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3)
r 32 – 32.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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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잔재가 현현한 건 사실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에요.”
아탈란테가 그렇게 운을 띄웠다.
“악마 본체의 부활은 마지막으로 성검을 잡은 용사의 활약을 기점으로 없어졌다지만, 그 잔재만큼은 아직 세계 곳곳에 흩뿌려져 있으니까요.”
악마들의 본체가 찢어지면서 세상 곳곳으로 흩어진 조각.
대다수는 사념의 형태로 존재하다가 물건이나 장소등에 깃들지만, 가장 위험한 건 인간을 ‘그릇’삼아 그쪽에 스며드는 거다.
이후 ‘조건’이 전부 맞아떨어지면 그 그릇을 매개로 조각이 현현하고.
이전에 엘노어에게서 회색 악마의 조각이 현현한 것처럼.
‘문제는…’
그렇게 그릇을 매개로 악마의 조각이 한 번 현현하게 되면, 다른 악마의 조각들은 그 인간을 중심으로 다시 모이게 되는 성질이 있다는 점이다.
억지라고 봐도 될 정도의 필연에 의해서.
그래서 그릇이 가장 중요하고 위험하다. 사실상 악마 부활의 매개가 되는 존재들이니까.
“…”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같은 맥락에서, 한 번 악마가 현현한 엘노어는 아마 중대한 변화를 조만간 겪게 될 거다.
주로 어떤 부류의 ‘감정’이 대단히 증폭되는 쪽으로 나타날 확률이 높지.
그걸 최대한 좋은 쪽으로 이끄는 게 내가 할 일이고.
“그렇게 물질계에 현현한 악마의 조각은 반드시 궤멸적인 재앙을 일으켰습니다.”
그래. 나도 안다.
당장 시나리오에도 비슷한 게 있거든.
적야 사태. ‘붉은 악마’의 조각 여러 개가 깃든 인간이 그것들을 한꺼번에 현현 시켜 일어난 사고.
현 용사 후보인 엘리야의 가족이 통째로 휩쓸린 사고기도 하다.
“…”
붉은 악마의 권능 중 하나는 무한에 가까운 화염을 다루는 ‘업화’다.
물론 아무리 조각 몇 개가 깃들었다고 해도 그런 걸 제대로 흉내 낼 순 없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게임 CG로 볼 때에는 별로 와 닿지 않았지만, 그게 현실에서 일어난 사고라고 한다면 그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인간 한 명이.
도시 몇 개를, 아예 지도상에서 지워버렸으니까.
고작 하룻밤만에.
“그래서 이번에 트리스탄 공녀를 매개로 회색 악마의 권능인 침식 현상이 광범위하게 일어났을 때, 저도 전속력으로 이 근처에 온 겁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제압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 당시에 아탈란테는 필사의 각오였다고 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회색 악마’의 조각이니까. 판데모니엄의 지배자들 중에서도 최강의 존재.
그 위력은 천년 묵은 영속자조차 죽음을 예상할 정도겠지.
아니, 그것보다.
“…엘노어가 현현의 매개인 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짐작은 하고 있었죠. 확신한 건 이번에 워낙 증거 정황이 명확해서 그런 것이지만요.”
아탈란테가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성황국과 그쪽에서 파견한 제국 내부의 이단 심문소는 그쪽 관련으로는 대단히 유능하답니다. 악마의 조각이 깃든 ‘그릇’이 누군지 정확하게 찾아내지는 못하더라도, 후보군을 꾸려내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해요.”
한숨과 함께 문장이 이어졌다.
이건 좀 대단한데.
악마의 조각은 설정상 스스로 자신이 깃들 대상을 찾아가니까.
오랫동안 들키지 않고 잠복할 수 있고, 나중에 현현할 경우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물질계에 입힐 수 있는 대상에게 깃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지.
덕분에 시나리오에서도 랜덤 변수로 작용해서 누구에게 어떤 조각이 깃들었는진 전부 무작위였던 기억이 있다.
즉, 지금 이쪽은 나도 잘 모르는 정보를 후보군은 꾸릴 정도로 상세히 파악해 놨다는 거다.
꽤 큰 도움인 건 분명하지.
“하지만 그런 성질 덕분에 악마의 조각을 품고 있는 ‘그릇’들은 전부 함부로 건드렸다간 큰일이 나는 사람들뿐이에요.”
사회적 지위로든, 일신의 무력으로든, 대다수의 그릇은 높은 성취에 이른 인간들 뿐.
이런 인간들은 대다수가 신상이 각국의 정치와 맞물려 복잡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리기도 힘들뿐더러, 혹시라도 잘못 건드렸다가 안쪽에 있는 조각이 정말 현현하기라도 했다간 그대로 재앙이 펼쳐진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그런 그릇 후보들에게 취하는 태도는 관찰과 방치, 그리고 가벼운 관리 수준이다.
“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떻게든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유력한 후보군들을 전부 이 아카데미로 소집하는 데 성공했죠.”
그것도 대단한데.
그게 깃들 수 있는 대상이라고 하면 한 명이라고 해도 잘못 건드렸다간 거대한 후유증이 남을만한 인간일 텐데.
“시기도 적절했고, 대상도 적절했고. 천운이 따랐죠. 그 중에서도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제일 천운이지만요.”
“…예?”
“트리스탄 공녀를 대상으로 현현한 악마의 조각이. 당신을 ‘도와줬습니다’. 스스로에게 허락된 시간을 모두 사용해서까지요.”
“…”
그래, 뭐.
현현한 회색 악마가 나를 도와줬다는 것까진 이 사람도 알고 있었나.
정황을 생각하면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하긴 하다만.
“이상한 일이죠. 자신의 존재를 노출하는 것 자체가 약점이란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요.”
이유야 있겠지.
내가 개방한 스페셜 기프트인 ‘치명적인 매력’으로 나한테 극단적인 호감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별다른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그 부분이 핵심입니다.”
아탈란테가 여전히 미소 지은 채로 말을 이었다.
“악마는 당신에게 이상할 정도로 호의적이에요, 다우드 캠벨.”
“…예?”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은.
“설명하려면 한 가지 가설 밖에 없죠.”
나도 모르게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천 년을 가까이 살아온 저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게 본 현상이긴 합니다만.”
아탈란테가 확언했다.
원인조차 불분명하지만,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이들은 역사에 몇 차례 존재했다고.
“모든 악마가 광적일 정도의 집착을 보이는 인간. 물질계를 파멸시키는 게 목적인 존재가 스스로를 희생할 정도로. 그런 영혼의 성질을 타고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상대방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모든 악惡에게 사랑받는 운명을 타고난 자. 예. 제가 봤을 때 당신은 그런 인간입니다.”
“…”
내 능력, 그 정도 수준이었나.
-그거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한 재주야. 어떻게 다룰지는 네 선택 따라가겠다만.
이전에 천사 아저씨들이 내게 그렇게 말하기도 했었지.
이쯤되니 아탈란테가 말한 ‘세계의 존망’ 어쩌구 하는 것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나는 그 존재만으로도 이 세계관에서 악의 축을 이루고 있는 전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인간이니까.
“개인적으로 그런 성질을 타고난 이를 직접 마주하는 건 처음이라, 어떻게든 연구하고 그 원리를 밝혀내고 싶긴 합니다만, 당장은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죠.”
아탈란테가 한숨과 함께 얼굴을 쓸어내렸다.
별로 유쾌한 이야기를 꺼내려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런 성질을 타고난 존재는 태생 자체가 운명적으로 악마들을 끌여들입니다. 본인이 어떤 인생을 살아도 반드시 악마의 그릇들과 엮이게 되어있어요. 이건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예. 당신 또한 이번 세대의 악마의 그릇들과 반드시 엮이게 될 거란 이야기죠.”
이어서 흘러나온 이야기도 그런 맥락이었다.
“물론 당신 같은 인간 대다수가 좋은 최후를 맞이하진 못 했습니다. 예상하시다시피.”
그릇의 대다수가 보통 인간이 아닌데다가, 악마란 존재 자체가 파란을 일으키는 것들이니 항상 수많은 비극과 재앙을 몰고 다니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이 전부 달려든다면 인간 하나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렸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말을 꺼낸 아탈란테가 슬쩍 미소를 띄웠다.
“단 한 차례.”
악마의 조각을 품은 그릇과, 나와 같은 영혼의 성질을 각각 가진 남녀가 만나서.
진실된 사랑을 꽃 피우고 끝까지 살아남은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기적의 기적 같은 확률을 모조리 뚫고 일어난 일이겠지.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
“그릇에게 깃든 악마의 조각이 물질계에서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그 결과, 현현시킬 ‘매개’가 없어진 그 악마는 사실상 거의 영구히 봉인되었다고 봐도 좋을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릇이 없으니, 다른 조각들이 모일 가능성조차 차단된 것이니까.
“자세한 조건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릇이 사랑에 빠진 상태로 임종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니면 정말 강렬하게 상대방을 사랑해야지만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도 있고. 한 번 밖에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하는 관계’ 자체가 핵심이라는 건 이견의 여지가 없죠.”
아름다운 이야기다.
진실된 사랑이 파멸의 씨앗을 없애다니.
그래.
“…”
그런데 자꾸 왜 뒷덜미가 서늘해지는지 모르겠다.
“그것 아시나요, 학생?”
아탈란테가 씨익 웃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그릇 후보자들은, 글쎄요.”
정말 기분 나쁠 정도로 씨이이익 웃는 웃음이었다.
“우연의 일치로 전원이 여성이랍니다.”
“…”
뒷덜미가 더 서늘해진다.
얼간이가 아닌 이상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예.”
“제가 그 전원을 꼬셔서 악마의 조각을 전부 소멸시켜달라?”
아탈란테가 잔잔하게 미소지었다.
“하늘이 도운 기회입니다. 그런 성질을 타고난 것이 당신 같은 걸물이니까요. 여심 정도야 몇 명이고 후릴 수 있을 것 같은.”
“…”
“물론 쉽지는 않을 겁니다. 악마의 부활을 노리는 숭배자들이 계속해서 당신을 노릴 거고, 그릇들도 전부 보통 인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아탈란테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다우드 캠벨.”
“…”
“악마의 조각들은 계속해서 그릇을 매개로 점점 모이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점점 더 많은 조각들이 모이고 있죠. 이대로 간다면, 인류의 멸망은 필연이고 오로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
“간곡하게 청원드립니다. 부디.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전심전력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이 노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러니.”
인류를, 구해주십시오.
그런 말이 집무실 안으로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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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새하얀 천장이었다.
엘노어로서도 꽤 익숙한 모습이었다. 얼마 전에 콘라드 학장에게 덤벼들었다가 강제로 한 번 구경하게 된 바가 있었으니.
“…”
엘판테의 의무대다. 그녀가 정신을 잃었던 외곽 지역이 아니라 학관동 내부에 있는 장소.
그렇다면.
‘다우드는?’
그 남자는 어떻게 됐단 말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물음에 그녀가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
물론, 스스로도 곧바로 후회한 결정이었지만.
말도 못하게 만신창이로 다친 몸으로 하기에 적절한 행동은 아닐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격통에 그녀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
“…음?”
엘노어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별로 아프지 않다.
물론 어느 정도의 통증은 남아있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입었던 부상에 비하면 이 정도는 그야말로 산들바람에 비견되는 수준이다.
‘회복이, 빨라졌나?’
물론 검술 명가의 딸 답게 그녀 또한 신체 능력에는 일가견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의 회복 속도는 비정상적이다.
“…”
그러고 보니, 언제나 덜그럭거리던 심장 안의 음험한 기운이 평소보다 훨씬 잠잠한 느낌이기도 하다.
기억을 조금 돌려보면 정신을 잃기 전에 이 안쪽에 있는 무언가가 전신을 잠식하던 느낌이기도 했고.
‘뭔가가 바뀌었군.’
그녀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신체의 구성 요소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 같은.
그동안 심장 안쪽에만 있던 기운에 전신이 영향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화, 환자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주치의를 모셔오세요!”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간호사 중 한 명이 정신을 차린 그녀를 보고 경악해서 그렇게 외쳤다.
아무래도 절대 이렇게 빨리 회복될 부상이 아니란 감상은 그녀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닌 모양이지.
또한 그런 문장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병실의 문이 격하게 열렸다.
의사가 빨리 왔네, 라는 감상을 품기도 전에 그녀의 침대 옆에 쳐져 있던 커튼이 격하게 젖혀졌다.
“야, 너 괜찮아?!”
얼굴 전체에 다급함을 물들이고 있는 베아트릭스가 격렬하게 질문을 쏟아내었다.
“기억은 들어? 몸은 잘 움직여져? 어떻게, 어떻게 제대로…!”
“…진정하게.”
엘노어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제대로 건강하네. 기억도 전부 남아있고.”
베아트릭스가 숨을 몰아쉬며 엘노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확실히, 멀쩡해 보인다. 말하는 것도 그렇고 보이는 것도 그렇고.
“그래? 확실해?”
“확실하네.”
그리고 엘노어가 그렇게 대답하자마자 베아트릭스의 손바닥이 그녀의 등짝에 작렬했다.
“…”
태생이 문관인 베아트릭스답게 그리 강렬한 데미지는 없었지만.
이어서 베아트릭스가 거의 눈물 맺힌 얼굴로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
“걱정시키고 있어, 진짜! 어! 너 진짜, 야, 나 진짜 이번엔 너 죽는 줄 알고…!”
“…그렇게 심각했나?”
“나는 너 보자마자 그대로 영안실에 들어가는 줄 알았어!”
“…”
확실히, 좀 만신창이긴 했지.
“그보다, 다우드 캠벨은? 그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
하지만 당장 자신의 상태보단 그쪽이 더 문제다.
엘노어가 다급한 기색으로 그렇게 되묻자, 베아트릭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거의 죽을 뻔 해놓고 그게 걱정이야? 너 그 녀석 죽으면 무슨 대형 사고라도 치겠-”
베아트릭스가 그대로 말을 멈췄다.
그런 말을 꺼내놓자마자 엘노어의 눈동자에서 광채가 사라졌으니까.
순간적으로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베아트릭스의 등골을 타고 서늘한 감각이 쭉 올라왔다.
“아냐! 안 죽었어! 안 죽었으니까 진정해!”
“…상태는?”
“멀쩡해! 너보다 훨씬 멀쩡하니까 좀!”
그 말을 들은 엘노어의 눈동자에 그제서야 빛이 돌아오는 걸 확인한 베아트릭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아주 난리야, 난리. 아주 조금만 있으면 살림도 차리겠-”
베아트릭스가 다시 문장을 멈췄다.
이번에는 그 말을 들은 엘노어가 이마를 찡그렸기 때문이다.
아니, 딱히 방금 그녀의 말에 기분 나빠하는 기색은 아니지만.
조금 다른 의미로 그녀에게 입을 다물게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진지하게 방금 발언에 대해 숙고하는 모습이니까.
“…야?”
“…”
“왜 갑자기 조용해지고 그러는데. 무섭게.”
“아니, 전에도 그런 비슷한 말을 한 녀석이 있었다네.”
엘노어가 가늘게 뜬 눈으로 그렇게 답했다.
“두 명이나 그런 말을 한 거면 우연이 아니지 않겠나.”
“…”
아니.
우연같은데.
그냥 네가 좋을대로 해석하는 것 같은데.
‘좀 이상하지 않나?’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
예전에도 다우드란 녀석을 많이 신경 쓰긴 했지만, 이렇게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쪽 생각밖에 안 떠올리는 건 조금 이상하다.
이전에도 그런 낌새는 있었지만, 이건 뭐랄까.
‘…집착하는 게 점점 심해지는 것 같은데?’
무슨 계기라도 있는 건지. 조금 걱정이 되긴한다.
베아트릭스가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물론, 그런 걱정도 걱정이지만. 당장은 전달해줘야 할 게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요즘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없는 동안 고생이 심했나보군.”
“심한 정도가 아니라, 엄청 힘들었어. 다짜고짜 누군가 쳐들어온다고 해서 말이야.”
“…쳐들어온다고?”
베아트릭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두 명. 사람 참 심란하게 만드는 거물이 둘이나 온대.”
엘노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베아트릭스는 잔뼈가 굵은 학생회의 서기다. 온갖 거물들을 만나는 것 정도야 이골이 나도록 행해왔지.
그런데 이 정도로 힘들어하게 만들 인간이 누가 있단 말인가?
“첫째는 성녀님. 다음 학기에 들어오실 분이 느닷없이 바로 다음 주에 들어오신다지 뭐야. 성황국에서 하도 강력하게 밀어붙이니까 제국도 당황하면서 통과시켜줬대.”
“이유는 들었는가?”
“자신들이 꼭 조사해야 할 게 있다나. 성녀 정도면 아마 빈틈없이 가능할 거라고 해서.”
“…”
“너하고 다우드 캠벨이 엮인 그 소동 말이야. 이단 심문소에서도 아마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 다들 난리라고.”
엘노어가 표정을 찌푸리고 잠자코 듣고 있는 걸 본 베아트릭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가벼운 안건은 아니긴 하다.
성황국의 성녀라고 한다면 대륙에서 모르는 인간이 없는 유명인이다.
신의 대리인. 법황과 대주교처럼 실질적인 권력은 없지만, ‘상징성’ 면에서는 가히 대륙 최고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될 거물이니까.
그런 인간이 뭔가 ‘조사할 것이 있다’ 라면서 쳐들어 오는 데 유쾌하게 느낄 인간은 없겠지.
그렇기 때문에, 베아트릭스는 이어질 소식을 꺼내는 걸 잠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건, 원래 나중에 말해주려고 했는데. 말 나온 김에 알려줄게.”
“뭔가.”
“네 아버지가 아카데미에 오신다네. 기드온 경.”
엘노어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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