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9)
r 58 – 58. 소년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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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할 생각인가?”
금술이 쏟아지기 직전, 그런 질문이 발카서스에게서 날아왔다.
이 사람이 보기에도 지금 양자간의 전투력 차이가 개미와 코끼리 수준이니까 하는 얘기겠지.
“그게 말이나 됩니까.”
물론, 아무리 나라도 수중에 갖춰진 수단조차 없이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대충 이때쯤에 맞춰서 불러놓은 놈들이 있다.
슬슬 도착할 때 됐는데.
“와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악—!]“…”
비명 한 번 다채롭구나.
두 사람의 목소리와 한 사람의 글자가 뒤섞이는 것과 동시에, 아래쪽에서 사람 한 뭉치가 시계탑 최상층의 발코니 쪽으로 날아들었다.
[ ‘스킬: 성흔’을 사용합니다. ]콰당탕탕, 하면서 날아드는 녀석들에게 울트리마에 내장된 스킬을 통해 방어막을 덧씌워준다.
이전에 사용하던 신성 방패에 비해 확연하게 두꺼워진 신성력 보호막이 그쪽을 감싸는 것과 동시에, 녀석들이 벽과 바닥 여기저기에 부딪히면서 통통 튀어다녔다.
“이거, 다시는, 다시는 안해요! 숙련자니까 인솔을 하기는 개뿔이 진짜! 이딴 거에 숙련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리고 보호막이 해제되자마자, 그 안쪽에서 가장 먼저 달려 나온 엘리야가 울분에 찬 기색으로 그렇게 왁왁거렸다.
확실히, 몸 쓰는 직종이다 보니까 체력이 좋은 모양이다.
루시엔이나 유리아는 안색이 새파래져서 거의 기어다니다 시피 엉금엉금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할 만 했으면서 엄살은.”
[그래요, 이 정도는 꽤 할 만…]옆에서 내 말에 동조하려던 유리아가 공중에 글자를 마저 띄우지도 못하고 그대로 입을 가렸다.
구역질을 참는 모양이다.
“…”
그래. 확실히 안전수칙은 전부 다 폐기한 방법이긴 하지.
사용한 건 이전에 나하고 이 녀석이 이면계에 돌입할 때 사용했던 그 ‘투석기’다.
나중에 이름이나 붙여줄까. 이쯤 되면 정 들 것 같은데.
“…궤도만 지정해주고, 아무런 안정 장치도 없이, 지상에서 몇백 미터 높이에 있는 곳까지 5분 안에 날아오라는 말을 들었는데. 엄살? 엄사아아알?”
“…”
녀석이 이를 부드득 갈고 있는 것을 보니, 솔직히 별로 할 말은 없지만.
나는 그냥 그냥 셋이서 꼭 껴안고, 최대한 옹기종기 붙어서 한 뭉치로 여기까지 ‘날아오라고’ 말 한 게 전부니까.
오히려 그런 미친 지시에도 그냥 군말 없이 따라준 걸 고맙게 생각해야겠지.
“어쩔 수 없잖냐.”
피식 웃으며 몸을 돌린다.
“그렇게라도 니들 빨리 안 부르면 안 되는 상대인데.”
몇 분이라도 더 늦었으면, 그때는 게임 오버 확정이었다.
있는 시간은 꼴랑 10분이니까.
“…”
흘끗 고개를 돌려 유리아가 착용하고 있는 ‘별철 서클릿’을 확인한다.
제작학부의 불칸 교수가 힘 좀 써준 모양이다. 당장 이 녀석들이 옹기종기 붙어서 딱 날아오는 동안에도 별다른 위험 신호는 없었으니까.
저게 ‘착용’되어 있고, ‘작동’하는 동안엔, 유리아에게 적용된 단절의 저주는 극단적으로 약화된다. 일시적으로 해제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효과는 간단하다.
저걸 착용하고 있는 동안, 유리아는 ‘베려고 하는 것’에만 저주를 적용시킬 수 있다.
단절의 저주를 공격용 버프기로 사용할 수 있는 느낌이지.
“루시엔.”
“…발카서스.”
그런 생각을 곱씹고 있는 사이, 몸을 일으키는 루시엔을 발견한 소년왕이 껄껄거렸다.
“예전엔 나한테 협력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섭섭하구만.”
“…”
“뭐, 농담이네. 그래도 동생은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군.”
루시엔이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은 모습이다.
아마 이 사람도 발카서스가 어째서 죽음을 바라는 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
생명을 불태워 스스로를 금술로 만든자의 혼은 금술을 그 몸에 새긴 자에게 속박된다.
발카서스는, 자신의 몸에 깃든 백성들의 혼을 해방하기 위해서 죽음을 찾는거다.
“…당신의 왕국은, 구원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어서, 성녀님이 그런 말을 꺼냈다.
“이 남자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
발카서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어지는 목소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해가 완전히 능선 너머로 넘어가고, 어둠이 사방으로 깔리는 배경으로.
발카서스의 실체가 드러난다.
형체조차 윤곽 없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다. 세계 전체에 깔린 어둠 속에 완전히 동화된 것처럼.
어떻게 보면, 그것들 전부를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그쪽을 바라보던 엘리야가 얕은 신음을 내뱉으며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손이 살짝 떨리고 있다. 모를 리가 없다. 지금 자신이 대치하고 있는 게 어느 위상에 도달한 괴물인지를.
“저거, 이길 순 있어요?”
엘리야가 그렇게 물었지만.
“너희들이 내 말만 잘 들으면.”
간단하게 대답해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 말고는 아무도 못 이겨, 저거.”
애초에.
세라 고인물 중에서도, 발카서스와 ‘전투’ 루트를 처음으로 돌파해낸 인간이 바로 나다.
주변에서는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결국 해냈지.
‘아니, 왜냐하면…’
이 사람, 보스치고는 참 사람이 호감 가서.
발카서스를 효율적으로 ‘써먹을’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니 이것밖에 없더라고.
그러니까, 이전에 약속한 것 있지 않나.
‘부하’로 써먹는다고.
“…진짜 이 사람은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뜨겠어, 아주.”
엘리야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사이.
“그러면, 대화는 이쯤이면 됐고.”
발카서스의 숨결에서 독기가 올라온다.
말하자면, 공격 신호다.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수준으로 판단합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EX등급으로 적용합니다. ]“이만, 시작할까.”
“옵니다!”
루시엔의 목소리와 함께.
금술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
수천 년을 관류해온 세월 동안, 발카서스가 지나온 전장터는 수도 없이 많았다.
유일한 소망인 죽음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확률이 높은 환경을 찾아다닌 것도 있겠지만.
왕국에 찾아든 ‘악마의 재앙’을 불러일으킨 뱀의 혀를 가진 자가 내린 저주는, 대단히 악독한 것이었다.
그는 반드시, ‘공정한 1:1 상황’ 속에서, ‘전력을 다 한 전투’를 통해 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죽지 않는다. 그런 종류의 저주다.
-왕이니까, 네놈은 조금 더 특별하게 죽어야 하지 않겠어?
왕국에 저주를 내린 자의 그 혐오스러운 목소리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지. 발카서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에도.
왕이라면, 백성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법. 복수는 나중 문제다. 지금은 그저 자신의 몸에 속박된 그들을 해방시키는 것뿐.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수백만 개의 금술이 한 몸에 쑤셔박힌 자와 전투를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가정이다.
지금 아카데미 전체를 뒤덮은 망자의 군세조차 그의 전력의 반조차 이끌어내지 못한 술식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걸 1:1로 받아낼 수 있는 녀석이 세상에 어디있다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선각자에게 협력해 왔었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쪽이 그 인간이라 생각했으니.
악마숭배자들의 수장. 끝을 알 수 없는 음험함으로 무장한 괴물.
그 ‘바닥’은 그조차도 볼 수 없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지금.
그는 처음으로.
“…하.”
그런 가능성을, 타인에게서 찾고 있었다.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자.
그것도 주어진 인생의 반도 채우지 못한 애송이에게서.
-!
그가 제자리에서 눈을 감고 진 몇 개를 순차적으로 작동시켰다.
금술은 이미 몸에 박아둔 술식을 토대로 현상을 일으키는 술법이다. 여타 이능처럼 형상화도, 영창도, 매개도 필요 없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썩어문드러지는 것 같은 어둠을 주변으로 뿌리는 것 같은 구체 몇 개 였다.
하나하나가, 전부.
보통의 술자가 비슷한 짓을 시도하려거든 뇌가 튀겨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고위 술식이다.
그와 대치하고 있는 이 인간들의 수준을 생각한다면, 닭 잡는데 소 잡는 칼도 아니고 운석을 때려 박는 급이다.
대응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 일격만으로도, 상대방은 반드시 무너진다. 수 천 년을 이어온 전투의 경험이 그런 사실을 확신에 가깝게 고한다.
하지만.
날아드는 금술에 성녀의 가호가 끼어들어 진로를 방해한다. 성황국에서 ‘신에게 선택받은 자’라고 선언할 정도로 막대한 신성력을 가진 여자가 생성해낸 가호가 어둠의 구체와 격돌한다.
물론, 그럼에도 상대는 되지 않는다. 수 천 년동안 죽음을 쫒았음에도 ‘너무 강해서’ 그게 불가능했던 괴물이다. 아무리 강한다 한들 인간 한 명의 힘으로는 상대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구체의 ‘속도’는 분명히 느려졌다. 대응할 틈이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어느 순간 별철 서클릿을 끼고 있는 소녀가 그 구체 앞에 서서 검을 뽑아든다.
‘저 검…’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아마 그만큼이나 연식이 오래된 검인 걸로 기억하지.
단절자.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저주가 응축된 검.
그렇다는 건, 그가 만들어낸 저 구체를 충분히 ‘잘라낼’ 수 있단 소리다.
실제로, 그 여자가 짧은 기합성과 함께 검을 휘두르자. 범위 안에 있는 구체들이 전부 양단되어 갈라졌다.
이어지는 반격도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흡!”
시야 바깥에서 주황색 머리칼의 소녀가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에게 접근했다. 그도 이름은 들어본 사람이다. 당대의 용사 후보. 원래는 선각자도 이쪽을 제일 경계했다지.
술식을 발동하고, 해제당하는 순간이라면 반드시 술자에게도 틈이 생긴다. 금술같이 그런 단점들을 극단적으로 줄인 능력도 마찬가지고.
물론 기껏해야 초 단위를 너머 소수점 이하의 순간에만 적용되는 찰나지만, 소녀의 검은 바로 그 순간을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왔다.
-!
“칫!”
하지만, 근처에 깔려 있는 ‘자동 방호’ 금술에 의해 무위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그 타이밍만큼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정확했다. 발카서스조차 등골이 곤두설 정도로.
이번에도, 상대방은 무너지지 않았다.
단순히 무너지지 않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공방’이 성립하고 있다.
‘…계산해왔군.’
완벽한 인선이다.
그의 공격을 약화시켜 반응할 틈을 버는 성녀, 범위 안에 들어오는건 뭐든지 잘라버리는 능력을 토대로 모든 금술에 대한 절대적인 방어력을 선보이는 저주 받은 소녀, 그리고 가장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에게 공격을 담당할 용사 후보.
선각자는 그 남자의 계획을 훼방놓기 위해 일부러 정해진 일시보다 하루 빠르게 일을 치룰 것을 명령했다.
그런데도, 이 상황에서도.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맞춰온 것이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정말로 대단하군!”
그가 탄성을 터트렸다.
전투가 이루어진다. 제대로 성립한다.
원래대로라면 그의 앞에 똑바로 서 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을 인간들이!
‘이건, 전부…!’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 상황 전체를 통제하고 있는 인간 한 명이 있다.
그의 시선이, 맨 후열에 물러서 있는 다우드 캠벨을 바라보았다.
얼핏 보면 안전한 위치에 물러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그 자리에서 내리는 모든 지시가 이 전투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정확함, 신속함, 그리고 번뜩이는 기발함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 없다.
‘아니, 아니지. 그런 것 따위가 아니야.’
발카서스가 사납게 웃으며 그런 생각을 되뇌였다.
지금 저쪽이 부리고 있는 신기神奇는, 고작 그런 뻔한 수식어로 치부될 수준이 아니다.
저 남자가, 이 전투의 중핵이다.
성녀도, 인류 역사상 최고最古의 저주를 품고 있는 소녀도, 용사 후보도, 심지어는 발카서스 본인조차도.
이 전투의 지배자는 아니다. 가장 강렬한 영향력을 선보이고 있는 이가 아니다.
저 남자는, 단신으로.
이 햇병아리들과 자신 사이에 있는, 수 천 년과 술식 수백만 개 어치의 ‘간극’을 메꾸고 있었으니까!
“이것도 받아보게!”
다시, 공격이 이어진다.
이전에 날아간 금술보다 훨씬 강력한 것들이다. 단순히 구체 형태로 날아가던 공격과 달리 공간 전체를 뒤덮는 부패의 금술.
“이런, 미친-!”
용사 후보가 그런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독을 응축한 것 같은 초록색 광선이 사방으로 내뿜어졌다.
-!
시계탑 위쪽의 천장이 붕괴하며, 강렬한 빛이 사방을 뒤덮었다.
그가 품고 있는 금술 중에서도 특대급에 가까운 물건이다. 원래대로라면 단단히 건축된 성벽들조차 일거에 허물 수 있는 위력의 금술을 이 공간 내부에 응축시켜서 풀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진짜 선생님, 이렇게 고생시키는 거 나중에 다 돌려받을 줄 아세요-!”
무너진 잔해 속에서 치솟아오른 용사 후보가 다시 그에게 검을 날렸다.
화끈한 감각이 볼을 스친다.
전투 중 처음으로 그에게 발생한 유효타였다.
“…”
발카서스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볼을 쓸었다.
피가 묻어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대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붉은 액체.
“…하.”
짧은 날숨이 그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문득, 깨달았기 때문에.
속도를 올려도.
아무리 더 많은 힘을 쏟아부어도.
“하하…”
쫒아온다. 부러지지 않는다.
그와, 맞상대가 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밀리기 시작한다.
그 끝으로 간다면, 분명히.
그의 패배로 끝날 수도 있겠지.
“하, 하하하하하하-!”
발카서스가 폭소했다.
“이걸로 끝은 아니겠지. 더 보여줄 수 있겠지!”
그래. 확실히 알았다.
입만 산 게 아닌 남자라는 건, 분명히!
“어디 한 번, 날 죽여보게!”
내용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지만.
환희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
한계까지 달아오른 두뇌 때문에 눈 밑마디가 뜨겁다.
‘…진짜, 이, 미친…!’
이렇게까지 머리를 써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진짜 죽을 것 같네.
순간 순간적으로 검사의 집중으로 반사 신경을 극대화 시키면서까지, 없는 틈을 짜내서 대응하고 있다.
보스전의 패턴에 맞춰 네 명의 동선을 동시에 계산하는 건, 상정한 것 이상으로 중노동이다.
별철 서클릿을 유리아에게 씌워둬서 ‘제약’을 미리 없애두지 않았다면, 나라도 진작에 실패했을 정도로.
“…”
숨을 몰아쉬며 전방을 바라본다. 또 패턴이다. 금술로 맺어진 진들 몇 개가 다시 빛을 뿜어낸다.
형태와 생성 시간만 보고 무슨 공격인지 바로 계산하여 산출해낸다.
수평거리를 전부 휩쓰는 어둠의 참격. 못해도 3개 이상.
“루시엔. 37위계 112기도문. 4개 뽑아서 각 방향으로 뿌려요. 유리아. 기도문 궤적 따라가서 대기. 엘리야. 3초 숙이고 일어서서 전방으로 3보.”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온 구도다.
루시엔이 공격을 약화시키고, 유리아가 그걸 방어하며, 엘리야가 그 틈을 타서 천천히 상대에게 데미지를 누적시킨다.
4초 째에 패턴 종료.
다음 공방을 또 준비한다.
“…잘 버티는 건 좋은데!”
엘리야가 그런 비명을 내질렀다.
“저거, 죽기는 해요? 지금까지 대체 몇 번을 베었는데!”
“못 죽이지.”
“…”
날 노려보는 엘리야에게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지금처럼 해서는 못 죽인단 소리야.”
지금 하는 짓은, 말하자면 곡괭이 하나 들고 산을 깎아내리고 있는 짓이다.
깎이긴 깎이는데, 한도 끝도 없이 오래 걸린다고. 실용성은 없다.
이건 오히려 빌드업에 가깝지.
“무슨 소리에요?”
“사람은 생각보다 잘 속는다고.”
특히, 반복적으로 뭔가가 계속 이어져 온다면.
서로 그러자고 약속한 적도 없는데 그걸 ‘당연한 걸로’ 인식해버린다.
그러니까.
지금 이 공방도, 의도적으로 내가 이렇게 ‘단순히’ 끌고 가는 거고.
“…”
시계를 살핀다.
무슨 뜻이냐는 표정을 짓는 엘리야에게 뭐라 설명할 틈도 없이, 다음 지시를 이어간다.
“온다!”
남은 시간 2분. 이 정도면, 슬슬 기다리던 게 나올 때가 됐다.
내가 시간을 ’10분’으로 잡은 것도, 그 시간 안이라면 이 패턴을 한 번 정도는 무조건 구경할 수 있어서니까.
사방에서 출렁이며 생성되는 어둠의 가시.
‘그렇지.’
내가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던 패턴이다.
이게, 이 보스전 공략의 가장 중요한 페이즈다.
다른 패턴과는 달리, 이건 상대방의 ‘시야’도 같이 차단하는 패턴이라서.
“…”
그러니. 나도 여기서 노림수를 준비한다.
루시엔이 그걸 보고 곧바로 기도문을 생성한다. 여기까지는 똑같지.
하지만.
[ ‘스킬: 신앙의 증명’을 사용합니다. ] [ 모든 스텟 추가분이 ‘내구’와 ‘신성력’으로 전환됩니다. ] [ ‘스킬: 성흔’을 사용합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요소’를 추가한다.
울트리마의 내장 스킬 두 개를 동시에 발동해서 금술을 방어하는 쪽에 훨씬 힘을 실어주고.
“일어나, 이 양반아!”
[…이제는 이름으로도 안 부르네?]졸린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칼리반을 깨워서 다른 스킬도 이어서 발동.
[ ‘스킬: 심상세계’를 발동합니다! ] [ 범위 내의 대상들에게 ‘스킬: 신앙의 증명’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금술의 방어. 곧바로 반격.
발카서스도 바보가 아니니 카운터를 예상하고 이런저런 방어술식을 짜 올리고 있었다.
그 방어는 지금까지 이어온 것처럼, 원래대로는 ‘엘리야의 공격’을 대비한 것이다.
하지만.
-!
-!!!
이전과는 다르게, 공격자는 그런 금술에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모조리 다 ‘썰어버리며’ 접근한다.
“…!”
깜짝 놀란 발카서스가 금술을 방어한 쪽을 본능적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구도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으니.
하지만, 그쪽에는.
“…와, 이, 진짜, 선생님, 나중에, 각오…”
버프를 전부 다 몰아받고, 간신히 그걸 방어해낸 ‘엘리야’가 기진맥진한 기색으로 그런 문장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인원은.
“깜짝 등장.”
어둠을 뚫고.
내가 목줄을 잡고 집어던진 유리아가 튀어나왔다.
오직 이 일격을 위해서.
지금까지 패턴을 이렇게까지 단순화시키며 저 사람에게 ‘학습’시킨 거다.
착지 지점은 발카서스에게서 단 한 발자국.
그리고 저 안쪽에 거리는.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시나리오에 있는 ‘모든’ 등장인물을 한 방에 컷낼 수 있는 화력이다.
별철 서클릿이 번뜩인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유리아가 눈앞에 있는 대상을 ‘베어야 할 것’으로 인식했다는 의미다.
“이런…!”
발카서스가 당혹스러운 단어를 내뱉는 것과 동시에.
번개처럼 뛰쳐나간 단절자가, 발카서스의 심장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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