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d to Be Lov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97)
r 96 – 96. 가스라이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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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반추해보면, 다우드란 사람은 유리아에게 있어 늘 햇살 같은 사람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한테 험한 꼴을 당할 뻔했음에도 딱히 그녀를 피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먼저 다가와 준 사람.
언니를 제외하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상태를 알고도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사람.
그녀가 지금처럼,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생활할 수 있는 다리를 놓아준 유일한 사람.
어둡고 축축한 그녀의 세상을 따뜻한 온기로 감싸 준, 햇살.
그런데.
그런 사람이, 지금.
“처음으로, 너한테 실망했다.”
얼음처럼 싸늘한 기색으로 그렇게 말했다.
문장이 가슴에 날아와서 푹 박혔다.
마치 정말로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유리아가 뒷걸음질을 몇 번 쳤다.
저도 모르게 가슴을 폭 끌어안는다.
“…”
아팠다.
처음에는 분명히 화를 내러 왔는데.
이 자리에 올 때까지만 해도, 머릿속으로 자꾸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는데.
지금은.
그런 것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손이 떨린다. 눈에 물이 고일 것 같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온몸에 냉기가 도는 것 같다.
무섭다.
혹시라도, 만약에 혹시라도.
이 남자가.
지금 자신한테 실망해서, 다시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게 된다면.
“…”
아직 그렇게 확정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다만,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계기’가 열리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다.
“저, 그게…”
힘겹게 입을 열어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내놓는다.
변명, 변명이라도 해야 한다.
“그, 그러려던 게 아니라…”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조금이라도 이 남자가 화를 풀어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아.
하지만, 그런 문장을 끝마치기도 전에.
“변명이나 듣자고 이런 말을 한 게 아닌데.”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그녀가 몸에 전류라도 통한 것처럼 크게 움찔할 정도였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다우드와 눈을 마주친다.
평소에 거기 담겨있던 온기는 온데간데없다. 마치 적이라도 바라보는 것처럼 노여움이 가득 담긴 시선만이 느껴진다. 가면 너머로도 확실하게.
그걸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흘러나오는 말이 있었다.
“…미안해요…”
유리아가 훌쩍거리며 답했다.
완전히 힘이 풀린 다리 때문에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나, 그러려던 게 아니라, 진짜로, 저, 저, 그러니까-”
자신은, 절대로 이 남자를 해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냥, 그저.
조금 욕심을 부려봤을 뿐이다.
나만을 사랑해줘.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했잖아.
다른 여자를 속이면서까지, 자신과의 관계가 가장 진실하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증명해줘.
당신에게,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말해줘.
그런 소망을, 이 남자에게 투영한 게 전부인데.
“앞으로, 앞으로 안 그럴 테니까, 저, 진짜, 미안, 미안해요, 그러니까, 제발-”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아줘.
예전처럼, 따뜻하게 대해줘.
부탁이야.
날 버리지 말아줘. 뭐든지 할 테니까.
나는, 나는 당신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걸.
“…그러면, 약속해 줄 수 있어?”
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로 그런 말이 툭 떨어졌다.
아까와는 달리, 적어도 냉기가 느껴지는 수준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나도 네가 일부러 그렇게 하려했다는 생각은 안 해.”
“…”
“다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당분간은 거리를 좀 뒀으면 좋겠어.”
“…!”
유리아의 표정에 다급함이 걸렸다.
아니, 하지만, 그랬다가는.
불안감이 든다. 이대로 이 남자와 자기가 그대로 멀어질 수도 있다는-
“유리아.”
그런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다우드의 손이 그녀가 늘 차고 다니는 목줄에 닿았다.
정확히는 거기에 묶여있는, 캠벨 자작가의 인장이 그려져 있는 손수건에.
이전에 그가 ‘약속의 증표’라며 그녀에게 전달해주었던 선물이다.
온기가, 전해진다.
유리아가 본능적으로 양손으로 거기에 닿은 다우드의 손을 꽉 잡았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이 조그마한 온기가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하, 하지만, 하지만-”
“나도 약속할게.”
흐느끼듯 흘러나오던 그녀의 문장 위로 다우드의 목소리가 덮어졌다.
“그렇게만 해주면, 나도 절대로 널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
“유리아.”
“…”
“유리아.”
“…네.”
“나, 믿을 수 있겠어?”
“…”
“이쪽 봐.”
유리아가 간신히 다우드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평소의 그 기색이다.
조금 멍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항상 온화하고, 믿음직스럽고, 어두컴컴하던 그녀의 세상을 항상 따뜻하게 비춰주던.
햇살 같은 남자.
“…네.”
그래서.
그녀로서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믿어요.”
지금 자신에게 보여진, 이 남자의 이 표정은.
그녀에겐 절대로 잃을 수 없는 보물이었으니.
●
“…괜찮겠냐?”
엘리야에게 그런 말을 툭 던지자, 녀석이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유리아 쪽을 바라보았다.
혼이 나간 표정으로 보트 위에 올라타 있다.
난 방금 저 녀석을 무사히 투쟁의 용광로 안쪽까지 데려다 달라고 이 녀석에게 부탁한 참이고.
“…괜찮기는 한데요.”
녀석이 나와 유리아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표정에는, 뭐라고 해야 할까.
숨길 수 없는 의아함이 드러나 있었다.
“…방금 선생님,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단 말이죠.”
“응?”
“이상하단 말이에요. 원래대로는 방금 전처럼… ‘일부러’ 다른 사람 구워삶으려 할 분이 아닌데.”
“…”
녀석의 눈빛이 일순 날카로워졌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사정이라도 있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등골로 냉기가 슬쩍 올라온다.
확실히, 방금 내 태도를 보면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 녀석이 그걸 다른 사람한테 떠벌리거나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건 지옥행 급행 열차나 다름 없는-
“하지만, 그거 사정이 있으신 거죠?”
하지만.
녀석이 윙크하며 그런 말은 던졌다.
내가 할 말을 잃은 사이,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유리아를 데리고 자기 원래 보트로 돌아가 버린다.
“…”
고맙네, 저 녀석.
이 정도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칼리반.”
[왜.]“왜 이번에는 아무 말 없으십니까.”
[…]놀랍게도, 내가 이런 화제를 흘렸음에도 아뮬렛 안에서 안쓰럽다는 기색이 흘러나왔다.
평소대로라면 쓰레기니 뭐니 잔뜩 힐난했을 양반이 웬일이래.
[…좀 적당해야 놀릴 맛이 나는데.]칼리반이 쓴웃음과 함께 답했다.
[오히려 이쯤 되니까 나도 슬슬 기대가 되거든.]“…예?”
[다음엔 네가 대체 무슨 쓰레기 짓을 할까, 슬슬 흥미진진해. 매번 날 실망시킨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언제쯤 다 들켜서 사지가 찢기는지도 궁금하고. 대체 몇 조각까지 분해될지가 제일 의문-]“…닥쳐요, 좀.”
그러면 그렇지.
인상을 찌푸리며 반대편으로 멀어지고 있는 엘리야의 보트를 바라본다.
정확히는 그 안쪽에 앉아있는 유리아를.
보트 좌석 위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그 위에 얼굴을 박은 상태로 계속 훌쩍거리고 있다.
오죽하면 저 쪽한테 끌려왔을 엘리야가 계속해서 난감해하며 그쪽을 달래고 있을 정도다.
“…”
미안하다.
미안하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미안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에 떠오른 창을 바라본다.
[ System Message > [ 대상 ‘유리아’의 타락 수치가 급속도로 낮아집니다. ] [ 긴급 이벤트 생성 조건이 사라집니다! ] [ System Message > [ 대상 ‘유리아’에게 ‘불안’ 상태 이상이 부여됩니다! ] [ 당분간 당신의 눈치를 극심하게 살핍니다. 당신에게 지시받은 일을 제외하면 절대로 하려 하지 않습니다! ]일단, 당장 닥쳐오던 목숨의 위협은 해결했지.
당분간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긴 하겠다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냈다.
솔직히 연기하는 도중에 왜 네가 먼저 잘못해 놓고 나한테 승질내냐- 하면서 그대로 목이 날아갈까 봐 노심초사했거든.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데.’
그리고 그런 짓이 가능했다는 사실엔 이 놈이 혁혁한 역할을 했지.
그렇게 생각하며 ‘난봉꾼’이라 적혀있는 칭호를 바라본다.
방금 유리아가 내 말에 반박도 똑바로 못한 건 여기서 받은 ‘보정’의 효과가 꽤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자동 발동이라 처음 엘노어한테 썼을 때처럼 해괴한 부작용이 나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항상 염두 해둬야겠지만, 앞으로도 상황을 헤쳐 나갈 때 도움이 될 거란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지.
‘…뭐, 아무튼.’
적어도 챕터가 진행되는 동안 지금처럼 유리아가 칼 들고 찾아올 걱정은 접어둬도 괜찮을 것 같은데.
문제는 이거다.
[ System Message > [ 대상 ‘유리아’에게 행한 행동 때문에 후속 이벤트가 격발됩니다! ] [ 대상 ‘페이놀’의 관련 이벤트가 생성됩니다! ]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페이놀 라이펙
[ 호감도 단계 없음 ] [ 관련 이벤트 발생까지 D-2 ]흠.
다행히 엘노어나 유리아 같이 호감도가 높은 쪽에서 달려드는 브레이크 박살난 8톤 트럭 같은 죽음 직행 이벤트는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인데.
결국, 이 녀석하고도 마주치게 될 운명이다. 여태 최대한 피해다니긴 했다만.
페이놀 ‘데스위시Deathwish’ 라이펙.
4챕터, ‘붉은 밤’의 핵심 인물.
세라 유저들이 공통적으로 뽑는 ‘잘못 마주치면 게임 터지는 캐릭터’ 1위.
유리아와 꽤 공통점이 많은 놈이다.
그리고 등장인물 중에서는 유리아와 마찬가지로 ‘챕터 최종보스’를 맡고 있는 것도 그렇고.
높은 확률로 ‘악마의 그릇’ 중 하나일 것도 그렇고.
하지만.
단순 위험도로 따지자면 유리아를 한참 상회하는 놈이다.
그냥 단순히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내 목숨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이틀 뒤라면 분명히…’
사냥꾼의 밤 두 번째 페이즈인 ‘화산 지대’ 진입이 시작되는 타이밍이다.
공포 각인을 때려넣은 수룡과 비슷하게, 그쪽에도 챕터 보스전을 대비하기 위해 ‘각인’을 박아넣어야 할 마수가 하나 있으니까.
거기에서 이놈이랑 마주치게 된단 말이지.
‘…대비를 단단히 해둬야겠군.’
사실 페이놀은 그 행동 양식이 생각보다는 잘 예측되는 놈이다.
내 체질 때문에 온갖 종류의 반응을 보여주는 악마의 그릇치고는 날 마주치면 어떻게 반응할지도 대충 예상되고.
“…”
알고도 못 막으니까 문제지.
내가 괜히 기를 쓰고 피해다닌 게 아닐 정도로.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눈앞으로 다른 창이 하나 더 떠올랐다.
[ System Message > [ 대상 ‘유리아’에게 행한 행동 때문에 후속 이벤트가 격발됩니다! ] [ 대상 ‘리루’의 관련 이벤트가 생성됩니다! ]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리루 가르다
[ 관심 3단계 ] [ 관련 이벤트 발생까지 3H ]“…”
이건 또 뭐야.
심지어 이건 며칠 유예 기간도 없다. 당장 3시간 뒤에 곧바로 일어나는 일이다.
“…리루?”
“왜.”
그쪽에 말을 걸자, 보트 선미에 실려있는 절단난 수룡의 앞발을 보고 있던 리루가 살짝 날 선 목소리로 답했다.
아까부터 계속 이 상태다.
스스로가 수룡한테 싸울 생각도 못 해보고 쫄아있던 게 분하기라도 한 건지.
“…지금 무슨 생각하고 계십니까?”
“…”
잠시 침묵이 돌아왔다.
“…아니, 그냥.”
이어서 리루가 한숨과 함께 답했다.
“…너, 이거 처음부터 잡을 생각하고 왔었지?”
“…? 그러긴 했죠?”
유리아가 찾아오겠다는 예상을 하고 저지른 일이기는 하지.
수습이 그럭저럭 잘 된건 운이 어느 정도 따랐다만.
“그러니까, 그걸 본받아야 했다고.”
“예?”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어봤었지.”
리루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왜 나는 너처럼 못 했을까.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
“할멈이 괜히 너를 선택한 게 아니라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강해지기 위해서 적당적당히 살았으면 안 됐는데.”
내가 방금 했던 그 쓰레기 짓을 보고 그런 교훈을 얻어간다고?
그거 맞냐?
내가 멍하니 그쪽을 바라보고 있자니, 리루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있잖아. 그 엘노어라는 놈. 지금 어디에 있냐?”
“…예?”
그게 왜 궁금한데.
대체 그게 왜.
“…아니, 그냥.”
리루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흐렸다.
“됐다. 너한테 말할 일은 아닌 것 같아.”
“…”
두루뭉술하게 돌아오는 대답에, 다시 고개를 돌려 시스템창을 살핀다.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리루 가르다
[ 관심 3단계 ] [ 관련 이벤트 발생까지 3H ]지금 이 사람이 엘노어를 찾고 있는데, 3시간 뒤에 뭔가 이벤트가 터진다고.
흠.
“…”
별일 없었으면 좋겠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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