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80)
r 79 – 79. 반지 (2)
●
“…”
“…”
아탈란테와 내가 말 없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엔 대단히 강한 측은함이 서로 묻어있는 모습이었다.
이 사람이 왜 나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진 나도 대충 알겠지만.
“초췌하긴 하죠?”
“…스스로도 알고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게 말하는 총장님도 저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은데요.”
“…”
나야 뭐, 최근에 엘노어 피해다닌다고 모든 신경과 노력을 다 쓰고 있으니까 당연한 거지만.
아탈란테가 이 정도로 반쯤 시체 꼴이 되어 있는 건 또 처음 본다.
“…그래서, 이게 부탁한 결과입니다. 이번 교환 학생으로 선발될 인원들 목록이에요.”
선발 시험의 방식은 간단하다.
아무튼 뭐든 간에 ‘우수한 성과’를 보인 학생들을 위주로 선발해서 꾸리는 것이다.
뭘 아주 기가 막히게 만들 건, 기가 막히게 잘 싸우건, 지략이 우월하건. 어떤 종류로든 좋으니까 가시적으로 뛰어난 능력이 있으면 누구든 뽑히게 된다. 참으로 공평하게 처리되는 기회의 장이지.
물론,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 ‘누군가에게는 더 공평한’ 일도 종종 일어나기 마련이다.
아탈란테가 내민 학생들의 명단을 주르륵 훑어본다.
내가 이쪽에 말해서 ‘추천해 둔’ 사람들의 이름은 전부 올라와 있었다.
엘리야, 유리아, 루시엔, 탈리온.
‘교환 학생 행사는 총 10일…’
투쟁의 용광로에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 바쁘게 불려다닐테니 다 같이 우르르 몰려다닐 일은 그다지 없겠지만, 각 ‘구간’마다 반드시 배치되어야 할 녀석들은 꼭 데려가야 한다.
그 중에서도 챕터 전체를 돌파하는 데 중점이 되는 인간은.
“…용케도 리루를 명단에 올리긴 하셨네요?”
아탈란테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쪽에서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투명한 미소가 돌아왔다.
지금 자신이 이 꼴이 된 원인의 대부분을 그게 제공했다는 것처럼.
“…대외적으로 엄청났죠, 정말.”
아탈란테가 마른 세수를 하며 그렇게 말했다.
“부족 연합의 상황은 대충 알고 있죠, 당신?”
“…쿠데타로 정권 교체가 일어난 직후라죠?”
“쿠데타라고 표현하기도 뭐하죠. 그쪽 동네에선 늘 있는 일이니까.”
부족 ‘연합’이란 말이 걸맞게, 그쪽은 유력한 부족들을 이끄는 족장들의 모임으로 인해 굴러가는 공화정 체재다.
족장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이가 대족장으로 군림하며, 이는 투표를 통해 선출된 후보끼리의 결투로 정해진다.
“…그만한 세력을 가진 나라가 결투로 정치 수반이 결정되도 되는 겁니까?”
“전통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죠. 고집 불통에 폐쇄적이기로는 대륙 어떤 집단보다도 심한 곳이니까요.”
아탈란테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물론 그럼에도 나라가 멀쩡하게 잘 굴러가는 건 족장들이 누가 뽑혀도 제 몫을 할 만큼 쟁쟁한 인간들만 있기 때문이겠지만.
“…”
이번만큼은 예외다.
지금 그쪽의 대족장은 빨리 ‘끌어내리지 않으면’ 전 대륙에 난리가 날 사람이다.
“전 대족장인 카사 가르다를 꺾고 이번에 대족장으로 취임한 게 검은 늑대의 족장인 알란 바-토르.”
그 이름을 꺼낸 아탈란테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하다는 반응이다.
“…원래대로는 온순하고 사려 깊은 남자라고 들었는데, 요즘 들어 아예 사람이 바뀌었더군요. 리루 가르다를 그쪽에서 들여보내기 위해서 제가 끌어다 쓸 수 있는 인맥은 전부 다 끌어써야 했습니다.”
“…고생하셨겠네요.”
진심으로 그렇다. 솔직히 아탈란테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그 인간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겠지.
카사 가르다의 사지 중 세 개를 자른 것도, 리루 가르다에게 ‘누명’을 씌워 카사와 같이 부족 연합에서 추방한 것도, 그 씨족을 전멸시킨 것도.
전부 그놈이 한 짓이니까.
“…”
정확히는, 뒤에서 그 놈을 조종하고 있는 ‘흑막’에 의해.
이 사람 말대로, 내가 알고 있는 원작에서의 알란은 그럴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어떤 씹어 죽일 악마 숭배자랑 엮여서 그렇게 된 거지.
“그보다, 당신의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아탈란테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트리스탄 공녀가 반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내 모습을 본 총장님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진짜 안 도와드려도 됩니까? 당신이 계속 거절해서 저도 그냥 내버려 두고는 있는데…”
“그거 도와주는 게 오히려 악효과에요.”
뭐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 반지를 전달하지 못 하게 막기라도 할 거야? 그랬다간 개빡친 엘노어가 폭주하고도 남을 텐데?
“요 며칠 트리스탄 공녀를 피해다니고 있단 소리는 들었습니다만, 그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건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일단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하는 건 확실한데.
지금 내 상황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이나 다름없다.
동명의 이름을 가진 스킬조차도 이번엔 나를 도와주지 못 할 정도로.
1. 약혼 반지를 받는다? → 하얀 악마가 깃든 유리아가 그걸 확인하자마자 높은 확률로 내가 죽는다.
2. 약혼 반지를 안 받는다? → 높은 확률로 엘노어가 폭주한다. 역시나 내가 죽을 확률이 폭증한다.
지옥의 이지선다지.
내가 지금 도망만 다니는 것도 도저히 해결 방법이 나오질 않아서다.
‘…조각 두 개 결합한 것도 문제라고.’
악마의 그릇이 조각 한 개를 보유하냐 두 개를 보유하냐는 천지차이다.
한 개는 그냥 위급할 때만 폭주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게 전부지만.
두 개부터는… ‘교감’이 조금 강해지거든.
엘노어도 슬슬 회색 악마의 ‘의지’와 미약하게나마 접촉이 가능할 거란 의미다.
그리고 그게 어떤 방식으로 작용할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항상 착하긴 했는데 말이야.’
회색 악마가 나에게 보여준 건 항상 한결같은 호의지만.
그걸 내가 아예 안 받아주거나.
한 술 더 떠서 ‘바람 피는 것’까지 용서해줄지는,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거든?
“…일단 시간이 조금 필요합니다. 며칠 조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좋은 방법이 떠오를-”
!!!!!!!!!!!Demon Alert!!!!!!!!!!!
[ ‘악마 관련’ 긴급 이벤트 발생! ] [ 최중요 이벤트입니다! ] [ 제한 시간 안에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 한 다면 그대로 사망합니다! ] [ 대상 ‘엘노어’와 관련된 이벤트입니다! ] [ 지금 당장 기숙사로 돌아가서 대비하십시오! ]“…”
뭐냐 이거?
●
엘노어가 눈을 부릅뜨고 스스로의 모습을 점검했다.
만전의 만전을 기하여 치장해온 모습이다.
베아트릭스한테 몇 번이고 점검을 받았고, 스스로도 거의 하루 종일 다듬어낸 모습이며, 제도 카게노프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거금을 부으면서 맞춘 그 남자와 그녀의 ‘약속의 증표’까지.
준비는 완벽하다. 그녀가 당당하게 기숙사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어머, 회장님-? 신입생 기숙사엔 무슨 일이야-?”
“만날 사람이 있어서 왔습니다, 오필리아 경.”
엘노어가 결의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하자, 오필리아 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다우드-? 오늘은 별다른 수업 일정도 없는 모양이라 기숙사 안에 있기는 한데, 그래도 안 건드리는 게 좋아 보이는걸-?”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니, 그냥 오늘 엄청 상태가 안 좋아보여- 아까도 얼굴 창백해진 상태로 식은땀을 엄청 흘리던데-”
“…”
이전부터 눈치가 좋은 부분과 안 좋은 부분의 격차가 천지차이인 남자긴 했지.
아마 이번에는 그녀가 뭘 결심하고 오는 지 대충 짐작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오필리아 경.”
엘노어가 장엄한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꼭 만나야겠습니다.”
이어진 행동도 그런 의지에서 파생된 것들이 분명했다.
성큼성큼 걸어 순식간에 다우드의 방 앞에 도달한 엘노어가, 깊게 심호흡했다.
“…”
심장이 쿵쾅거린다. 온 몸이 불덩이 같다.
스스로의 행동을 기억할 수 있게 된 모든 순간부터 대다수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그녀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전신을 짓누르는 불안감을 억누를 도리가 없었다.
“…”
노크를 하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지만.
지금까지 그녀를 여기까지 이끈 의지가 무색하게, 그만 머뭇거리고 만다.
만약, 만약에.
무슨 이유로건 간에, 만약.
다우드가, 이 반지를 거절한다면.
“…싫어.”
젖어든 목소리가 실낱같이 흘러나왔다.
그저 그걸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다. 코가 맵다. 눈가에 물기가 차오른다.
“…”
그런 생각이 드니.
문을 두드리기 위해 들어올린 손이 도저히 떨어지질 않는다.
도망가고 싶다. 어쩌면 그와의 관계를 송두리째 뒤흔들 기폭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이대로도 행복하지 않았는가. 그저 그 남자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이건 그녀의 욕심이 아닐까. 상대방에게 너무 부담스러운 짐을 일방적으로 지우는 게 아닐까.
적어도 저렇게 도망다니는 것만 봐도 그녀의 행동을 달가워하지 않는 건 틀림 없어 보이니까.
그러느니.
저 남자가 싫어하는 일을 하느니.
차라리, 그저, 이대로.
앞으로도, 쭉, 이렇게-
[너는 그걸로 만족해?]그녀의 몸이 멈칫했다.
소름끼칠 정도로 머릿속에서 명확하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이전에는 심장 안에서만 갇혀있던 그 ‘음험한 기운’이 머리까지 올라온 것 같은 느낌.
마치 이전에는 ‘하나’만 있던 것이 ‘두 개’가 된 것처럼.
이게 그녀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목소리인지. 아니면 ‘다른 뭔가’가 그녀에 머릿 속에 말하고 있는 건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이런 경험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문장들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 남자가 네가 아닌 다른 여자 품에 안기더라도, 참을 수 있어?] [아니잖아?] [그러면 해야지.] [저 남자를, 네 것으로 만들어버려.] [그리고, 네 것이 되지 않는다면-]그 목소리에.
“…”
엘노어가, 홀린 것처럼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그대여.”
“…”
대답이 없다.
다시, 똑똑똑.
마른 침을 삼키며 다시 말을 잇는다.
뭔가에 떠밀리듯이 문은 두드렸지만, 여전히 잔뜩 긴장한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대여. 듣고 있는 건가.”
여전히 대답이 없다.
하지만, 오필리아 경은 그녀에게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분명히 다우드는 이 안에 있다.
“안쪽에 있는 건 이미 알고 왔는데 말이지. 얌전히 문을 여는 게 좋을 걸세.”
“…”
“기숙사 사감인 오필리아 경에게 이미 여쭙고 왔네. 자네는 오늘 별다른 수업 일정이 없다지.”
“…”
계속해서, 대답이 없다.
엘노어가 이를 악물었다.
“좋아. 끝까지 무시할 생각이라 그건가.”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도 없다.
그녀가 장검을 틀어잡았다.
“그럼 자르고 들어가겠네.”
일섬.
기숙사의 문이 통째로 갈라졌다.
안쪽에는 아연실색한 표정의 다우드가 앉아있었다.
“…이거 교칙 위반 아닙니까?”
“교칙 위반에 대한 처벌 절차를 집행하는 것이 학생회네. 우연히도 현재 학생회장 자리는 내가 역임중이군.”
엘노어가 가볍게 대답하며 장검을 허리춤에 꽂아넣었다.
“할 말이 있어서 왔네. 그대가 최근 들어 나를 계속 피해 다니지 않았나.”
“…”
“얼추… 32번 정도였나?”
“…그런 걸 왜 일일이 다 세고 계신 겁니까?”
왜 일일이 다 세긴.
그녀의 시간, 그녀의 마음, 그녀의 몸 모두 이 남자에게 저당잡힌 것이나 다름 없다.
이 남자와 만나는 모든 시간 하나하나가 그녀에게 있어선 결코 허투루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기억들이니까.
“…”
그녀가 천천히 품에서 반지를 꺼내들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진 그대도 잘 알 테지.”
그에게 뚜벅뚜벅 접근한다.
온 몸이 덜덜 떨리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른다. 태어나서 이 정도로 뭔가를 무서워 해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묻겠네, 다우드 캠벨.”
계속해서 막히려는 목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간다.
“나와 결혼해주겠나.”
“…”
그렇게.
주사위는, 던져졌다.
엘노어가 답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도저히, 이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으니까.
침묵이 이어진다.
계속해서, 쭉.
“엘노어.”
그녀로서는 영원처럼 느껴지던 적막이 깨지고.
마침내 다우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
가슴 속으로 냉기가 찾아들었다.
“저한테 말도 없이 이런 걸 갑자기 주시는 게 어디 있습니까.”
“…”
찢어진다.
그 한 마디만으로.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조각나는 것 같은 느낌.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어서 다리가 휘청인다. 관자놀이가 조여든다. 눈에 물기가 차오른다.
“하다 못해 저한테도 선택할 기회라도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 나는,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어지럽다.
‘아파.’
아파, 죽을 것 같아. 숨을 못 쉬겠어.
가슴이, 너무 아파.
“…”
온 몸이 찢어지는 감각 속에서도, 방금 들은 문장이 머릿속을 가로 지른다.
선택이라니, 무슨 선택.
그녀 말고 다른 여자?
[그리고, 네 것이 되지 않는다면-]머릿속으로 그런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방금 들었던 목소리다.
하지만 아까보다도, 더 강하게.
의식이 날아갈 정도로. 머릿속에서 그녀의 이성이 전부 잡아먹히는 느낌마저 들도록 세게.
정말로, 그런 말에 넘어가서, 이 남자가, 그녀의 것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사이즈가 안 맞잖아요.”
“…?”
엘노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 남자.
지금 뭐라고 했지?
“거 봐요, 잘 안 들어가네.”
황급히 고개를 들어 다우드의 모습을 살피자, 그쪽엔 낑낑거리며 손가락에 반지를 밀어넣는 다우드가 있었다.
“이런 건 원래 같이 가서 맞춰야 하는 것 아니에요? 혼자 눈대중으로 맞추면 어떻게 해요.”
“…”
입이 헤 벌어진다.
여전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다만,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의미였지만.
“나중에 한 번 가게 같이 가요, 엘노어.”
다우드가 환하게 미소지었다.
“이렇게 중요한 건, 원래 예비 부부가 같이 고르는 거에요.”
“…”
아.
이 남자.
정말이지.
“…다우드.”
그녀가 다우드를 한 대 후려쳤다.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다우드가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그녀는 사과하는 대신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렸다.
“놀리지, 놀리지 말게!”
“…”
“나, 나, 이번에는, 정말로, 그대가, 정말이지, 정말이지-!”
마지막 단어를 내뱉을 즘에는,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다우드를 붙잡고 공중에서 붕붕 휘두르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하는 엘노어의 얼굴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어보는 ‘진심으로 환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전에 어렴풋이,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그런 표정이 아니라.
정말로, 인생 전부가 환하게 바뀌는 수준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가지, 그럼, 가고 말지! 그대가 말하는 곳은 어디든 가겠네! 말만 하게나!”
“…에, 엘노어, 제발 내려놓, 저 이대로 가면 죽-”
“본가에도 전부 전달해두겠네! 처,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니 곧 다시 보지!”
그렇게 말한 그녀가 다우드를 다시 방 한 구석으로 던져놓았다.
실제로도 처리할 일이 많았으니까.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웃음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머, 엘노어- 일찍 나왔…?”
입구에 있던 오필리아 경이 그녀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여 입을 쩍 벌렸을 정도로.
“에, 엘노어? 어, 얼굴이 왜,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오필리아 경, 세상이 참 아름답습니다.”
“…”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게만 전달해둔 엘노어가 엄청난 속도로 기숙사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정말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사람이 이 정도까지 행복해질 수 있다니!
“…쟤가 드디어 미쳤나?”
심지어는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그런 중얼거림마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눈앞의 창을 노려본다.
[ 남은 제한 시간 ] [ 00: 00: 03 ] [ 대상 ‘엘노어’의 타락 수치가 122% → 0%로 줄어듭니다! ] [ 제한 시간 이전에 ‘엘노어’ 관련 이벤트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 사망이 취소됩니다! ]다우드 캠벨.
죽음까지 3초 남은 시점에서 기적적으로 생환에 성공.
‘올바른 행동’이라고 하길래, 대체 뭔 개소린가 한참을 고민했는데.
마지막에 한 행동이 정답이었던 모양이지.
방금 반지를 안 받았으면, 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죽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벤트긴 했지만, 어떻게든 해결했다…!
“…”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뻐할 건 못 된다.
왜냐고?
!!!!!!!!!!!Demon Alert!!!!!!!!!!!
[ ‘악마 관련’ 긴급 이벤트 발생! ] [ 최중요 이벤트입니다! ] [ 제한 시간 안에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 한다면 그대로 사망합니다! ] [ 대상 ‘유리아’와 관련된 이벤트입니다! ] [ 살아남을 방법을 찾으십시오! ] [ 남은 제한 시간 ] [ 12: 00: 00 ]다우드 캠벨.
남은 수명 3초에서 12시간으로 연장.
“…”
좆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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