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94)
r 93 – 93. 용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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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까지 필요할까 싶긴 한데.]통신 화면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타티아나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선각자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은 아니었다. 선각자는 아무튼 자신에게 그 남자를 죽이라 명한 게 전부고, 필요한 물건을 굳이 쥐어 주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얼마 전에 겪은 그 힘을 생각한다면.
지금 그녀만의 힘으로는 절대 무리다.
[그냥 지금 대족장 부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그 유물까지 꺼내 간다고?]“…정황상 시간축이 한 번 비틀렸습니다.”
타티아나가 메마른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지옥의 지배자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존재만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를 수 있지요. 회색 악마의 조각 때문에 일어난 일이 분명합니다.”
트리스탄 공녀에게 회색 악마가 깃들어 있다는 건 이전부터 알고 있던 정보였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로 그 남자에게… ‘헌신적’으로 힘을 쓸 줄은 몰랐다.
다만.
[글쎄. 아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종류는 아닐 걸.]이어서 흘러나온 선각자의 대답은,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궤의 대답이었다.
“…예?”
[딱히 그 남자를 도와주려고 튀어나온 건 아닐 거란 말이야. 시간축이 비틀리는 정도로 끝났으면 악마 본인이 모습을 드러낸 건 아니니까.]타티아나가 눈을 끔뻑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회색 악마의 본체가 직접 튀어나왔을 정도면 시간축 비틀리는 정도로는 안 끝나. 그건 그냥 그릇이 폭주한 게 전부일 걸?]“…”
할 말을 잃은 타티아나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 여자는.
그때 일어난 그런 현상조차, 악마 본체가 현현하는 것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라고 일축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릇이 폭주하는 건… 본인도 그렇게 반기지 않을 게 분명하거든. 아무리 악당들한테 무조건 사랑받는 체질이라 해도, 악성惡性이 한계까지 부풀려진 그릇은 그것조차 안 먹힐 가능성이 대단히 높으니까.]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설명들 투성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
악마에 대한 이해도라면 가히 물질계에 있는 인간들 중 가장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간이다.
“…그렇다는 말씀은,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아니~ 뭐. 그 남자도 굳이 그릇을 폭주시켜서 그 힘을 쓰려는 생각은 안 하겠지만, 그래도 줄 수는 있어. 그 남자가 이번에도 죽으면 나도 곤란하니까.]“…?”
타티아나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선각자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라고 하셨습니까?”
[응.]선각자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 남자, 악마한테 험한 꼴을 당했었어. 예전에. 죽었었지.]“…?”
분명히, 지금 살아있는 사람 이야기하는 사람 얘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의문이 타티아나의 머릿속을 가로질렀지만, 선각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또 그러면, 내가 좀 슬플 것 같거든.]타티아나가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돌아오는 대답에는, 틀림없이.
오만가지 복잡한 감정이 전부 뒤섞여 있었으니까.
평소에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만큼 가벼운 태도를 가면처럼 쓰고 다니던 여자가, 이 정도로 많은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기는 하던가.
회한, 슬픔, 분노, 짜증, 그리고 무엇보다.
후회.
마치 뭐든지 미리 알고 있는 것 같이 구는 이 여자가. 자신의 선택에는 토가 달리는 것조차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 여자가.
자신조차 어찌할 수 없었던 뭔가가 있었다는 것처럼.
타티아나가 그 충격에 눈을 크게 뜨고 뻣뻣하게 굳어있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선각자님. 저한테는 그 남자를 죽이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허면 어째서-”
그 남자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보인단 말인가.
얼마 전에는 본인도 진심으로 그 남자를 죽일 수준의 시련을 던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문을 담아 질문하니.
[그놈은 용수철 같은 놈이야.]이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예?”
[거센 압력을 가하면 가할수록 그 배에 달하는 힘으로 튀어오르지. 죽을 정도의 위협을 계속 가하면 더 빠르게 크는 놈이라고.]“…”
[네가 죽이려고 하는 만큼 그만큼 더 성장하겠지. 네가 만약 그쪽을 죽이는 데 성공하면… 뭐, 어차피 이번에도 ‘실패’할 운명이었던 거고. 그런 것 아닐까?]실패한다니, 무엇을?
타티아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선각자의 태도는 설명이 안 되는 위화감이 있었으니까.
“…선각자님.”
[응?]“실례가 되는 건 아오나. 하나 여쭙겠습니다.”
지금, 이 여자의 언행은, 마치.
“선각자님께서 움직이는 행동이나 목적은, 모든 걸 그 남자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움직이시는 것 같은-”
[있잖아.]타티아나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선각자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싸늘함을 읽어냈으니까.
[그쯤해두자?]“…”
타티아나가 말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지금, 그녀는 선을 밟고 있다는 게 절절히 느껴지는 압박감이다.
지금 이 화제는, 틀림없이 선각자의 ‘역린’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다행히, 그녀가 입을 다문걸 본 선각자가 이내 곧바로 다시 평소의 가벼운 목소리로 돌아왔다.
[뭐, 아무튼.]선각자가 기지개를 키며 말을 이었다.
[네가 말한 것 정도는 줄 수 있어. 가장 강력한 유물도 악마의 존재를 잠시 동안 봉인하는 게 전부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지?]“…예. 감사합니다.”
[그럼 그것까지는 일단 전달해 줄 테니까. 부탁한 건 열심히 해줘~]선각자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그러는 동안 난 ‘진짜 목표’를 노릴 테니까. 그 남자가 너한테 정신 팔려있는 동안.]“…받들겠습니다.”
통신은 그걸로 종료되었다.
타티아나가 말없이 선각자가 사라진 모습을 보며 피가 나오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선각자는 자신보다 그 남자를 우선순위에서 윗줄로 두고 있다. 말하는 것만 봐도 그런 느낌은 아주 절절히 전달된다.
“…”
그럼, 그녀가 할 일은.
철저하게 계획을 짜서 그 남자를 짓밟을 뿐이다.
악마의 힘이 봉인된다면, 그녀가 바닷속에서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고대의 존재’를 막을 수 있는 힘은 이 아카데미 안에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걸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배치한다면, 그 남자를 제압하는거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남은 건 유물이 도착할 때까지 그 남자가 준비할 ‘수’를 미리 읽는 것이다.
‘…지금 그놈은 어디에 있는 거지.’
그녀의 방에 배치된 학원 전체의 현황을 알려주는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덕분에 다우드 캠벨의 현재 위치를 찾아내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어디에서 어느 정도로 시간을 보내는 지 볼 수 있다면, 뭘 꾸미고 있는 지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절대 아무 준비도 안 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인간은 아니니까.
바다 한 복판.
사냥꾼의 밤 기간이니 거기에 참가해서 움직인 모양이지.
“…”
그리고.
지금 다우드가 배를 세운 위치에 있는 ‘것’이 뭔지 순간적으로 떠올린 타티아나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이내 스르륵 풀어지긴 했지만.
‘…아니, 설마.’
아무리 미친 놈이라 하더라도, 이쪽에 있는 인원은 겨우 학생 몇 명이다. 그걸로 거기에 있는 생물과 접촉할 생각은 절대로 안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접촉한다 하더라도.
그건 자살행위밖에 안 되겠지.
타티아나가 그렇게 확신하며 홀로그램을 종료했다.
‘…시간 낭비를 하고 있군, 그 놈.’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생각으로 ‘바다의 왕’을 만나러 갔는 진 모르겠지만.
그건 자충수밖에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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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며 내 발 아래에 쓰러져 있는 놈들을 바라본다.
내가 리루한테 폭언을 지껄이고 있는 뚱뚱한 놈을 때려눕히자마자 격분하면서 튀어나온 녀석들이다.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진 않네?”
엄청 무시무시하게 튀어나와서 얼마나 강한가 했더니만, 탈리온도 리루도 없이 나 혼자서 전부 정리 가능한 레벨이면 진짜로 뭐 없는 게 틀림 없다.
절체절명도 꼴랑 B급으로 적용 받았었는데.
“…”
물론 그렇다 해도.
맨손일 때의 격투술로 받는 스텟 보정이 어느 정도인가 한 번 시험해보긴 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느낌인데?’
단순히 스텟이 올라가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운동 신경 자체가 달라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예전의 나였다면 아예 상상도 못할 움직임이 다수 가능해졌다.
썸머솔트 킥이라던지, 3회전 돌려차기라던가, 상대방의 공격에 아주 자연스럽게 반응해서 주먹으로 카운터를 먹인다던가.
‘…이 정도면.’
이전에 겨우 진행률 10퍼센트 올리는 걸로 끝났는데 이 정도 성능이면, 메인 퀘스트 보스전이 오기 전까지 완성시키는 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내 기억이 맞으면, 조만간 격투술의 숙련도를 미친 듯이 올릴 수 있는 이벤트도 하나 오니까.
아마 이 바다를 벗어나 사냥꾼의 밤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만 해도 볼 수 있겠지.
“…이만한 숫자를 그만큼 쓰러트리고도 반응이 그렇게 가벼우시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내 지시를 받아서, 놈들이 차고 있던 장비를 전부 다 수거하고 있던 탈리온이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대로 된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부족 연합의 전사는 제국의 정규 기사 이상 가는 전투력을 자랑하는 놈들 아닙니까.”
“뭘 아카데미 학생이랑 그쪽 레벨을 비교하고 있어. ”
실제로, 전투 자체야 별것도 없었지.
우수한 장비를 둘둘 말고 있었다지만, 나도 이제 스킬의 백업을 받으면 이 정도는 가볍게 무쌍을 펼칠만한 정도는 된다.
혹시라도, 설마 리루 쪽으로 넘어갔다가 저기에서 무슨 사고가 날까 봐 전원 나하고 탈리온 선에서 틀어막느라 이 정도로 지친 것이다.
“…”
처음에 뚱뚱한 놈이 뭐라고 지껄일 때부터 푸른 기운이 돌아서 얼마나 아찔했는데.
그 상태 그대로 전투에 들어갔다간, 분명 무슨 사고 생겼다…!
“그것보다, 장비 꼼꼼히 챙겨. 나중에 다 쓸 데 있으니까.”
“예이.”
내 지시에 탈리온이 작업에 더욱 속도를 붙였다.
부족 연합의 ‘공방’은 모든 아카데미 중에서 가장 기술력이 좋은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안 쓸 수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지금까지 챙겨둔 ‘재료’ 목록을 주르륵 떠올린다.
별철, 이전에 마수에게서 뜯어온 적응형 가죽, 엑토플라즘, 중급 유물… 거기에 지금 이 녀석들의 장비에서 수거할 것까지 생각한다면, 꽤 도움이 되는 물건 하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과 나를 강화시키는데 지대한 도움이 될 뭔가를.
그렇게 생각하며 리루를 바라보고 있자니, 리루가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왜 그랬어?”
“예?”
“왜 싸웠냐고. 그것도 내쪽으론 굳이 하나도 안 보내려고 하면서.”
“…”
그거야 당신 쪽으로 보냈다가 푸른 악마 폭주했다간 그대로 다 죽으니까 그렇지.
근데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냐.
“그래. 설명하기 싫다 그거지. 그럼 됐어, 그건.”
한숨을 푹 내쉰 리루가, 이내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짜로 말 없이 잘해주는 것부터 시작인가?”
“…예?”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그것보다.”
리루가 부루퉁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이놈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장비 수거가 끝난 놈들은 모두 보트를 조작해 선착장으로 돌려보냈지만.
처음으로 리루에게 폭언을 쏟아냈던 놈은 지금 줄로 꽁꽁 묶어둔 참이다.
“제물로 써야죠.”
여태 못 구하고 있었는데, 마침 딱 잘 됐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적당한 마수가 없으면 이 놈이라도 써야지.
“…제물?”
리루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묶여있는 돼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 꼴이, 조금 이상하긴 하다.
말하자면.
“…무슨 낚싯대에 떡밥 걸어둔 것 같은데요?”
탈리온의 감상에 피식 웃는다.
생각보다 대단히 정확한 표현이라서.
“제물…이 필요하다곤 하셨죠. 그런데 사람 사이즈의 제물이 필요할 상황이 있나…?”
“있지.”
그렇게 말하며 탈리온을 시켜 녀석의 양쪽 끝을 잡는다.
“셋 하면 최대한 멀리 던지는 거다. 하나, 둘, 셋.”
이어서 그 몸이 포물선을 그리며 휭- 하고 날아간다. 탈리온과 내가 전력으로 집어던진 덕분에 꽤 멀리 날아간 모양인지, 그 풍채 좋은 놈이 거의 주먹만한 크기로 보인다.
풍덩, 하고 사람이 바다에 빠지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여태 축 늘어져 있다가, 물에 빠지니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녀석이 어푸어푸 거리면서 쏟아내는 비명은 일단 무시하며, 시계부터 확인한다.
‘늦지는 않았군.’
워낙 희귀한 놈이라, 이 녀석을 만나기 위해서는 게임 안에서도 온갖 조건을 다 맞춰야 했던 걸로 악명이 높았다.
정확히 사냥꾼의 밤 기간동안, 정확히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비슷한 사이즈의 ‘제물’을 가지고 여기서 대기하고 있으면.
이걸 먹으러 나오는 놈이 있다.
아주, 아주 무시무시한 놈이.
그런 정보를 떠올리며, 뚱뚱한 놈의 줄에 연결된 ‘낚싯대’를 조정한다.
물에 담갔다가 뺐다, 물에 담갔다가 뺐다.
먹음직스러운 먹이로 보이도록 현란하게 움직여준다.
“어, 어푸, 이, 개, 개새끼들! 이게 무슨 짓이야! 난 크룬 게르-도다! 차기 족장!”
“그렇군.”
“그렇군은 무슨, 당장 날 꺼내줘! 그렇지 않았다간 혹독한 대가를-!”
“그런가.”
“…”
그렇게 심드렁하게 놈을 다루는 모습을 보고 있던 리루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끼어들었다.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저놈 아무리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족장 후계자라고. 부족 연합측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걸?”
“그러라고 하세요.”
“…뭐?”
“어차피 당신한테 시비를 건 이상 저랑도 척을 질 수밖에 없는 사이라. 어쩔 수가 없죠 그거야.”
“…”
그리고, 그건
리루가 눈을 감고 머리를 짚었다.
이놈은 대체 왜 이딴 말이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나오나, 하고 고민하는 것 같은 몸짓이다.
“…그게 왜 그렇게 당연한 건데.”
리루가 이제는 거의 힘이 빠진다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뭐라고 집중하기도 힘들다.
슬슬 ‘입질’이 오고 있거든.
“…바람이, 멈췄는데요.”
제일 먼저 그걸 깨달은 건 탈리온이다.
주변으로 계속해서 몰아치고 있던 비바람이 멈춘다. 출렁이는 바다에 일어나던 파도도 가라앉는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처럼.
“…”
생각해보면, 그거 적절한 표현이다.
지금 모습을 드러낼 존재만큼, ‘폭풍’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말은 없으니까.
“꽉 잡으세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탈리온과 리루에게 말한다.
“안 그러면 중심 못 잡으니까.”
이어서.
눈앞에 크룬이 있던 자리로.
‘뭔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드러나는 건, 거대한 뿔.
머리 위에 붙어있는 두 개의 뿔을 본 리루가, 뭔가를 깨달은 모양인지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아마, 이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저게 대체 뭐하는 존재인지.
“너.”
리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히 우리가 만나는 건 토착 생물이라고 하지 않았냐?”
“토착 생물이잖아요.”
“저게?!”
비명을 지르는 리루에게 피식 웃어준다.
뭐, 엄밀히 말하면.
계속 이 근방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왔을 테니까 토착 생물은 맞지.
그냥 ‘마수’라고 부르기엔… ‘격’이 너무 높아서 그렇지.
뿔 이후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전신에 가득한 비늘. 수염. 그리고, 저 멀리에서도 확실히 보이는… 가슴에서 펄떡이는 ‘드래곤 하트’.
수룡水龍. 씨 드래곤.
비록 먼 방계라지만, 세계관 최강의 마수 중 하나로 분류되는 용족에 속하는 괴물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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