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2)
r 31 – 31. 그렇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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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거지?〛
날아가는 도중에 리버백 후작이 그런 말을 꺼내놓았다.
비웃음이 진하게 섞인 어이가 없다는 기색이었다.
당장 이 남자를 쫒아온 것도 마기를 이용한 비행능력을 활용해서니까.
이런 식으로 높고 빠르게 날아가는 게 어떤 방식으로든 효과가 있으리란 사실에 의구심을 품는 건 당연하다.
“뭐, 의미야 당연히 있지.”
하지만, 다우드가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답했다.
여기까지 와서도 뭔가 감추고 있다는 기색이었지만, 리버백 후작은 다시 코웃음을 치며 손을 들어올렸다.
이래서야 겨우 목숨을 몇 초 더 연명한 수준이지 않은가.
〚뭐, 고작해야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는 뜻이겠지. 얌전히 죽…!〛
죽어라, 라고 말하려던 것이었다.
그의 가슴팍에 박힌 정수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안개가 사르륵 흩어져버리지만 않았어도 그랬을 것이다.
아니,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몸 전체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윤곽이 무너져서 마치 녹아내리듯이. 불에 가까이 간 밀랍 인형처럼.
〚뭐…!〛
리버백 후작이 넋 나간 표정으로 스스로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 이게 무슨…!〛
선각자에게 받은 정수와 융합한 몸이다. 이 교활한 녀석조차 어찌하지 못하던 무적의 몸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일이?
“상식적으로 생각합시다, 상식적으로.”
그런 리버백 후작에게, 다우드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손목 시계에서 삑삑거리던 알람을 끄면서 한 행동이었다.
마치.
정확하게 이 타이밍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란 걸 알고 맞춰둔 것 같은 알람이겠지.
“변변한 전투 능력도 없던 당신이, 그 정도로 강한 능력을 제한도 없이 계속 쓸 수 있는 게 이상하지 않아?”
〚뭐…?〛
“마인화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가 그거야. 번아웃. 마기를 너무 써서 몸이 붕괴하는거지. 선각자가 그거 줄 때는 설명 안 해줬나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실제로, 그는 이런 부작용이 있다는 건 들은 바가 전혀 없었다.
그저, ‘충의의 표시’라면서 전달받은 것이 전부일 뿐.
“네가 정수 먹자마자 여유 안 부렸으면 진짜 위험했거든. 이쪽도 갖춰진 카드가 별로 없어가지고.”
다우드가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원통을 뽑아들었다.
아마, 불과 몇 분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여유를 부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인이 된 리버백 후작의 앞에선 이 남자도 사력을 다해서 도망치는 게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실시간으로 몸이 붕괴 되는 리버백 후작은 뜬 눈으로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저, 확실하고 철저하게 짓밟기 위해서 그리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가 말 없이 입만 뻐끔거리고 있자니, 실소를 흘린 다우드가 곧바로 원통의 케이스를 조작했다.
폭발을 위해 가공된 엑토플라즘. 신성력까지 머금은 상태다.
〚…〛
그걸 본 리버백 후작이 직감했다.
자신은, 이 자리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하리란 걸.
“방법이야 많았지. 맨이터들이랑 같이 와서 결계 부순다거나, 처음부터 나랑 엘노어를 ‘이길’ 생각말고 ‘죽일’ 생각으로 달려 든다거나. 너 솔직히 그럴 수 있는데 안 했잖아?”
확실히 그랬다.
아마 처음부터 달려들었다면 이 남자나 트리스탄 공녀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죽일 수 있었겠지.
‘처음부터, 아예 철저하게 죽이려고 했다면…!’
그가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럴 거라고 예상해서 이런 쪽으로 계획을 잡긴 했는데… 나쁘지 않네.”
〚나쁘지, 않다고?〛
“한 번 밖에 안 죽었잖아.”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다우드가 그런 말을 꺼내놓았다.
〚…뭐?〛
“잘못하면 두세 번 죽을 수도 있었는데 네가 삽질해서 한 번으로 끝났으니까. 뭐, 선방했지.”
〚…〛
여전히 담담한 어투다.
자신이 만약 이 남자를 두 세 번 죽이는데 성공했어도.
최종적으로 결과는 이렇게 되었을거란 것처럼.
‘이 새끼…!’
문득, 식은땀이 나는 감각이 리버백 후작의 등골을 타고 치솟아올랐다.
익숙한 감각이다.
오늘, 하루종일 이 남자와 마주하면서 겪었던 느낌이었으니까.
자신의 모든 것이 간파당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이 모르는 것까지 훤히 꿰뚫고 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있다.
〚너, 모든 게 처음부터 그냥 시간을 끌기 위해서, 전부…!〛
트리스탄 공녀와 단둘이 나타나서 자신을 도발한 것도. 행동 하나하나로 굳이 자신을 자극한 것도.
심지어는.
계속해서 수세에 몰려, 자신이 ‘한 번 죽은 것’까지도.
전부 처음부터 모든 걸 계산하에 두고 저지른 행동이다.
그저, 조금 지나기만 하면 그가 이렇게 무력화될 것이란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모든 행동과 목적이, 자신을 이기는 게 아니라 시간을 끄는 과정이었다.
그걸 눈치채지 못한 시점부터 그는 이미 패배한 것이고!
〚이, 이…!〛
그는.
이번에도 또.
이 녀석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거다!
〚씹어죽일 새끼가아아아아아-!〛
다우드가 피식 웃으면서 폭탄을 신체 앞쪽으로 내밀었다.
괜히 페르시에게 ‘대포’에 가깝게 제작해달라고 한 것이 아니다. 지근거리에서 격발시켰는데 자신까지 뒤집어쓰면 곤란하니까.
아무리 인간에겐 큰 피해를 줄 수 없는 신성력이라지만, ‘아카데미 전체’를 터트리는 걸 전제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안전 수칙은 지켜야지.
“야.”
이어서, 그 문장과 함께.
“좀 더 멋진 유언은 없냐?”
신성력 폭탄이 기폭했다.
●
“탈리온. 훌륭하다.”
“…별 말씀을요.”
미리 말해둔 ‘착지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던 탈리온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방금 터트린 신성력 폭탄의 영향으로 극광 현상이 연상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빛이 주변으로 산란하고 있었다.
‘역시 화력이 최고야.’
피식 웃으며 나도 그 모습을 바라본다.
악마의 정수 자체가 워낙 미친 물건이라, 저 정도로 강렬한 화력을 써서 처리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는 물건이다.
리버백 후작의 몸이 붕괴하더라도 정수 자체는 살아남아 또 근처에 있는 다른 생명체의 몸을 붙잡고 기생할 수도 있으니까.
저게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던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과격한 수준의 화력을 준비해놓길 잘했지.
“…”
고작 자기 힘 조금 불어넣었다고 저런 물건을 뽑아내는 악마나, 그런 악마를 몸 안에 품고 다니는 엘노어나, 나중에는 그걸 때려잡을 수준까지 성장하는 엘리야나.
새삼 어느 수준의 괴물인지 다시 체감이 되기도 한다.
용케 그거랑 엮이고도 잘 살아남았네, 나.
그런 생각을 곱씹으며 몸을 돌린다.
“어, 형님? 지금 또 어디로 가시는…!”
“가 볼 곳이 있거든!”
그렇게 말하며 후다닥 달린다.
목표 지점은 아카데미 외곽의 있는 벽. 엘노어가 박혀있는 곳이다.
‘…수습은 해야지.’
일단 정화자를 끌고 다니기 전에 큰일은 나지 않도록 최소한의 응급 처치는 해두고 왔는데, 날 위해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준 사람이다.
최소한 내 손으로 직접 의무대까지는 대려다 놔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달리는 와중에, 눈앞으로 창이 연속해서 몇 개가 떠올랐다.
[System Message> [ 메인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 보상이 지급됩니다! ] [ ‘악의 정수 1개’가 지급됩니다! ] [ ‘영웅의 파편 1개’가 지급됩니다! ] [ 5,000pt가 지급됩니다! ]그런 문장이 주르륵 떠오르는 것과 함께, 내 손 안에 빛무리와 함께 두 가지의 보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가지는 새하얀 광택을 내뿜고, 나머지는 음험한 검은 연기를 뭉게뭉게 풍긴다.
[ 악의 정수 ] [ 아이템: 스토리 ] [ 에픽 아이템과 상호작용 가능한 재료입니다. 융합시키면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 [ 영웅의 파편 ] [ 아이템: 스토리 ] [ 에픽 아이템과 상호작용 가능한 재료입니다. 융합시키면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
잠깐 달리는 것도 멈추고 그걸 노려본다.
‘…이걸 다 준다고?’
이건 전체 시나리오의 분기를 결정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것들이다.
에픽 아이템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건 그 강력한 효과만큼이나 스토리에 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거기에 이 아이템들을 감응시켜 ‘성향’을 결정시킴으로서 전체 시나리오에 온갖 나비 효과들을 다 일으킬 수 있지.
영웅의 파편을 결합시키면 ‘선 성향’ 관련으로 온갖 효과가 무작위로 붙어나오고, 악의 정수를 결합시키면 ‘악 성향’ 관련으로 똑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특정 이벤트 발생 전까지 어떤 아이템에 융합시키느냐에 따라서 특정 인물이 더 강해지거나, 약해지거나, 죽거나 살거나 하는 일의 결과가 완전히 바뀐다.
2챕터의 보스인 ‘망국의 소년왕’만 하더라도 이걸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클리어 난이도가 천차만별로 갈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걘 이거 없으면 클리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놈이긴 하지만.
‘그런데 그걸 두 개나 주다니.’
원래대로는 악의 정수나 영웅의 파편 둘 중 하나만 선택해서 받는 걸로 아는데 말이지.
아마 난이도가 올라간만큼 보상도 대폭 강화된 게 틀림없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한 고생을 전부 뒤덮고도 남을 보상인게 틀림없지.
하나만 있어도 시나리오를 뒤틀어버릴 수 있는 물건이 2개가 생긴 거니까.
피식 웃으며 악의 정수는 일단 챙겨놓는다.
이건 지금 당장은 쓸 곳이 없으니까.
하지만 영웅의 파편은 다르다.
[ 아이템 ‘소울 링커’에 ‘영웅의 파편’을 결합하시겠습니까? ] [ Y/N ]망설임 없이 Y를 터치하자, 착용 중인 아뮬렛에 하얀색 보석이 순식간에 스며들어갔다.
[ 소울 링커 ] [ 전용 장비 ] [ 인챈트: 에픽 ] [ ‘영웅의 파편’ 융합 ] [ 위대한 혼령이 깃든 장비입니다. 동기화율을 높여 혼령의 의식을 깨울 수 있습니다. ] [ 위대한 혼의 영향으로 항상 마력을 머금고 있습니다. ] [ 현재 충전된 마력율: 0% ] [ 현재 동기화율: 9.98% ] [ 혼의 1단계 의식 개방이 멀지 않았습니다! ] [ 혼의 의식이 개방되면 영웅의 파편으로 인한 특수 효과들도 함께 개방됩니다! ]‘괜찮네.’
선 성향 장비에 융합시키면 온갖 긍정적인 효과를 덕지덕지 발라서 내놓는 영웅의 파편이다.
아이템을 먹임으로서 동기화율도 대폭 상승했으니, 사제로서의 능력을 꾸준히 향상시키면 금방 깨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뭐.
왜 이 안에 잠든 게 ‘위대한 혼’인지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을 거고.
하지만 이어서 떠오른 창에 내 눈살이 곧바로 찌푸려졌다.
[System Message> [ 스토리 아이템의 사용을 확인합니다! ] [ 대상 ‘엘리야 크리사낙스’의 전용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 [ 조건을 맞춰 퀘스트를 개방해보세요! ] [ ‘이단 심문소’와 연루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뭐?’
느닷없이 ‘생성’되었다는 주인공의 전용 퀘스트부터가 한 번에 눈을 사로잡는다.
엘노어의 전용 퀘스트는 시나리오와 ‘엔딩’에 영향을 준다고 적혀있을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게 최종 보스에 이어 주인공에게까지 열린다고?
거기에 제국에서 악명으로만 따지면 1, 2위를 다투는 집단인 이단 심문소와 연루될 확률이 높아진다니.
“…”
필요하다면 그 이면계도 잠깐은 들어갈 생각을 하는 나지만, 그렇더라도 이단 심문소만큼은 사양이다.
이 게임 ‘악역’ 중 가장 엮이기 싫은 놈이 거기에 있으니까.
‘용아龍牙 페이놀.’
하프 드래곤 마법사. 천재적인 마법 실력과 그에 반비례하여 극단적으로 터져나간 인성. 4챕터의 메인 인물이기도 하고.
단순 위험도로 따지자면 오히려 4챕터의 최종 보스인 ‘수탐자’보다 이쪽이 더하다는 소리까지 있을 정도로 모난 곳이 많은 인간이거든.
그 녀석하고 만났는데 패시브로 치명적인 매력이 터진다?
“…”
상상도 하기 싫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그냥 이 아뮬렛에 영웅의 파편을 먹였는데 전부 딸려 나왔단 거지.
이 안쪽에 있는 혼의 깨어남과 다 연관이 있는 사건들이란 뜻이다.
‘이 안쪽에 있는 거, 내 생각보다 거물일 수도 있겠는데?’
아뮬렛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시야로 마침내 아카데미의 외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엘노어가 박혀있던 위치도 보이고.
“어, 다우드. 왔나요?”
“…”
하지만, 그 자리에서 엘노어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대신 아탈란테 총장이 빙글거리며 손을 흔들고 있었지.
이 사람은 또 언제 왔대.
“학생회장은 제가 직접 병동에 내려놓고 왔어요. 많이 다치긴 했지만 금방 회복될 거에요. 후유증도 없을 거고. 응급 처치를 잘 해놓으셨던데요?”
그런 말을 줄줄이 꺼내놓은 아탈란테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내 쪽으로 종종 걸어왔다.
그래. 겉보기로는 웃는 얼굴이지만.
“…화나셨습니까?”
이거 개빡친거다. 진짜로.
눈이 아예 안 웃고 있다.
등뒤로 식은땀이 솟아오른다.
“어, 티 나나요?”
“…”
심지어는 그걸 부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죽기 싫으면 자기가 하는 말 잘 들으란 뜻이겠지.
“…일단 고생을 좀 한 것 같으니.”
아탈란테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자리를 좀 옮겨서 편하게 이야기할까요.”
아무래도.
거부 권한이 없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
“…뒷수습은 안 하셔도 괜찮습니까?”
아탈란테의 집무실에 앉아서 내 눈앞에 내밀어지는 차를 보니 일단 그것부터 물어봐야겠다.
악마의 정수를 삼킨 인간이 아카데미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소동을 일으킨 건이니까.
내가 리버백 후작을 처리하고, 아마 덕분에 시가지의 맨이터들도 소멸했을 테지만.
이전에 추격전을 벌이면서 부숴놓은 것들도 꽤 있을 거고, 심지어 아카데미 상공에서 거대한 신성력 폭발까지 일으킨 게 아까 전이다.
아직 각지에 혼란이 남아있을 게 분명하지.
“그 정도야 뭐. 괜찮아요. 애초에 학생이 활약해서 인명 피해도 없이 전부 틀어막았는걸요.”
하지만 아탈란테가 아무렇지도 않게 씩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엘판테는 연식이 오래되었답니다, 다우드 캠벨.”
“…예?”
“악마들이 봉인된 장소 바로 옆에, 자아가 그렇게 강한 온갖 귀족과 특권층들을 몰아넣고도 천년 가까이 운영된 장소에요. 저것보다 더 한 사고가 없었을 것 같나요?”
“…”
“저런 건 뒷수습을 해야 하는 축에도 못 들어간답니다?”
엘판테. 진짜 생각보다 더 미친 장소인가보다.
이 정도 소란은 소란 축에도 못 낀다니.
“무엇보다, 이 정도는 전부 예상 범위 안이니까요.”
“…예?”
아탈란테가 나를 보고 다시 미소지었다.
잠깐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행간에 들어있는 의미를 깨닫고 소름이 살짝 돋아난다.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도 전부 때려잡을 수 있다는 거였나.’
그건 그렇지.
이 사람이 마음 먹고 무력을 휘두르고 다니는 걸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대륙 단위로 뒤져도 별로 없을 것이다.
시나리오에서도 항상 최상위권 강자로 묘사되곤 하니까.
“이번에는 그냥 두고 본 거에요. 학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계획을 짜서 대비하려고 하는 것 같으니, 거기에 맞춰주려고.”
그렇게 말한 아탈란테가 책상 위로 턱을 괴며 말했다.
“그러니까 화가 나는 거에요, 학생.”
아탈란테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악마와 엮였죠?”
“…”
“이미 알고 물어보는 거에요. 변명은 안 받겠습니다.”
아탈란테가 날카로운 눈으로 말을 이었다.
“회색 악마의 권능 중 하나인 ‘침식’이 학생이 있던 위치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났어요. 이단 심문소에서 이를 지나칠 리 없고, 이단 재판을 주관하는 성황국에서도 관심을 가지겠죠.”
한숨과 함께 다른 문장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건 저밖에 모르는 사실이긴 합니다만. 침식 현상이 일어날 당시 그 자리에 있던 건 학생회장과 당신 밖에 없었어요.”
식은땀이 삐질 흘러나왔다.
엮이긴 했지.
엄청 진하게.
악마 중에서도 최강의 존재한테 고백도 받고 치료도 받고 다 했다.
“당신,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고는 있는 건가요?”
그렇게 말한 아탈란테가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쪽에 걸린 시선은, 화가 났다고 한 것치곤 틀림없이 걱정이 듬뿍 담긴 기색이었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학생은 무엇과 대적하게 될 건지 알고 있었을 거에요. 그렇죠?”
“…”
“그런데 어째서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나요? 제가 못 미덥나요?”
“뭐, 이번에는 실제로 총장님의 도움 없이도 정리하는 데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다음에는요?”
“…”
날카롭게 흘러나오는 아탈란테의 말에 입을 다문다.
“당신은 이미 모든 소란의 중심에 들어와 있어요, 다우드 캠벨. 폭풍의 눈이 되었단 소리입니다.”
아탈란테가 엄격한 목소리로 문장을 이었다.
“악마 숭배자들은 집요해요. 당신과 학생회장이 악마와 뭔가 연관이 있다는 걸 알면 지옥 끝까지 따라붙을 거라구요. 이번 소동은 그저 시작에 불과할 확률이 높습니다.”
“…”
그렇겠지.
수도 없이 주지한 사실이지만, 난 이미 메인 시나리오에 깊숙하게 연루되어 있다.
엘리야와 엘노어와 이 정도로 엮인 이상 사실상 확정이지.
한참 전부터, 나는 내가 엑스트라로 사는 건 포기한 지 오래다.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받는다.
“…아마,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총장님께 직접적으로 큰 도움을 기대하긴 힘들긴 할 겁니다.”
실제로도 그렇다.
영속의 경지에까지 이른 아탈란테는 틀림없이 대다수의 상황을 혼자 정리할 수 있는 괴물이지만, 악마와 거기에 관련된 놈들을 직접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정해진’ 극소수의 인원뿐이다.
엘리야와 용사 파티가 그런 부류고, 그 이외에도 몇 명 더 있지만… 최소한 아탈란테는 아니다.
그냥, 시스템적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다. 이 세계 주민이라면 뭘 어떻게 해도 어길 수가 없지.
“그러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또 이렇게 혼자서 뭐든지 다 해결할 생각인가요?”
“지원정도야 요청드리겠지만요.”
사선을 계속해서 넘나들고, 존나 힘들고, 존나 아프고, 존나 괴롭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운명은 이미 그렇게 확정됐다.
그러면 남는 건 최선을 다해 살아남는 것뿐.
내 대답에 아탈란테가 입술을 오므렸다.
그러더니.
“파하하-!”
집무실 전체에 울려퍼지는 쾌활한 웃음을 터트린다.
‘…이 사람 갑자기 왜 이래?’
내쪽에서 당황스러울 정도의 급격한 감정 변화다.
“…총장 입장에서, 학생 한 명에게 그 정도의 짐을 지우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일이겠지요.”
“예?”
“계획 자체야 한참 전부터 완성되어 있었죠. 하지만, 당신에게 너무 큰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라. 끝의 끝까지 확정시키는 걸 미루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
“이번에 당신이 하는 일을 끝까지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 둔 것도, 그 능력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죠. 조금이라도 능력이 미달한다면 바로 포기할 생각이었습니다만… 당신은 스스로의 가치를 너무나도 완벽하게 입증했습니다. 네.”
갑자기 주절주절 흘러나오는 말에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린다.
뭔데?
어.
진짜 뭔데?
“그리고 뭐가 닥쳐오더라도 어떻게든 헤쳐나가겠다는 당신의 각오, 잘 확인했습니다. 이제는 밝혀도 되겠다는 확신이 드는군요.”
그렇게 말한 아탈란테가 한숨과 함께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눈동자에 위엄이 깃든다. 천년을 넘게 관류해온 영속자의 관록이 느껴지는 눈빛이다.
“다우드 캠벨.”
엄숙한 목소리에 나까지 자세가 꼿꼿해진다.
뭔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아카데미에서 당신을 중심으로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건 전부터 알아차렸을 겁니다.”
“네, 넵.”
그렇긴 하지.
그걸 지금 이야기 해주려는건가?
“지금부터 당신에게 말씀드리는 건 그 누구도 알아서 안 되는 기밀입니다. 연루된 집단이야 제국의 황실, 부족 연합의 대족장들과 전사장들, 그리고 성황국의 법황과 대주교들입니다만. 전말을 다 알고 있는 건 그 중에서도 극소수죠.”
“어, 네, 네?”
“세계의 존망이 걸린 문제입니다. 이 정도야 당연하죠.”
어, 어?
그 정도라고?
대체 뭔데…!
“일단, 계획의 최종 목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아탈란테가 여전히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 대륙의 운명을 걸고.”
눈동자에 공기마저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내포한 채로.
천년 넘은 영속자가, 세계의 운명이 걸렸다는 계획의 ‘최종 목표’를 내뱉었다.
“당신이 부인 여러 명을 두어주셨으면 합니다.”
“…”
“…”
“…”
잠시 귀를 후빈다.
헛기침도 한다.
눈도 몇 번 깜빡인 다음에 아탈란테에게 반문한다.
“예?”
“예?”
“아니, 예?”
“지금 대체 뭐가 궁금하신 겁니까?”
당당하게 되묻는 아탈란테의 모습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엄습한다.
대체.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문장이 너무 어려웠나요? 그러니까, 그. 하렘 있잖습니까. 하렘. 일부다처제. 당신이 그걸 해주셨으면 한다는…”
“잠깐. 잠깐만요.”
머리를 감싸쥐고 아탈란테를 저지한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전 대륙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강한 사람들중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계획이 있는데, 그 계획이 세계의 존망이 걸려있을만큼 중요하단거죠?”
“예.”
“그리고 그 계획의 최종 목표가 제가 하렘을 차리는거고?”
“정확히는, 당신이 몇 명을 반드시 꼬셔주셔야 합니다.”
아탈란테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지금 당신이라면 목숨도 걸 것 같은 학생회장도 거기에 포함되구요. 따지자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
“그 과정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수단은 대륙의 패권국들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드리죠.”
“…”
간신히 숨을 고른다.
“그러니까, 즉.”
호흡이 턱턱 막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마지막 문장을 꺼낸다.
이유도 전혀 알 수 없고, 중간 과정도 모조리 생략되어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이 사람이 한 말을 정리해보면.
그 결론이.
“제가 하렘을 안 차리면 세계가 망합니까?”
“예.”
“…”
지랄났네.
다른 감상을 꺼내놓을 수가 없었다.
“…이유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내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꺼내놓은 말에 아탈란테가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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