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
마음이 이끄는 대로-1화(1/134)
#1 장. 날카로운 첫날밤의 추억
#1.
강이재의 인생은 한 마디로 그러했다.
박복한 인생.
그녀는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랐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곱 살쯤에는 신기 비슷한 게 왔다.
해선 안 될 말을 지껄이곤 하는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간 건 충남에서 이름난 무당인 영산할 매였다.
그녀는 잔심부름이나 시키며 어린 이재를 거둬 먹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강이재의 인생은 그 뒤로도 쭉 재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 중에 한 가지 행운이었던 것이 있다.
이재는 부모가 없어서 그녀를 때린 사람들 중에 적어도 부모는 없었다는 것이다.
‘뭐, 이렇게 생긴 방이 다 있지?’
이재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들이닥친 던컨 공작은 그녀의 따귀를 갈기기 시작했다.
“네가 우리 가문의 거사를 망쳤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없을 수가! 결혼식 전날 물에 뛰어들다니!
매도 맞아 본 놈이 잘 맞는다는 건 순 안 맞아 본 놈들이 고상한 척 지껄이는 거짓말이다.
매를 맞아 본 사람들은 다 안다. 매는 결국 누구나 다 맞기 힘들다.
몸을 움츠리며 여기저기 살피던 이재의 눈길은 문득 자신의 손을 스쳤다.
‘내 손이 이렇게 곱다고?’
그럴 리는 없었다. 산골짜기와 촌구석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한 이재의 손은 이미 현존하는 미용 기술로는 되돌릴 수 없는 상태였다.
깨달음과 함께 갑자기 무수한 기억들이 머리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재는 자신의 머리채를 쥐고 있는 던컨 공작의 손목을 붙잡으며 그를 바라봤다. 떨리는 음성이 었지만,매끄러운 언어였다.
“아버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생전 아끼던 물건에 남기는 감정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불과 며칠 전까지 영혼이 머물렀던 육신에는 오죽할까.
기억은 상당히 불완전했지만, 이재는 남들보다 영감이 몇십 배는 뛰어난 사람이었다.
“네가…… 네가 감히……! 너 때문에 우리 집안은 끝났다! 어떻게 잡은 기회였는데!”
“여보! 진정하세요! 이러다 애 죽겠어요!”
던컨 공작은 집안의 폭군이었고, 공작 부인은 그런 남편의 앞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저런 부모일 바엔 없는 게 낫지.
조금 비뜰어진 생각을 하던 이재는 머리채가 잡힌 채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방을 훌어봤다. 이 몸의 주인이었던 헤일리 던컨의 방이었다.
‘헤일리, 안에 있어요? 저는 원귀 아니에요. ……나갈게요. 도와 줘요.’
대답이 없다. 이재는 노크하듯 명치를 쉼 없이 두드렸지만, 또 다른 기억만 떠오를 뿐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강렬한 건 역시 죽을 때의 기억이었다.
헤일리 던컨은 물가에서 죽었다. 물가에 벗어 놓은 신발이 보였다. 직접 뛰어들었다는 뜻이다.
시간이 이 정도로 흘렀다면 그녀는 이미 수살귀가 되었거나 소멸되었을 것이다.
그사이 이재의 손을 뿌리친 공작은 이번에는 크게 손을 휘둘렀다.
“헤일리! 이 멍청한 것! 내가 이 혼사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이재는 두 팔로 얼굴을 감싸고 몸을 옹크렸다.
저걸 제대로 맞으면 깨자마자 다시 침대에 누워야 한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이 소름 끼치는 침묵에 잠긴 것을 알았다.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달라지고 있었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슬그머니 손을 내리자 보송보송했던 팔뚝의 솜털은 쭈벳쭈벳 돋아있었다.
이재에게는 매우 익숙한 감각.
숨이 막히고 구토가 치미는 기분. 역한 것을 마주한 기분.
이재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을 때, 공작 부인 또한 돌아가지 않는 목을 억지로 돌리는 사람처럼 뻣뻣이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감청색 성장을 한 채 비스듬히 서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공작 부인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폐,폐하.”
던컨 공작 또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그는 낯빛을 굳힌 채로도 제법 침착하게 물었다.
“……폐하께서 예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그러자 벽에 기대 서 있던 남자는 자신의 기사들을 제치고 천천히 걸어왔다.
“진귀한 구경을 다 하는군.”
“………….”
“공작가는 훈육을 이런 방식으로 하나 보지?”
공작이 입을 다물자,그는 조소 하듯 피식 웃었다.
“나가 봐. 나는 내 약혼녀와 단 둘이 할 말이 있다.”
공작이 굳은 낯으로 응시하자, 왕의 입가에 그나마 걸려 있던 미소는 완전히 사라졌다. 몹시 짜증스럽다는 얼굴이었다.
“내 말이 잘 안 들리나? 꺼져라.”
국왕의 기사들이 공작 부부를 방에서 끌어내고, 이재는 뒤늦게나마 침대에서 걸어 나왔다.
자식이 죽겠다고 물에 뛰어들었고,실제로 죽었는데,깨자마자 머리채부터 잡는 부모다.
하지만 저런 부모라도 이 자리에 있어 주는 게 도움이 되는지, 없는 편이 나은지 고아인 이재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자신은 지금 헤일리 던컨이었고,그녀의 정혼자는 눈 앞의 남자였다.
국혼을 앞두고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건 큰 추문이 분명했다.
역시 어딜 가나 박복하고 재수 없는 인생이구나.
이재는 바닥에 깔린 러그 위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온 몸에 이는 오한은 꾹 참았다.
그러나 그는 이재가 떨고 있다는 걸 잘 아는 것 같았다.
“너,왜 이렇게 몸을 떨지?”
곧,턱 밑에 딱딱한 뭔가가 닿았다.
왕이 검집째로 이재의 턱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방금 물었잖아. 왜 이렇게 몸을 떠냐고.”
당신 뒤에 원귀들이 너무 많아서요.
왕의 어깨와 등 뒤에는 본인이 끌고 온 기사들보다 많은 수의 원흔들이 붙어 있었다.
이재는 온갖 일들을 겪어왔지만,저런 건 들어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다.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어서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남자의 눈을 바라보기만 했다. 새파랗고 짙은 눈동자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재가 침묵하자 그 새파란 눈에는 열은 짜증이 깃들었다.
“떨지 마라,헤일리 던컨. 네가 나한테 죽을죄를 진 건 사실이지만, 지금 당장 죽이겠다고 온 건 아니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더…… 떨게 되잖아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인 걸까.
미안하다,헤일리 던컨.
네가 그나마 보존이라도 한 육신은 나 때문에 곧 목이 분리될 거야.
그러나 뜻밖에도 왕은 그 말에 픽 웃었다.
그의 눈빛은 가소롭다는 둣도 보여 이재에게는 저걸 어떻게 죽이지,고민하는 사람같았다.
바닥으로 향하는 고개를 다시 한번 검집으로 들어올린 왕은 말했다.
“어쨌든 떨지 마라. 우선은 이야기를 하러 온 것뿐이니까. 생각해 보니 너와 세 마디 이상은 섞어 본 적이 없는 것 같기에.”
이 기회를 놓치면 정말로 죽을 것 같아서 이재는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였다.
뭔가 심하게 잘 못된 상태로 깨어났지만,이 자리에서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심호흡을 하는 걸 본 그는 이제야 대화가 좀 되겠다고 느꼈는지, 검집 끝을 아래로 떨어 뜨렸다.
“너,이 결혼이 그 정도로 싫었던 건가? 목숨을 끊을 만큼?”
“………”
“이 결혼은 너희 던컨가에서 먼저 제안했던 것이 아닌가.”
이재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저 남자는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긴 했다.
이재는 그걸 남들보다도 훨씬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추궁당해도 할 말은 없었다. 오히려 억울할 지경이었다.
“헤일리 던컨. 네 아비가 그런 것까지 가르쳐 주지 않은 모양이지만,나는 여러 번 묻는 걸 많이 싫어해. 대답해라.”
결국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 는 최선의 답안을 말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싫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하지만 왕의 그린 듯한 미소는 말하고 있다. 거짓말.
안 믿는다는 뜻이었다. 그는 빈 정거리둣,그렇지만 예리한 말투 로 물었다.
“그럼 다른 남자를 잊을 수 없었다던가?”
“………”
나는 남자가…… 아,해일리 던컨은 다른 남자가 있구나. 그래, 있다.
인생의 대부분을 외롭게 살아온 이재는 억울한 심정이 배가 되어 또 한 번 입을 다물고 말았다.
국왕은 그 침묵을 다른 의미로 이해한 것 같았다.
“네가 마음속에 어떤 사내를 품고 있든 나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사실은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귀찮다는 얼굴이었다.
검집 끝으로 값비싼 러그를 딱, 딱 찍으며 왕이 말했다.
“네 순정을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나는 역사에 이 이상 불길한 왕으로 기록될 수 없다. 그러니 너는 네가 살고 싶은 것보다는 오래 살아야한다 는 게 내 판단이다.”
“………”
“그런데도 네가 꼭 죽어야만 하겠다면……”
그는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헤일리 던컨. 왕관을 쓰고 죽어라.”
왕의 말은 상징적이었다.
이재는 문득 사위가 고요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착각이 아니었다.
그의 뒤에서 입을 쭉 찢고 있는 창백한 영혼도 고개를 내밀고 이재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번엔 진짜 제대로 봐 버렸어.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 이재는 속으로 윽,하며 고개를 다시 숙였다.
“거절할 거라면 지금뿐이다. 너 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도 오늘뿐이니까. 잘 알겠지만, 나는 지금 너를 굉장히 봐주고 있어.”
무척이나 망설이던 이재는 자신 의 옷자락을 꼭 쥐고 고개를 들었다.
이 상황이 당혹스럽고 두려웠지만, 그녀는 그래도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감히 한 가지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계속해서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던 이재가 조용히 입을 열자,그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대답은 의외로 선선했다.
“어,해 봐.”
“제가 거절하면 그땐……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그는 친절하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성혼이 미뤄진 건 신부가 지독한 독감에 걸렸기 때문이다. 네가 거절하면 넌 독감이 아니라 죽을 병에 걸린 게 되겠지.”
“………”
“그리고 죽을병에 걸렸으면…… 뭐,죽어야겠지.”
그는 피식 웃었다.
이재는 두려움보다 더 큰 황당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무슨 선택지가 이렇게까지……”
……불공평한가요.
이재는 끝말을 삼켰지만,눈을 접고 웃고 있는 국왕은 그녀가 삼킨 말 또한 무엇인지 아는 둣 했다.
그는 굉장히 태연하게 널 죽일거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결국 왕은 선택지를 주러 온 게 아니라 그냥 통보와 협박을 하러온 거였다.
“충분한 설명이 됐으면 이제는 네가 답할 차례다,헤일리 던컨.”
“………”
“다시 또 물에 뛰어들 건가?”
깨어난 지 하루 만에 연달아 겪는 일들 때문에 그녀의 마음은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 한 대답은 명확했다.
강이재는 그런 일을 몸소 실천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확답했다.
“저는 제 목숨을 끊지 않아요. 절대로요. 적어도 폐하 말씀처럼 왕관을 쓰기 전까지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그것만큼은 약속드리겠습니다.”
왕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믿어 보도록 하지.”
그러나 그는 말과 달리 크게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상식적으 로 생각해도 그랬다. 잊그제 물에 뛰어들었다가 오늘 깨어난 사람 이 이런 말을 한다고 믿어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번에는 이재의 표정이 대변하고 있었다.
지금 거짓말하신 거죠.
티를 내려는 마음은 아니었는데,왕에게는 그 또한 전해진 모양이었다.
그는 별거 아니라는 둣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정혼자의 실수를 눈감아 주는 것 정도로 하지.”
그리고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자신의 기사들에게 말했다.
“공작 부부를 불러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