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s of Auber RAW novel - Chapter 7_7
닉시를 설득해서 파리로 돌아가게 만든 뒤, 그림을 보는 길.
아주 사소하고 쉬운 길과.
반대로 닉시가 원하는 대로 이 마을에 버티게 놔둔 다음, 언젠가 그림을 보는 길.
언제가 될지도 모르고, 그림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어려운 길.
아니, 오히려 이 선택은 다른 선택들보다 쉬웠다. 무슨 선택을 하든 그가 손해 볼 건 없었으니까.
‘그런데 왜.’
왜 망설여지는 건지 모르겠다.
쉬운데. 쉬운 길이 있는데.
쉽고 손해 볼 것도 없고, 오히려 저를 귀찮게 굴던 사람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데.
그는 제 손바닥 안의 흰 발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먼저 버리면 되는 쉬운 길과 버리지 못해서 구질구질해지기만 할 게 뻔한 어려운 길.
‘내가 먼저 버리면 되는데.’
[벤자민. 잘 들으렴. 테오는 좋은 곳으로 가는 거야.] [거긴 지금보다 따뜻하고 먹을 것도 꼬박꼬박 나온단다. 게다가 테오를 낫게 해 줄 의사 선생님도 계실 거야.] [그러니 벤자민. 테오에게 인사하자.] [인사하고, 가는 거야.]‘먼저 버리면 되는데.’
[자네. 미술에 재능이 있던데. 한번 배워 보지 않겠어? 어떤가. 우리 집안에 들어오게. 내가 자네를 후원하지.] [하지만 말이야. 자네 동생까진 책임져 줄 순 없어. 그러니 자네의 앞날을 위해 결단을 내렸으면 하는데.]“……윽.”
갑자기 눈앞에 불길이 치솟는 환영이 일었다. 그를 따라다니는 지긋지긋한 기억이었다.
[처리하고 와.] [잘 들어. 우린 그냥…….]벤자민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약, 약을 먹어야…….’
손끝이 차가워지면서 식은땀이 솟았다. 불꽃이 일렁이는 환영으로 시야가 어지러웠다.
그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벽을 짚고 일어났다.
약은 아마 거실 한편, 닉시가 예술가의 영역이라며 이상하게 꾸며 놓은 곳 테이블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가 비틀거리며 거실로 향했다.
내가 먼저 버리면 되는 길이다. 늘 그랬다. 그러면 쉽게 풀리는 길이었다.
그는 약병을 손에 쥐었다.
―달그락.
약병을 털은 그는 그 속에서 유난히 노란빛 알약을 찾아 입에 넣었다.
약의 종류가 뭐였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입에 넣었다.
물도 없이 집어넣은 약은 입에 고인 작은 신음과 함께 섞여 들어갔다.
그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고갤 젖혔다.
“…….”
그러나 벤자민 리히터는 그런 상황에서 늘 구질구질하게 버리지 못하는 길을 선택했다.
차마 먼저 버리지 못해서, 굳이 더 깊은 수렁에 빠져버리는 길.
후회만 지독하게 남는 길.
그는 입안에 감도는 달콤한 레몬맛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약은 소름 끼치게도 달았다.
* * *
목이 바짝 마르는 탓에 닉시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밖은 어두웠다.
큼큼. 칼칼한 목을 이리저리 매만지며, 그녀는 부엌으로 향했다. 술이 덜 깬 건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둑한 복도. 차가운 마룻바닥.
몽롱함 속, 새벽 시간의 이 발걸음이 묘하게 익숙했다. 잠이 덜 깨서 그런 건지 왠지 모르게.
‘참. 길버트가 태풍 대비하랬는데. 내일 아침에 바로 지지대 설치해야겠다.’
낯설고 친숙한 한기에 팔뚝을 쓸어내리며 부지런히 걸었더니 곧 거실에 도착했다.
“…….”
거실 중앙. 그녀의 키보다 조금 큰 소파. 그 위에는 벤자민이 자고 있었다.
그동안 함께 살면서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그녀는 늘 그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그는 늘 작은 소음에도 금방 깨곤 했으니까.
닉시는 조심조심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미동도 없었다. 소파 앞의 테이블 위엔 덜 닫힌 약통이 놓여 있었다.
보아하니 약을 먹고 잠에 빠져든 듯했다.
‘너무 죽은 듯이 자는 거 아냐? 꼭 죽은 사람 같잖아.’
그녀는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의 무방비한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달빛 때문에 창백해 보이는 베이지색 머리칼. 길어서 늘 그의 눈에 그늘을 만들었던 속눈썹. 곧고 쭉 뻗은 콧날.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설마 진짜 죽은 건 아니겠지.’
닉시는 저도 모르게 그의 가슴께에 귀를 가져다 댔다.
쿵, 쿵. 느리지만 분명히 뛰고 있는 고동 소리가 들렸다.
휴.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진짜 이상하네.’
분명히 화가의 가슴에 귀를 기울인 건 처음이 맞다. 미쳤다고 저를 폭탄 취급하는 화가 가슴에 귀를 얹어 봤겠는가. 바로 내동댕이쳐지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근데 왜 이렇게 익숙한 기분이 들지.’
꼭 꿈에서 겪어 봤던 일처럼.
닉시는 익숙한 고동 소리에 낯선 친숙함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때, 벤자민이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닉시는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한 걸 간신히 눌러 참았다.
지금 상황은 누가 봐도 자는 사람을 추행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네가 너무 죽은 듯이 자서 죽은 게 아닌지 확인해 보려 한 거야!’ 화가는 그런 변명이 통할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그럼 어떡하지! 천재적인 두뇌로 순식간에 여러 변명을 계산해 낸 그녀는, 결국 주머니쥐 전략을 택하기로 했다.
죽은 척하기.
“…….”
벤자민이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제 가슴에 얹어 있는 익숙한 머리를 찬찬히 바라봤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야지, 닉시. 왜 못 자.”
“…….”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널 부르기라도 하나? 죽은 자들이 울부짖는 소리라도 들려?”
“…….”
“아니면 잠도 못 잘 정도로 그자가 그렇게 큰 건가…….”
무슨 소리지? 닉시는 벤자민의 잠꼬대 같은 중얼거림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잠시 조용히 있는가 하더니, 닉시의 죽은 척하고 있는 몸을 들어 올려 소파 위, 제 몸에 기대게 했다.
‘으아악!’ 순식간에 들어 올려져 그의 몸에 밀착하게 된 닉시가 마음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폭.
그의 상체에 고개를 파묻었다.
“……방금 동생 꿈을 꿨어.”
“…….”
“동생을 업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꿈.”
‘……지금 잠꼬대하는 건가?’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부드러웠다. 잠에서 막 깨어나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아이를 재우듯 닉시의 고개를 제 가슴께에 고정하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규칙적으로 토닥이며 재우는 듯한 손길이 익숙해 보였다.
“…….”
“그게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첫 번째 선택이었을 거야. 가장 첫 번째로 후회하는 선택이지.”
그가 중얼거렸다.
‘후회하는 선택?’
닉시가 죽은 척하고 있다는 것도 까먹고 바르작거렸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큰일이 났다 경악했으나 벤자민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건지 그녀의 머리칼만 슥슥 쓸어 넘겨 줬을 뿐이었다.
“내 선택은 늘 최악으로 끝났지. 이번에도 난 뭘 선택하든 후회할 거야. 그렇겠지. 그게 내게 내려진 저주일 테니까.”
소중한 사람에게 속삭이는 듯한 상냥한 저음이었다.
그가 깼던 탓에 놀랐던 심장이 여전히 진정되지 않고 쿵쿵 뛰었다. 자꾸만 목이 말랐다.
평소랑 달리 죽은 척, 입 다물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좀이 쑤셨다. 누군가 자신에게 고해성사라도 하는 상황에서 자꾸 의문이 생기는 부분도. 왜? 라고 물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자꾸만 닉시를 들쑤셨다.
에라 모르겠다. 그녀가 경멸받을 걸 알면서도 나 깨어 있다고 말하길 결심했을 때였다.
“네가 그 사람을 찾는 게 신경이 쓰여.”
그 사람? 닉시가 눈을 설핏 떴다. 사방이 온통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시 긴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노엘 휴거.”
닉시는 숨을 훅 들이켰다. 지금까지만 해도 쿵쿵 뛰던 심장이 바닥 아래로 쾅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
“그 사람 이름을 듣고 난 뒤에, 네가 왜 계속 밤에 날 찾아오는 건지 고민했어.”
“…….”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 넌 나를 찾아오는 게 아니고.”
“…….”
“그자를 찾는 거라고.”
그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침묵이 어려워 그의 숨소리를 헤아리게 될 즘, 그가 큰 한숨을 내쉬었다.
“너랑 너무 오래 있었던 거야. 처음부터 너랑 만나면 안 됐던 건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녀로선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닉시는 머쓱하게 깨어난 척하려 했던 것도 새까맣게 잊은 채, 그렇게 멍하니 그의 말을 속에 눌러 담았다.
“내가 먼저 널 버리면 되는데. 그러면 되는데…… 난 이제는 내 선택으로 인해 비참해지기 무서워, 닉시.”
벤자민은 그녀를 안아 올렸다.
그녀의 몸을 따뜻하게 덮고 있던 이불이 바닥으로 스르륵 떨어졌다. 그제야 찬 공기가 맞닿았다. 벽난로에 불이 꺼진 거실은 제법 쌀쌀했다.
그는 복도를 걸었다. 발소리를 죽인 조심스러운 걸음.
그녀의 방 앞에 도착한 그는 닉시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이불을 꼼꼼히 덮어 줬다. 익숙한 솜씨였다.
잠시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그는 한참을 닉시를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느꼈다.
“……그러니까 네가 선택해, 닉시.”
머리맡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잔잔한 울림이 그녀의 마음속 깊이 묻어 둔 오래된 기억을 두드렸다.
[달링. 아니, 닉시! 진정해! 왜 그러는 거야. 울지만 말고, 노엘은, 노엘 대장은 어디 있어?]절로 숨이 거칠어졌다.
그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꺽꺽대며 울고 웃었던 시간. 닉시는 노엘 휴거를 마지막으로 봤던 시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노엘…… 하하, 노엘? 흐윽, 끅…… 하하…… 내가, 흑, 죽였어, 건물에 깔려서 못 움직이는데…… 하하…… 버리고 떠났어. 끅…… 내가 죽였다구!] [닉시!] [내가 노엘을 버리고 도망쳤다구!]머리 위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곤 떨어졌다.
“네가 선택해 줘. 네가 먼저 날 버리고 떠나는 거야. 나는 이제…….”
그는 부탁하듯 속삭였다. 언젠가, 누군가 자신에게 그랬듯.
문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조용히 닫혔다.
닉시는 밀려들어 오는 기억과 의미를 알 수 없는 그의 부탁에 머릿속이 혼탁해지는 것을 느끼며, 억지로 어둠 속에 정신을 맡겼다.
* * *
―콜록콜록.
닉시는 목 안쪽이 마르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와 속이 지끈거렸고 목이 탔다.
그녀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언뜻 바라본 창밖의 빛으로 보아, 시간은 거의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안 깨우고 뭐 한 거야.”
하암. 설마 이 시간까지 자는 건가. 닉시는 비척거리며 거실로 향했다.
새벽에 잠깐 목이 아파서 깼던 건 기억나는데, 그 뒤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에 뭔가를 들이부은 듯 새카맸다.
“화가. 오늘 아침…… 아니, 점심은 양파 수프랑 뱅쇼로 부탁해. 뱅쇼엔 계피를 팍팍 넣어 줘. 안 그러면 조만간 무서운 질병이 찾아올 것 같거든. 들어는 봤어? 감기라고……”
그녀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서늘한 온도. 현관 카펫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실내화.
그녀가 화가의 공간이라고 만들어 놓았던 거실 구석의 이젤과 캔버스가 사라진 상태였다. 컵도. 칫솔도.
닉시가 욕실 문을 벌컥 열었다. 절간 냄새나는 샴푸도 사라졌다.
그가 없어졌다.
* * *
―콜록콜록.
닉시는 잠옷 위에 얇은 겉옷만 걸친 채 곧장 화가의 집으로 향했다.
‘뭔데. 집을 나가고 싶었으면 미리 말을 하든가. 말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나가는 게 어디 있어.’
약간의 당황과 나쁨에 가까운 몸 상태에서 오는 미미한 짜증.
닉시는 제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일부러 마당에서부터 쿵쿵대며 걸어왔다.
―벌컥.
문을 열었다.
“이봐 화가! 시위도 얼굴을 보면서 한다구.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 버리는 게 어디 있……”
그러나 그곳엔 적막만 감돌 뿐, 아무도 없었다.
적잖은 당황과 나쁨에 가까운 몸 상태에서 오는 어지러움.
닉시는 텅 빈 집안을 멍하니 바라보다 급히 몸을 돌렸다.
그녀는 라울의 바로 향했다.
[그러니까 네가 선택해, 닉시.]순간 머리가 욱신거렸다. 기억나지 않는 그의 목소리였다.
선택? 무슨 소리야 대체. 닉시가 이를 악물고 걸어갔다.
저 멀리 이제 막 가게 문을 열고 있는 라울이 보였다. 닉시는 뛰다시피 걸어와 라울의 소매를 잡았다.
“닉시 양?”
“벤자민 여기 있죠?”
“……벤자민이요?”
라울의 웃는 낯이 의아하다는 듯 의문스럽게 변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닉시 양? 그렇게 뛰어오시고……”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여기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에?
그가 갈 만한 곳을 떠올려 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제 집. 아니면 라울의 바. 아니면 들판.
하지만 들판은 오는 길에 봤지만 아무도 없지 않았던가.
“……닉시 양? 안색이 안 좋은데요. 우선 들어와서 땀이라도 식히는 게.”
“괜찮아요.”
그녀는 휙 몸을 돌렸다.
그럼 대체 어디에?
목적지는 있어도 방향은 모른다. 아까까지만 해도 짜증스러웠던 마음속이 지금은 뒤죽박죽 혼란스러웠다.
어디에? 왜? 무엇 때문에? 물음표로 끝나는 의문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마구 휘저었다. 그것 때문인지 목은 자꾸만 타왔고 머리는 뜨거워져만 갔다.
[내 선택은 늘 최악으로 끝났지. 이번에도 난 뭘 선택하든 후회할 거야.] [내가 먼저 널 버리면 되는데. 그러면 되는데……]비척거리며 걷던 닉시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좋은 점심이에요!”, “오, 닉시 아닌가!”, “무슨 일 있어요? 식은땀을 다 흘리고?” 그녀는 주변에 쏟아지는 질문들을 무시한 채 어디론가 뛰었다.
[난 더 이상 내 선택으로 인해 비참해지기 무서워, 닉시.]이윽고 그녀의 발걸음은 마을 회관에 다다랐다.
그곳엔 마을 사람 몇몇과 관광객 두 명, 마을 이장 길버트를 포함해 저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게 밭에서 수거한 지뢰 파편들이란 거죠?”
“네. 닉시한테 가져다주려고요.”
“흐으음. 역시 이것만 봐선 뭔지 잘 모르겠네. 알겠어, 필립?”
“처음 보는 모양이야.”
“형태가 남아 있는 파편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것들은 너무 작아서 닉시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괜찮을 겁니다. 달링은 제법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거든요. 지뢰 구조 정도는 금방 분석할 수 있을 겁니다. 오, 마침 이야기하니까 오네요. 달링!”
닉시는 덥석 제키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위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어라. 이게 무슨 상황일까, 달링.”
“너희 때문에!”
“진정해, 닉시!”
길버트가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닉시는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회관에 있는 주변 사람들도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달링한테 멱살 잡힐 만한 짓은 안 한 것 같은데.”
“너희 때문에 화가가 사라졌잖아!”
화가? 제키가 눈을 깜빡였다.
닉시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기껏해야 저를 파리로 끌고 간다는 게 지긋지긋해서 화풀이하는 줄 알았는데.
닉시는 길버트가 들고 있는 검은 덩어리를 덥석 집어 들었다. 지뢰 파편들이었다.
닉시가 검은 덩어리를 휘두르자 주변 사람들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어떡할 거야, 이 개새끼들아! 책임져!”
“우워어어어!”
“닉시!”
길버트와 필립이 닉시의 양손에 매달리고 난 뒤에야 제키가 떨어질 수 있었다.
아직까지 분이 풀리지 않은 닉시가 씩씩거렸다.
“이상하네, 달링. 그게 왜 우리 때문인 걸까? 난 네 가짜 남편하고 이야기도 몇 번 안 해 본 사이라고.”
제키가 구겨진 옷자락을 툭툭 털어내며 빈정거렸다.
“사라질 만한 일을 한 거면 우리가 아니라, 네 쪽에서 하지 않았겠어?”
“애초에 너희들이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이거 놔 길버트, 필립!”
닉시가 파편 쥔 손을 휘둘렀다. 우워어어! 주변에 서 있던 인파가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때 제키 옆에 서 있던 로버트 교수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갑작스러운 소동에 정신이 사나운 듯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당신의 남편이라면 갈대색 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키 큰 남자 말입니까?”
로버트 교수가 옆에 삐딱하게 서 있던 그렉 연구원에게 눈짓했다.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자 그렉이 입을 열었다.
“아아, 그 남자. 그 남자라면 아침에 바닷가로 가는 걸 본 것 같은…….”
그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닉시는 길버트와 필립의 손을 확 뿌리쳤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지뢰 파편을 돌팔매 던지듯 제키에게 던진 뒤, 회관을 나갔다. 제키 주변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날아오는 지뢰에 경악하며 도망쳤다.
파편은 제키의 어깨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여간…… 성질머리하곤.”
“제키.”
닉시가 나간 자리를 지켜보던 필립이 놀란 얼굴로 제키를 작게 불렀다.
“왜.”
“이상한 거 못 느꼈어?”
“달링이 이상한 게 한두 번이야?”
“아니. 그거 말고.”
“뭔데. 난 누구처럼 섬세한 사람이 아니라고.”
제키가 머릴 긁적이며 불평했다. 필립이 입을 열었다.
“닉이 지금 어디…… 가는 거지?”
“뭐? 본인 남편 찾으러 가는 거겠지. 아까, 저 안경잡이가 바닷가로 가는 걸 봤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잠시만. 어디로 갔다고? 제키의 투덜거림이 멈췄다. 필립은 여전히 닉시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 닉이 바다로 갔잖아.”
“정말 정신 사나운 여자로군.”
로버트가 웅성거리는 주위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그렉이 그의 말에 동의하며 입을 열었다.
“미친 망아지도 저것보단 덜 정신 사납겠어.”
로버트는 습관처럼 안경을 한번 올리곤, 바닥에 떨어진 파편을 주워들었다. 마침 그것을 수거하러 온 길버트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로버트가 어깨를 으쓱하며 길버트에게 파편을 건넸다.
“저 숙녀분 근처엔 늘 시끄러운 소동이 끊이질 않는군요.”
“평소엔 저렇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길버트가 제 손을 쥐었다 폈다. 방금까지 닉시의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이었다.
‘몸이 뜨거웠는데…… 화내고 있어서? 아니면 그냥 기분 탓인가.’
“무슨 일이 있어도 보통 사람이라면 저렇게 폭력적으로 행동하진 않죠.”
명백히 적의가 담긴 목소리였다. 길버트가 손에서 시선을 뗐다.
마침 건들거리는 자세로 서 있었던 그렉이 길버트에게 말했다.
“그레이스 씨는 정말 저 여자가 밭의 지뢰들을 없앨 수 있다고 보십니까?”
남자들의 눈엔 불신이 가득했다. 말투에도 묘한 이죽거림이 있었다.
“……그건 모르죠. 전 그쪽에 아예 무지한 사람이라.”
“근데 대체 뭘 믿고 저런 자에게 밭을 맡긴다는 겁니까? 마을의 안전이 걸린 문제를.”
그들은 닉시에게 불만을 가진 것같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제 닉시만 없었으면 저들이 내민 계약서에 도장이 찍혔을 수도 있었으니. 저들에게 닉시는 자신들의 일을 방해한 사람이었다.
“글쎄요. 잘은 모르겠는데……. 그냥 믿게 되네요.”
“무슨 그런 무책임한 말이 다 있소?”
그런데 묘하게 그 태도가 길버트의 심기를 껄끄럽게 했다. 저 불만이 단순하게 ‘저들의 사업을 중간에서 방해했다는 것’ 이상으로 보여서.
‘닉시가 저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린 적이 있다고 했지. 그것 때문인가? 아냐. 그런 거였으면 싫은 티를 냈겠지. 지금처럼 경계하는 게 아니고.’
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건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길버트는 주위를 빙 둘러봤다.
지뢰 파편으로 피구 하는 모습들을 보고 무서워서 저만치 도망간 마을 사람들.
제 옆엔 닉시의 직장 동료들과 외부인 로버트, 그렉 씨뿐이었다.
‘아.’
희미하던 실마리의 끄트머리를 찾았다. 길버트가 파편 조각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제가 감이 좋은 편이거든요. 그보다.”
길버트는 고갤 돌려 로버트와 그렉을 바라봤다.
뭔가 잊고 있는 기분. 묘하게 신경을 거슬리게 하던 실마리.
“로버트 씨, 그렉 씨. 나머지 한 분은 어디 계시죠?”
요 며칠간 외부인 중 한 명이 쭉 보이지 않았다.
* * *
벤자민은 바다 근처의 나무에 기대앉았다.
원래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이었다.
날씨가 흐리다는 것만 빼면 괜찮은 환경이었다.
바닷가라 바람이 세고 차가웠지만, 숨통이 트였고, 곧 비라도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어두컴컴했지만 저는 비 맞는 걸 제법 좋아하니 상관없었다.
무엇보다 바다 앞이면 제 속을 허락 없이 헤집어 놓는 여자가 오지 못할 테니까.
그는 그녀의 집에서 나왔다. 정확히는 ‘도망쳤다’에 가까웠다. 집주인과 한마디 말도 없이 달아난 것과 다름없으니.
그는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녀를 설득해서 파리로 가게 하지도 못했고, 끝까지 그녀 곁에 남지도 못했다.
닉시를 설득하기엔 자신이 없었고, 끝까지 곁에 남기엔 처참했다.
저도 모르게 무거워진 마음을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도, 그 덩어리를 품은 채 매일 밤 그녀가 찾는 사람은 제가 아니란 걸 실감하는 것도 피곤했다.
애초에 그런 사치스러운 감정을 떠안게 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사락.
벤자민은 번역하고 있던 종이 뭉치를 꺼냈다.
그 탓에 나무에 대충 세워두었던 캔버스가 밀려 넘어졌다. 닉시의 집 마당을 그리던 캔버스였다. 짐만 갖고 나오려 했는데, 얼떨결에 함께 들고 왔던 것.
이 그림을 완성하려면 필수 불가결하게 그 집 마당을 떠올려야 한다. 그 말은 그곳을 떠올려야 하고, 그곳에 있는 그녀를 떠올려야 한단 뜻이었다.
두고 올 걸, 뒤늦게 그는 생각했다.
그가 거기 자릴 잡고 원서를 반쯤 번역했을 때였다.
인기척에 고갤 들었다.
저만치에서부터 닉시가 포복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드물게 그가 흠칫 놀랐다.
“허억, 헉…… 드디어 찾았다…… 화가……!”
그녀는 질질 기어 오면서 제 겉옷 안쪽으로 더듬어 뭔가를 꺼냈다. 지뢰 파편이었다.
저 미친놈이 드디어 저를 죽이러 오는구나. 벤자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차하면 바로 바다로 뛰어들거나 해안을 따라 도망갈 셈이었다.
“허억, 헉…… 어디 가, 도망치지 말라구 화가!”
도망치지 않을 수가 없는 꼴을 하고 그런 말이 나올까. 닉시의 몰골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붉게 충혈된 눈. 기어 오면서 쿨럭거리는 모습이나, 쇳소리 섞인 목소리.
모래사장을 기어 오느라 옷과 얼굴엔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런 엉망진창 꼬락서니의 사람이 저를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 오고 있는데, 미친놈 아니면 미쳐가는 놈 둘 중 하나이지 않겠는가.
그럼 뭘 어떡해. 도망쳐야지.
그가 휙 몸을 돌렸다.
“왜 집에서 나간 거야?”
“…….”
“왜 말도 없이, 콜록…… 나만 두고 간 건데! 내가 뭐 잘못했어?”
“…….”
닉시가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향긋한 빵이나 수프 냄새를 맡으며 눈을 뜨는 것.
거실에 늘 따뜻한 온기가 감돌고 있는 것.
아무 데나 벗어놓은 슬리퍼가 늘 현관 앞에 가지런히 정리돼 있는 것.
소파 베개를 들춰 보면 펜이 수북한 것.
나의 생활과 타인의 생활이 섞여 들어가는 것.
그건 정말이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늘상 보는 부엌이 색다르게 느껴졌고, 용건도 없으면서 괜히 거실을 한번 서성였다.
베개가 눈에 들어오기만 하면 펜을 몇 개나 모아 놓고 까먹었으려나 들춰 봤고, 설마 이것도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슬리퍼를 일부러 구석에 벗어뒀다.
그리고 그게 모두 꿈이었다는 듯, 전부 사라진 상태이었던 걸 본 기분은 아주 더러웠다.
빈자리를 실감하게 된다. 혼자라는 걸 와닿게 한다. 알고 싶지도 않았던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우리 계약, 약속도 했잖아! 한 달간 함께 있기로. 콜록콜록…….”
닉시가 크게 기침했다.
귓가를 솨아 때리는 파도 소리와 자꾸 젖은 솜처럼 비틀거리는 몸 때문에 어지러웠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눈앞에 저가 찾던 사람이 있었으니까.
“근데 왜 나만 두고…….”
하지만 그녀가 부르는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 갔다.
자꾸 자신이 갈 수 없는 바다 쪽으로, 사선으로 멀어져 갔다.
그녀만 두고 사라진다.
열이 끓는 닉시의 머릿속에 그 하나의 사실이 깊게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코끝이 시큰거렸다. 닉시는 가슴께에 뭔가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니까 네가 선택해, 닉시.]“왜 나만 두고 가는데!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이렇게 그냥 가는 게 어딨어! 나만 두고 갈 거야? 버리고 갈 거야?”
울분을 토해 내듯 그녀가 외쳤다.
“싫어. 나한테 그런 거 부탁하지 마. 난 두 번 다신 그런 부탁 못 들어주겠어. 나, 난 못 해.”
[후회하기 벅차.]“그러니까 그 말 취소해. 하기 싫어! 네가 결정하라구!”
불안을 품은 닉시의 목소리가 볼품없이 흔들렸다. 그 찢어지는 외침에 그가 걸음을 멈춰 섰다.
멈췄다. 멈췄어! 닉시는 화색하며 벤자민에게 달려갔다.
때마침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봐봐. 어제 제비꽃밭에서 찾았던 지뢰 파편. 콜록…… 내가 이걸 해체 못 하면, 제키랑 필립 녀석들이 위약금을 잔뜩 물어야 하잖아? 콜록 콜록…… 사실 말이야, 벌써 상단부는 다 파악했어!”
“왜…….”
“이대로면 사흘도 안 걸려서 분석이 끝날 거야! 하지만 너무 일찍 끝낼 순 없으니까 콜록, 아직 못 끝낸 척하고 우린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내면 돼! 그러다가 그 녀석들 휴가가 끝나면, 우리 약속도 끝나는 날이니까 축하 파티라도 하자. 우리, 같이!”
벤자민이 뒤돌아 닉시를 바라봤다.
“계속…… 여기에 살 수 있어 그러니까…….”
그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건데, 닉시. 왜. 왜 나한테 선택하라고 하는 건데.”
―솨아아.
빗방울이 굵어졌다. 그것들이 닉시의 달뜬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비, 그의 오른손, 진통제.
그러고 보니 그는 비가 오는 날이면 종종 손이 아프곤 했다. 그럼 저 아픈 듯한 얼굴은 통증에서 오는 걸까.
“화가.”
“어차피 네가 필요한 건 내가 아니잖아.”
그러나 그의 오른손은 평소처럼 떨리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 따위를 짓밟고 있다는 듯 마디가 희게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럼 대체 왜.
‘아.’
갑자기 찾아온 과거가 그녀의 목구멍 아래를 붙잡고 있는 듯, 숨통을 조여 왔다.
비. 진통제.
“닉시.”
[닉시.]벤자민은 제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닉시는 제 머리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관망하며 제 손에 쥐여진 것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흰색 알약이 있을 거야. 내가 먹으려고 아껴뒀던 건데, 특별히 너 준다. 먹어.]“내가 졌어. 그러니까.”
약통이었다.
귓가에 잊고 있었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청같이. 긴 악몽같이.
“제발 가.”
필사적으로. 지금 저가 제 곁에 있으면 죽을 것 같다는 얼굴로. 그런 볼썽사나운 표정으로 벤자민이 말했다.
[가. 먹고 뛰어.]닉시는 그 닮지도 않은 그 얼굴에서 문득, 먼 과거의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의 웃는 낯을 찾아냈다.
* * *
[왜 나만 두고 가는데!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이렇게 그냥 가는 게 어딨어! 나만 두고 갈 거야? 버리고 갈 거야?]벤자민 리히터는 확신했다. 저는 그녀를 좋아한다.
닉시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아니, 그 전에 닉시가 저를 위해 정말 과일맛 약을 만들어 냈다는 걸 알고 저도 모르게 웃었을 때.
아니, 그 전에 흰 발이 한 손에 들어간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자는 얼굴이 지루하지 않았을 때부터.
그가 찾는 사람이 신경이 쓰인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몽유병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그 화사한 해바라기밭에서, 그녀의 웃는 얼굴을 봤을 때부터.
아니면, 훨씬 이전부터.
저는 그녀를 좋아한다.
좋아한다, 좋아하게 됐다.
동시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버거워졌다.
저의 닳고 닳아 버린 삶 속에 그녀라는 큰 조각을 끼워 넣기 버거웠다.
그녀와 함께인 평범한 시간이 벅찼다.
모든 게 아무렇지 않아지고, 평범하게 웃게 되고, 생각 없이 자게 되는 밤이 오는 것이, 평온한 시간이 너무나 괴로워졌다.
짊어지고 있는 과거가 무뎌지는 게 참을 수 없이 버거워진다.
지난밤. 제 품에 기대 잠든 그녀에게 ‘네가 선택해 달라’고 부탁한 건 고백과도 같았다.
나는 차마 너를 버리고 떠나지 못하니, 차라리 네가 나를 버려 주길.
여태껏 살면서 저가 택한 선택은 모두 절망과 후회만 남았다.
저는 이제 더는 뭔가를 선택하기도, 그래서 후회할 힘도 남지 않았다.
“부탁이니 제발 가.”
그래서 애절하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그녀가 자신을 떠나가 주길.
저는 그녀와 함께하는 평화로운 시간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감히 감당하기 어려우니, 제발 저를 버려 주기를.
오베르의 들판 3권
총은 로맨스판타지 소설
전자책 발행 : 2023년 7월 18일
지은이 : 총은
발행인 : 고영토
발행처 : 콘텐츠랩블루-세레니티
투 고 : [email protected]
정 가 : 3,000원
ISBN : 979-11-6968-639-6 05810
Ⓒ 총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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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의 들판
4권
총은 로맨스판타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