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68)
r 67 – 67. 토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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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 백작은 생각보다 상황 파악이 빠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꽤 사소한 부분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자주 드러내곤 한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의 상황 판단력을 너무 신뢰하는 나머지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에 자진해서 걸어들어 간다던지.
자신에게 제국에서 제일가는 대귀족 두 명이 동시에 캠벨 남작의 호위로 붙어있단 상황이 말이 안 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첫 대응부터가 대단히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할 수 있겠지.
무장 병력을 잔뜩 대동하고 캠벨 남작을 맞이하러 나간 것은, 사실 그렇게 잘못된 대응까진 아니었을 것이다.
상대방이 정말 그런 인간들을 사칭하는 미친놈들이었다면 그대로 흠씬 두들겨서 내쫒거나 아예 죄를 물어 목을 베어버리면 그만이고, 아주 낮은 확률로 진짜 그런 인간들이라 할지라도 무장 병력을 대동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실례가 되진 않으니까.
그저 영지 사정 상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대면 그만인 일이다.
문제는.
그 두 명이, 단순히 무장 병력을 감히 자신의 앞에 끌고 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문답무용으로 이쪽을 두들겨 패겠다는 선택을 내렸단 점이었다.
“…그, 이만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러면 안 되지.”
부상자들의 신음이 가득한 주변으로, 크라트가 피식 웃으며 다우드의 의견을 묵살했다.
명목상이야 영지에 방문한 건 아르민 캠벨 남작이라지만, 처음부터 체스터 백작을 대면하러 나온 쪽은 그 아들이라는 이 젊은 남자였다.
어쩌면 백작은 거기서부터 뭔가 이상하단 점을 빨리 느꼈어야 했을지도 모르지.
“지 멋대로 남한테 패악질 하는 녀석은 자기 것도 무참하게 짓밟힐 수 있다는 걸 알아야 그런 짓을 안 해. ”
“그냥 화풀이하고 싶다는 말을 고상하게 하는 군, 야만인.”
“…좋게 말해줘도 지랄이야, 새끼가. 응?”
이마 위로 혈관이 올라온 크라트가 그걸 꿈틀거리면서 그렇게 말했지만, 정작 그런 말을 꺼낸 기드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였다.
“하지만 말 자체야 동의하는 바군.”
기드온이 바닥에 네 발로 엎드려 있는 체스터 백작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백작위에 해당하는 인간을 이렇게 굴릴 수 있는 사람은 황제라고 해도 힘들겠지만, 당장 기세가 험악한 대귀족 두 명이라면 그런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사람을 괴롭히려거든 무덤은 두 개를 파놓고 있었어야 했네. 아무런 대책 없이 이렇게 걸어나오는 걸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와. 하다못해 대리인을 보내서 시간을 끄는 모습을 보였다면 자각이라도 하고 있단 느낌은 있었겠지.”
체스터 백작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기드온의 시선을 피했다.
아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자신의 영주성에 있는 응접실에서 얼차려를 받을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인데.
‘대체 왜 이런 놈들이 느닷없이…!’
체스터 백작이 눈동자를 굴리며 양 옆에 서 있는 인간 두 명을 바라보았다.
시종장이 정보를 전달해 줄 때까지만 해도 거짓말인 줄 알았다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떠올릴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 이 두 명은, ‘진짜’가 아니면 도저히 설명이 안 될 아우라를 전신에서 뿜어내고 있었으니.
제국은 생각보다 굉장히 간단한 국가다. 효율을 가장 우선시하지.
그에 따른 엄격한 신상필벌에 의해 유지되는 체제에 의하면, 제국에서 가장 커다란 세를 유지하는 대귀족 두 명은 그에 걸맞는 능력을 가지고 있단 소리다.
그 결과에 의해 제국에서 가장 ‘능력 있는 인간’이 이 두 명이다.
고작 두 명이서 백작령 전부를 뒤집어 엎는데 20분도 걸리지 않은 괴물.
골딕 자작의 영지도 두 명에 의해 작살났다고 듣긴 했지만, 당장 백작령은 그쪽에 비하면 영토도 수 배는 더 넓고 사병들의 훈련 수준이나 숫자 역시 월등하다.
그래도 골딕 자작의 영지는 몇 시간은 버텼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영지는 1시간을 채 못 버틴 채 무너진 것이다.
“그, 그건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체스터 백작이 고된 육체 노동에 의해 갈라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물론 지금 근처에 널부러져 있는 그의 호위 기사들이 본다면 무슨 그 정도가 말 같지도 않은 부상이냐고 따지겠지만.
농담이 아니고 근처에서 팔 다리가 안 부러지거나 피를 안 토한 인간들이 없다. 전부 눈앞의 두 괴물이 만들어놓은 짓이다.
“사정? 무슨 사정인데요?”
눈앞의 젊은 남자가 심드렁한 기색으로 그렇게 반문하는 것을 본 체스터 백작의 눈에 핏발이 올라왔다.
감히 자신의 앞에서 저런 불경한 태도라니, 고작해야 남작가의 후계자에 불과한 하등한 놈이…!
“걱…!”
그렇게 생각하던 체스터 백작의 몸이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누군가가 그 옆을 가볍게 걷어찼기 때문일 것이다.
“…거, 어어, 어어억…!”
물론 얻어맞은 입장에서는 전혀 아니었지만.
눈앞으로 섬광이 점멸한다. 너무 아찔한 통증에 입에서 침도 줄줄 새어나온다.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걸 보니 부러진 늑골이 폐 근처라도 찌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기드온.”
그 모습을 본 다우드가 한숨을 내쉬며 그런 짓을 한 인간을 불렀지만, 트리스탄 대공이 아랑곳하지 않고 고저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표정이 마음에 안 들었으니 어쩔 수 없다.”
“…”
“스승을 욕보이는데 가만히 손가락만 빠는 사제 관계가 있을 수가 없지.”
“…”
엘노어하고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째 부녀가 똑같다.
다우드가 그렇게 생각하며 얼굴을 쓸어내리는 사이, 피를 토하는 체스터 백작과 크라트는 동시에 얼굴에 의아하단 기색을 띄우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 이 두 명이?
애초에 뭔데 남작가 후계자가 대공을 이름으로 친근하게 부른단 말인가?
“샌님, 너 언제서부터 제자 받고 있었냐? 자기 수련한다고 문하생 들일 생각은 죽어도 안 하던 놈이?”
기드온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왜 사람들이 자꾸 착각하는 지 모르겠는데, 제자가 내쪽-”
“-사정이나 말씀해주실래요?”
괜히 쓸데없는 소문이 더 퍼지기 전에 재빠르게 그쪽 문장을 잘라낸 다우드가 체스터 백작에게 말을 이었다.
“당신, 그래도 양아치 분위기는 좀 있었어도 이렇게 깡패짓까지는 안 했잖아요. 뭔가 이유라도 있는 게 아닙니까?”
“…”
기색을 따지자면 아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불경했으나, 체스터 백작은 기드온의 발차기 한 방에 예절 주입이 완료된 참이었다.
그래서 그는 뭐라고 따지는 대신 떠듬떠듬 설명을 내놓기로 했다.
“여, 영지, 중앙, 산맥에, 괴, 괴물이 살고 있습니다.”
“괴물?”
틀림없이,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 모습을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때때로 산 정중앙에서 퍼져나오는 ‘회색 파장’이 주변 공간을 통째로 잠식한다고 하던가.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받은 공간은.
“마치, 시간을 멈추는 것 같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느려지다, 종국에는 결국 멈춰버린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그 영향 범위가 넓어지고, 효과도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나.
그 근처에 살고 있는 자신의 영지민이라도 어떻게든 살리고자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땅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 체스터 백작의 입장이었다.
“커헉-!”
그런 설명을 꺼낸 체스터 백작의 몸이 다시 공중을 날았다.
이번엔 크라트가 그쪽을 한 대 후려쳤기 때문이겠지.
“…”
“…”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한 체스터 백작의 모습을 둘러싼 상태에서, 모두의 시선이 크라트에게 가서 꽂혔다.
과연 이게 지금 저지르기 적당한 행동인가에 대한 의문이 담긴 눈빛에, 그가 그 모든 시선을 일일이 마주봐주며 답변했다.
“뭐.”
“…”
“남 괴롭히는 주제에 자기는 정당했다고 포장하는 거 짜증나서 팼다. 불만 있냐?”
“…”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기드온을 제외한 모두가 그쪽에서 시선을 피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다우드가, 이내 말 없이 한숨만 내쉬었다.
머릿속으로는 한창 생각이 정리되고 있었다.
지금 그가 들은 내용으로 유추해보자면, 이건 그도 잘 알고 있는 이벤트였으니까.
‘악마의 조각.’
그것도 회색 악마의 조각.
모든 악마의 그릇에게 돌발 변수로 찾아오는 ‘조각 흡수’ 이벤트.
그 중 엘노어와 관련된 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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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대’의 편성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체스터 백작에게는 그런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 줄 테니 주변 영지에 패악질을 부리는 건 그만두라고 잘 일러둔 참이다.
[…해결해줄 테니 백작 가문의 가보를 내놓으라는 게 잘 일러둔 거냐?]“그럼요.”
[…]링커 안에서 그렇게 질문하는 칼리반에게 단호하게 대답해주자, 탐탁찮은 침묵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아마 영체화 상태였다면 나를 어이 없다는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지 않을까.
“나중에 필요해요, 그거.”
이번 퀘스트에 보상으로 걸려 있는 중급 유물과 체스터 백작에게서 뜯어낼 그쪽의 ‘가보’를 합친다면, 꽤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거든.
‘…나도 스텟 좀 올려야지.’
내 스텟은 얼마 전에 영지를 수여 받아 마침내 F를 탈출한 ‘권력’을 제외하곤 여전히 답보 수준이다.
그 두 개를 합친다면 그쪽에서 꽤 도움이 될 물건 하나를 얻어낼 수 있겠지.
3챕터의 보스인 [뒤집힌 해일의 사도]는, 뭐라고 해야할까.
전투 자체의 난이도가 높은 건 아니지만, 음흉하기로는 전체 보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놈이라서.
클리어도 클리어인데, 내 ‘생존 난이도’가 천정부지로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
챕터 진행 중에도 시도 때도 안 가리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나를 지속적으로 죽일 시도를 계속해서 시도할 공산이 높은 보스거든.
[진짜 세상 언밸런스한 조합이네…]그런 생각을 곱씹고 있자니, 칼리반이 내 지시에 따라 그걸 잡으러 갈 인간들의 조합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멤버는 켄드리드 변경백 가문 부녀와 트리스탄 공작가 부녀, 그리고 나다.
엘노어와 엘리야는 그렇다 치고, 기드온과 크라트마저 ‘시킬 일’이 있다고 말해놓은 덕분인지 저기 둘 다 군말 없이 따르는 모양이고.
[너, 이거 다 통제할 수 있냐?]칼리반이 그런 걱정을 할 정도로 괴악한 조합인 건 틀림없다.
가는 길에 싸움이나 안 나면 다행이지.
하지만.
“여기에 호문쿨루스 자매도 추가될 건데요.”
[…]“저도 힘들 거 알아요.”
내 영지에 들어오고 있다는 연락을 전서구로 보낸 성녀님한테는 곧바로 체스터 백작이 말한 산맥쪽에서 합류하자고 전언을 보내둔 상태다.
그만한 인원들이 전부 모이면 틀림없이 트러블이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내 입장에서도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전부 모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건 꽤 중요한 이벤트다.
이어지는 대화만 봐도 그렇겠지.
[그런데, 아무리 이 정도 인간이 모였다지만 그래도 용케 그거 잡으러 갈 생각을 하네.]“예?”
[너도 대충 아는 것 같은데, 상대는 조각이 깃든 그릇이야. 근처에 아무리 으리으리한 사람들이 많아도 쉽게 토벌 결정을 내릴 상대는 아니라 그거지.]그건 그렇다.
다만.
“인간형 그릇은 아니잖아요.”
[음?]“일어나는 현상의 상태를 들어보니 어디 숨겨져 있던 조각에 마수가 재수 없게 접촉해서 그쪽에 깃든 느낌이에요. 상대가 그 정도니까, 이 정도 멤버면 충분히 토벌 가능성이 높죠.”
[…그릇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모양인데?]“적어도 인간형 그릇이 폭주한 게 아니라 다행이란 점은 알죠.”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한다.
“…가디언들의 일은 유감입니다, 칼리반.”
아뮬렛 안의 성기사가 침묵했다.
인간형 그릇이 폭주한 적야 사태를 진압한 장본인으로서, 칼리반은 내가 말하는 게 어느 정도의 차이인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형 그릇은, 저 괴물같은 기드온과 크라트에 동렬로 놓아도 될 강자인 칼리반이, 비슷한 기량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목숨을 불사르며 간신히 진압한 사태다.
“그러니,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쪽은 지금 토벌해야 해요.”
그런 면에서, 그릇의 조각 흡수 이벤트는 반드시 내가 끼어들어서라도 ‘좋은 쪽’으로 진행해야 하는 이벤트다.
똑같은 흡수 이벤트라도 어떤 식으로 ‘조건’을 맞춰주냐에 따라 그릇의 상태가 천차만별로 변하니까.
이번 이벤트 이후로, 엘노어의 성격은 좋건 싫건 반드시 변한다.
이제 그걸 최대한 ‘폭주’와 멀어지는 방향으로 형성되도록 컨트롤 하는 게 내가 할 일이지.
“…”
그런 생각을 하며 장비를 챙겨 마차에 탈 준비를 하는 엘노어와 기드온을 바라본다.
서로를 무시하고 있다.
그냥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서로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로 철저한 수준이다.
‘…어쩔 수 없지.’
저 두 명, 서로의 관계에 놓인 감정의 골이 쌓인 게 거의 십수년이다.
오히려 저런 게 당연한 반응이라 그거지.
하지만.
아마 이 이벤트가 끝난다면 그래도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야.]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칼리반이 문득 뭔가 떠올랐다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예?”
[너, 방금 저 아가씨의 폭주를 막는다 어쩐다 하는 게 목표라고 안 했냐?]“그런데요?”
[…]칼리반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해보는 눈치였다.
[이번에 누구누구 모인다고? 여자만 말해봐.]“…? 용사 후보, 트리스탄 공녀, 성녀 자매… 정도네요. 그게 왜요?”
칼리반이 잠시 침묵하다가 피식 웃었다.
나로서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웃음이었다.
“…왜 그렇게 웃어요?”
[아니,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서.]“뭐가요?”
[걔네 전부 모여서 서로 얼굴 보는 거, 이번이 처음 아니냐?]“…그렇기는 한데, 그게 왜요?”
[넌 뒤졌다고, 임마.]“…”
아저씨.
설명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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