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s of Auber RAW novel - Chapter 13_2
회담이 일어나고 있는 곳. 호텔.
그는 그곳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 * *
“오랜만이군.”
호텔 연회장의 구석, 따로 마련된 방 안. 그곳엔 시가를 피우고 있던 중년의 남성이 서 있었다.
반쯤 희게 샌 백발의 머리와 멋스럽게 다듬은 턱수염, 뱀눈을 가진 흰 제복의 남자.
“기다리고 있었네, ‘닉시 휴거’ 소위.”
“클레망 아서 대령……님.”
닉시는 건성으로 경례했다. 제 동기들이 봤으면 기겁을 할 행동이었음에도 클레망 대령은 사람 좋게 미소 지었다.
“앉지. 할 이야기가 많지 않은가.”
“앉으면 팔걸이에서 구속구가 튀어나온다거나, 허리 부근에서 전기 충격기가 나온다거나 하진 않죠?”
“허허. 푹신해서 일어나긴 싫을 수도 있네.”
닉시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푹신한 솜과 스프링만 느껴질 뿐. 확실히 그녀를 묶거나 기절시킬 만한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 파리에서 유행 중인 마약성 약물의 화학식과 치료제입니다.”
닉시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 놓은 서류 봉투를 대령 앞으로 내밀었다.
대령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서류 안의 작은 약통과 화학식을 적어 놓은 연구 보고서를 훑어봤다.
“그래. 필립 소령과 미리 거래했다는 건 알고 있었네. 듣자 하니, 파리 라텐 지구를 방문했었다지? 나는 그곳에서 일어난 방화와 약물 사건이 나치 스파이가 일으킨 건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자네였다니. 보고도 없이 일을 치고 다니면 내가 아주 섭섭해. 소위.”
“퇴임하면 남남인데 섭섭하고 자시고가 뭐 있겠습니까?”
“이상하군. 난 자네에게 장기 휴가를 줬지, 사표를 수리해 준 기억은 없는데.”
“아. 이해합니다, 대령. 대령도 은퇴라는 것을 고려해 볼 나이가 되셨으니, 기억이 안 나실 수도 있죠.”
“자네는 여전해서 참 보기 좋아.”
보이지 않는 칼들이 오갔다.
대령이 서류를 다시 정리한 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확실히 이거면 파리에서 판을 치는 약물 단속이나 치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군.”
“네. 그러니까 저는 다시 살던 곳으로……”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닉시의 말을 싹둑 잘라 먹은 대령이 오래전을 떠올리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10년도 더 된 일이었던가. 라텐 지구에서 불법 약품이 성행해서 내 친구가 그곳을 단속하러 갔을 때가 있었어. 근데 그 약품을 만든 자가 고작 열 살 남짓한 꼬맹이라더군. 하하. 기가 찰 노릇이었지.”
“…….”
“부모는 사망. 거주지 불명. 글자도 제대로 못 쓰는 꼬질꼬질한 꼬마였어. 법대로 처리할 수도 없고, 그런 위험한 약물을 만들어 내는 두뇌를 지닌 아이를 도로 평범한 고아원에 잡아넣을 수도 없었지. 그래서 내 친구가 어떡할까 고민을 꽤 했지. 그리고 어떻게 했는지 아나?”
“양자로 받아들였죠.”
“그래. 꼬맹이의 천재성 하나만 보고 양자로 받아들였었어. 닉시 휴거 소위.”
대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그들이 대화하던 방의 문이 달칵 열렸다. 회담이 다시 이어질 시간이었다.
“난 그 꼬마가 염치라는 걸 배웠길 원해.”
“…….”
“그냥 놔뒀으면 사회의 불순물이 될 수도 있었던 걸, 나라의 후원을 받고 자라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어 줬지 않는가. 그럼 그 은혜를 평생 갚아 나갈 생각을 해야지. 안 그런가? 자네는 다른 멍청한 자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니까.”
잘 생각해보게. 대령은 그대로 문밖으로 나갔다.
테이블 위에는 닉시가 준비한 서류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달칵.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닉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인이 내 양아버지도 아니면서 바라는 게 많네.”
안타깝게도 그녀는 염치가 없었다.
앞으로도 배울 생각은 없었고, 사람도 덜됐을뿐더러, 사회에 은혜를 갚아 나갈 생각도 없었다.
“내가 군생활 열심히 하면 죽은 휴거들이 돌아오기도 한다는 거야 뭐야.”
닉시가 투덜거리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하여간 너구리 같은 영감. 광견병 안 걸렸다 할까 봐 정신 나간 소리만 하는 건 여전하다니……”
―철컥.
문고리를 돌렸다.
그러나 문을 열리지 않았다. 나가지 못하도록 잠근 것이다.
닉시는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러면 내가 못 나갈 줄 아나.”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복도로 향하는 문. 회의실로 향하는 문. 창문. 환풍구.
복도로 향하는 문은 잠겨 있긴 해도 그녀가 가진 리볼버 하나로 충분히 부수고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금방 군인들이 잡으러 올 테니까 기각.
회의실로 향하는 문으로 나갔다간 각국 정상들이 모여 있는 곳에 깜짝 등장한 셈이 되겠지. 그럼 기습으로 오인한 경호원들에게 벌집이 될 수 있으니 기각.
환풍구 탈출은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기각.
‘창문은…….’
그녀는 창문 아래를 바라봤다.
어림잡아 7층 정도 되는 높이. 떨어지면 팬케이크가 되기 딱 좋은 높이였다. 게다가 아래에는 경비를 서고 있는 군인들도 있었다.
매달려 있다가 총 맞기 딱 좋아 보였다.
“복도에 인기척이 없을 때를 기다렸다가 문고리를 부수고 탈출하는 수밖에 없나.”
올 때부터 대령에게 발목이 잡힐 걸 감안했다. 하지만 이렇게 무식하게 가둬 버리는 방법을 선택할 줄이야.
“역시 치졸하군.”
닉시가 도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10년도 더 된 일이었던가. 라텐 지구에서 불법 약품이 성행해서 내 친구가 그곳을 단속하러 갔을 때가 있었어.]탈출 생각을 잠시 보류하니 방금 전 대령이 했던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 지나갔다.
10년도 더 된 오랜 옛날. 라텐 지구.
닉시가 ‘닉시 휴거’가 됐던 날.
지하 시궁창에서만 암암리에 유통되던 닉시의 약물은 지하 도시를 넘어 파리 시내까지 유통되기 시작됐다.
안 그래도 대공황으로 흉흉하던 도시에 약물까지 유행하자 치안은 나날이 험악해졌고, 정부는 군대를 파견해 약물의 유통지를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라텐 지구에 파견된 사람이 ‘베른 휴거’ 소령.
닉시를 양자로 들인 장본인이자, 노엘 휴거, 필립 휴거의 아버지였다.
* * *
“걱정 많이 했는데 멀쩡하네.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 보면.”
제키가 저를 향해 걸어오는 필립의 몰골을 보고 말했다.
필립은 제키가 지키고 서 있는 로비 문 옆에 기대섰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지만 역시 두들겨 맞은 게 있는지 몸을 기댈 때 불편한 기색이 있었다.
“누나는?”
“7층 대기실에. 지금 대령이랑 이야기 중일 거야. 근데 넌 노엘이 살아 있을 땐, 닉시 보고 너, 저 녀석 했으면서 지금은 꼬박꼬박 누나라고 부르네.”
필립이 주머니에서 시가를 하나 꺼냈다. 제키가 능숙하게 성냥을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형이 그러라고 했으니까.”
“노엘이? 아닌데. 그 녀석, 나보고 제 가족은 아버지랑 너뿐…….”
“마티아스 소령님!”
로비 앞이 시끄러웠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제키가 몸을 일으켰다.
저 앞에서 당황스러운 얼굴의 부하가 그녀를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게, 일반인으로 보이는 자가 여길 꼭 들어가야겠다고…….”
“일반인? 호텔은 우리가 통째로 빌렸다고, 다른 곳 알아보라 해.”
“아뇨 그, 그게 마티아스 소령님을 불러 달라고 합니다.”
“뭐?”
제키가 의아한 얼굴로 밖을 바라봤다. 일반인인데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
제키와 필립은 부하가 안내한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엔 제키의 부하들과 그들도 잘 아는 익숙한 남자가 서 있었다.
“닉시의 전남편…… 아니, 벤자민 리히터 씨?”
까먹을 리가 없는 얼굴. 여기 있는 게 어색한 남자인 벤자민이었다.
아시는 분입니까. 부하의 말에 필립이 고갤 끄덕였다. 그제야 문을 가로막고 있던 군인들이 몸을 비켜 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리히터 씨?”
제키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벤자민이 성큼성큼 걸어와 제키 앞에 섰다.
영문도 모른 채 가까워진 거리에 제키가 의아함을 표하려 할 때, 벤자민은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맥스라는 남자를 이곳에 데려왔나?”
맥스? 제키는 이윽고 그자가 엊그제까지 본인들이 취조하고 있었던 비굴해 보이는 남자라는 것을 떠올렸다.
“아뇨. 그자는 진작 석방됐습니다. 왜요?”
“그자가 여기 있었어.”
벤자민의 말에 제키와 필립의 눈이 가늘어졌다. 필립은 피우지도 않은 시가를 휴대용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근처 술집에서 다른 자들과 대화하고 있는 걸 엿들었어. 근데 그자들이 독일 군사 암호명으로 대화하더군.”
벤자민이 작게 속삭였다.
“여길 테러한다는 내용.”
필립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제키의 어깨를 잡아 뒤쪽으로 밀어내고 벤자민 앞에 섰다.
눈앞의 남자는 안면이 있는 사람이기 전에 독일인이다. 이 자의 말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진실이라면.
“그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으셔야 할 겁니다.”
필립은 들고 다니는 지도를 펼쳤다. 벤자민은 곧장 펜을 들어 본인이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던 장소를 표시했다.
“그자들이 근처에 폭탄을 설치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도 했으니, 폭발물에 대한 수색도 필요해.”
“참고하죠.”
필립은 지도를 반듯하게 접었다.
호텔은 한 달 전부터 시설 점검에 들어갔으니 아마 호텔 내부보단 외부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 상황을 정리한 필립이 제키에게 턱짓했다.
“제키. 이 남자를 구속해 놔. 그리고 곧장 3, 4분대 소집해서 일반인으로 위장하라고 지시해 둬. 준비가 끝나면 지도에 표시된 위치를 곧장 기습한다.”
“필립. 너 이자의 말을 믿어?”
“아니.”
믿지 않는다.
안면이 있다 해도 그들이 저 음울한 화가를 본 건 겨우 한 달 남짓. 본심이 달라도 충분히 숨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필립이 그의 말대로 행동한 이유는 단 하나.
“저 녀석을 여기까지 데려온 닉의 안목을 믿는다. 저 녀석도 닉이 죽는 걸 원하지 않겠지. 그럼 닉이 붙잡혀 있는 이곳에 테러가 일어나길 바라지 않을 테니까.”
하아. 제키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겠어. 보고는.”
“내가 직접 대령에게 보고하지.”
“알겠어. 난 수색팀을 꾸리러 가야겠구만.”
“사실이 확인되면 즉시 연락해, 제키.”
“노력해 볼게.”
그럼 실례. 제키가 입고 있던 제복 윗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으로 벤자민의 눈을 안 보이게 가린 뒤, 그의 팔목을 잡았다.
벤자민은 그럴 걸 예상 했다는 듯 순순히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
그들을 곧장 회담이 열리는 7층으로 향했다.
몇 번의 방향 전환 끝에 걸음이 멈췄다.
“어이. 당장 3, 4, 5분대 분대장들 로비로 소집해. 경계경보 3단계니까 전투 준비 태세로.”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녀석 받아.”
제키가 벤자민의 등을 가볍게 떠밀었다. 갑작스레 눈 가린 남자를 떠맡게 된 부하가 긴장한 기색을 했다.
“방에 가두고 감시해 놔. 중요한 사람이니까 터치하진 말고.”
“네! 알겠습니다.”
제키의 빠른 발소리가 멀어졌다.
이윽고 부하는 그를 데리고 7층의 내빈실로 데리고 갔다.
회담 이외에 대령이 ‘외부인’과 중요한 만남이 있을 거라고 사람을 배치해서 감시하고 있는 공간이 있었다.
방문 앞엔 세 명의 무장 인원이 감시하고 있었다.
그들과 짧은 인사를 주고받은 부하는 문의 잠금을 해제한 뒤 눈 가린 남자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철컥.
등 뒤로 바로 문 잠그는 쇳소리가 들렸다.
벤자민은 불편하게 가려 둔 눈을 풀어내기 위해 손수건에 손을 뻗었다.
“화가?”
가린 손수건을 풀어내기도 전에 그는 제 눈앞에 누가 있는지 깨달았다.
즉각 그의 앞으로 붉은 눈을 반짝이며 빛내는 여자가 나타났다.
“뭐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날 구하러 온 거야?”
“아니. 나도 붙잡혔어.”
“대체 왜 온 거야…….”
“닉시, 잘 들어.”
벤자민이 창문 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벌써 수색이 진행되고 있는 건지, 골목 사이 사이로 일반인들로 위장한 군인들이 부산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이곳을 노린 테러가 있을 수도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닉시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했다. 그는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파리에서 봤던 네 친구가 이곳에 있었어. 우연히 여기 있게 됐다기엔 이상해서 뒤를 밟았지. 그리고 가게에서 다른 남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어. 근데 그자들이 이곳을 습격한다는 내용의 은어를 쓰더군.”
그래서 곧장 필립과 제키에게 알렸고, 그들은 혹시 모를 벤자민과 테러 간의 결탁을 의심해서 그를 이곳에 감금시켰다.
“그래서 네가 이 방에 등장했군.”
그때 창문 밖을 바라보던 벤자민의 시야에 뭔가가 들어왔다.
호텔 옆. 그곳엔 작은 병원이 있었다.
병원 앞에 있는 공원에는 환자복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작은 공을 주고받으며 놀고 있었다.
추운 날씨라 금방 손이 시릴 텐데, 추위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는 문득 가장 키 작은 꼬마의 웃는 얼굴에서 동생의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일단 네 정보로는 맥스 놈과 결탁한 누군가가 이곳을 테러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거지?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일어날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고.”
벤자민이 시선을 밖으로 고정한 채 고갤 끄덕였다.
“목적은 회담을 결렬시키려는 걸 테고. 작정한 나치 당원이나,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군인들은 아니겠네.”
“그걸 어떻게 알지?”
“맥스같이 허접한 지하 도시 약쟁이랑 결탁한 게 하나. 이렇게 벌건 대낮에 독일에서 쓰던 은어를 쓰면 주위 사람들이 못 알아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안일함이 둘. 지금 회담은 프랑스 정상들만 있는 게 아니야. 유럽 각국의 정상들이 모여 있는 회담이라고. 보통, 정치적인 이해도가 있는 녀석들이면 이런 큰 자리를 테러하겠다는 생각은 잘 안 하지. 여기 모여 있는 사람이 잘못되면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잡으려 드는 테러범 신세가 될 텐데.”
닉시가 벽을 툭툭 두드렸다.
“멍청하지 않으면 잘 안 하지.”
그녀는 몸을 쭉 기지개 켰다.
“오히려 잘 됐다! 그런 큰 소동이 일어나면 도망치기도 쉬울 거 아냐. 게다가 그 늙은 너구리 같은 대령이 그대로 죽거나 다치면 귀찮게 날 쫓아오는 사람도 없어질 테고.”
닉시가 농담하듯 혀를 내두르며 지겹다는 표정을 했다.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던 벤자민이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런 소동이 일어난다는 건 누군가 다치거나 죽는단 이야기야. 가급적 일어나지 않는 게 좋아. 게다가 이 호텔 바로 옆에 병원도 있―”
그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순간, 바라보고 있던 맞은편 병원 고층에서 큰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귓가를 멍하게 울리는 폭음이 들렸다. 순식간에 터져 나온 건물 파편들이 창문과 호텔 건물을 때렸다.
―콰앙, 쾅!
벤자민이 곧장 그녀를 끌어안고 바닥에 엎드렸다.
그들 위로 깨진 유리 파편과 건물 재가 우수수 떨어졌다.
폭발음이 들리고 나자 사방에서 연쇄적인 폭음이 들렸다.
호텔 밖의 사방에 폭발물들을 설치한 것인지, 깨진 창 너머에서 사람들의 비명들이 울려왔다.
벤자민은 품속의 닉시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콜록, 콜록…… 어디 가게.”
“방금 병원에서 폭탄이 터졌어.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해.”
“뭐? 밖에 폭음 안 들려? 안전한 곳으로 가도 모자랄 판에 개죽음당할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면 어쩌자는 거야?”
―쾅!
이번엔 호텔 아주 가까이에서 폭음이 들렸다.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다들 대피해! 벽 너머 일사불란한 발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닉시의 귀가 쫑긋했다. 이건 둘도 없는 좋은 기회였다.
“화가. 도망치기 좋은 기회야. 이대로 바깥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가……”
그러나 벤자민은 닉시의 말을 듣지 않고 복도로 향하는 문고리를 잡았다.
철컥. 아직 잠겨서 열리지 않았다.
닉시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내 말 안 들려? 여기 가만히 있다가 상황을 봐서 탈출하자고!”
“그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말란 건가?”
“신경을 왜 써? 네가 아는 사람도 아니잖아.”
―쾅!
또 한 번의 폭음이 들렸다.
깨진 창문 너머로 새카만 연기와 잿더미. 우는 아이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매캐한 공기. 멀지 않은 곳에서 나는 불 냄새. 동시에 벤자민의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왔다.
“아는 사람……. 그래, 아니지. 아냐.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그냥 도망치자고?”
벤자민이 문에 발길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