고.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지금까지 했던 루틴을 반복한다.
조금 다치면서, 내줄 것 내주고. 시간을 끌고.
그렇게 녀석을 계속해서 끌어들여서, 생각대로 한 방 먹이면 될 일이지.
그래도 모자란 스펙이나마 어떻게든 버티고 있으니까.
이번에도 똑같이 한다.
녀석이 내게 쏟아내는 공격을 피하고, 엘노어를 우회시켜서 공격 한 방을 찔러넣고, 이어지는 피해를 최대한 경감시키기 위한 회피 기동을-
〚…그런데 말이죠.〛
공방이 이어지는 도중에, 그런 말이 흘러나오자.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등골을 타고 쭈우욱 올라온다.
일단 아까 전에 격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아니라, 이 녀석이 이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의 목소리란 점이 그렇다.
이 놈.
지금까지, 그냥 나한테 끌려오는 ‘척’을 했다는 거니까.
〚당신 눈에는 제가 얼간이로 보이십니까? 그리 뻔하게 저를 끌어내려는 것도 못 알아차릴 만큼?〛
그렇게 말하는 리버백 후작의 가슴팍이 펄떡인다. 안쪽에 들어있는 어둠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마치 지금까지 우리를 향해 뿜어내던 마기는 이걸 모으면서 남은 걸 흩뿌린 것에 불과했다는 것처럼.
그리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일생을 통틀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위기감에 몸이 굳는다.
내가 이 녀석에게 ‘노림수’를 감춰두고 공방을 이어온 것처럼.
이 녀석도 뭔가를 감춰두고 나한테 맞대응한 거다!
〚그냥 내버려 두면 뭐든 꾸며대는 사람이니까.〛
이어서, 그렇게 말한 리버백 후작의 가슴에서.
저녁이라 어두운 주변에도 확연하게 눈에 띄는, 아주 자그마한 빛조차 모조리 튕겨내는 것 같이 찐득거리는 어둠이 비산했다.
[확실하게, 처리해야겠죠.]이어서.
그렇게 치솟아오른 ‘어둠의 장막’이 내게 내려꽂힌다.
[ 소울 링커를 가동합니다. ] [ 마력을 공급받습니다. ] [ 스킬 ‘고행’을 사용합니다. ] [ 스킬 ‘신성 방패’를 사용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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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돌아오면서 제일 먼저 느껴지는 건.
온 몸이 찢어질듯한 격통.
“…!”
입을 벌렸지만 비명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뇌수에다가 직통으로 전극을 꽂아 넣은 것 같은 고통이다. 나도 모르게 전신에 경련이 일어난다.
“…쿨럭…!”
피가래 섞인 기침을 내뱉으며 몸을 살핀다.
왼팔이 완전히 으스러져 있었다.
하반신이고 상반신이고 완전히 긁히고, 찢기고, 터져있다. 전신에 우둘투둘한 돌덩이와 유리조각, 그리고 나뭇가지등이 보기 흉측할 정도로 박혀있고.
온 몸이 너덜너덜하다.
나, 지금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부상이겠지.
“…”
일단 억지로 몸을 일으켜본다.
“…아, 억…!”
시야가 붉게 물든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평생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감각에 전신의 신경에서 스파크가 튄다.
“…”
다시 바닥에 푹 퍼지면서 숨을 헐떡인다.
이래서야 움직이는 건 완전히 불가능하다.
“…씨발.”
욕지기를 중얼거리며 유일하게 성한 오른팔로 몸을 지탱한다.
일단 시야 끄트머리에 잡히는 울트리마를 오른팔로 끌어온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이걸로 실드를 생성하지 못했다면 아마 그대로 죽었을 거다.
마기는 신성에 유난히 취약하니까. 상성이 좋아서 그나마 원래 성능 이상으로 위력을 경감시켜준 덕분이지.
“…장난하냐, 진짜로.”
그 사이, 헛웃음이 나오는 광경이 시야에 잡혔다.
아카데미 학관동이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나와 엘노어가 리버백 후작과 대치하던 위치를 생각하면, 나는 방금 처맞은 공격만으로도 수백 미터를 넘게 날아와서 처박힌거다.
진짜로, 한 방에 안 죽은 게 다행이지.
〚그걸 버텼습니까?〛
이런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오는 걸 보면 그렇게 행운이 충만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간신히 몸을 비틀어보니 리버백 후작이 지척에서 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마기로 물들어 변한 몸 위로도 명백한 비웃음을 걸고 있는 건 명확하게 보였다.
〚생각보다 훨씬 끈질기긴 하네요. 선각자님께서도 마음에 들어하실 만 합니다.〛
그렇게 말한 녀석이 내 얼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모든 패를 다 소진하신 모양입니다만.〛
이어서 그 손바닥에 마기가 맺힌다.
〚솔직하게 말해서, 당신은 대단한 상대였습니다. 지옥에서 친구라도 만나면 자랑하셔도 좋으시겠어요.〛
“…”
벗어날 방법이 없다.
다운그레이드된 절체절명으로는 저걸 버텨낼 수 없다. EX급까지 올라가더라도 몸이 이 지경이어서야 움직일 수조차 없고.
그래도 아직 한 가지, 남아있긴 하지만.
-!
-!!!
검이 공기를 가르며 리버백 후작의 목덜미에 작렬했다.
강철이라도 베어넘길 수 있는 무시무시한 기세의 일격이었지만, 리버백 후작의 신체에 살짝 침범했다가 이내 도로 튕겨져 나간다.
그렇게 난 상처도 이내 곧바로 회복되어버렸고.
다만, 그 덕분에 나한테 날아오려던 공격은 무산되었다.
〚…쌍으로 끈질기군요, 정말. 좋은 한 쌍이 되시겠어요.〛
녀석이 그렇게 투덜거리는 사이, 리버백 후작에게 일격을 날린 엘노어가 검을 회수하며 재빠르게 내쪽으로 접근했다.
“괜찮…”
뭐라고 말하려던 엘노어가, 내 모습을 보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표정에 떠오른 건 깊은 슬픔이다.
“…상태가 끔찍하긴 피차 일반인데요.”
그 모습에 애써 웃어주며 말을 돌려준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엘노어도 몸 전체에 성한 부분이 없다.
부러진 늑골과 팔. 다리에도 끔찍한 자상이 이어져 있었지만 원피스를 찢어서 덧대어 간신히 움직이게만 만들어 놓고, 허리부터 등까지 쭉 이어지는 관통상이 있다.
전투를 속행하기는커녕 서있는 것도 버거워보이는 중상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는 건 초인적인 정신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
그런데 뭔 나를 걱정하고 있냐.
본인 코가 석자일텐데.
“…”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이내 자신이 차고 있던 목걸이를 떼서 나한테 던져주었다.
오른팔로 낚아채니, 눈앞으로 새로운 창이 떠오른다.
[ ‘활력의 목걸이’가 장비되었습니다. ] [ 내구와 체력이 조금 상승합니다. ]“몸을 가누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걸세. 움직이게.”
“…예?”
“아카데미 안쪽까지 끌어들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리버백 후작은 계속해서 날 살려서 ‘계획’의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네. 당장 내 목숨을 취할 일은 없겠지.”
“…”
“목표한 위치까지 먼저 이동하게. 거리가 멀지 않으니, 내가 시간을 끌지.”
“…엘노어.”
“나는 그대를 믿네. 끝까지.”
할 말을 잃고 엘노어를 쳐다보고 있으니, 엘노어가 미소지었다.
오늘, 만월제 축제가 시작할 때.
나와 손을 잡으며 지었던 수줍은 미소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받기만 했으니, 한 번은 돌려줄 때도 되지 않았는가.”
“…”
난 이 사람에게 이런 감사를 받을만한 짓을 한 적이 없다.
그저 모두 그 상황을 헤쳐나오기 위한 발버둥이었을뿐.
그런데, 이 사람은.
〚작전 회의는 끝나셨습니까?〛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보고 있던 리버백 후작이 팔짱을 풀며 입을 열었다.
자신이 이미 이겼으니 뭐든 마음대로 하라는 태도.
자만과 허영심 덩어리 다운 모습이지만, 이번엔 틀린 행동도 아니다. 실제로 나와 엘노어는 이미 거의 무력화됐으니.
하지만, 엘노어는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앞으로 나서 리버백 후작과 대치했다.
“한 가지만 물어보지, 리버백 후작.”
〚뭡니까?〛
“나와 이 남자가 어느 정도로 어울리는 한 쌍 같은가?”
〚…예?〛
“중요한 질문이니 똑바로 대답하게나.”
리버백 후작이 잠시 할 말을 잃은 기색으로 엘노어를 쳐다보다가,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독하기로는 천생연분이군요.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살림이나 꾸리시죠?〛
“좋은 대답이군. 손속에 조금 사정은 둘 수 있겠어.”
엘노어가 피식 웃으면서 검을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리버백 후작에게서 마기가 치솟아올랐다.
“다우드, 가게!”
더 이상 긴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여기 있어봐야 짐이다.
엘노어에게 등을 돌리고, 아카데미 건물 쪽으로 걸어간다.
“…헉, 허억…”
안 그래도 쓰레기인 체력에, 말도못할 부상까지 입은 상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몸 전체가 불로 달군 쇠꼬챙이에 찔리는 느낌이다. 시야 전체가 번쩍거리고, 몸이 내 의지에 반해 끊임없이 바닥에 주저앉는다.
이를 악물고, 버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나보다 더한 고통을 견디고 있는 사람이 있다.
건물 벽에 디뎌서 기어가듯이 전진한다. 조금이라도 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느낌에 끊임없이 몸을 전진시킨다.
그렇게, 몇 분을 기어가자.
마침내 보였다.
아카데미의 외벽이.
“…”
도착했나.
벽을 붙잡고 간신히 일어선다. 시가지에서 일어난 소동의 영향으로 평소의 경비병력조차 없다. 도움도 기대할 수 없지.
힘겹게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고 들어가고 있자니.
-!!
옆쪽에 있던 벽에.
누군가의 몸이 처박혔다.
“…”
엘노어다.
만신창이, 라는 수준으로도 표현하지 못할 수준의 부상이다.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원피스가 아니었다면 이게 원래 누구였는지도 알아보지도 못할만큼 끔찍한 상태였다.
〚애 좀 먹었습니다. 팔다리를 전부 부러트려놔도 기어와서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더군요. 지독하다는 말, 절대 과언이 아닙니다.〛
“…”
〚자, 그래서 이제 남은 계획은 뭡니까? 숨겨두신 게 더 있으신가요?〛
리버백 후작이 몸도 가누지 못하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추었다.
얼굴에 걸려있는 건, 여전히 나를 비웃는듯한 미소다.
시선을 돌려 엘노어쪽을 바라본다.
그쪽에 눈을 맞추자, 간신히 얕은 숨만 붙어있던 엘노어가 힘겹게 나를 돌아보았다.
미안하다, 고 말하는 것 같은 시선이다.
‘…아니.’
당신은 잘 해줬다.
그게 아니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으니까.
〚더 없으십니까?〛
“…”
〚시시하네요.〛
그렇게 말한 리버백 후작이 손을 내뻗었다.
마기가 그쪽에 모인다.
“…!”
벽에 박힌 엘노어가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고 꿈틀거린다. 하지만, 전부 부질없는 짓이다. 이미 저쪽은 숨이 붙어있는 게 한계인 상태니까.
-!
검은 광선이, 내 가슴팍을 관통했다.
내 죽음이 확정된다.
엘노어의 입에서 얕은 절규가 새어나왔다.
〚기껏 여기까지 와서 뭐라도 숨겨놓은 게 있나 했더니… 별 것도 없군요.〛
슬슬 꺼져드는 시야 사이로, 그런 말이 들려오지만.
“…”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숨겨둔 게 없기는, 새끼야.
“…야.”
몸이 무너지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녀석을 노려본다.
“내가, 이겼어.”
이 녀석을 아카데미 ‘안쪽’에 발을 들여다 놓은 순간부터.
내 노림수가 시작되는거다.
〚…예?〛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모르겠다는 리버백 후작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점멸하는 시선 너머로, 내쪽을 보며 절규하는 엘노어의 몸에서 뭔가가 ‘응집’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 스킬: 치명적인 매력이 발동합니다. ]끊어지려는 의식 너머로, 그런 글자가 떠오른 창이 보인다.
그래. 만나서 반갑다.
솔직히 진짜 죽도록 만나기 싫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이 인사라도 해야겠지.
[ 대상 ̶̘͛͑̊̇̆́̃͋̏̆͘͝͠C̵̡̹̖̙̭͖̈́̓̐̈́͐¾̸̧̥̬͈͇̹̘͕̠̮̩̙̎ð̸̞͖̋¾̶͕̻́̊̇î̸̙̪͎̥͎͍̲͔̔̈́̀̃͗́̚̚͠͠͝͠ ̷̨̨̣̭̭͓̱̼͚̮̼̭̟̱̾̄͑̈́̋͝¼̸̢̛̞̟͓̗̙͗͊̆̓̈͘͜͠Ǫ̵̛̠̟̲͔̟̀̔̍͛̈́°̶̨̙̠͆͋̔͛̒̀̾̆̉̏̕³̶̟̝̙͔̥̖̯̠̒̈̋̃̇̾̃̽̆̅͊͆̋̋가 당신에게 ¡̛̰̖̲͉̜̿͑̈̍̕̚͟͝Ą̷̦̘͉̹͓̝́̾͂͂̂͂̅͡͝ø̵̧̡̜̲̗̳̟̀̒̽̊͆̃͒̎̚͟͟ͅ Ç̳͈̟̯̻̾̿̔͆̃̋́͌͘̕Ḁ̷͉̞͎̯̥̫̳̻́͆͊̉̀̾͘͞·̴̢̥̱̝̘̟͎͊͐͌̿̎̋̕͜͟͝͞Î̶̻̙͓͓͎̫͛́͌̀̆͊͒͆̚±̦͖̺̗͎͍̰͊̏͒̉̍̉̚͟͠×̵̢̯̥̟͖̞̔̈́̃̚͘͞·̶̛͈̪͚̹̺͖͉̪̇̎̃̏̃̎̚͡ͅ¡̴̹͉̤̭̥̒̇̎̅͘͝ͅ¹̖̯̰̰̦̝͐͆̿̌̃͂͟͠Ö̵̩̭͇̹̭̤͌͆̔̀̆̚ ¾̨̻̩̩̰͖͇̈́̊͐̃͝ͅ]그런 메시지와 함께.
세계가 회색으로 암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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