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66)
r 65 – 65. 폭풍의 상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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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민 캠벨 남작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영지민 중에서 그에게 나쁜 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늘 일선에 뛰어들어 궂은 일도 함께하고, 항상 아랫사람들을 위하며, 공무도 항상 냉정하고 침착하게 처리하는 유능하고 친근한 영주.
그리고 아르민은 본인이 어째서 그런 평가를 받는 지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눈앞의 인간에게서 도망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영지민은 없을 것이다.
“…차는 입에 좀 맞으십니까?”
사실 이런 말을 듣는 대상이 누군지 감안한다면 질문 자체가 황당한 수준일 것이다.
사치에 연이라곤 하나도 없는 영주답게 적당히 투박한 다기에 오래된 찻잎과 약초를 달여 냈을 뿐이다.
다른 영지에서 방문할 사람도 없어서 적당한 접대용 물품도 구비해놓지 않은 탓이었다. 그 돈으로 차라리 영지민들의 농기구를 하나라도 더 새 걸로 바꿔주는데 썼었던가.
“괜찮군.”
하지만.
제국에서 나는 각종 산해진미라면 전부 손에 대어봤을 대상은 그냥 그렇게만 말하고 있었다.
기드온 게일스터드 라 트리스탄.
위에 있는 인간이 황제 밖에 없다는 제국 최고의 권력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갑작스레, 심지어 그 어떤 수행원도 없이 혼자 갑자기 영지에 그 얼굴을 비출 인간은 아니다.
‘트리스탄 공녀만 해도 이미 한계인데…!’
설마하니 트리스탄 대공 본인까지 이미 찾아오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르민이 속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그쪽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행색도 그런 대귀족이라고 보일만한 상태는 아니다.
전신에 감겨있는 붕대. 전부 다 헤진 옷가지들. 그 위에 걸려있는 검 한 자루와, 바위처럼 단련된 육체와 근육.
대귀족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속세와 연관 없는 곳에서 수행에만 매진한 방랑 검객같은 모습이다.
“…죄송합니다, 대공. 부끄럽지만 제대로 된 물품도 없는 변방 시골이라 이런 게 전부인 점을 사과드리고 싶…”
“아니.”
기드온이 찻잔을 쭉 비우며 답했다.
틀림없이 조잡하고 쓴 맛이 전부일 텐데, 그런 것들이 전혀 거슬리지 않는단 듯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네.”
“…”
아르민이 당황하여 눈을 끔뻑거렸다.
“오는 길에 보는 영지민들은 모두 웃고 있더군. 이런 평화로운 장소라 해도 모두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그것만 봐도 아르민 캠벨이란 인간이 영지민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 지 한 눈에 보일 것이다.
“그만큼 자네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단 소리야. 자랑스러워 해도 좋네, 캠벨 남작.”
적어도, 이 변방의 조그마한 영지를 통치하는 남작은 귀족의 권리만 생각하고 의무는 떠올리지 않는 짐승들보다는 훨씬 나은 인간임이 분명했다.
이런 ‘진짜’ 귀족을 만난 게 대체 얼마만이란 말인가.
기드온이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자네의 아들도 그런 걸물로 성장했겠지.”
“…예?”
갑작스러운 말에 아르민이 멍하니 대답을 내놓았다.
아니, 여기서 느닷없이 아들놈 얘기는 왜 나온단 말인가?
“…실례지만, 다우드하고는 무슨 관계이신지…?”
“사제 관계네.”
아르민이 입을 쩍 벌렸다.
세상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트리스탄 대공에게 제자로 인정받았단 말인가?
어릴 때부터 항상 똑똑한 아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그 정도로 재주가 대단한 아이일줄은 몰랐는데!
‘아카데미에 보내기를 잘 했어…!’
아르민이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과거의 결정에 스스로 감탄했다.
없는 영지 사정에 쥐어짜내서라도 아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길 참으로 잘했다.
그저 훗날 영지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자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것뿐인데,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맥을 만들어 올 줄이야.
“참으로 감사합니다, 트리스탄 대공. 그 아이에게 그렇게나 귀중한 기회를 주시다니. 사례로 어떤 걸 드려야 할지-”
“…아니.”
기드온이 눈썹을 찌푸리며 답했다.
“뭘 착각하는지 모르겠다만, 내가 제자네.”
“…”
아르민의 표정이 멍해졌다.
뇌기능이 일순간으로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지금 이 사람이 대체 뭐라는거지?
“이번에 영지에 방문한 것도 중간 점검을 받기 위해서네만.”
“…”
“그쪽이 내준 과제가 있었는데, 내 나름대로 성과를 보는 데 성공해서. 다시 새로운 과제를 받을 때가 됐지.”
“…”
“부디, 내가 해 온 노력이 올바른 방향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네.”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는 기드온의 모습을 본 아르민의 뇌에 번개가 내려꽂히는 충격이 다시 찾아들었다.
지금.
트리스탄 대공이.
자신의 아들에게 ‘결과물’을 내보이는 걸 긴장하고 있다.
마치 교수에게 과제 검사를 받는 학생처럼.
“…”
한참을 정지해있던 아르민의 뇌가 간신히 움직였다.
자, 상황을 정리해보자.
하도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곱씹어보진 못했지만, 자신의 아들은 켄드리드 변경백의 양녀와 트리스탄 공녀를 동시에 데리고 영지에 들어온 바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공 본인은 자신의 아들의 제자라고 말하고 있다. 스스로의 입으로.
‘…아들아.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니?’
분명히 고향을 떠날 때만 해도 눈에 띄지 않고 생활하겠다며…!
그런 비명이 아르민의 속에서 절규처럼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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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는 안 다친다니까요.”
“…”
엘노어가 대답없이 붕대를 꽉 동여멨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얕은 신음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동작이었다.
“그대는 항상 사람 속을 썩여야 직성이 풀리나보군.”
엘노어가 나를 노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다치고 싶다면 차라리 나에게 말하게. 후유증 없게 흠씬 두들겨 줄 테니.”
“아니, 이번에는 진짜로 어쩔 수 없었…”
엘노어가 내 등을 철썩 때렸다.
말대답 하지 말라는 뜻인가보다.
“…”
개아프네.
이 사람은 힘 빼고 친 것 같은데,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렬한 타격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래도 그런 부탁은 하지 말게.”
“…예?”
“시험 삼아서 그대를 한 대 때려보니 생각 이상으로 미안하군. 그대가 부탁해도 그걸 들어주진 못 하겠네.”
“…”
그러시단다.
뭐라 대답할 생각도 안 들어서, 그냥 점검할 거나 점검하기로 했다.
일단 ‘지출’부터.
◎ 리스토어 포션
[ 아이템: 소모품 ] [ 가격: 15,000pt ] [ 손상된 신체를 천천히 복구시켜줍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할 정도인 치명적인 부상에는 큰 효과가 없습니다. ] [ 현재 남은 포인트: 1,000pt ]진짜 개같이 비싸네.
내 오른팔에 부어넣은 물건이다. 이거 하나만으로 기프트 보상과 메인 퀘스트를 깨면서 차곡차곡 쌓아왔던 포인트 대다수가 날아갔지.
당장 이걸로 켄드리드 변경백한테서 호감을 따낸 걸 생각하면 싸게 먹혔다고 볼 수도 있겠다만.
영지를 얻음으로서 마수와 던전 토벌에 참석 가능한 입장에서, 크라트가 지배권을 쥐고 있는 ‘북부 국경지대’는 그야말로 노다지 밭이다. 게임 안에서 강력하다고 소문난 유물은 대부분이 그쪽에 포진되어 있으니까.
‘그림자 밟기, 부동 장막, 지축분쇄자…’
그쪽에서 파밍할 수 있는 사기 유물들의 리스트를 떠올리고 있으면, 진짜 오른팔 정도야 싸게 먹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순례 고향 행사의 일환으로서 엘리야가 내 고향에 들렀으니, 나도 다음 방학 때 그쪽에 방문할 명분 정도야 충분히 있다. 그때 그런 걸 노리면 되겠지.
“도착한 모양이군.”
마차가 멈추는 것과 동시에, 엘노어가 그런 말을 흘렸다.
아무튼 골딕 자작의 영지에서 볼 일은 전부 마쳤으니, 내 영지에서 ‘할 일’을 다시 하자고 복귀한 상황이다.
“…”
희망 회로를 좀 태워보자면.
그냥 다같이 방학이니까 좀 느긋하게 쉬면서 같이 놀자는 의미로 알아듣고 싶다.
제발.
심각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차에서 내리니, 옆쪽 마차 안에서 크라트와 엘리야도 함께 내리고 있었다.
그쪽과 눈이 마주친다.
그러자마자 순식간에 얼굴이 귀끝까지 붉어진 엘리야가 고개를 휙 돌렸다.
아까 전에 크라트와 한바탕 하고 난 이후로는 계속 이 상태다.
“…참 나.”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크라트의 얼굴이 순식간에 언짢아진다.
“딱 봐도 양쪽에 걸치는 놈인데. 그게 맞니, 엘리야?”
“…제가 알아서 할게요, 변경백님.”
새침한 말투로 그렇게 말한 엘리야가 이내 영주성 안쪽으로 후다닥 뛰어들어갔다.
얼굴은 여전히 귀끝까지 붉어진 상태였다.
“…”
말없이 그 모습을 보다가, 창 하나를 눈앞으로 불러온다.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엘리야 크리사낙스
[ 관심 4단계 ] >>> [ 신뢰 1단계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있습니다! ]순식간에 두 단계를 넘어서서 호감도 단계가 진화한 것도 물론 대단한 일이지만, 이것 자체로 나한테 뭔가 큰 변화가 오지는 않는다.
선 성향 인물의 호감도 단계 변화는 포인트만 준다는 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니까.
그것 이상으로 신경 쓰이는 건 그 아래로 적혀 있는 문장들이다.
[ 부정 각인 3 중첩 → 부정 각인 해제 ] [ 해제의 효과로 새로운 상태가 부여됩니다. ] [ 당신에게 ‘매료’ 상태입니다. ] [ ‘Gift#1 : 운명적인 이끌림’의 효과가 대상에게도 적용됩니다! ]“…”
그러니까.
이 녀석, 선 성향 인물임에도 다른 악 성향 인물처럼 나한테 호감도 증가 효과를 받는단 거다. 아마 이 녀석이 성장해서 다른 스킬을 얻는데 성공하면 계도 스킬을 통해 그 기능이 나한테 그대로 공유된단 의미이기도 하고.
거기에, 그 뒤로 붙어있는 게.
[ ‘부정 각인’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던 선 성향 인물을 당신에게 매료시켰습니다! ] [ ‘Gift #2: 근묵자흑’의 강화 조건을 충족합니다! ] [ 한 번 더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면 해당 기프트가 강화됩니다! ]당장 첫 번째 기프트가 강화되면서 얻은 효과가 내가 가진 능력 중에서도 사기이기로는 손꼽히는 계도 스킬이다.
이게 강화되면 또 뭐가 튀어나올까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지.
“…”
그런 창을 쭉 훑으면서 영주성 안쪽으로 들어가며 느낀 점.
분위기는 여전히 얼어붙어있다.
엘리야는 붉은색이 빠질 기미가 없는 얼굴로 말 없이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크라트도 언짢은 얼굴로 그 뒤를 따라가는 중이고, 엘노어도 우중충한 얼굴로 엘리야를 노려보며 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처음 여기에 도착했을 때 서로 말 한 마디 없이 움직이던 분위기와 비슷하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박살나 있는 분위기라고 해도 될 정도다.
“…”
이상하다.
우리 다 같이 골딕 자작 패면서 기분 푼 것 아니었나?
왜 분위기가 이 정도로 작살이 나 있지?
“…앞으로는 조금 더 열심히 감시해야겠군.”
“예?”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시점에서 앞으로 대체 몇 명을 이런 식으로 데리고 올지 짐작도 안 되네. 우선순위만 똑바로 기억하면 어느 정도는 봐 줄 생각도 했네만, 이 정도로 사람한테 자각이 없어서야…”
“…자각이요?”
“여태까지 그대가 누군가에게 안 잡아먹힌 걸 다행으로 여기라는 말일세.”
“…”
“당장 나도 참기 힘들 때가 가끔 있으니.”
섬뜩한 느낌에 나도 뭐라고 대답하지 못 하고 성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덕분에 숨 막히는 분위기를 만끽하며 다 같이 입 다물고 걷는 걸 반복하는 느낌이다.
다만 이전과는 다르게 그런 실얼음판을 해소시켜줄 것도 없는 게 문제지.
그런 생각을 하며 울적하게 아버지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다녀왔습-”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생명에 위협이 되는 사건이 곧 일어난다 판단합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A등급으로 적용합니다. ]이게 갑자기 왜 켜지냐.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지만, 그런 궁금증은 금방 해소되었다.
“…기드온?”
“…크라트?”
켄드리드 변경백과, 트리스탄 대공.
제국 안에서 서로 사이가 안 좋기로는 손꼽히는 그 두 명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서로 눈을 끔뻑거린다. 설마하니 이 놈을 여기서 만날지는 몰랐다는 기색이다.
그리고 이어서.
-…
-…
-…!!!!
거기에 있는 전원의 얼굴이 새파래질만한 살기가 주변으로 뭉게뭉게 풍겨저 나온다.
“…”
순간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왜 EX로 안 켜졌냐?’
이 두 명이 ‘직접’ 만나는 건, 틀림없는 재앙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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