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95)
r 94 – 94. 용왕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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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히이이익-!”
저 멀리에서 제물로 둥둥 떠 있던 크룬이 기겁한 목소리를 내는 게 여기까지 들려온다.
물론 이번만큼은 저길 겁쟁이라고 욕할 생각도 별로 안 든다.
눈앞에 있는 걸 본 탈리온과 리루의 입도 쩍 벌어져서 닫힐 생각을 안 하고 있었으니까.
“…저거 용인가요? 창세 신화에서 나오는?”
“명칭은 수룡인데, 엄밀히 말하면 그런 용족은 아니지.”
세라 세계관에서 용족은 그냥… 그렇게 ‘가벼운’ 놈들이 아니라서.
세계 전체가 유지되는 데 일종의 트리거 역할을 하고 있는 놈들이라, 게임 안에서도 진짜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룡이 만만한 상대라는 건 절대 아니다.
적어도 ‘전투력’ 관련된 스펙이라면, 진짜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다지만 용족 계통이라 불리는 게 부끄럽지는 않을 수준이니까.
당장 이어지는 모습만 해도 그렇다.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적대적으로 변할 수 있는 강대한 대상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A등급으로 적용합니다. ]—!!!!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수룡이 입을 벌리고 포효하자마자, 주변으로 공기가 찢어지는 것 같은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옆에 있던 탈리온과 리루가 기겁해서 귀를 틀어막고 자리에 엎드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파동’이 담긴 외침이었다.
“하울링, 이, 빌어먹을…! 이것만으로 이 수준…!”
리루가 이를 악다물고 그런 목소리를 흘렸다.
특정 이상 등급 마수의 포효는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효과를 지닌다. 보통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능력치를 깎고 들어가는 효과지.
그리고 용종에 속해있는 놈의 하울링이라면.
[ System Message > [ 물리 방어력이 감소합니다! ] [ 마법 저항력이 감소합니다! ] [ 격의 차이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낍니다. 신체의 움직임이 둔화됩니다! ]이쯤 되면 이건 그냥 포효가 아니라 저주 스킬의 일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범용한 마법사라면 몇 십 분을 투자해야 간신히 짜낼만한 수준의 디버프를 그냥 소리 한 번 크게 질러서 만들어낸 거니까.
‘…아니, 실제로도 저주지?’
게임 안에서 용종의 하울링은 그런 판정을 받는다.
그리고 다행히도.
난 그런 판정이라면 그럭저럭 대응할 수 있는 스킬을 하나 가지고 있다.
[ 고유 스킬: 항마降魔 ] [ 오랫동안 저주와 맞이한 자는, 자연스럽게 그것에 대항하는 방법도 익히게 되기 마련입니다. ] [ ◆ 대對 저주 관련 스텟인 ‘항마’를 개방시킵니다. ]이거 말이야. 유리아한테서 뜯어온 스킬.
[ System Message > [ ‘항마’ 스텟 굴림… ] [ 저항에 성공합니다. 부정적인 효과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지.
주변에 있는 리루와 탈리온이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엎어져 있는 사이, 혼자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내가 보트의 비상 안전 장치를 작동시킨다.
보트 근처로 푸른색 역장이 생성된다. 계속해서 귀를 두들기던 하울링이 그에 차단되며, 이에 탈리온과 리루도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너는, 어떻게 저런 놈 상대로도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거야…?!”
“평소에 단련을 열심히 해둬서요.”
“…”
얼마 전에 조금만 같이 뛰어도 얼굴 새파래져서 헥헥거리던 놈이 할 말이냐는 시선이 돌아왔지만.
이게 다 사람이 다 미리서부터 계획을 짜두고 대비를 해서 덕을 보는 건 사실이다.
항마 스텟 안 뜯어왔으면 나도 이 자리에 저 두 명처럼 굳어있었겠지.
“…그런데, 저놈은 어떻게 하죠?”
탈리온이 보트와 좀 떨어진 곳에 축 늘어져 있는 크룬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 그 하울링에 기절이라도 한 모양인지 미동도 하지 않는 모양새다.
“음.”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에게 연결된 낚싯대를 뒤로 휙 젖힌다.
절체절명이 A급으로 적용된 상태라, 있는 힘껏 힘을 쓰면 저 정도 되는 녀석을 날려보내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다.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보트의 한참 뒤쪽으로 날아간 녀석이 풍덩 소리와 함께 바다에 빠져들었다.
좋아. 이걸로 저놈이 수룡한테서 죽을 가능성은 대폭 낮췄다.
“…그걸로 된 겁니까?”
“보통 누가 앞에서 소리 좀 크게 지른다고 죽지는 않잖아.”
“…”
“트라우마 정도는 생길 수 있겠지만.”
정신을 잃고 물에 둥둥 떠 있는 거야, 뭐.
그래도 차기 족장이니까, 물에 빠졌을 때 자신의 몸을 지켜줄 수 있는 물건이야 하나 정돈 가지고 있을 거다.
죽지만 않으면 뭐, 상관없지 않을까.
“역시 형님이십니다. 같은 성별한테는 인정 사정 없으시군요.”
“…어째 여자면 특별 취급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아닙니까?”
“…”
시꺼.
“니들, 잡소리 할 시간 있으면 당장 여기서 빠져나갈 생각이나 해!”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본 리루가 조용히 속삭였다.
굳이 눈앞에 있는 존재를 자극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색이 다분한 모습이었다.
“아직은 우리를 공격할 의사는 없어 보이니까.”
실제로.
제물이 눈앞에서 사라진 수룡은 그 거대한 눈을 끔뻑거리며 제물이 있던 자리와 우리를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히 눈앞에 있던 게 사라지기만 했는데, 그게 어디로 갔는 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 지 이해를 못하는 모습이다.
“…저거, 보기보다 멍청한 것 아닙니까?”
탈리온이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흘렸다.
“그렇긴 하지. 힘은 장사인데 머리는 일반 마수보다도 못해.”
용족과 수룡의 가장 커다란 차이는 여기서 나온다.
초지성을 통해, 판데모니엄과 천계에 대한 지식까지 모두 통달하는 수준인 용족과는 천지차이로 떨어져 있는 지능 수준.
괜히 내가 마수도 아니고 토착 생물이라고 폄하하는 게 아니지.
지금 이렇게 제물을 보니까 튀어나오는 것도, 그냥 이맘때쯤이 눈 뜨는 시기인데 뭔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게 물에 둥둥 떠 다니니까 튀어나왔을 뿐이다.
딱히 뭔가 우리한테 당장 적대적인 의사는 없어보인다.
“그래. 그럼 지금 정신 못 차릴 때 빠져나가면 되는 것 아니야…!”
“…동의합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소곤소곤 새어 나오는 리루의 말에 탈리온이 마찬가지로 잔뜩 숨죽인 목소리로 동조했다.
절대로 눈앞에 있는 존재를 도발해서 안 된다는 점에서는 둘 다 의견이 일치하는 모습이 분명했다.
확실히, 그렇지.
저 녀석과 우리의 스펙 차이를 생각해보면 지금 절체절명이 A로 뜨는 게 말이 안 된다. 당장은 우리한테 거의 아무 관심도 없다고 판단하는 편이 맞겠지.
“아뇨, 그것보다 좋은 게 있는데.”
심드렁한 기색으로 볼을 긁적거리며 그렇게 말한다.
수룡이 잠잠히 있는 사이, 레버를 걷어차서 보트 근처에 있는 역장을 해제시킨다.
“탈리온. 창 챙겨왔지? 가문에서 쓰는 거 말고. 던지는 데 써먹는 일회용 투창.”
“챙겨오긴 했습니다만, 그건 왜…?”
“그래. 줘 봐.”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창을 넘기는 탈리온에게 그걸 받아서.
“흡.”
그대로 수룡에게 있는 힘껏 집어던진다.
그 콧잔등에 맞은 창이 텅, 하고 맥아리 없이 튕겨져 나왔다.
탈리온과 리루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
음.
놀랍게도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 했다.
내가 들고 있는 트리스탄류 검술은 무기를 가리지 않고 어느 정도 데미지 보정을 주니까, 그래도 이빨 정도는 들어갈 줄 알았는데.
다만.
녀석의 ‘주의’를 끄는 것 정도는 성공했다.
방금 전까지 주변에 있던 제물이 어디에 있나 눈을 끔뻑거리면서 두리번 거리던 녀석의 이쪽으로 고정되었으니까.
“…너 방금, 저 놈이 힘만큼은 용족에 준한다고 하지 않았냐?”
“그랬죠.”
“그리고, 넌 지금 그걸 도발한 거고?”
“그렇죠.”
“…왜?”
리루의 허탈한 목소리에,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쪽을 바라본다.
“점수 높게 받고 싶다면서요? 중요하다면서.”
“…”
“용족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
리루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 특유의 투명한 표정이 그쪽에 떠올라 있었다.
“…나 먼저 갈게, 할멈.”
“…”
그쪽이 뭔가 유언 비슷한 걸 중얼거리고 있는 사이.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수준으로 판단합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EX등급으로 적용합니다. ]수룡의 격렬한 포효가 이쪽으로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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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일이 몰아친다.
아까 전까지 폭풍우가 불고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해일이다. 지금 우리가 몰고 있는 보트의 수십 배는 되는 수준의 높이다.
수룡의 가장 주효한 능력 중 하나는 수류를 통제하는 거다. 이 정도야 숨쉬듯이 간단한 일이다.
“잠깐, 이거 그대로 배 뒤집히는…!”
고작 이 정도에 이렇게 당황해서는 안 된단 소리다.
그렇게 비명을 지르려는 탈리온의 어깨를 붙잡고, 그대로 조정간 안쪽에 쑤셔 박는다.
“조종간 잡아.”
“…예?”
“지금까지 오면서 배 조종하는 법 전부 가르쳐줬잖아. 조종은 니가 해야 해.”
멍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탈리온에게 씩 웃어주며 말한다.
“정신 차려. 난 너 믿고 있으니까.”
적어도, 부담 없이 이런 상황에 데리고 올 수 있는 상대 중에 똑바로 이 정도 일을 할 수 있는 녀석은 탈리온밖에 없다.
임기응변 능력 좋고, 집중력 좋으며, 손재주도 좋고, 기억력도 좋으며, 무엇보다 ‘뒷감당’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녀석.
괜히 처음부터 이 녀석을 점찍어서 데리고 온 게 아니거든.
“…절 믿으시면 이런 미친 짓은 좀 상의 해주시고 하면 안 될까요, 형님!”
실제로, 그런 비명을 지르면서도 녀석이 내 지시에 충실하게 조종간을 잡는다. 몰아치는 해일을 피하기 위한 회피 기동을 충실히 해낸다.
서핑하듯이 파도 중앙을 촤자자작 미끄러지는 사이, 요동치는 보트 위에서 나와 리루가 이리저리 내던져졌다.
“너, 진짜로 저거랑 싸울 생각이야?!”
“아니면 도발하지도 않았겠죠!”
리루가 입술을 깨물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 정도 되니까 유파의 미래를 맡기는 거냐고, 할멈.”
“뭐라고요?!”
뭘 이 상황에서 중얼거리고 있어.
안 들리니까 크게 말해라!
“아무 것도 아니야! 그보다, 이길 방법은 뭔데!”
“이길 방법이요?”
“너도 아무 생각 없이 목숨 내놓고 이런 짓을 저지르진 않았을 것 아니야?!”
그런 기성을 꺼내놓는 리루에게는 미안하지만.
“못 이겨요!”
“…”
멍한 표정의 리루에게 말을 이어간다.
“애초에 저딴 걸 어떻게 이깁니까. 용족인데! 저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겨요!”
“…그럼 애초에 싸움을 왜 걸었는데, 이 미친 새ㄲ-!”
“다 필요하니까요!”
난 뭐든, 처음부터 계단 형식으로 차근차근 계획을 쌓아올리는 걸 좋아한다.
탈리온을 처음 부족 연합에 데려온 것도 지금 써먹기 위해서였고, 유리아에게 항마 스텟을 뜯어온 것도 지금과 나중에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수룡에게 하려는 건.
싸움이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할까.
‘각인’시켜두는 거다.
나만 보면 반드시 ‘특정 반응’을 이끌어 내도록.
그리고, 그런 작업 역시.
틀림없이 나중에 나한테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이번 챕터 끝자락에서.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은데, 지금 우리 이대로 가면 전멸이야! 싸울 방법이 뭐라도 있어야…!”
“그거야 당연히 있죠!”
그렇게 말하며, 조종석의 문을 텅텅 두드린다.
“탈리온! 속도 늦춰!”
“예?! 지금 속도 늦추면 배가 그대로 전복…!”
“괜찮으니까 빨리!”
“…진짜, 저도 모릅니다!”
탈리온이 그런 비명과 함께 속도를 늦추자, 배가 거대한 해일에 그대로 노출되어 출렁인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나마 나와 리루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흡!”
그러니, 그 사이에.
리루를 잡고 보트의 꼭대기로 올라간다.
나름 돛대도 달려있는 보트라, 한달음에 거기까지 올라가자 나름 아까와는 고도 자체가 다른 느낌이다.
수룡의 눈동자 안에 들어찬 노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우리를 본 수룡이 그 앞발을 들어올린다. 그대로 우리를 내려칠 심산인가보다.
맞으면 우리는 물론이고 보트도 그대로 산산조각 나겠지.
그리고 내가 여기서 할 일은.
“리루.”
“뭐! 빨리 안 움직이면 저거에 얻어 맞-”
“가만히 있어봐요.”
리루의 위치를 조정하는 거다.
내 뒤로 슬쩍 데려다 놓고, 위치를 섬세하게 조정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덮는 것처럼 보이게끔.
그리고, 이 사람을 푹 끌어안는다.
마치 연인처럼 보이도록.
“…”
“…”
리루가 뭔가를 한계까지 참고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하는 거야?”
“수룡이랑 싸울 방법 짜내고 있잖아요.”
“…이게?”
“예.”
혼이 나간 목소리로 반문하는 리루에게 확신을 담아 그렇게 말한다.
“…”
물론 겉보기로는 말도 안 되는 짓처럼 보이겠지만.
이건, 지금 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수룡도 수룡인데.
그 뒤에 찾아올 ‘뭔가’에 대해서도.
시스템창을 슬쩍 연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기록’을 쭉 읽어내린다.
[ System Log > [ 곧 긴급 이벤트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뭐든 여러 번 당하면 학습 능력이 생긴다고.’
내가 요 며칠 간 깨달은 점은, 악마들의 집착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는 점이다.
당장 나에 한해서는 그렇게 온화하던 엘노어조차 몇 번 상황이 꼬이고 터지자마자 그런 꼴로 폭주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즉.
이쯤되면, 그쪽보다 내 ‘관계’에 훨씬 민감한 ‘뭔가’가 올 때라는 건, 굳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학습으로 알고 있단 소리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그 대비책 중 하나를 꺼내든다.
그걸 본 리루가 상황도 잊어버리고 잠시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여기서 또 뭔 가면이야?”
“안 쓰면 저 죽어요.”
“…”
“진짜로요. 쪽도 못 쓰고.”
그런 놈이 오고 있거든.
이 자연 재해에 가까운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수룡보다.
수십, 수백 배는 더 무시무시한 놈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누군가가 휘두른 게 분명한 ‘흰색 참격’이.
우리를 향해 내려쳐지려던 수룡의 앞발을 일격에 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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