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7)
r 46 – 46. 결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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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으로 그러셨습니까?”
얼굴을 감싸 쥐고 있던 아탈란테에게서 그런 말이 중얼중얼 흘러나왔다. 거의 한탄마저 느껴지는 분노가 섞여 있다.
뭐라고 할 생각은 안 든다.
내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느라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을 테니까.
당장 내가 저지른 일이 외교적 및 정치적으로 초대형급 재앙인데도, 곧 열릴 약식 결투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진행해준 게 이 사람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하는 일에 전부 맞춰주긴 하려나 보지.
물론, 군말 정도는 본인도 참을 수 없나 보다.
“고위 전투 사제에게, 일개 아카데미 학생이 결투를 신청하다니요. 제정신으로 하신 일입니까.”
한숨과 함께 그런 말이 중얼중얼 흘러나왔지만.
“예.”
평탄한 목소리로 그렇게 답하자마자, 아탈란테의 한숨이 좀 더 깊어졌다.
“아무리 면책권이 있다지만, 너무 일을 크게 벌였어요. 모르시진 않을 것 아닙니까. 황실과 부족 연합까지 이 일에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아탈란테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이런 짓을 시작한 이유가 뭡니까. 당신 성향을 생각하면 아무 계획 없이 이랬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그 말에 피식 웃는다.
이유라.
이유야 당연히 있지.
“악마의 그릇, 꼬시라면서요. 한 명 찾았습니다. 이것도 다 그 계획의 일분데요.”
“…유리아 그레이하운처에게 ‘조각’이 발현된 건 이미 확인했습니다.”
아탈란테가 침침한 목소리로 답했다.
“원래도 그릇 후보 중 하나였습니다만, 발현이 가장 빨랐죠. 이 속도는 분명히 예상외입니다.”
확실히.
이 사람이 전달해준 ‘후보’ 목록에는 여러 가지 사람이 있었지. 아마 그 환경과 조건을 생각하면 유리아보다 조각이 빨리 발현할 사람도 몇 명 있었다.
3챕터 주요 인물 리루 가르다도 그렇고, 5챕터 주요 인물인 페이놀 라이펙도 그렇겠지.
그럼에도 유리아가 독보적으로 그릇으로 빨리 각성한 이유라면.
“…저랑 자주 접촉해서 그렇죠, 역시?”
“…”
아탈란테가 쓴웃음을 지었다.
모든 악에게 사랑받는다는 내 영혼의 체질.
어느 쪽으로건, 분명히 ‘악마의 조각’에게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다분히 있는 성질인 건 분명하다.
“총장님. 나비 효과란 말을 아십니까.”
“…예? 그게 뭡니까?”
뭐긴 뭐야, 씹새끼지.
메인 시나리오에 내가 연루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나한테 호의적으로 작용한 적이 없는 놈이니까 그렇게 불러도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내린 선택 하나하나마다 결국 계속 점점 몸집을 불려, 항상 이런 식으로 후에 크게 돌아왔으니까.
‘…원인은 결국 나지만.’
솔직히 그동안 내 편의에 맞춰서 온갖 것들을 손대고 다녔으니 모든 게 ‘원작’대로 흘러가길 바라는 것 자체가 양심이 없긴 하지.
그래도 어지간한건 무시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나도 다 살려고 한 짓이니까. 적당히 누가 영향받는 것 정도야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
하지만.
그래도.
정도란 게 있다.
유리아도, 루시엔도.
내 존재 때문에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
유리아는 어쩌면 조건이 안 맞아 그릇으로의 각성 없이 영원히 품고만 살았을 수도 있는 악마의 조각을 각성했고, 루시엔도 원래는 당하지 않았을 극심한 고문을 겪었다.
“…”
머릿속으로 엘노어와 엘리야의 존재도 스쳐지나간다.
그쪽도.
언젠가는 책임을 져야겠지.
“뭐, 아무튼.”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제가 당장 그쪽을 구해줬어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것 같진 않네요. 고문당하는 사람 구한 게 나쁜 일도 아니잖아요?”
지금의 상황을 격발시킨 ‘나비의 날개짓’은, 따지고 보면 전부 내가 일으킨 것이다.
따라서, 책임도 내가 진다.
“…”
내 눈을 잠시 바라보던 아탈란테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너 때문에 내가 못 살아, 라는 느낌이 진하게 묻어있는 행동이었다.
“고위 전투사제쯤 되면 그쪽에서도 내세울만한 고급 인력이에요. 법황 쪽에서도 분명히 반응이 있을 겁니다. 직접 참관할 수도 있고요.”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 로 퉁칠 상황이 아니에요.”
아탈란테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법황은 위험해요. 당신이 뭘 계획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쪽이 연루된다면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을거에요.”
아탈란테의 말은 나도 십분 이해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법황이다. 크레도 바오르 2세. 사제 계열의 최강자이자 성황국의 지도자.
게임에서도 후반부까지 플레이어를 징글징글하게 괴롭히던 악역이었지.
오죽하면 시나리오의 가장 커다란 난관인 악마 숭배자보다 이쪽이 더 개 같다는 의견도 종종 나올 정도였을까.
아탈란테쯤 되는 인간도 괜히 한 수 무르고 루시엔이 그 꼴을 당하게 방관한게 아니다. 내가 지금 거기에 덤비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지.
괜히 그쪽이랑 더 마찰을 빚으면 위험밖에 없다는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지금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선택지가 없거든.
‘…개같긴 하네.’
새삼 지금 상황이 어이가 없긴 하다.
그냥 메인 퀘스트만 못 깨도 게임 오버로 내 목숨 날아가는 건 확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 체질 때문에 계속해서 엮일 악마의 그릇들까지 꼬셔서 걔네들 멘탈 관리도 같이 병행 해줘야 하고. 아니면 걔네가 품은 악마들이 어떤 방식으로 폭주할지 알 수가 없으니까.
“…”
뭐, 내 기프트 덕분에 악마라면 무조건 날 좋아하니까 상관 없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악마의 성향에 따라서는 진짜로 내 사지 절단하고 어디 독방에 처박아서 가축처럼 사육할 수도 있다.
걔네 이름부터가 ‘악마’다. 애정이 어느 정도로 뒤틀려 있을 진 나도 짐작이 안 가거든?
엘노어에게 깃든 회색 악마가 날 순순히 치료만 해주고 물러난 게 굉장히 이례적인거다.
즉.
1. 메인 퀘스트 클리어.
2. 악마의 그릇들을 꼬셔서 멘탈 관리해주기.
이 둘 중 하나라도 동시에 못 하면 난 죽는거다. 난이도 한 번 지랄맞지.
“…”
그럼, 그걸 둘 다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위험해도 해야지. 법황이 오건 법황 할애비가 오건.
뭐 어쩌겠나.
“그레이하운처 자매. 성황국에서 만들어낸 인공 생물들.”
내가 중얼거린 내용에 아탈란테가 흠칫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원래대로라면 성황국의 최고 기밀중 하나다.
호문쿨루스 계획. 법황이 평생 숙원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업’의 추한 부산물.
“총장님도 그 둘이 어떤 성질인지는 알고 계시죠? 그릇으로 각성한 유리아가 더 심각해지지 않으려면 무조건 둘이 붙여놔야 해요. 안 그러면 진짜 걔 정신 무너집니다?”
“…”
“그걸 위해서는 이 결투, 꼭 해야 해요. 그쪽에 들어오는 성황국의 간섭을 벗겨내야 하니까.”
“…그런 파급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고작 결투 한 번에?”
“있죠. 분명히.”
지금은 없지.
하지만 그건 내가 결투 ‘도중에’ 만들어 낼 예정이다.
성황국에서 반드시 물러날 수밖에 없는 파급력을.
“…”
수단은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둔 건 아니지만, 내 예상이 맞다면 분명히 이 상황을 헤쳐나갈 가치와 위력이 있는 ‘조합’을, 나는 분명히 가지고 있거든.
“…당신,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살짝 목소리를 떠는 아탈란테에게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법황이 올 수도 있다고 하셨죠?”
무슨 생각을 하긴.
결국 모든 문제의 싹은 그쪽에서 파생된다.
더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 막으려면 그쪽이랑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얘기지.
“꼭 오라고 하세요. 안 오는 게 오히려 곤란하니까.”
어.
이 기회에, 그쪽 면상이나 한 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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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 장소는 아카데미 지하에 있는 조그마한 원형 투기장이었다.
심판은 아탈란테 총장. 참관인은 성황국 인원 몇 명과 캠벨 가문의 대표로 나온 집사 헤르만, 그리고 황실에서 파견된 게 분명한 공무원 몇 명.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스스로의 존재감은 분명히 어필할만한 인원들임은 분명했다.
“…”
하지만, 그런 인사들 중 누구보다도 눈에 띄는 인간이 있다.
클라인이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화려한 차양막. 금색으로 온몸을 휘감은 것 같은 젊은 남자의 ‘통신용 환영체’가 그 안에 앉아있었다.
법황이, 직접 이 결투를 지켜보고 있다.
몸은 아마 성황국의 교단 본부 안쪽에 있겠지만, 그런 의미로 자신의 모습을 본딴 환영체를 참석시킨 것이다.
이어서 그가 가늘게 뜬 눈으로 앞에 있는 건방진 녀석을 바라보았다.
‘겉으로만 보면 아무것도 없는 놈이란 말이지.’
굳이 기량을 깊게 가늠할 것도 없다.
검술이야 어느 정도 익힌 것 같지만, 전체적인 능력은 벌레 수준의 인간이다.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어떻게 저번 공방에서 자신에게 한 방 먹였는지는 아직까지 불가사의다.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양자가 검을 뽑아든 상태에서, 아탈란테의 목소리가 툭 떨어졌다.
“약식 결투이니 생사결은 금합니다. 누가 보아도 중한 부상이 생기면 곧바로 결투를 중지하고 승패를 가릴 것이고, 이외에는 먼저 항복을 선언하는 쪽이 나오기 전까지 결투를 계속합니다. 양쪽 모두 이해하셨습니까.”
“이해했다.”
“이해했습니다.”
심지어는, 고위 전투 사제인 자신과 대치한 상황에서도 여유롭기 짝이 없는 얼굴이다.
심드렁한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은 클라인의 이마로 핏줄이 튀어 올랐다.
본디, 학생은커녕 어지간한 아카데미의 교수진이라 할지라도 자신 앞에서 고개도 똑바로 들지 못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놈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아주 박살을 내주마.’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한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결투를 신청한 쪽은 상대방이다.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합법적으로 두들겨도 된단 소리지.
“…이제 용서를 빌기에도 늦었군.”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꺼내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 근처로는 각종 가호들이 생성되고 있었다.
신성한 문자의 형상을 띈 신성력이 실체화 되어 그의 근처를 감돌기 시작한다.
각 문자 하나하나마다 어마어마한 효과를 가진 것들이었다.
재생 능력 추가, 물리 방어, 민첩과 기교의 증대…
평범한 사제라면 성물을 붙잡고 몇십 분은 기도를 이어가야 생성될 가호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나는 모습은,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이들조차 입에서 감탄을 피워올리게 만드는 경지겠지.
‘…멍청하기 짝이 없군.’
그리고 그걸 순식간에 소환해낸 클라인이 검을 뽑아들고 가만히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다우드를 보고 피식 웃었다.
성황국의 전투 사제는 제국의 ‘기사’나 부족 연합의 ‘전사장’, 그리고 마탑의 ‘마도사’들과 버금가는 4대 전력 중 하나로 취급 받는다.
기사가 거의 모든 상황에 대처 가능한 범용성을, 전사장들은 거의 인간형 마수나 다름 없는 근접 전투력을 장기로 삼는다면, 전투 사제의 경쟁력은 전부 이 가호에서 비롯된다.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가호가 쌓이면 쌓일수록, 전투 사제는 한없이 무한에 가까운 생명력과 방어력을 가지게 된다. 덤으로 올라가는 신체 자체의 스펙은 덤이지.
이 가호가 생성되기 직전의 아주 짧은 시간이, 저 다우드 캠벨이란 녀석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을 터다.
그걸 그냥 가만히 서서 날려버리다니.
‘뭐, 알고 있더라도 찌르기 어려웠겠지만.’
이 가호들을 얼마나 빠르게 중첩시키냐가 전투 사제의 기량을 판가름하는 척도다. ‘고위’로 분류될 정도의 전투 사제라면, 실전에서 그걸 찌를 수 있는 인간은 같은 위계에 있는 기사나 전사장 밖에 없다.
아무리 그 기량이 뛰어나다 해도 학생 수준에서는 불가능하다 그거지.
“-!”
기합도 없이 조용하게 몸을 앞으로 날린다.
하지만 발을 박찬 돌바닥이 마치 폭약이라도 터진 것 마냥 갈려나간다. 가호가 한 개만 중첩되어 있음에도 이 정도 위력이다.
‘방심은 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그랬다가 일격을 허용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법황이 직접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추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
챙, 하는 소리와 첫 합의 교환이 이루어졌다.
양자간의 기량 차이를 생각하면 분명히 기괴한 상황이겠지만, 클라인은 거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이전에 한 번 겪어봤기 때문에 이 녀석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사전에 들은 것도 있었으니까.
‘죽이려고 덤벼들지 마세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성하?’
결투에 들어오기 직전, 법황이 직접 자신에게 남겼던 조언을 상기한다.
‘더 강하게 달려들면 달려들수록 상대방도 그에 맞춰 강해질 겁니다. 그런 종류의 능력이에요.’
법황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었지.
말도 안 되는 능력이다.
아무런 이능도, 조건도 없이, 그저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상대가 있다면 무조건 강해진다니.
‘이전에도 비슷한 걸 한 번 봤었죠. 설마 또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그런 비합리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이 또 있단 말입니까?’
‘있죠. 예. 있었죠.’
그 질문에 법황은 미묘한 미소만 지으며 대답했었지.
‘그걸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좀 애매하지만.’
끝까지 그게 누구였는지 밝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클라인은 그런 정보라도 주어진 것 자체에 감사하는 입장이었다.
이어지는 그의 공격을 다우드가 계속해서 반응해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카데미 학생과 고위 전투 사제라는, 하늘과 땅 사이의 간격마저 메우는 능력이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부터 전력으로 달려들었다간 그대로 당해버렸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상대방의 능력은 양자간의 능력치 격차에도 반응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얼마만큼의 ‘적의’를 품고 있는지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다면, 동작을 취하되 거기에 ‘살기’를 담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심상의 조정을 그 정도로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인간은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도 확실히 이전에 비해 위력이 죽어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이전에는 가볍게 그의 공격을 반격했던 다우드도 모든 공격을 튕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반격하기는커녕, 몇 개는 가볍게 맞거나 겨우겨우 방어하는 게 전부지.
그리고 여기서.
‘가호 중첩.’
주변에서 멤돌고 있던 문자들이 내뿜고 있는 빛이 더욱 강해졌다. 전투 사제만의 특징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강해지는 능력이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 그래도 흉악한 신체 능력이 더욱 증폭되며, 그의 기세를 더욱 강맹하게 만들어준다.
아까 전까지 근소한 차이였던 양자간의 격차가 더욱 심화된다.
튕겨내거나 막지 못하는 공격이 하나 둘 씩 발생하며, 다우드의 몸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그 격차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 녀석의 패배는 이미 확정이지. 클라인의 얼굴에 다시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실제로 이어지는 양상도 그랬다.
가호가 더욱 중첩되고, 그는 더욱 강해지며, 다우드의 몸에 상처가 점점 늘어난다.
“…”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라면.
그럼에도, 상대방은 계속해서 얼굴에 표정이 없다는 점이었다.
마치, 지금 자신이 절대 뒤집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조차 계산 하에 있다는 것처럼.
이어진 행동도 그런 불쾌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어이.”
한 차례 공방 이후로, 다우드의 팔에 길다란 자상을 남긴 클라인이 뒤로 살짝 물러서며 말했다.
“한 번 살려달라고 울부짖어보지 그러나. 그럼 너무 깊은 부상까지는 안 남겨주지.”
“…”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대답조차 없었다.
이에 부아가 더욱 치밀어오른 클라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생사결은 아니라지만, 죽음에 이르지 않을 부상이라면 뭐든 상관없지. 산채로 온 몸이 조각조각나는 경험을 하고 싶나? 차라리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고통을 느낄 수도 있는데?”
일부러 그런 단어를 써서 상대방을 위협해보았지만.
상대방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여전히 여유로웠다.
“어. 우연이네.”
그저.
“내가 지금부터 너한테 그거 할 거거든.”
그런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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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런 말을 꺼내는 것과 동시에, 클라인의 얼굴에 황당함이 가득 차올랐다.
“…뭐라고?”
“아니, 네 말대로 생사결이 아니잖아.”
눈앞에 떠올라있는 창을 훑으며 그렇게 답한다.
“나도 네가 안 죽을 거라는 확신은 있어야지. 가호 중첩 없었으면 바로 죽을 테니까.”
“…”
클라인의 표정이 일순 멍해졌다.
내가 한 말의 의미를 못 알아들은 모양이겠지.
이내, 활화산이 터지는 것 같은 분노가 얼굴에 떠올랐지만.
“…네놈, 지금. 일부러 가호가 중첩되도록 봐주고 있었다는 말을 지껄이는 거냐?”
“아주 멍청하진 않나봐?”
상대방의 눈동자에 곧장 핏발이 올라왔다.
“아직 여유가 있나보군. 그런 의미없는 도발을 할 수 있을 정도라니.”
“글쎄.”
첫 번째로.
나도 그렇게 여유가 있진 않다.
머릿속으로는 열심히 계산기를 두들기는 중이거든.
내가 지금부터 할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떤 후폭풍을 가져올 건지.
두 번째로.
의미 없는 도발이 아니다. 담담한 사실의 토로지.
가호가 충분히 중첩되지 않으면, 이 녀석은 진짜로 나한테 몇 초도 못 버티고 죽는다.
“…차라리 그냥 도발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아마 써먹을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몇 십초 내외.
하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하. 그 잘난 입이 어디까지 열려 있을 수 있는지-”
“야.”
한숨을 내쉬며 말을 끊는다.
생각해보면 말이야. 성황국에서 나한테 관심 있는 게 결국 궁극적으로 ‘악마의 힘’에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 거다.
법황의 평생 숙원인 ‘대업’을 이루기 위한 마무리 단계에서 꼭 필요하니까.
세계의 법칙마저 비틀어버리는 초월자들의 힘.
“진짜 진지하게 조언하는건데.”
그러니까.
그거 말이야.
내가 직접 보여준다.
“바로 죽기 싫으면, 너부터 입 닫고 집중해라.”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 ‘스킬: 계도’를 사용합니다. ]〓 현재 사용 가능한 기능
▶ 강신 – 분노 { 엘노어 }
[System Message> [ 악마의 기운을 확인합니다. ] [ ‘타천의 인장’이 반응합니다. ]세계가.
회색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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