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8)
r 57 – 57. 소년왕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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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옆쪽으로 육편 몽둥이가 내려꽂혔다.
가공할 정도의 파괴력이다. 타격을 맞은 대지는 완전히 박살이 나고, 거기에서 전해지는 충격만으로도 근처에 있는 건물들 전부가 들썩거린다.
다른 특수형 마수에 비해 이 녀석이 그런 자리를 꿰차고 있는 건 아주 간단하다.
별다른 특수 능력은 없지만, 튼튼하고 강력하다. 그런 단순한 장점이 극대화된 녀석이다.
‘그나마 속도가 느려서 다행이지!’
물론, 반대급부로 속도는 대단히 느려서 ‘특수형’이긴 하다. 대형 마수나 특급 마수보단 워낙 눈에 띄는 단점이라서.
그래서.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공격을 몇 차례 피하는 게 어렵진 않지만, 이쪽은 아직 저기에 공격다운 공격도 못 날려본 상황이다.
“…”
옆쪽에서 엘노어가 시선을 보내왔다.
이런 식으로 해서 1분 안에 돌파하는 게 진짜 가능하냐는 의미겠지만.
오히려, 이렇게 해야 더 빠르다.
[ ‘스킬: 탐색안’을 발동합니다. ] [ 대상의 정보를 불러옵니다. ] [ 같은 대상에게는 24시간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적용됩니다. ]물론 탐색안의 능력 대부분은 상대방의 ‘스텟’을 살펴보는 쪽에 몰려 있지만, 특정 조건을 맞추면 조금 더 여러 가지 기능이 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상대방을 ‘관찰’했다면.
“30초 지났네.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죽일 생각인가?”
“왼쪽 팔꿈치 뒤쪽, 오른쪽 종아리 뒷부분.”
“…뭐?”
“거기가 ‘핵’이에요. 때리면 유효한 타격이 들어가겠죠.”
“…”
엘노어가 실소를 흘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이가 없군. 그대를 보고 있으면 가끔 자괴감이 느껴질 정도네. 그간 해온 훈련의 상식이 깨지는 것 같아서.”
“…예?”
“언데드의 약점 탐색은 정규 기사들도 애먹는 작업이네. 그걸 또 30초 만에 해낸 건가.”
“…”
뭐, 그건 내가 잘한 게 아니라 스킬이 사기라서 그런거긴 하다.
악마의 씨앗처럼 얻기 어려운 재화를 4개나 퍼먹은 값을 하는 모양이지.
아무튼.
“…하지만, 그런 정보를 안다고 해도 죽이는 건 힘들 것 같네만.”
엘노어가 백스텝 한 번으로 몇 m를 물러서며 답했다.
지금 절체절명이 EX로 터진 나보다 더 신체 능력이 강한 모양이지만, 그럼에도 이어지는 말은 꽤 비관적이었다.
“외피가 대단히 단단해보이네. 불사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차치하고서라도 그냥 검으로 뚫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처음부터 죽이는 건 생각 안 했어요.”
1분 안으로 ‘돌파’한다고 했지, 이 녀석을 죽인다고는 안 했다.
물론 그걸 위해서는.
“엘노어, 당신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습니다.”
양심이 쿡쿡 찔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한숨과 함께 입을 연다.
“이 녀석이 다른 곳에 못 가도록 막아주세요.”
실제로, 그런 게 가능한 인간은 이 사람밖에 없다.
퇴마사들은 지금 저기서 무한히 되살아나는 다른 언데드들을 불사르는데 투자되어 있으니까.
“…”
엘노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마주보았다. 놀라움과 황당함이 뒤섞인 기색이다.
솔직히 지금 당장 나한테 폭언을 날려도 인정한다.
특수형 마수를 1:1로 마크하라니. 이건 도저히 아카데미 학생에게 지시할만한 내용은 아니거든.
하지만, 나도 아무런 근거 없이 말하는 건 아니다.
[ Skill Info > [ 강신降神 – 분노 ] [ 등급: S ] [ 대상의 ‘분노’가 한계치에 이르면, 몸에 저장된 악마의 조각의 권능 일부를 사용합니다. ]이것만 터지면 내가 말한 게 불가능한 게 아니다.
오히려 수월한 측에 속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
즉.
이 상황을 수월하게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이 사람이 화가 나야 한다.
아주 많이.
“…혹시, 지금 화나셨나요?”
일단 내 황당한 지시에 이 사람이 화가 나면 거기서부터 성공이긴 하다.
그래서 조금 희망을 담아 그렇게 질문하니.
“영광이군. 나는 그대한테 그 정도로 신뢰받고 있었나?”
“…”
“목숨을 걸고 해내 보이지. 그대의 신뢰에 부응하도록-”
아니.
그런거 아닌데.
이 사람, 내가 그렇다고 하면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믿을 기색이다.
“아니, 그.”
결국 솔직하게 토로한다.
“…화를 내주셔야 하는데요. 아마 그러면 강해지실거에요.”
내가 생각해도 조악하기 짝이 없는 설명이지만, 이 설명을 들은 엘노어는 그저 눈을 가늘게 뜨기만 했다.
“확실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군.”
“예?”
“이전에 리루 가르다와 만난 적이 있었지. 그대를 뺏어간다고 하기에 그 목을 벨 뻔했네.”
“…”
“그때, 그대의 말대로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군.”
아니, 그거 그쪽 성격하면 그냥 싸우고 싶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 걸텐데.
내가 아는 리루라면, 사디스트긴 해도 그런 쪽까지 건드릴 정도로 막 되어먹은 사람은 아니라서.
아무튼.
“그럼, 이 자리에서 그 정도로 화가 날 방법이라…”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도 곰곰이 생각하던 엘노어가, 이내 뭔가 떠올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 나한테 한 번 욕을 해보겠나.”
“…예?”
“그대한테 욕을 들으면 화가 날 확률이 높아보이네만.”
…그런가?
그럼 여기서 이 사람에게 적당히 분노를 치솟게 할 만할 문장을 꺼내보자.
“엘노어.”
“음.”
단어를 좀 고른다.
이 사람한테 굳이 욕을 하는 건 나도 안 내키긴 하는데, 본인이 그렇게 부탁하니까.
일단 시작은 가벼운 것부터.
“솔직히 가끔 저희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 System Message> [ 대상 ‘엘노어’가 당신의 영향을 받아 절망에 빠집니다! ] [ 움직임이 둔화됩니다! ]“…”
왜.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만, 그만하게.”
엘노어가 부들부들 떨며 그렇게 말했다.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눈가에는 살짝 눈물도 맺혀있다.
“…시작도 안 했는데요.”
“생각했던 느낌과는 좀 다르네. 그대한테 그런 말을 들으면, 그러니까, 분노를 한다기 보다, 마음에 상처를 입는…”
“…”
그게 또 미묘하게 다른가.
아니, 그보다.
느닷없이 절망에 빠진 건 진짜인 모양인지, 움직임이 살짝 느려져 있다.
아무리 지금 우리 둘이 만담 비슷한 걸 하고 있다지만 지금은 실제 전투 상황이다. 영향이 오면 안 되겠지.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입을 연다.
“아니, 진심 아니에요. 절대로 진심 아니에요!”
“…정말인가?”
엘노어가 평소보다 살짝 코가 맹맹해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예. 정말로!”
“…그럼 무엇 좀 물어봐도 되겠나.”
“예?”
“그대, 거짓말 하지 말고 답변해주게. 솔직하게. 그러면 용서해줄테니.”
엘노어가 다시 옆으로 꽂히는 육편 몽둥이를 슬쩍 피하며 말했다.
지금 이 상황보다 이 문답이 훨씬 중요하단 기색이다.
“…나 말고, 최근에 다른 여자랑 어울려 다닌 적 있나?”
“…”
“무언가 나를 빼두고 다른 여자와 단둘이 만날 약속이 있다거나, 그런 건 없겠지?”
“…”
“불안하단 말일세. 최근에 그대랑 같이 있지 못한 시간이 꽤 있었으니. 다른 여자가 생겨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닌가…”
“…”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자리에서 나올 질문은 아닌데.
하지만.
“…”
섬뜩한 느낌이 든다.
뭔가, 여기서.
거짓말을 하면 나중에 큰 일이 날 것 같은.
그러니까 그냥 눈을 질끈 감고 말한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아마 하나 생길 것 같긴 합니다.”
음.
별로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이전에 중간고사때 엘리야가 했던 말이 있었거든.
나한테 ‘부탁할 것’이 있다는 것.
그거, 아마 높은 확률로.
“엘리야 크리사낙스와 방학 때 제 고향으로 함께 내려갈 것 같은-”
[ System Message > [ 대상 ‘엘노어’가 당신의 영향을 받아 이성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분노합니다! ] [ ‘스킬: 강신 – 분노’가 발동합니다! ] [ System Message > [ 악마의 조건부 강림을 확인합니다. ] [ 악마의 조각과 그릇이 조금 더 긴밀하게 융합됩니다. ] [ 대상 ‘엘노어’의 1단계 융합 진행도가 99%로 변경됩니다. 곧 특별한 일이 생깁니다! ]“…”
솔직히 말하라며.
뭐든 용서해주겠다며.
식은땀을 흘리며 그런 생각을 곱씹고 있자니, 엘노어가 평소보다 수십 배는 서늘해진 눈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흉물스러운 ‘회색’ 기운이 몸 근처로 줄기줄기 흘러나온다. 누가 봐도 회색 악마의 기운이다.
〚…일단, 올라가게. 상황이 급하지 않나.〛
그 영향인지, 이질적인 노이즈가 깃든 목소리가 엘노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설명은 나중에 듣지.〛
“…”
예.
감사합니다.
속으로 그런 감사 인사를 되뇌이며 시계탑의 입구로 들어간다.
〚그럼.〛
엘노어가 몸을 슬쩍 돌려 다시금 이쪽을 향해 달려드려던 거인을 마주 보았다.
그러자.
-…
놀랍게도, 녀석이 움찔했다.
지성이 극한까지 퇴화한 언데드라도 본능적으로 아나보지.
지금 자기 눈앞에 있는 ‘대상’이, 어느 정도로 강력한 건지.
-!!!
-!!!!
그런 녀석이, 다시 괴성을 지르며 공격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조금 전에 자신이 겁 먹었다는 걸 부정하려는 것처럼 더욱 난폭해진 기세였지만.
〚입 좀 다물게나.〛
일섬.
엘노어가 그 자리에서 가볍게 날린 검격에.
‘풍경’이, 통째로 베여나간다.
————–!
육편몽둥이가 한 번에 잘리고, 그걸 잡고 있던 팔까지 분쇄기에 들어간 것처럼 산산조각 나서 흩날린다.
아무리 내가 아까 알려준 ‘약점’을 찔러서 나온 결과라지만, 저건 단순 스펙만으로 특수형 마수에 이른 놈이다. 강철 이상가는 경도를 가진 저만큼 두꺼운 팔을, 단 일격에.
심지어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뒤편에 있던 건물까지 검격에 의해 일부 잘려나간다.
“…”
그 모습을 본 전원이 멍해진다.
이게, 인간 규격에서 나올 수 있기는 한 공격인가?
〚…상대 좀 해주게. 뭐라도 안 베면 성이 안 풀릴 것 같아서.〛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전원이 직감할 것이다.
지금, 이 사이즈로 따지면 저 거인의 10분의 1도 안 될 여자에겐.
특수형 마수도 애들 장난으로 취급할 수 있는 괴력이 뭉쳐져 있다는 걸.
“…”
속으로 녀석의 명복을 빌어주며 시계탑 안쪽으로 달린다.
미니 보스전.
1분 만에 컷.
●
시계탑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길에, 바깥에서 플래시 테어러가 고통받는 소리가 들려온다.
계단에 나있는 창문으로 흘끗 바라보니, 엘노어가 거인의 머리채를 붙잡고 여기저기 휘두르고 있다.
그 거대한 몸체가 근처에 있는 건물을 싸그리 다 작살내면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 근처에 퇴마사들조차 경악해서 입을 쩍 벌리고 있다.
“…”
사이즈로 보면 대충 10배 정도 차이날텐데.
쥐가 고양이의 꼬리를 붙잡고 자이언트 스윙을 하는 느낌이네, 저거.
‘…다른 사람이 본다면 이해 못 하겠지.’
저런 수준의 전력을 굳이 이탈시킨다고 한다면 누구나 날 바보 취급 하겠지만.
발카서스 보스전에서, 엘노어는 빠져있는 편이 좋다.
이 사람은 내가 발카서스와 일전을 치루며 ‘할 짓’을 보면 분명히 또 회색 악마를 강림시킬 거다.
내가 좀… 많이 다칠 거거든.
그리고, 그렇게 되는 순간.
‘…지옥 간다.’
발카서스란 보스 자체가 악마랑 그렇게 상성이 좋은 놈이 아니다.
정확히는.
악마가 개입하는 순간, 오히려 발카서스 보스전의 난이도는 수십 배로 폭증한다.
그 사람의 과거를 생각한다면, 만약 악마가 강림할 경우 그때부턴 ‘진심’으로 달려들 확률이 높으니까.
그리고 발카서스의 본 전투력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악마의 그릇이라도 조각 한 개짜리로는 어림도 없다.
‘지금 이게 힘의 반도 안 쓴 거라는 게…’
어이가 없지.
아카데미 전체를 뒤덮은 언데드의 군세도, 금술 수백만 개를 다룰 수 있는 인간에겐 가볍게 힘을 내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말했다시피, 그쪽이 진짜로 힘을 낸다면 그건 애초에 플레이어 선에서 대적할만한 상대가 아니다.
원래 2챕터 최종 보스는 유리아라니까. 그쪽이 아니라.
하지만.
[ 악의 정수 ] [ 아이템: 스토리 ] [ 에픽 아이템과 상호작용 가능한 재료입니다. 융합시키면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
그런 발카서스도 거꾸러트릴 수 있는 수단이 있다.
손아귀에 잡혀있는 검은색 보석을 잠깐 손아귀에서 굴린다.
이전에 정화자를 격퇴하면서 받은 아이템이다.
‘사실 열의 아홉은 영웅의 파편쪽을 고르는데 말이야.’
세라 유저 붙잡고 스토리 아이템 중 악의 정수와 영웅의 파편 중 뭘 고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이거 원래는 난이도를 스스로 올려서 플레이하는 하드코어 유저한테만 권장되는 아이템이라서.
적의 대다수가 악 성향으로 분류되는 게임인데, 사용해봤자 그런 기운을 더욱 강화시키는 아이템이다. 맨정신으로 이런 걸 고를 놈은 별로 없겠지.
하지만.
만약 이 게임에 대해서 A부터 Z까지 꿰는 수준에 통달해 있는 미친 썩은물들은, 전원이 이 아이템을 고를 것이다.
이건, 만약 발카서스와 ‘전투’를 하게 된다면 유일한 열쇠나 다름 없는 물건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운동 좀 했나보구만? 젊은 게 좋아. 단기간에 체력이 그렇게 빨리 붙다니.”
마침내 도달한 시계탑의 꼭대기. 그 건너편에서 그런 말이 날아왔다.
발카서스다.
“아뇨, 운동은 딱히 안 했고. 이건 그냥 제 체질이 좀 특이해서요.”
“무슨 체질?”
“실전에 강한 체질.”
발카서스가 폭소를 터트렸다.
“…”
하지만, 난 거기에 호응해주는 대신 천천히 상대방을 살핀다.
그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와 같다.
해가 완전히 지고 슬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주변으로, 여전히 시계탑의 난간에 걸터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 그때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약속은 기억하고 계십니까?”
“물론.”
그렇게 말한 발카서스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공기가 일변한다.
“-!”
전신의 무게가 갑자기 수십배로 늘어난 것 같은 압력이 온몸을 짓누른다.
순간적으로 의식이 흔들릴 정도의 격렬한 충격에 나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다.
머리가 어지럽고, 전신의 관절과 뼛마디가 모조리 다 시큰거린다.
“…”
지랄이 짜네, 진짜.
아직 저 인간은 아무 것도 안 했다.
그냥, 일어서서.
‘기운’을 살짝 드러낸 것만으로도 이 모양이다.
“할 수 있겠나.”
발카서스에게서 평탄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말이지. 악마가 싫네. 그걸 숭배하는 녀석들도 혐오스럽고.”
그렇게 말하는 소년왕의 근처로 금술의 진이 하나 둘씩 생성된다.
하나하나가 능히 나 정도는 무난하게 갈아버릴 수 있는 위력의 술식을 품은 것들이다.
“…나와 내 왕국이 수 천 년의 고통 속에서 표류하게 만든 당사자가 악마들이니 말일세.”
그런 진이, 수 십 개, 수 백 개, 수 천 개.
눈에 보이는 모든 공간을 뒤덮는다.
전부, 이 한 사람이 순식간에 짜 올린 것들이다.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그런데도 그 선각자란 녀석한테 협력하는 이유가 뭔지 아나.”
그럼. 알지.
이 사람과, 이 사람이 품고 있는 왕국을, 유일하게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존재니까.
“…확신을 줄 수 있는 놈이 그놈 밖에 없어서겠죠.”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킨다.
온 몸이 작살나는 것 같지만.
괜찮아. 아직 버틸 만 하다.
싸울 만 하다.
한참 전의 옛날 이야기지만.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이거보다 더한 것도 극복해 봤다.
“유일하게 당신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신.”
발카서스가 미소지었다.
“역시, 전부 알고 있는 모양이군?”
소년왕이, 느긋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선각자란 녀석이 약조하기를. 이 아카데미를 모조리 다 ‘청소’하면, 나를 죽여주기로 했다네.”
그건 메인 시나리오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이 사람의 평생 숙원인 ‘죽음’이 걸려 있는 문제니까,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라고.
금술 수 백만 개가 몸 하나에 쑤셔 박힌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죽고 싶을 때도 제대로 못 죽는 인간이 된다.
아주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는다면, 그렇단 얘기다.
“그대가 만약 해내지 못 한다면, 나는 그걸 그대로 이행할 예정이네. 충실하게.”
이 아카데미에 있는 인간, 전원을 청소한다.
실제로 그게 가능한 인간이고.
하지만.
“약속했잖습니까.”
씩 웃으며 시계를 살핀다.
“제가 당신과 당신의 왕국을 구원한다고.”
“…”
“그 방법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진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걸린 시간을 제하고 나면, 남은 시간은 10분.
그 안에 보스전을 돌파하지 못하면, 아탈란테가 버티고 있는 결계가 깨진다. 사실상의 제한 시간이지.
즉.
10분 안에, 이 사람을 이기지 못하면 난 죽는다.
가능할까?
“…”
질문할 필요도 없다.
‘떡을 치지.’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그렇다면.”
주변에 펼쳐진 진이 요사스러운 빛을 품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하고, 준비한다.
“증명해 보게나. 입만 산 게 아니라는 걸.”
2챕터 보스. 소년왕 공략전.
전투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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