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09)
마음이 이끄는 대로-109화(109/134)
#109.
보도르국 사절과의 환담이 끝나고, 몇몇 사람은 회담장에 그대로 남았다.
국왕과 제이드,남부군 대장,다이몬 토벌군을 지휘할 서부군 부대장이었다.
군사 회의는 본래 내일로 예정 되어 있었다.
그러나 회담이 생각 보다 훨씬 빠르게 끝났기 때문에 왕은 간략한 보고를 받기로 했다.
서부군 부대장이 먼저 입을 뗐다.
“폐하,서부군에서 추정하기로 재건군의 병력은 일 만 내외입니다. 처음 세를 이룰 때는 오천에 불과했으나, 최근 용병을 지속적으로 모집하고 있습니다.”
“………….”
“그렇지만 여전히 전면전을 펼칠 정도는 못 돼서,산발적인 전투만 벌이고 있습니다.”
국왕이 턱을 매만지자,이번에는 남부군 대장이 입을 열었다.
“폐하,남부 국경을 방비하고 있는 병사들의 수가 총 사 만입 니다. 저희 쪽에서도 일 만을 추리면 되겠습니까?”
“………….”
“군영 내에서 싸우는 것과 출정을 하는 건 전혀 다릅니다. 그 숫자로는 완승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부대장,그 이상은 이쪽도 너 무 큰 부담이오. 보도르와 화평을 맺었다고는 하지만,대륙 남부에는 보도르만 있는 게 아니지 않소?”
남부군 대장과 서부군 부대장은 각자의 상황 때문에 언쟁을 벌였다.
양측 다 일리가 있었기에 국왕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은 한동안 왕의 입이 열 리기만을 기다렸다.
로더릭은 이 내 고개를 끄덕였다.
“토벌군 구성은 남부에서 일 만, 서부 군영에서 오천,거기에 중앙군 오천을 더하는 걸로 하지. 대신 남부군은 보도르랑 긴밀하게 관계 유지하고. 어쨌든 가장 인접한 국가 아닌가.”
“예,폐하. 알겠습니다.”
남부군 대장은 고개를 숙였으나,서부군 부대장은 여전히 할 말이 남은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그는 이번에 토벌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서 전공을 세우고싶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병력 우위를 욕심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부대장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던 로더릭은 픽, 웃었다.
그리고 생각한 바를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들 기사단장한테 대충 들었겠지. 그쪽의 머리는 왕제와 오래 전 대륙에서 자취를 감췄던 일리아스 가문의 후예다. 추정이지만…… 아직 카이엔에 있다.”
“………….”
“상대는 사람을 미혹하고 이성을 잃게 만드는 사술을 쓴다. 그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몰라. 서부군 부대장은 군영에서 여러 차례 봤으니,내 말뜻 대충 알 거야.”
“예,폐하. 잘 알고 있습니다.”
국경에서 기이한 일을 자주 겪었던 부대장은 고개까지 주억거리며 답했다. 로더릭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비스듬히 등을 기댔다.
“나와 왕후의 생각은 그래. 상대는 애초에 전면전으론 승부를 볼 생각이 없었다. 세를 불리기엔 너무 부족한 시간이 아니었겠나.”
“………….”
“그쪽 목표는 나와 블레어크 왕가다.”
“………….”
“왕을 죽여서 카이엔에 내전이 일어나길 기다리거나,역시 왕을 죽여서 자신들과 말이 통하는 차기 왕이 옹립되길 기다리거나 그런 거겠지.”
“..폐하.”
몹시 불경한 이야기였다.
하나 그걸 본인 입으로 직접 하고있는 국왕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태도였다.
제이드는 염려가 되어 왕을 불렸으나,왕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근데 난 그걸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그다지 없거든.”
“………….”
“절대 들어줘선 안 되는 게 아니겠나?”
로더릭은 확고하게 말한 뒤,회장 안에 있는 이들과 시선을 하나하나 마주쳤다. 그는 침착하고 맑은 눈동자를 하고는 말했다.
“그 사술을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왕후다.”
“그 말은 왕후가 없다면 이 전쟁은 숭산도 없고,사실 우리는 적조차 특정할 수 없었다는 거다.”
국왕이 이 말을 하는 목적은 하나였다.
우리 쪽 핵심 전력은 왕후라는 거였다.
그러니 너희가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사람도 왕후라는 걸 의미했다.
“1기사단장이 할 일은 계속해서 왕제 일행을 추적하는 거다. 은거지를 찾으면, 중앙군과 2, 3 기사단은 후방에 남아 왕후를 비호한다.”
“………”
“그리고 나와 1기사단이 전방에서 상대의 머리를 칠 생각이다.”
왕은 이번에는 서부군 부대장을 바라보았다.
“토벌군에서 그때까지 해야 할 건 상대의 머리가 왕가와 카이엔 영토 내에서 분탕질을 치지 못하게 다이몬 본대를 계속 들쑤셔 놓는 거야.”
“예.”
“물론 완전히 토벌한다면야 더 바랄 게 없겠지만,지금까지 재건 군이 본거지를 옮겨 다닐 수 있었던 건 일리아스의 능력과도 관계가 있을 거다.”
“………….”
“그러니 양쪽에서 최대한 정신 사납게 만들라는 뜻이다.”
제이드와 군부 인물들은 비로소 왕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확인한 왕은 마지막 당부를 했다.
“왕후 말에 의하면 특히 위험한 건 밤이고…… 혼자서 싸워선 안 된다고 했다.”
“예,명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왕은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느새 뉘엿뉘엿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국왕이 생각보다 훨씬 긴 회의 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이재는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로더릭은 걸어오다 말고,그쪽을 힐긋 바라보았다.
“뭐 해?”
이재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오셨어요? 무기를 만드는 중이예요”
그녀도 본인 나름의 전투태세를 갖추는 중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부적이 높이 쌓여 있었다.
거기에 깎다 만 새 팔찌와 조각상까지 발견한 로더릭은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정신 수양이라더니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왜 또 심술이에요. 물론 수양도 맞아요.”
이재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고는 덧붙였다.
“이번엔 좀 많이 써서 다른 기사들한테도 나눠 주려고요.”
“다른 기사 누구.”
“제이드나 폐하랑 같이 다니는 기사들이요.”
“제이드?”
“네,악의는 사람을 가리지 않거든요. 전염성이 있어서 주변 사람한테 옮겨 가기도 해요. 혹시 더 줄 사람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
상대도 신은 아니기 때문에 힘 에는 한계가 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노리는 건 당연히 국왕일 것이다.
그러나 국왕은 요즘 기가 너무 강해진 탓에 원귀들을 퉁겨 내곤 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피를 볼 위험이 상당했던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로더릭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침대에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이재는 부적을 쓰다 말고,그가 팔뚝으로 눈을 가린 모습을 바라 보았다.
창밖은 어느새 어둑어둑했다.
분명 일찍 끝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뭐가 잘 안 된 건가?
걱정이 됐던 그녀는 필기구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침대가로 다가간 이재는 한참이 나 그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구석에 조심스레 걸터앉으며 물었다.
“폐하,계약서는 잘 읽어 보고 서명하셨나요?”
“뭐?”
“또 구두 계약 하면서 봐주고 오신 거 아니죠?”
“얘 또 까불거리네.”
푸른 눈은 가리고 있는 탓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가 웃으니 신체 주변을 감싸고 있는 기도 한결 활발해진다.
“그냥 일이 잘 안 되셨나 걱정돼서 물어봤어요.”
“그런 거 아니야. 하다 보니 다른 회의가 좀 길어졌어. 토벌군 편성 문제 때문에.”
그랬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그의 팔뚝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힘줄이 돋아 있는 팔뚝은 언제나처럼 굳세기만 했다.
그렇지만 이재는 그가 져야 할 무게 또한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안다.
“폐하.”
“………….”
“제가 무릎베개 해 드릴까요?”
그러자 로더릭의 입꼬리는 아까 보다 더욱 보기 좋게 올라갔다.
입술 새로 낮은 웃음소리 또한 흘러나왔다.
“웬일이실까. 낮에는 별 희한한 걸로 사람 서운하게 만들더니.”
“낮에요? 제가 뭘 어쨌는데요?”
“그런 게 있어. 나도 잘 모르니까 묻지 마라.”
이재는 무슨 소리지,싶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가 린 그의 손을 잡고 아래로 내려 놓았다.
“그냥 고단할 것 같아서 그래요.”
“……그래 보여?”
로더릭은 딱히 피곤한 건 아니 었다.
그렇지만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칠세라 턱짓을 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재가 침대로 완전히 올라와서 다리를 펴고 앉자, 그는 허벅지 위에 머리를 얹어 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배에 여러 번 얼굴을 비볐다.
뒤로 밀려날 뻔한 이재는 간신히 상체를 세우며 물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우는 중이야. 너무 오랜만에 베는 베개라 눈물을 참을 수가 없네.”
“………”
“좀 달래 보든가.”
이재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입술 끝을 매만지던 그녀는 허리를 끌어안은 손을 떼어 냈다.
그러고는 그의 어깨를 바로 눕혔다.
얼결에 밀쳐진 로더릭은 조금 의아한 얼굴이었다.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이재는 짙은 눈썹 사이를 한 번 눌러 보았다.
그리고 양쪽 관자놀이도 꾹 늘러 보았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혈도를 만지기 시작하자,이번에는 그의 눈동자, 입술,음성, 모든 것이 한꺼번에 웃었다.
“기분 좋으세요?”
“어,더 만져 줘. 근데 이건 정확히 왜 좋은 걸까?”
중요한 게 지나가는 자리라 그랬지만,이재는 농담조로 답했다.
그가 자세한 설명을 바라는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내 잔재주.”
로더릭은 불분명한 소리를 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푸른 눈동자 는 어느새 눈꺼풀 아래로 사라져 버렸고,그는 그녀의 다정한 손길 을 말없이 느끼고만 있었다.
이재는 이대로 국왕이 스르록 잠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입술 새로는 또 한 번 낮은 웃음소리가 홀러나왔다.
사라졌던 푸른 눈동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부인. 부인은 참 신기한 사람이야.”
“뭐가요.”
“넌 내가 힘든 것 같으면,꼭 이렇게 다가오잖아. 부인은 확실히 귀엽고 연약한 남자를 좋아하나 봐.”
“그런 건 아니고요.”
늘 하는 농담으로 이해한 그녀 는 미소를 지었으나,로더릭은 고개를 저었다.
“넌 사실 처음부터 내가 안쓰러워서 나한테 와 준 거지. 갑자기 차를 청해 온 것도, 다쳤을 때 찾아온 것도.”
“………”
“내가 무너질 뻔할 때마다 넌 항상 달려와서 내 옆에 있었어. 한 번도 빠짐없이.”
이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눈을 내리깐 채 그의 말을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로더릭은 어느새 얼굴 위에서 옴직임을 멈춘 손가락을 그러쥐었다.
“이재.”
“네.”
“나는 허세 같은 건,정말 가진 게 없는 한심한 놈들이나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
“그래서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떠들든 사실 별로 신경 안 썼어. 폭군이라고 하든 미치광이라고 하든 상대할 가치 같은 것도 못 느꼈고,네가 내가 안쓰러워서 곁 에 온 거라면 그건 그거대로 괜 찮았어.”
그는 본인이 말하고도 우스웠는 지 피식 웃었다.
“근데 나도 결국엔 똑같은 사내 새끼였나 봐.”
“………”
“이젠 네가 이런 식으로 나를 걱정할 때마다, 너한테만큼은 잘 난 남자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
“………”
“우리 현명하신 부인께서는 내 말뜻을 좀 아나?”
웃음기를 머금은 푸른 눈동자는 소년처럼 반짝거렸다.
이재는 그 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왕은 자신 있으니,혹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싶은 듯했다.
그래서 그녀도 어떤 말을 해 줘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알았으니 힘을 내라고 말해야 할까.
이재는 사실 그 말이 형식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건 우리가 지지를 표명하고 싶지만,가진 단어가 부족할 때 쓰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참다가 터지는 마음처럼 사랑한 다는 말을 해 볼까. 아니면 아이 처럼 순수한 좋아한다는 말을 해 줄까.
골똘히 생각하던 이재는 목소리에 기를 실었다.
“폐하,우리는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그만 자요.”
“너도 와서 자라.”
그는 고개를 살짝 들었지만, 이재는 다시 이마를 내리눌렀다.
“전 폐하 자는 거 보고 잘게요.”
로더릭은 픽,웃었다.
사실 그 는 그녀를 품에 넣고 자고 싶었지만,그냥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재는 고른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의 머리칼을 어루만지고, 틈틈이 기를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