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s of Auber RAW novel - Chapter 9_7
수갑이 풀렸다. “자, 이제 일어나!” 닉시가 벤자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길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젠 가만히 있기만 해도 뺨에 화끈거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화가?”
의아함을 느낀 닉시가 고갤 숙여 벤자민을 바라봤다.
그는 멍하니 번져오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저, 저는 그러려던 게…… 저는…….”
“벤자민!”
닉시가 그를 흔들어 재끼든 말든 벤자민은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꼭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 같았다.
‘아까 머리를 얻어맞았던 게 잘못된 건가.’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멀쩡해지길 기다릴 순 없었다. 불길에 휩싸여 웰던으로 익을 지경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넌 나중에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 해!”
닉시는 그의 어깨를 들쳐멨다. 축 처진 몸이 더럽게 커서 무겁기만 했다.
그녀는 그를 반쯤 짊어진 채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건물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저 멀리서부터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미진 동네였지만 근래 경비가 삼엄해진 탓인지, 금방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이쪽이다! 여기야, 여기! 바로 옆 블록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이런. 여기서 조사받으면 내 소식이 대령한테까지 들어갈 텐데.’
그럼 꼼짝없이 다시 재입대행이다. 파리까지 친히 와 주었으니 옳다구나, 하고 연구실이란 감옥 속에 집어넣겠지.
그것만은 절대 사양이다.
게다가 약쟁이 외국인 불법체류자도 데리고 있으니 시말서 67장으론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닉시는 반쯤 정신을 잃은 그를 짊어지고 깊숙한 골목으로 걸어갔다.
몇 번의 이동 끝에 닉시는 익숙한 쪽방에 도착했다.
예전에 닉시가 자주 놀던 폐건물의 옥상이었다.
문이 작아 밖에서 보면 작은 창고처럼 보이겠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방이 있었다. 닉시의 비밀 장소였다.
“여기가 지금까지 남아 있을 줄은 몰랐네.”
아쉽게 예전에 기억하던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역시 정부 녀석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어떻게 괜찮게 바꿔놓으면 멀쩡한지 안다. 파리에 있었던 폭격 후, 이런 후미진 동네들은 전부 재개발하겠다더니,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아직도 이렇게 바퀴벌레 소굴 같지 않은가.
닉시가 지저분한 카펫을 치우곤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매트리스 위에 화가를 뉘었다.
그의 얼굴엔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머리칼을 헤집어 상처를 살폈다. 이마가 약간 찢어져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반창고만 붙여도 금방 나을 것 같은 정도.
‘다행히 머리는 안 깨졌는데…….’
그럼 아깐 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닉시는 벤자민 옆에 주저앉았다.
공포 따위로 떨리고 있던 눈. 당장이라도 애걸복걸 빌 것처럼 비굴하게 떨리던 목소리.
“제발……”
화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 차린 건가 싶어 닉시가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정신을 잃은 채였다.
그의 살풋 벌어진 입가로 작은 신음이 튀어나왔다.
“살……려 주세요……. 제발,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는 닉시에게 몸을 기댄 채 여기까지 오면서 끊임없이 살려 달라 빌었다. 이유는 그녀도 몰랐다. 아까 소동에서 그녀가 못 본 새 머리만 열심히 얻어맞았던 걸까.
‘하지만 그런 것치곤 크게 다친 흔적 같은 건 없고.’
그럼 왜일까. 어지간히 큰일 아니곤 늘 제가 상관할 바 아니라는 듯 눈 하나 깜짝 않던 사람이.
닉시가 턱을 괴었다.
“……그러니까 알 수가 있어야지.”
기절한 사람을 흔들어서 물어볼 수도 없고. 닉시도 오랜만에 패싸움을 즐겼더니 피로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냥 이 남자가 멀쩡히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닉시는 손을 들어 벤자민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젖은 머리칼이 그의 눈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설핏 눈을 들었다. 아직 제정신은 아닌 듯 초점이 흐렸다.
“…….”
그는 제 뺨을 그녀의 손바닥에 깊이 묻었다.
손에 닿아오는 온기가 불길에 익은 것처럼 뜨거웠다.
‘열나네.’
어휴. 닉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약이 필요해서 환자를 데리고 약국에 갔더니, 약쟁이나 만나고 패싸움이나 잔뜩 하다니.
“이래선 그림을 볼 수나 있으려나 몰라.”
그림이라. 닉시는 오래전 화가와 계약 관계를 맺었을 무렵을 떠올렸다.
그때 화가는 그 그림을 따라 그리고 있었다. 어둡고 칙칙한 그림.
보기에 화려하거나 예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미술관이나 유명한 화랑 같은 곳에 걸릴 만한 그림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건 원래 어디 있던 그림이었으려나.”
이럴 줄 알았으면 상관이 미술품에 대해 떠벌리며 자랑할 때 조금이라도 귀 기울일 걸 그랬다. 그럼 그 그림을 이렇게까지 힘들게 찾진 않았을 텐데.
닉시는 벽에 몸을 기댔다.
* * *
벤자민은 몸에 한기를 느끼며 눈을 떴다. 가장 먼저 손목이 시큰거리며 아파 왔다.
그는 멍하니 고갤 들어 제 몸 구석에서 가장 따뜻한 곳을 바라봤다.
탄내 나는 긴 머리카락이 만져졌다.
얼핏 비치는 빛깔이 금색인 것을 보고 그는 안도 어린 숨을 내뱉었다.
‘여긴 어디지.’
눈이 캄캄한 어둠에 적응되기만을 기다렸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등 뒤에서 싸구려 매트리스의 스프링 소리가 났다.
아직 몸에서 불 냄새가 진동했고, 공기는 텁텁했다.
‘아직 거긴가.’
어느 정도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그는 몸을 일으켰다.
뒤늦게 온몸이 뻐근했다.
약의 원료를 찾으려고 후미진 골목에 들어갔다가 이상한 놈들에게 습격받았다. 그 뒤로 총소리가 들렸고 불이…….
—지끈.
시뻘겋게 치솟던 것을 떠올리자마자 두통이 일었다.
그 이후로 기억이 없는 것을 보니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꼴사나웠다.
그가 몸 깊숙이 억눌려 있던 무거운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그날 이후 몇 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이 모양 이 꼴이었다.
벤자민은 뒤늦게 밀려오는 오른손의 통각을 조용히 삼켰다.
“으…….”
끔찍할 정도로 생생한 이 환상통은 도저히 익숙해지려야 익숙해지지 않았다.
한차례 통각을 참아내고 나니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는 멀쩡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몇 시간 동안이나 목적지 없이 바다를 헤엄쳐 온 사람처럼 피곤했다.
‘그림…… 볼 수 있을까.’
혼탁한 정신 가운데, 한 가지 의문이 고갤 들었다.
모든 고통의 원흉. 악몽의 근원지.
‘그냥 없던 걸로 하면…… 포기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악몽을 꿀 일도 없을 것이고, 그 그림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된다.
그럼 전보다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거고, 몸도 편해질 것이다.
그냥 마음 편하게. 포기하고, 외면하고, 잊어버리고, 지우고, 없던 일로 하면.
“오, 깼어?”
닉시가 크게 하품하며 고갤 들었다.
“너 깨는 거 기다리다가 지루해 죽는 줄 알았어. 헉 뭐야, 지금 몇 시야!”
닉시는 창밖을 바라보곤 기겁했다.
잠깐 잔줄 알았는데 아주 푹 잔 건지, 하늘은 어둡다 못해 새파랬다.
“정신 들었지? 그럼 빨리 일어나! 이런 곳에서 계속 잘 순 없잖아.”
방금까지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잘 잤으면서. 벤자민이 닉시의 재촉에 비척비척 일으켰다.
약간의 현기증이 일어 벽을 짚으니, 그녀가 나약하다며 낄낄댔다.
“밖이 조용해진 거 보니까 상황도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 같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만 아는 비밀 길로 가자.”
“…….”
“좋아. 긍정한 거지? 가자!”
닉시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작고 따뜻한 손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응? 아. 아까? 한창 맥스랑 눈물의 동창회 중이었는데 갑자기 불이 났지 뭐야. 거기 계속 있으면 통구이가 될 것 같지, 너는 정신을 못 차리지. 그래서 그냥 내가 둘러업고 왔어.”
그러다 불에 놀란 군인들이 몰려와서, 그들을 피하려고 옛 아지트를 찾아 숨었다고. 닉시가 설명했다.
좁고 어두운 골목을 지나 하수도를 따라 걷다 보니 세느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 옆으론 코스모스들이 나란히 심겨 있었다. 깊은 새벽녘이었지만 달빛이 유독 밝아 어둡진 않았다.
“화가.”
닉시의 부름에 벤자민이 그녀를 바라봤다.
“너 혹시 불 무서워해?”
“……딱히.”
“얼굴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녀가 굳어진 그의 입가를 지적했다.
벤자민은 괜히 그녀에게 잡혀있지 않은 다른 손만 쥐었다 폈다.
“무슨 일 있었어?”
그들은 잔뜩 피어 있는 코스모스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들의 손에 걸렸던 꽃들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아무것도.”
“튕기기는.”
닉시가 꿍얼거렸다. 순순히 말해 주지 않을 걸 알고는 있었다만.
“좋아. 그건 내가 차차 알아내도록 하지. 넌 스무고개를 좋아하니까.”
“…….”
“그리고 다시 쓰러질 것 같으면 말해. 너 은근히 무거워서 기합 넣을 시간이 필요하거든.”
알겠지? 나약한 화가 씨. 닉시는 짓궂게 씩 웃었다.
코 밑엔 아직도 닦이지 않은 코피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더 철없는 꼬맹이처럼 보이게 했다.
벤자민은 제 손을 잡아끄는 그녀의 손을 바라봤다.
작았다. 그녀가 잡고 있다지만 사실상 그의 손에 폭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작았다.
확실히 그녀는 저와 달리 나약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사람 여러 명을 주먹과 발로 평정한 걸 봐서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녀는 강했다.
저와 같은 군인이었을 거면서 저와는 달리 늘 평범한 오늘을 살아갔다.
과거를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어도 얽매여 있진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런 그녀가 좋았다. 비참하게도.
* * *
—또 너희야?
수화기 너머로 필립의 어이없단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닉시는 호텔 로비의 전화기를 빌려 필립에게 라텐 지구에서 일어난 화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필립은 그 화재 때문에 군이 발칵 뒤집혔다 말했다.
—테러라도 일어난 줄 알았잖아. 드디어 나치 잔당 놈들이 움직였다고 난리였어.
“하하, 미안. 근데 거기 조사는 꼭 해 줘.”
—왜. 진짜 나치라도 숨어 있었어?
“아니. 마약이 돌고 있는 것 같아서.”
귀찮게 됐네. 필립이 혼잣말했다.
일단 화재는 빠르게 진압됐고,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낡은 건물들이 홀랑 불타 버리긴 했어도 사람이 사는 곳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자세한 건 더 조사해봐야 안다 했다.
“불이 일찍 꺼져서 다행이다!”
—아예 안 나는 게 다행인 거지.
“미아안! 나중에 내가 수확한 고구마 부쳐줄게.”
—일 년은 기다려야겠네.
닉시는 두 차례 필립의 잔소리를 들었다. 닉시가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천장의 다이아몬드 문양을 셌다.
그때, 필립이 말했다.
—참, 닉시. 도착했어.
“응?”
—그림, 도착했다고.
가 도착했다.
* * *
[―그런데 닉, 그 그림 말이야.]이른 아침. 둘은 박물관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바로 렌브란트의 그림이 있는 곳으로 갈 거라 생각했던 닉시의 예상과는 다르게, 벤자민은 1층부터 전시된 그림들을 차분히 확인했다.
하지만 그림들을 보고 감탄을 한다든가, 다른 관광객들처럼 관람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저 지나가는 길에 있는 돌멩이에 잠시 시선을 주는 것. 그 정도의 머무름이었다.
로부스 박물관은 하루를 빠듯하게 사용해도 전부 돌아보기 어려울 만큼 넓은 곳이었다.
그들이 관에 도착했을 땐 어느덧 해가 지고 있는 저녁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굶어 죽을 거야.’
닉시가 주린 배를 움켜쥐었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꼬박 화가 뒤를 따라다녔다. 덕분에 지금까지 쫄쫄 굶은 닉시였다.
화가는 박물관 큐레이터도 아니면서 쉬지 않고 박물관을 돌아다녔다. 박물관을 반쯤 돌았을 때, 닉시는 그가 일부러 렌브란트 관을 피하는 건가 의심하기도 했다.
이대로 있다간 뜻에도 없던 아사로 생을 마감할 지경이었다.
닉시가 벤자민의 뒤통수를 흘긋 바라봤다.
‘그렇다고 저 녀석을 혼자 둘 수는 없고.’
렌브란트 전시장에 들어간 그는 한참 동안을 입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누가 보면 그 화가의 너무나도 열성적인 팬이라, 선 채로 죽은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
인내심이 바닥난 닉시가 못 참고 그의 등을 쿡 찌르려 할 때야 그는 걸음을 옮겼다.
덕분에 배고프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친 그녀가 황급히 그의 뒤를 쫓았다.
“근대적 명암의 시조라고 할 수 있죠. 여기 보시면, 인물에서 절절한 고뇌가 느껴지죠? 바로 대비되는 색감에서 오는 강렬한 인물의 심리가 두드러지는 그림이랍니다.”
‘무슨 소리야.’
닉시는 멀리서 박물관 큐레이터가 해 주는 말을 주워들으며 생각했다.
그림에서 인물의 마음을 어떻게 안다는 건지. 그림에 ‘얘 지금 아픔’ 이렇게 적혀 있는 것도 아닌데. 닉시는 그림을 올려다봤다.
전체적으로 어두워 보이는 분위기와 배경. 꼭 한 구석엔 그에 대비되는 노란빛의 밝은 색채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녀가 보기엔 그저 컴컴한 방 안에 촛불 하나만 켜 놓은 것 같은 그림의 연속이었을 뿐이었다.
벤자민이 걸어가면 그녀도 쫓아갔고, 그가 멈추면 그녀도 멈췄다.
그렇게 쫓아가고 멈추고 움직이는 일련의 과정이 끝날 무렵, 그들은 마지막 그림에 도달했다.
마지막 그림. 그러나 그와 그녀가 찾는 그림은 아니었다.
“어, 음. 이분이 말로만 들었던 렌브란트 씨구나? 자화상이라고 했으니까. 왠지 되게 친밀감이 느껴지네. 초면인데, 하하.”
하하……. 닉시가 슬쩍 그의 눈치를 봤다.
곧장 ‘뭐 하는 거냐’며 화든 짜증이든 낼 거라 생각했던 그의 얼굴은 제법 고요했다.
바람 하나 불지 않는 깊은 호수를 보는 듯했다.
[―그런데 닉, 그 그림 말이야.]닉시는 어제 필립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박물관엔 전시할 수 없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닉시가 벤자민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가 그림에서 시선을 떼고 닉시를 바라보았다.
“저, 화가 있잖아. 네가 찾는 그림…….”
“…….”
“이 박물관 옆에 성당에 배치해 뒀대.”
“…….”
가 볼래? 닉시가 말했다.
의문을 느낄 법도 한 말이었는데 벤자민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고갤 끄덕였다.
꼭, 이 순간을 각오하고 있던 사람처럼.
그들은 박물관 뒤편, 작고 조용한 성당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저물녘의 노을빛이 성당의 상아색 벽돌을 짙은 주홍빛으로 물들였다.
노을에 타들어 가는 작은 모닥불 같았다.
닉시는 성당 안쪽, 코스모스가 잔뜩 피어 있는 뒤뜰에 어울리지 않게 놓여 있는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건물 파편이었다. 언젠가 그녀의 발등을 깨부쉈던 잔해처럼 검게 그을리고, 잿더미가 끼어 있고, 더러운 얼룩이 묻어 있는 파편.
[―가 보면 알겠지만……]벤자민은 홀린 듯 그 건물 파편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닉시가 골치 아픈 듯 뺨을 긁적였다.
“그게 그 그림이야. .”
[―그 그림, 전쟁 중에 불타 없어졌어. 건진 건 그게 걸려 있던 성당의 건물 파편뿐이야.]“언제 불탔는진 모르겠는데, 시기상 전쟁통에 소실된 것 같다더라고. 성당에 불이 났을 때 같이 탔을 가능성이 크댔어.”
벤자민은 건물 파편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불탔다는 성당도 부서진 뒤에 오래 방치돼 있어선지 흔적을 발굴해 내기 쉽지 않아서, 그림이 걸려 있었던 부분도 그을림을 보고 겨우 찾았다고 하더라.”
“…….”
“그냥 불타 없어졌다고 말하긴 그래서, 그 건물 파편이라도 운송해 온 거라는데……”
“…….”
“화가?”
울어?
그의 얼굴 위로 소리 없는 물방울이 후두둑 쏟아졌다. 댐으로 막아 두었던 강물이 한꺼번에 터진 것 같이 흘러내렸다.
잔해에 올려 두었던 손이 볼품없이 떨려왔다.
그의 상체가 잔해 앞에서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흐…….”
“왜, 왜 그래? 그, 그림이 없어서 그래?”
닉시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의 무너진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 낑낑거렸다. 그러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억눌린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고, 마른 바닥 위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알고 있었어.”
“어?”
“처음부터,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뭐?”
“처음부터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내가…….”
[그게 로부스 박물관에…… 있다고? 분명 전쟁 중에 소실됐……] [죽기 전에 보고 싶었던 그림이니까] [를 보여 줘] [제발, 제발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전부 다 제 잘못입니다……]“내가 없애버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