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71)
r 70 – 70. 기드온
●
엘노어 에리나리제 라 트리스탄은 다우드 캠벨이 소중하다.
적어도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에 감정에 대해 요약을 해보라고 한다면 그런 문장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녀 본인조차 깨닫지 못했던 점이라면.
“…나는.”
그녀는 생각보다도, 더.
훨씬 더 많이.
그 남자 관련된 일이라면, 감정이 격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나한테는, 가족이 되자고까지 했으면서, 왜, 다른 여자한테-”
목소리에 이질적인 감정이 섞인다. 심장에서 새어나오는 그 ‘기운’이 전신에 깃드는 느낌도 이어온다.
“그런 건, 그런 건..!”
단순히 다른 여자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화나는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그 남자와 해보지 못한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는 것.
적어도 그 남자의 모든 ‘처음’만큼은 자신이 가져가야 한다.
감히 다른 여자가 그걸 경험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내가 훨씬 더 잘 받아줄 수 있는데…!”
자신은 목줄 말고 다른 것도 얼마든지 다 해줄 수 있는데…!
왜 자기한테 먼저 안 오고 다른 여자한테…!
“…”
옆에서 말없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엘리야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니, 화내는 이유가 좀 이상하다.
이 사람 대체 그 남자한테 얼마나 코가 꿰인 건데?
‘…그건 그렇다 쳐도.’
곧바로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지금 엘노어가 몸에서 뿜어내던 기운은 보통 심상치 않은 게 아니었으니까.
아직 본인도 갈팡질팡하고 있어서 제대로 가닥이 잡히지 않은 느낌이긴 하지만, 어느 순간 유리아에게 쏟아질 적의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은 느낌이다.
또한, 이건 예전에 한 번 겪어보았던 기운이기도 했다.
이전에 만월제 축제때, 일대 전체를 뒤덮었던 회색 기운.
그리고, 기억을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 가지 더 있기는 하다.
붉은 밤. 그녀의 가족이 전부 휩쓸린 그 저주받은 날의 기억.
‘…악마?’
아니, 설마.
물론 트리스탄 공작가의 핏줄에는 악마가 산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느닷없이 공녀가 그런 기운을 뿜어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자신이 착각하고 있을 확률이 높겠지.
“…”
만약 이게 진짜 악마일 경우.
이단 심문소가 이미 진작에 발칵 뒤집어졌어야 정상이다. 그 악마 탐색에 눈이 뒤집어진 인간들이 이걸 눈치 채지 못 했을 리가 없다.
하물며 그 대상이 유명인인 트리스탄 공녀라면야.
악마를 품고 있는 그릇의 취급이라면, 그야말로 전 인류의 공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제국 황실이나 그에 준하는 세력이 이에 대한 정보를 억누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진작에-
‘아니, 그건 너무 갔다. 설마 그러려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쓴웃음을 지었다.
적어도 그녀가 인식하고 있는 제국 황실은 그런 음흉한 집단은 아니었다.
그러니, 쓸데없는 의심을 하기보다는 현재 상황 해결이지.
“…잠깐만, 공녀님. 일단 진정하시고-”
그렇게 말하며 엘노어를 말리려던 엘리야의 시선이 이내 뭔가를 포착했다.
다급하게 캠프 안으로 뛰어오는 다우드 캠벨.
‘…가면은 또 언제 쓰셨대?’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신같이 또 다우드의 얼굴에 착용되어 있는 가면을 바라보았다.
뭐, 아무튼. 마침 잘 되었다.
“아, 선생님! 여기 와서 이거 수습 좀 하세요!”
“말 안해도 그럴 참이다.”
그렇게 답한 다우드가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으며 그대로 엘노어에게 접근했다.
계속해서, 전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엘리야가 이상함을 느끼고 얼굴을 찌푸릴 때까지.
“…다우드? 지금 무슨-”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당황스럽게 입을 여는 엘노어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끌어안고.
“…!”
그대로 짐이라도 운반하는 것처럼 들어 올리더니.
캠프 바깥으로 휭- 하고 나가버린다.
“…”
저 사람, 지금 뭐한데?
●
“자, 잠깐. 다우드. 이거 놓게! 그대에게 설명을 받아야 할 것이 널려 있으니!”
“그러죠, 그럼.”
엘노어의 말을 들은 다우드가 그대로 정지했다.
이어서 그가 바닥에 두 발이 툭 닿도록 그녀를 떨어트리자 엘노어가 잠시 눈을 끔뻑거렸다.
설마 자신의 말에 이 정도로 순순히 따라줄 줄은 몰랐으니까.
“…”
물론, 그건 그거고.
일단 지금은 이쪽에 따져야 할 게 태산이다.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고 턱을 곧추세웠다. 눈동자에서는 불꽃이 이글이글 피어오르던 참이었다.
“…저 여자들은, 뭔가. 그대와는 무슨 사이…!”
“친구들이에요. 엘노어랑은 다르죠.”
“…”
격정적으로 목소리를 쏟아내려던 엘노어의 말이 한 순간에 툭 끊겼다.
대신 눈은 휘둥그레져 있었다.
이 남자, 어.
지금 뭐라고 했지?
“…다, 다르다니?”
“당신은 저한테 특별한 사람이잖아요.”
“…”
엘노어가 입술을 오므리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뭔가, 평소의 다우드랑은 다르다.
원래대로라면 항상 이런 종류의 화제만 나오면 늘 흐리멍텅한 눈으로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건 숨만 쉬고 있을 남자인데.
지금은, 뭐라고 해야할까.
맑고 뚜렷한 시선. 의지에 가득 찬 표정.
목적 의식이 뚜렷한 평소의 다우드, 그러니까.
전장에서 자주보던, 위급한 상황에서 항상 번뜩이던 그 모습이다.
‘왠지 멋있…’
그런 생각을 떠올리려던 엘노어가 화들짝 놀라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휘둘려서는 안 된다.
‘…안 멋있네…!’
이 남자는 하나도 멋있지 않다. 그런 생각을 떠올린 엘노어가 스스로를 세뇌하듯이 그런 문장을 되뇌였다.
틀림없이 그렇다. 가슴이 어떻게 반응하건, 일단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은 그녀가 이쪽한테 잔뜩 화를 내야 할 타이밍이다!
그녀가 다시 눈동자에 애써 매서운 기색을 담으며 입을 열었다.
평소에는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담기는 건데, 이 남자를 상대로는 유독 힘든 느낌이다.
“그런 두리뭉술한 말로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그럼 똑바로 말해드릴게요.”
다우드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엘노어가 제일 소중해요. 다른 사람들보다. 저런 거에 일일이 신경 안 쓰셔도 괜찮아요.”
“…”
눈동자에 깃든 기색이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아니.
그러니까.
그러니까…
“…”
그녀가 시선을 휙 돌렸다. 계속 얼굴을 마주치고 있다간 자기도 모르게 이 남자에게 넘어가버릴 것 같았으니.
버쩍버쩍 입 안이 타들어갔다.
따져야 할 것은 엘노어 자신인데도, 왜 이상할 정도로 스스로가 잘못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이 정도까지 말해줬으니 상대방을 용서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 정도로.
“…”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똑바로 자신을 보고 있는 다우드의 얼굴을 보자마자, 엘노어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 그렇군.’
그러니까,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더 따지고 들었다가는, 만에 하나 사이가 삐걱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자신은, 이 남자가 자신을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상황을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견딜 수가 없다.
그 정도로 푹 빠져버렸다.
“그대는, 정말이지…”
김이 새버린다.
마음 속에서 내심 만족했다는 거겠지. 이 남자가 평소처럼 미적지근한 태도로 답답하게 있었다면, 그때는 진짜로 화가 머리 끝까지 났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말까지 들으니까 아무래도 좋아진 느낌이다.
“다우드.”
그래도, 약속은 받아야겠다.
“예.”
“앞으로는, 저런 걸 하려거든. 나한테 먼저 시도해보고 하게나.”
“…예?”
다우드가 대단히 당황했지만.
그녀는 진심이었다.
“약속.”
“…”
결국, 다우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와 새끼손가락을 걸 수밖에 없었다.
●
[ System Message > [ 대상 ‘엘노어’의 타락 수치가 ‘64% →2%’로 줄어듭니다. ]다행이다.
종종걸음으로 캠프에 돌아가는 엘노어를 보고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아낸다.
‘…죽을 뻔했네.’
타락수치가 100%까지 차올라서 안쪽에 있는 조각이 폭주라도 했다간, 지금 여기에 있는 멤버들은 나를 제외하고 전멸 확정이었다.
전부 시나리오의 핵심 인물들이란 걸 생각하면 진짜로 여기서 내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었던 위기였지.
[…너 말이야.]문득, 아뮬렛 안에서 그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칼리반. 다만 평소와는 다르게 어쩐지 목소리가 좀 서늘한 느낌이다.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애들 꼬시고 다니는 것 정도는 그냥 나도 그러려니 했거든?]“…”
말에 가시가 잔뜩 돋쳐있다.
[그런데 하는 꼴 보니까 방금 그 말도 그냥 ‘필요하니까’ 한 것 같아서 좀 그렇네.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치면 나중에 천벌 받는다?]“…”
[적어도 너한테 저렇게 진심으로 부딪히고 있으면 거기에 똑바로 된 대답은 해줘야-]“그러면 내가 죽는데요.”
[뭐?]“이쪽도 마음이 편친 않아요, 칼리반.”
엘노어가 날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건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당장 저번에도 내가 죽으면 본인도 죽는다고 하지 않았나.
솔직히 내가 누구한테 호감을 사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상태창에 친애니 뭐니 하면서 호감도 표시가 떡하니 적혀 있잖아.
하지만.
“제가 왜 굳이 엘노어를 여기까지 끌고 나왔는지 아십니까?”
[뭐라고?]“방금 이 말, 캠프 안에서 했어도 제가 죽었어요.”
[…]거기엔 하얀 악마의 조각이 깃든 유리아가 있다.
그 집착의 화신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간 엘노어가 아니라 그쪽의 타락 수치가 순식간에 100%를 찍을 수도 있거든.
그리고 하얀 악마가 폭주해도, 마찬가지로 나를 제외한 여기 있는 전원이 사망할 확률이 높다.
‘…지옥같네.’
내 영혼의 체질 때문에 앞으로 악마의 그릇이 더 꼬일 거라는 걸 생각한다면 이건 그냥 시작에 불과하다.
각 악마마다 폭주하는 계기도, 폭주를 막는 방법도 전부 다 다르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내 ‘호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거고.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 싫어한다, 이런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재앙이 일어난다는 거다. 계속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결국 호감은 단방향으로 통하는 게 제일 낫다. 악마의 그릇에서 내쪽으로.
양방향이 되는 순간,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을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니.
‘…그러니까.’
미안한 말이지만.
누군가의 호감도가 어떻다고 해도, 난 그걸 그저 ‘수치’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사람의 마음이 아닌 ‘공략’을 위한 수치.
내가 그걸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는 순간. ‘올바른 행동’을 하는 순간.
난 죽는다. 세계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모든 그릇에 깃든 악마가 봉인될 때까지, 타의적으로 난봉꾼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쓰레기짓을 해도 좀 봐주세요. 이쪽도 목숨이 달린 문젭니다.”
[…]칼리반이 한참을 침묵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참… 기구하다. 어쩌다가 그런 체질을 타고나가지고.]“괜히 총장님이 저 같은 체질은 수명이 짧다고 했겠습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런데, 너 여자친구 만든 적 한 번도 없지 않냐? 방금 완전 선수 같았는데.]“제 평판이 왜 그따윕니까?”
[아니, 넌 딱히 지금같은 제한 없었어도 연애 못 해봤을 것 같거든. 눈치가 뒤지게 없어서.]“…”
[딱 후리는 것만 기가 막히게 잘할 것 같은 느낌? 태생부터 바람둥이 최적화?]이 사람이 못하는 말이 없네.
“사귄 적… 있긴 있습니다.”
카운트하기 애매해서 주변에 연애 무경험자라고 말하긴 한다만.
[어, 진짜? 얼마나 사귀었는데.]“3초요.”
[…뭐?]“3초 사귀고 차였어요.”
[…]아무런 말도 없지만, 소울 링커 안에서 측은하다는 느낌이 잔뜩 올라온다.
[그래. 믿어준다. 어이구, 우리 다우드. 연애도 해보고 장하네, 장-]“…부탁이니까 좀 닥쳐요.”
●
“저건가 보네요.”
마수 토벌 당일.
찾던건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할 수 있었다.
척 봐도 보통 마수보다 수 배 이상은 커다란 곰 형태의 마수. 몸 근처로는 회색 기운이 뭉게뭉게 퍼져나오고 있었다.
“…중형 마수군. 사냥하기 그리 어렵진 않겠어.”
크라트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당장 본인과 기드온만으로 비록 소형이라지만 마수 수십 마리를 사냥한 참이다.
아무리 악마의 조각이 깃들었다지만 이만한 멤버로 중형 마수 하나 못 잡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생각하겠지.
“…이건 너무 과한 것 아니냐?”
크라트가 꺼낸 말에 나도 실소를 흘린다.
뭐, 하긴.
제국을 대표하는 전사 두 명에, 검술 천재 트리스탄 공녀, 성녀 자매에 용사 후보.
저거 하나 잡자고 모였다고 하기엔 너무 과한 멤버라고 생각할 만 하다.
“다 필요하니까 부른겁니다, 필요하니까.”
“…어련하시겠냐. 빨리 끝내고 가자. 영지 너무 오래 비우면 혼난다.”
그렇게 말한 크라트가 곧장 튀어나갔다.
저 정도야 혼자서 상대하더라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는 기색이다.
“…하여간,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게 없으신 분이군요.”
옆에서 루시엔이 한숨과 함께 가호를 준비했다.
“아는 사이십니까?”
“제국의 성기사들은 성황국에서 자격을 인정받은 자들만이 정식으로 임명될 수 있어요. 켄드리드 변경백의 자격 시험은 제가 주관했습니다.”
여기서 또 그런 커넥션이.
하지만 그렇다면 저 인간이 어느 수준의 괴물인지 이 사람도 알고 있을거다.
그러니까.
“그거 안 주셔도 될 걸요.”
가호를 크라트에게 보내려는 루시엔을 제지한다.
실제로, 지금 눈앞의 곰 마수는 크라트에게 신명 나게 얻어터지고 있다. 굳이 이런 지원까지 얹어줄 필요도 없지.
“…예? 하지만, 굳이 안 드릴 이유도…”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쭉 가리킨다.
크라트를 제외한 전원이 잠자코 무기를 잡고 가만히 서 있는 상태다.
유리아도, 엘노어도, 엘리야도. 크라트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지기 싫어하는 기드온조차도.
내가 그러라고 시켰으니까.
“아껴두세요. 진짜로 상대해야 할 적은 따로 있으니까.”
굳이 크라트만 보내서 저걸 두들겨 패는 이유라면, 그냥 단독으로 전투를 시키는 건 저 사람이 제일 부담이 없으니까.
전투 지속력으로 따지자면 이 게임 전체에서도 손으로 꼽는 괴물이다. 악마의 조각이 깊숙이 융합했건 어쨌건 중형 마수 혼자 두들기는 것 정도야 문제도 아니라 그거지.
진짜 신경써야 할 점은.
“…”
말없이 슬쩍 엘노어와 기드온을 둘러본다.
이번 보스전의 핵심은, 결국 이 두 명이다.
‘…미리미리 대비를 해둬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시스템창을 훑는다.
[ 히든 이벤트 ‘???’의 발생 조건을 1회 충족했습니다! (1/3) ]이전에 발카서스 전을 진행하면서 채워둔 히든 이벤트의 충족 조건.
이걸 끝까지 채우면.
엘노어의 전용 퀘스트인 집안의 저주를 푸는 일에 가장 핵심적인 수단을 얻어낼 수 있거든.
‘내 생각이 맞으면…’
원 시나리오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 기드온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루트가, 그 전용 퀘스트를 깨는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엘노어의 본격적인 타락 분기가 촉발되는 5챕터 이전까지 이 히든 이벤트의 발생 조건을 전부 채워둬야 한다.
안 그러면, 뭐.
그때부터는.
지금처럼 패션 악역이 아니라, 진짜 악당이 되는 엘노어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겠지.
“…”
머릿속으로 타락한 엘노어의 이미지가 몇 개 지나간다.
제발 자식만이라도 살려달라고 빌던 인간 앞에서, 무표정하게 일가친척 전부를 몰살하던 이벤트라던가.
자신이 점령한 지역의 민간인들 전원을 건물 한 곳에 가둬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불을 지른 다음. 가만히 서서 그들이 타죽는 모습을 구경하던 이벤트라던가.
그런 괴물이 된다. 이 사람이 완벽하게 타락하면.
“…뭔가?”
“아니에요.”
내 시선을 받고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노어에게 고개를 저어준다.
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지 않겠나. 역시.
‘…그러니까.’
그런 모습을 막아내기 위한 두 번째 이벤트를 바로 여기서 발생시킬 수 있다.
정신을 가다듬으며 크라트가 바닥에 눕혀두고 무자비하게 파운딩하고 있는 곰 마수를 바라본다.
“엇-차.”
이어서 마수를 공중에 조약돌처럼 집어던진 크라트가, 이내 아르헨틴 백브레이커로 그걸 받아 공중에서 메다꽂는다.
이어서 서브 미션. 목을 졸린 곰 마수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을 버둥거린다.
마기고 뭐고 발휘할 틈도 없다. 숨도 못 쉬고 얻어터지고 있다.
“하하, 힘 좀 내봐라!”
“…”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저게 진짜 사람 새끼냐?
어떻게 깡 신체 스펙만으로 악마의 조각이 융합된 중형 마수를 저렇게까지 가지고 놀 수 있는거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기까지 작살나고 있으면, 이제 슬슬 ‘전환’이 이루어질 때가 됐으니까.
“변경백. 슬슬 물러서세요.”
“뭐? 지금 한창 좋을 때인데-”
“안 그러면 다쳐요.”
크라트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나한테 반문할 새도 없었다.
반쯤 숨이 넘어가던 마수의 몸에서, 회색 마기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
주변 일대가 전부 느려진다.
한정적으로 발휘되는 회색 악마의 권능이다. 침식.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이 느려지는 상황 속에서, 곰 마수의 입에서부터 조그마한 보석같은 것이 번쩍거리며 튀어나왔다.
“저, 저게 무슨…!”
그리고 그 보석이 내뿜는 ‘사기’를 감지한 루시엔이 경악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모습은 조그마하지만.
그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독함은, 그야말로 보는 것만으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수준이다.
“…!”
그걸 본 기드온의 눈이 크게 떠진다.
여기서 저게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사람이 유일하겠지.
그리고 이 뒤에 이어질 일이 뭔지 알고 있는 사람 또한, 이 인간이 유일할 것이다.
원 그릇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걸 알아차린 조각은, 본능적으로 다른 그릇을 찾아 그쪽에 스며드려고 한다.
그리고, 마침 이쪽에는 이미 조각 하나가 스며들어 있는 인간이 하나 있다.
-…
-!!!!
이어서.
모든 게 느려진 주변에서, 악마의 조각이 쏜살같이 엘노어쪽으로 날아갔다.
가장 오랫동안 물질계에 현현해 있을 수 있는 기준으로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으로 이미 조각이 하나 있는 그릇에 융합하려 하는 것이다.
다만.
그 진로에 끼어드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이 느려진 세상 속에서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엘노어 앞에 선 인간이 있었으니까.
“…”
기드온이 멍하니 자신의 가슴팍에 틀어박힌 악마의 조각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엘노어쪽으로 이게 날아가지 못하도록 막아선 것이다.
그리고.
-!!!!!!!!!!!
조각에서 흘러나온 회색 기운이 마치 전류처럼 그 전신을 타고 퍼져나간다.
악다문 기드온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한숨도 흘러나온다.
“…전부.”
아마 원래대로라면, 이 조각이 자신을 ‘잡아먹는 것’에 조금이나마 저항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지금 가문에 내려오는 광증에 굉장히 많이 시달린 상태다. 저기에 충분히 저항할만한 여유도 없을 상태지.
“나한테서, 물러나라…!”
그리고, 아마 이 사람은 처음으로 악마의 조각에 잠식된 인간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과거에, 그런 것과 ‘마주해 본’ 경험이 있었을 테니까.
눈동자에 붉은 빛이 점멸하기 시작하며, 거칠게 호흡을 뱉는 기드온.
이성을 잃기 직전인 모습이다.
“죽기 싫으면, 당장 도망가! 난 이제부터 너희들을 적으로 인식한다!”
정확히는, 살아있는 생명체 전원을 죽여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악마라는 것들은 태생적으로 물질계의 생명체 전원에게 적의를 가지니까.
그렇다는 말은.
이제부터 ‘회색 악마’의 기운을 다루는, ‘제국 최강의 기사’가 우릴 전력으로 죽이러 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드온.”
피식 웃으며 말한다.
주변에 퍼지던 회색 기운은 거의 기드온에게 쑤셔박힌 참이다. 거동도 자유로워진 김에 팔을 슥슥 돌려본다.
“그냥 얌전히 이쪽에 맡겨두시죠.”
“뭐…라고?”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거든요.”
저런 꼴이 되면 저 조각이 엘노어쪽으로 못 가게 이 사람이 몸으로 막을 줄도 알았고.
지금처럼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는 저기에 곧바로 잠식당할 줄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뭐하러 이런 멤버를 전원 다 끌어모았다고 생각하나.
이건 고작 악마의 조각 깃든 마수 하나 잡자고 모아둔 게 아니다.
“뭐, 사실 저 보러 온 것부터가 얼마나 강해졌나 검사받으러 오신 게 주 목적이잖아요?”
이건.
“그러니까, 숙제 얼마나 잘했나 한 번 봅시다.”
‘악마의 조각’이 깃든, ‘제국 최강의 기사’를 때려잡기 위한 멤버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