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07)
마음이 이끄는 대로-107화(107/134)
#107.
이재는 호숫가에 앉아 활시위를 통,통 튕기고 있었다.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소년왕을 기다렸으나,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새 나무에서 내려온 다람쥐만이 우리 같이 놀자며 그녀의 머리 위로 올라와 앉았다.
이재는 몽실몽실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는 다람쥐를 잡아서 어깨 위에 얹어 놓았다. 그러고는 공연히 말을 붙여 보았다.
“역시 돌팔이는 나였어. 그렇지, 다람쥐야?”
최근 며칠간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점괘가 애매하게 나왔던 이유를 깨달았다.
‘살을 날리고 있는 곳은 서부 국경,다이몬 재건군 진영. 저는 거기에 걸어 보겠습니다.’
살은 서부 국경에서 날아온 적이 있지만,그게 전부가 아닌 것이다. 일리아스는 다이몬 측이지만, 왕제를 생각하면 그것도 전부 가 아닌 것이다.
반쪽짜리 질문을 하니 반쪽짜리 답이 나을 수밖에.
질문을 명확하게 하는 것도 결 국 무속인의 실력이었다.
“다람쥐야. 세상에는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이 일정하게 있기 마련이랬어. 질량 보존의 법칙 같은 거지.”
다람쥐가 정수리로 또 올라오자 이재는 다시 잡아서 어깨에 툭, 얹어 놓았다. 얼마나 자주 올라오는지 숙달되다 못해 무심한 손놀림이었다.
다람쥐는 그걸 놀이라고 인식한 둣했다.
“근데 말이야. 여기에도 이상한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되는데, 만약에 없잖아? 그럼 그게 나일 수도 있다는 거야. 분명히 이 세계에도 돌팔이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잖아? 그럼 그 돌팔이는 나였던 거야.”
그러니까 사람은 늘 인생을 겸 허한 자세로 살아야 돼.
잘못이 나한테 있는 건 아닌가, 자신을 돌아보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을 마친 이재가 초점 없는 눈동자로 호숫가를 바라보고 있 을 때였다.
다람쥐는 갑자기 그녀의 몸에서 내려오더니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어느새 소년왕이 특유의 기운을 뽐내며 그녀 눈앞에 둥둥 떠 있었다.
이재는 다람쥐가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바라보다가 소년왕에게 핀잔을 주었다.
“왜 매번 다람쥐 기를 죽이고 그러세요.”
-넌 귀신하고 대화하는 걸로는 부족하냐?
“당신이 늦게 와서 그런 거잖아요.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아세요?”
“………”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것보다 다람쥐랑 대화하는 쪽이 낫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이재는 오늘도 공손하게 꼬박꼬박 말대꾸를 했다.
그러나 소년왕은 혀를 찼다. 그 녀가 또 죽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는 벼르고 있었다는 둣 소년왕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핏줄이라고 다 진한 건 아닌가 봐요. 왕제는 대체 왜 그러는 걸 까요?”
이재는 소년왕에게 차마 ‘왜 그런 후손을 두셨어요?’라고 따지진 못하고 돌려 말했다. 분명히 숨은 의미를 알아들었을 텐데,소년왕은 그다지 불쾌한 기색이 아니었다.
-뭘 왜 그래. 너나 로더릭이랑 생각하는 게 다른가 보지.
“그러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건 데요.”
-질 게 뻔한 싸움을 해서 왕족의 씨를 말리느니,다이몬 독립을 보장하고 영토 일부를 내어 주겠다,뭐,이런 생각 아니겠어?
이재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 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속상하고 서운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넌 사실 잘 알잖아. 인간이 왜 그러는지.
누구나 패자의 편에 서고 싶지 는 않은 것이다.
가시밭길을 걷기 싫어하는 마음도 똑같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상황에 직면하니 억울한 마음이 생기고 만다.
모두가 그런 식이라면 삼 년간 그 지독한 밤을 참고 버텨온 국왕은 뭐가 되는 걸까.
질 게 뻔하다는 예언을 듣고도 흔들림이 없는 그 사람은 뭐가 되는 거냐고.
그녀는 순간적으로 무속인답지 않은 말을 중얼거리고 말았다.
사실은 무속인의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었으나,그녀는 왕을 만난 이후로는 계속 그랬다.
지난 생에서는 억누르기만 했던 자신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해 보지도 않고,어떻게 그렇 게 쉽게……”
그러나 소년왕은 다소 냉소적인 얼굴로 픽 웃었다.
-강이재. 세상엔 원래 이런 인간도 있고,저런 인간도 있는 거 아닌가? 왕제는 더 많은 희생을 막는 게 당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다.
“지금 후손이라고 그쪽까지 골고루 편드시는 건가요?”
우리 일관성 있는 가재가 되기로 해요.
“당신이 세운 나라잖아요. 속상 하지도 않으세요?”
“그리고 엄청 대단한 분이시잖 아요. 전쟁을 삼 년이나 하셨으면 사후 처리도 잘해 주셨어야죠! 이게 뭐예요!”
-뭐?
이재가 속상한 나머지 급발진을 하자,소년왕은 기가 막힌 듯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서 멈 추지 않았다.
“다른 선대왕들도 말이에요? 이 일에 책임이 아예 없진 않아요. 왜 그걸 폐하 혼자 업보처럼 받아야 하죠?”
멜런가와 러셀가가 반역을 꾀한 것은 능력이 쇠퇴한 후,입지에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멸문으로 죄의 대가를 치렀지만, 그 결과는 오랜 시간 돌고 돌아 결국 왕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전인후과.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
그게 바로 무서운 인과율의 고리였다.
하지만 오백 년 묵은 수호귀는 그런 감정적인 호소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으쑥해 보일 뿐이었다.
혼자 울컥울컥하던 이재는 결국 시무룩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는 한동안 활 끝으로 흙바 닥에 낙서를 했다. 그러다가 소년 왕을 다시 힐끔 바라보았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재는 활을 내려놓고, 금세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본인이 아쉽거나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쓰는 서두를 꺼냈다.
“저기,근데요.”
소년왕은 진짜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었고,그녀는 민망해하면서 도 배시시 웃었다.
-또 뭔데. 정드니까 웃진 말고 그냥 말해.
“갖고 계신 검이요. 그게 성검이죠?”
이재는 소년왕이 검집에서 검을 한 뱀 만큼만 뽑아도 섬광이 번쩍이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근데 그거 그냥 사념체잖아요. 실물은 어디에 있나요?”
소년왕은 뭐,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표정이었다.
-왕실 보물 창고에 있겠지.
“그래요?”
-응. 노엘, 개가 5대 왕이었냐,6 대 왕이었냐?
이재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5대 왕이요.”
매일 밤 잘생긴 리더기와 함께 역사 공부를 한 보람이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왕실 계보를 꿰고 있었다.
-그랬나? 뭐,아무튼 노엘까지 쓰고 왕실 보고에 아주 잘 처박혀 있을 거다.
그건 5대 왕 사후, 성검을 다룰 수 있는 왕이 더 이상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는 다른 부분이 영 신경 쓰여서 인상을 찡그렸다.
“그 얼굴로 사백 년 전 사람을 손자 부르듯이 하니까 조금 징그럽긴 하네요.”
-나 같은 동안이 영원히 안고 가야 할 숙제인 거지.
이재는 우웩,이라고 해 주고 싶었지만,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납작 엎드렸다.
“그 검이요. 나중에라도 폐하가 좀 쓰면 안 될까요?”
이재는 신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 무속인의 팔자를 강하게 업고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녀는 다섯 개 가문의 능력을 조금씩은 다 가지고 있었다.
초혼 의식,즉 소환도 어느 정 도는 할 수 있었고,부적으로 결계도 칠 줄 알았다.
제일 취약한 분야였지만 진을 해체해 본 경험이 있었고, 퇴마는 그녀가 그나마 소질 있는 영역이었다.
관상을 볼 줄 알았으며,활로 점을 칠 수도 있었다.
가끔은 직감처럼 남의 미래가 스쳐 지나가곤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능력은 한 줌도 아니고,다 손톱만큼씩이었다.
어디 갖다 대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능력이라는 뜻이다.
이재는 일리아스가 소환하는 악귀가 자신이 상대하기엔 버겁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게 능력의 전부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왕에게 여기서 더 큰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지만,좋은 무기가 있으면 상황이 좀 나아지지 않을 까.
근데 오백 년 된 검이 상태가 괜찮은 걸까?
그 정도면 고대 유물 수준 아닌가?
그녀는 지금 자신의 무구도 부족하면서 남편의 무기를 걱정하 고 있었다.
소년왕은 이재가 눈치를 보며 부탁하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껏 갖다 써라. 어차피 왕실 보물은 다 현 국왕 거야. 로더릭이 쓰고 싶으면 쓰는 거지,그 걸 왜 나한테 물어봐.
“그래도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재는 원래 주인이 눈앞에 있 으니 기왕이면 허락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유서 깊은 물건은 함부로 건드리면 화를 입으니까.
그녀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으나, 소년왕은 갑자기 그녀에게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자 이재 는 흠칫하며 상체를 뒤로 됐다.
“왜,왜 이래요. 지금 굉장히 부담스러워요.”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요.”
“제가 오늘 속상한 마음에 너무 기어올랐다면 사죄드릴게요. ”
소년왕은 재미있다는 둣 웃음을 홀릴 뿐이었다.
그 순간 국왕과 비슷한 푸른 눈동자가 반짝였다. 왕처럼 장난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마치 중대한 비밀을 속삭이려는 것처럼.
-강이재,근데 말이야.
“네?”
-넌 그게 정말 성검인 것 같아?
“……무슨 뜻이에요?”
이재는 그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소년왕은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