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Year Max Level Manager RAW novel - Chapter (1484)
제 1484화
1484. 검은 별 2
“도영아……라고 했습니까?”
최도영이 자신에게 반말하는 김태훈 대령에게 되물었다.
김태훈 대령이 한층 더 저자세로 대답한다.
“아, 그게 죄송합니다. 도영 씨. 저기……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도영 씨가 입은 모든 피해를 변상하고, 또 사과드리겠습니다.”
위관에서 영관이 되면 열 가지가 바뀌고, 소령에서 중령이 되면 백 가지가 바뀌고, 중령에서 대령이 되면 천 가지가 바뀌며, 영관에서 장성이 되면 만 가지가 바뀐다는 말이 있듯, 별을 다는 순간 그 군인의 위상은 이전과는 180도로 달라진다.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권력이 절로 생기는 것은 물론이요, 별이 붙은 전용 차량과 함께 전속부관과 운전병 등등의 혜택, 또한 콘도나 호텔도 예약할 수 있는 각종 혜택 역시 주어진다.
심지어 군을 제대하고 사회를 나가서도 온갖 군 관련 기업에서 임원으로 초청을 받으며, 평생을 ‘별’로 살아갈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김태훈 대령은 그 별을 달기 위해, 자신이 찍어 내린 최도영에게 비굴하게 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김태훈 대령을 본 기자들은 숙덕이기 시작했다.
“진짜 별 달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하네.”
“이미 스타그램 영상으로 다 퍼졌는데, 그걸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야, 아직 몰라. 군대가 어떤 조직인데.”
“요즘 군대는 달라. 그리고 지금 모든 연예 기사 면에 톱으로 기사 뜨고 있는데, 국방부 역시 뒤집어졌다는 데 내 손목을 건다.”
나 역시 김태훈 대령의 승진은 물 건너갔음을 확신했지만, 김태훈 대령은 최도영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백진애도 앞으로 나섰다.
군대를 나오기로 결심한 이상, 김태훈 대령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용기를 낸 것이었다.
“최 중사님. 아니, 최 선배! 물러서지 마세요. 저 인간이 별이 되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길 거예요.”
최도영이 백진애를 쳐다본다.
“괜찮겠어?”
“예!”
“알았어.”
최도영이 고개를 끄덕인 뒤, 날 쳐다본다.
“정 실장님. 진애는 문제없이 커버해 주실 수 있으시죠?”
“약속드렸지 않습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배우님의 뒤에는 굴렁쇠 엔터와 제가 있을 겁니다.”
“누군가…… 그 말을 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최도영이 감격한 표정을 짓더니, 당황한 김태훈 대령을 노려보며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 별을 달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사랑했고 나 역시 사랑했던 대한민국 군대가 더 시궁창으로 변할 겁니다. 전, 그 꼴을 절대로 볼 생각이 없습니다.”
최도영이 절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이자, 김태훈 대령은 결국 반쯤 포기하고서 외친다.
“빌어먹을 자식! 알았어! 그럼 어디 마음대로 해 봐!”
김태훈 대령이 화를 내며, 기자들이 막고 있는 자신의 관용차로 돌아가려고 힘을 쓴다.
하지만 최소혜 기자를 포함한 다른 기자들은 물러나지 않고 녹음 기능을 켠 폰을 들이대며 질문을 쏟아냈다.
“아까 한 질문의 대답부터 해 주시죠. 가정도 있으신 분이 백진애 씨를 추행하려 한 다음 최도영 씨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한 사실이 맞습니까?”
“아니래도!”
김태훈 대령은 아니라면서 더욱 거칠게 기자들을 밀쳐대며 실랑이를 벌였다.
그때였다.
부우웅.
TVC 주차장으로 군사경찰이라고 적힌 검은색 승용차가 두 대가 나타났다.
끼이익.
차량이 멈추더니 무궁화 두 개짜리 견장을 단 중령과 그가 데리고 온 군사경찰 네 명이 우르르 내린다.
“김 대령님!”
김태훈 대령이 멈칫하고선 고개를 돌리더니, 중령의 얼굴을 알아보고 반색하며 외친다.
“이 중령! 잘 왔다! 어서 빨리 백진애 쟤부터 잡아! 군사 기밀을 방송에서 폭로한 죄로…….”
그때, 중령 군사경찰이 딱딱한 말투로 말한다.
“육군 군사경찰 이종민 중령입니다. 군법 위반 혐의로 김태훈 대령 당신을 체포하겠습니다. 당신은 군법…….”
김태훈 대령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외친다.
“야! 이종민! 너 지금 뭣 하는 거야? 왜 날 체포해?”
이종민 중령은 일절 대꾸하지 않고서 미란다 원칙과 범죄 사실을 읊은 뒤, 곁에 있는 군사경찰들을 향해 말한다.
“당장 연행해!”
“예!”
군사경찰 두 사람이 김태훈 대령의 양옆으로 뛰어가 팔을 감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졸지에 포박이 된 김태훈 대령이 흥분해서 고함을 지른다.
“이 중령! 너 이 새X 뭣 하는 거야? 백 준장님이 네가 이딴 짓을 한 걸 알면, 넌 끝인 거 몰라?”
이종민 중령이 김태훈 대령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대답한다.
“백 준장님이 직접 지시하셨습니다. 군대의 위신을 깎고 군율을 어기는 쓰레기 새X를 당장 잡아 오라고요!”
그 순간 김태훈 대령이 충격을 받아 비틀거린다.
“마, 말도 안 돼. 백 준장님이…… 그러셨다고요?”
“예. 그러니 입 닥치고 가십쇼!”
이종민 중령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김태훈 대령을 포박한 군사경찰들을 쳐다본다.
“뭐해? 당장 성범죄를 일으켜 군의 명예를 실추시킨 범죄자를 연행하지 않고!”
“예!”
남은 군사경찰들마저 달라붙어, 김태훈 대령을 달랑 들어 올려 차로 옮긴다.
공중에 뜬 김태훈 대령이 발버둥을 치며 꽥꽥 소리를 치고 있었다.
“이건 모함이야! 모함이라고!”
김태훈 대령이 억울하다며 소리를 쳤지만, 그를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쾅.
20대의 건장한 군사경찰들은 김태훈 대령을 차 뒤편에 구겨 넣은 뒤, 거칠게 문을 닫았다.
“그럼, 저흰 먼저 가겠습니다. 중령님.”
“어. 수고!”
끼이이익.
김태훈 대령이 탄 차량이 TVC를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기자들은 사라지는 김태훈 대령의 처량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이어서 이종민 중령이 이번에는 백진애를 향해 다가왔다.
그 순간, 백진애가 떨기 시작했다.
아무리 추행을 당했다곤 하나, 멋대로 군 내부의 일을 외부에 폭로를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이종민 중령이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리고 계급도 낮은 백진애를 향해 깍듯한 자세로 말한다.
“백진애 하사. 용감하게 제보를 해 주신 덕에 3년 전 사건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
백진애는 이렇게 친절하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눈을 끔뻑였다.
“중령님.”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거라 들었습니다. 오늘 오후 14시까지 지정한 위치로 변호사와 와 줄 수 있겠습니까? 혹 힘드실 것 같으면 제 명함을 드릴 테니까 직통 전화로 연락해 주십시오. 그러면 조사 날짜를 맞춰드리겠습니다. 아, 참고로 자대로는 조사가 끝날 때까지 복귀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너무도 파격적이고 유연한 군대의 반응에 내 곁에 있던 최도영이 놀라서 묻는다.
-정 실장님. 대체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나 역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제가 그랬잖습니까? 군대는 이번 일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요.
-국방부 쪽 그 꼰대분들은 스타그램 라이브가 뭔지도 모르실 텐데요?
-그분들보다 더 위에 계신 분은 보시잖습니까?
-설마…… VIP!!
-쉿.
-죄송합니다.
-하여간 이렇게 전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걸 보니, 그분이 국방 장관께 지시를 내린 게 틀림없네요.
내가 이태종 전 장관이 알고 있는 군인 인사에게 외압을 넣지 말라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처럼 이렇게 여론으로 대한민국을 뒤집은 이상, 대한민국 국군의 통수권자인 남태성 대통령의 귀에 들어갈 게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이종민 중령이 기자들을 향해 말한다.
“저희 국군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 엄정 조사할 것을 약속드리며, 3년 전의 일에 대해서도 조금의 의혹도 없이 수사해 죄를 지은 자들에게 벌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백진애 하사가 전역을 희망한 이상, 제대할 때까지 군 차원에서 특별 보호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종민 중령은 군사경찰이지만, 흡사 국방부의 대변인인 듯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지만, 이종민 중령이 고개를 젓는다.
“급하신 마음은 알지만, 잠시 정 실장님과 이야기를 한 다음에 질문을 받겠습니다.”
기자들이 아쉬운 표정을 감추며 말한다.
“그러면 김태훈 대령 체포부터 기사 쓰고 있을 테니 얼른 다녀오십시오.”
“예.”
기자들이 저마다 주차장 바닥에 주저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때, 이종민 중령이 날 보며 말한다.
“정 실장님. 잠깐, 따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잠깐이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난 최도영에게 백진애를 조금 챙겨달라고 한 뒤, 주차장 한쪽으로 향했다.
* * *
주차장 한쪽으로 가자 이종민 중령이 작은 목소리로 한숨을 내쉰다.
“정 실장님. 조금 살살 해 주실 순 없었습니까?”
“난리가 났나 보군요?”
“예. 군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VIP께서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거냐면서 국방 장관을 내리까셨고, 그때부터 줄줄이 불려 가서 아주 아작 나고 있습니다. 이대로면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줄초상이 나게 생겼습니다.”
연예인들이 새로운 권력이라는 게, 다시 한번 와닿고 있었다.
“그래서 저한테 바라는 게 뭡니까?”
“이 사태를 수습 좀 해 주실 순 없겠습니까? 현재 당사자인 저희는 수습할 수가 없습니다. 전 국민이 저희 군을 싫어하고 있으니까요.”
“가능은 하지만, 그러면 김태훈 대령을 용서해 준다거나 하는 거 아닙니까?”
“절대로 그럴 일은 없습니다. 어차피 그랬다가는 정 실장님이 또 다시 폭로를 하실 거 아닙니까?”
“어떻게…… 저를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실은 소병민 비서실장님이 저와 친척관계라서요.”
그래서 김태훈 대령을 잡으려고 차출이 된 거군.
나를 찾아서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소병민 비서실장님에게 전화 한 통 걸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종민 중령이 반색하더니, 즉각 자기 폰으로 전화를 건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더니 소병민 비서실장이 전화를 받는다.
-이 중령. 무슨 일입니까? 한창 바쁘게 움직여야 할 분이!
친척이라고 했는데, 너무도 서늘한 목소리에 들려온다.
그만큼 소병민 비서실장이 빡쳤다는 뜻이었다.
그때, 이종민 중령이 눈앞에 소병민 비서실장이 있는 듯이 각을 잡고 말한다.
“김태훈 대령은 연행했고, 백진애 하사에게는 친절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정 실장님이 통화를 연결시켜달라고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혹, 우리 이 중령이 그 친구한테 뭐라고 부탁을 한 건 아니겠지요?
이종민 중령이 내게 애원하는 눈빛을 보낸다.
난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비서실장님.”
-큼. 옆에 있었나?
“예.”
소병민 비서실장이 한숨을 푹 하고 내쉬면서 말한다.
-정 실장 이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연락을 하지! 그랬으면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해결해 줬을 텐데!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소병민 비서실장이 힘이 있다고 해도, 공론화되지 않은 일을 사적으로 해결하는 건 특혜가 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모르는 척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해서 잠시 잊었습니다.”
-끙. 이미 늦었어. 관련된 사람들을 다 징계를 먹이는 수밖에. 그래야, 군대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회복시킬 것 아닌가?
“그 이미지를 제가 수습해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이게 수습이 된다 생각하나? 지금 군대가 훨훨 불타고 있는데?
“예. 가능합니다.”
소병민 비서실장이 깜짝 놀라 말한다.
-지…… 진짜로?
“예.”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소병민 비서실장의 입에서 답이 나온다.
-끙…… 알았네. 그러면 당시 허술하게 판결을 내린 군사법원이랑 수사관들, 그리고 무마하려고 한 라인들만 정리하는 걸로 하지.
“예. 대신에 군에서도 좀 도와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필요하면 자네 앞에 있는 이종민 중령을 통해서 요청해. 창구는 단일화되는 게 좋으니까. 참고로 이종민 중령은 문사현 국방 장관과도 다이렉트로 연결되니까 필요하면 요청해. 보고는 내가 알아서 들을 테니까, 일단 수습부터 해 봐.
“알겠습니다.”
-그래. 막히면 바로 전화하고!
“예.”
소병민 비서실장과 통화를 끊자, 이종민 중령이 감격한 표정을 짓는다.
“감사합니다, 정 실장님!”
“아닙니다. 군대도 면제된 주제에, 오지로 돌아다니는 직업 군인분들을 너무 비하하게 된 것 같아 사과드립니다. 대다수의 군인 분들이 묵묵히 자신들의 일을 하시는데, 그분들까지 욕을 먹게 해서 처음부터 마음에 좀 걸렸습니다.”
정중한 사과를 하자, 이종민 중령이 감격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알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정 때문에 면제되신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이미 엄청난 세금을 내시면서 국가뿐 아니라 군대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계시잖습니까?”
세금을 많이 내는 것으로 이미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말이, 군대에 가지 않아 늘 무겁던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준다.
“하여간 앞으론 이런 일이 없도록 저희 군사경찰이 흔들리지 않고 맡은 바 임무에 임하겠습니다.”
“예. 그럼, 일단 먼저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뭐든 말씀하십시오.”
“김태훈 대령과 손을 잡은 조명 일보 집안에 죄를 묻고 싶습니다.”
“저희가…… 민간인을요? 저희도 사적으로 김태훈 대령을 소환한 게 열 받지만, 저희 역시 방법이 없어서 끙끙대고 있을 뿐입니다. 알다시피 군인은 민간인을 못 건드리잖습니까?”
“군인이 민간인을 건드릴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이종민 중령이 반색하며 말한다.
“그게 뭡니까?”
난 그 즉시 김태훈 대령과 손을 잡고 날 엿 먹이려 한 조명 일보 조현구 명예회장에게 타격을 입힐 만한 정보를 꺼내 들었다.
회귀 전, 검찰의 조사를 받고 조현구 명예회장이 구속되었던 바로 그 건을 말이다.
* * *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언론사주와 박한길 전무가 모인 LT 타워 호텔 로열 스위트룸은 졸지에 작전 회의실로 변경되어 있었다.
정윤호의 반격에, TVC로 공격을 하기도 전에 김태훈 대령이 구속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동향 일보 이철승 회장이 불안한 눈빛으로 묻는다.
“회장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매일 일보 안호진 회장 역시 불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러다가 저희 다 털리는 거 아닙니까?”
조현구가 미간을 찌푸린다.
“걱정이 걱정을 부르는 법입니다. 이번 일은 제 선에서 정리할 테니까, 우는 소리 좀 그만하십시오!”
조현구의 질책에, 두 사람의 입이 닫혔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이잉.
조현구의 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혹시 정윤호인가 하고 봤지만, 정윤호가 아닌 다른 이의 번호였다.
[문사현 국방 장관]조현구는 황급히 두 언론 사주들에게 말한다.
“잠깐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예.”
조현구는 로열 스위트룸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장관님. 우리 방송국 PD가 사적으로 김태훈 대령과 친분이 있어서 모셨다가 이런 사태가 발생해 버렸네요. 제가 사과의 의미로 오늘 저녁에 벌주를 살까 하는데, 혹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평소에 친분이 있었기에 넉살 좋게 말했다.
그런데 그때, 문사현 국방 장관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꾸한다.
-조 회장님. 회장님 집안에 군대를 안 간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고혈압, 디스크, 얼씨구나 정신질환까지. 직계부터 방계까지 아주 난리도 아니군요.
조현구는 그 어떤 누구도 지적하지 않은 점을 지적당하자 당황했지만, 노련한 그는 시치미를 뚝 떼고선 생전 처음 듣는다는 듯이 말했다.
“저희 집안이 대대로 몸이 좀 약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시치미를 떼도 소용없습니다. 곧 수사에 들어갈 테니 알아두시라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순간, 조현구는 국방 장관이 다른 의도가 있어서 전화한 것을 알아차렸다.
“혹시…… 뭐 바라는 게 있으십니까?”
문사현 국방 장관이 호통을 친다.
-바라는 거라뇨! 절 뭐로 보고 그러십니까?
“장관님. 솔직히 말씀해 주시면, 시키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르더니 문사현 국방 장관이 한숨을 푹 내쉬고 말한다.
-하,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드리죠. 유학 간 손주분이 한국과 미국의 이중 국적이더군요. 그런데 그런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군대에 간다는 발표를 한다면, 집안 전체에 퍼진 이런 의혹이 싹 가실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조현구는 아찔해졌다.
자신이 목숨처럼 아끼는 명석한 손자 조성휘는 이중 국적에 하버드 석사 학위를 준비 중인데, 원래라면 40살까지 미국에 있다가 돌아와, 한국 국적을 회복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국방 장관님. 그 아이도 이제 성인인데 제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공부를 마치고 몇 년 뒤에 한국에서 군 장교로 근무하게 하는 건 가능할 겁니다. 그러니 우리 손자 녀석은 이번 일에서 좀 빼 주십시오.”
-아, 그래요? 그러면 뭐 어쩔 수 없죠. 집안 전체가 군대를 빼려고 하시는가 본데,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는지 똑똑히 지켜나 보시죠.
조현구는 상대가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깨닫고선,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그 아이만 데리고 오면, 저희 집안일은 덮어주시겠습니까?”
잠시의 침묵이 흐르다가 말한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들춰봤자 여럿이 피곤해지지 않겠습니까?
조현구는 피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나이가 차긴 했지만, 내년 초에 카투사로 입대를 하게 좀 손을 써 주십시오.”
-지금 장난하십니까?
“예?”
-보는 눈이 있는데 무슨 카투사입니까? 최전방 사단의 일반 사단으로 입대입니다.
“아이의 나이가 이미 27살인데 일반 사병이라뇨?”
-아, 싫으시면 관두십시오.
조현구는 자신이 약자라는 걸 깨닫고선 어쩔 수 없이 대꾸했다.
“아닙니다. 당장…… 들어오라고 하겠습니다.”
-이왕이면 기사로 확실하게 났으면 합니다.
“예.”
-아, 그리고 오늘 일에 대한 회장님의 공식 사과도 필요합니다.
“제가 말입니까?”
-조수환 조명 일보 회장은 병환이고, TVC 대표는 이미 잘렸잖습니까? TVC에서 김태훈 대령을 꾀어서 오늘 방송을 냈으니, 우리 회장님이 책임을 지셔야죠. 아닙니까?
조현구는 그제야 아들을 병원에 보낸 것이 후회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저희 집안의 병역 문제에 대해 더는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 그럴 일 없습니다.
달칵.
전화를 끊은 순간 조현구는 화가 치밀어 올라 폰을 집어 던져 버렸다.
퍼억.
와장창.
구석에 놓인 백자가 깨져 버렸다.
“으아아악!!”
벌컥.
문이 열리더니 동향 일보 이철승 회장과 매일 일보 안호진 회장, 그리고 유정 그룹의 박한길 전무가 뛰어 들어왔다.
“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조현구는 집안 사정이라서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때, 눈치를 보던 박한길 전무가 깨진 백자를 보며 말한다.
“저거 백자…… 제가 알고 있기로는 국내에 한 점밖에 없는 스타일의 백자라서 50억이 좀 더 되는 걸로 아는데…….”
조현구의 위에서는 신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으으윽.”
조현구는 고통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일단 손자 놈에 관한 병역 이행 발표로 국방 장관을 달랜 뒤, 집안의 병역 비리를 처리해 준 브로커를 국외로 빼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조현구는 자신이 던진 폰을 다시금 손에 쥐었다.
액정에 금이 가서 제대로 보이질 않았지만, 단축키 1번은 보였기에, 꾹 눌러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회장님.
“지금 당장, 성휘가 내년 초 최전방 부대에 사병으로 입대한다는 기사를 내!”
-성휘 도련님이 군대를 간다고요?
비서마저 당황스러워하자, 괜스레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그래! 지금 당장!”
-아, 예. 예.
조현구는 전화를 끊은 뒤, 깨진 액정을 스크롤 하며 브로커의 번호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그때였다.
[발신■ : ■■■]액정이 깨져있어 누가 전화를 걸어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현구는 잠시 고민을 했지만, 혹 손자의 전화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를 받았다.
“성휘냐?”
그런데 그때, 증오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SBC 방송국 채널을 한번 틀어 보십시오.
“방송은 왜?”
-일단 보고서 이야기하시죠?
“기다려 봐!”
조현구가 방 안에 있는 TV를 틀었다.
SBC에선 군사경찰이라는 패치를 붙인 중령이 긴급 발표를 하고 있었다.
-저희 군은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 여러분과 최도영 씨에게 정중히 사과드리며, 반드시 억울한 사정을 바로 잡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막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조명 일보 회장님께서 TVC에서 군에 관한 거짓 방송이 있을 뻔한 일에 대한 공식 사과를 해 오셨습니다.
그와 더불어, 현재 하버드에 재학 중인 조성휘 군이 내년 초에 강원도 최전방에 입대할 것임을 알리며, 언제나 군인들에 대해서 늘 존경해 왔다는 말씀을 전해오셨습니다.
그때, 폰에서 정윤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존경합니다. 손자를 직접 최전방에 보내시다니요.
“나라고 보내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예. 압니다. 집안의 병역 비리를 덮기 위해서 그러신 거요.
조현구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잠깐만. 병역 비리? 설마 이 판을 네가 짠 거냐?”
정윤호가 웃으면서 말한다.
-뭐,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하지만 덕분에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될 손자분까지도 감옥에 가시게 되었네요.
“뭐?”
그때, TV에서 중령이 충격적인 말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저희 군이 이번 일을 자체 조사를 하던 중, ‘병역 비리’ 브로커 이준용을 체포했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그 순간, 조현구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야 말았다.
이준용은 조명 일보 집안이 대대로 이용하던 병역 브로커였기 때문이었다.
“정윤호…… 이 새X. 너…… 우리 집안을…… 끝장내려는 거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