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1)
마음이 이끄는 대로-11화(11/134)
#11.
국왕이 사냥터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 뒤,이번에는 왕후가 몸져 누웠다.
본인 스스로 파훼한 방 안의 결계를 복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이재는 처음보다 훨씬 심혈을 기울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 안이 위험하고 알 수 없는 곳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처음보다 훨씬 심하게 앓았다.
그리고 던컨 공작과 귀족들은 그 문제를 어김없이 물고 늘어졌다.
“공작가에 어릴 때부터 왕후 폐하를 보살피던 일손들이 많습니다. 모시게 해 주십시오. 왕후 폐하도 친근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로더릭은 무심한 얼굴로 귀족들의 표정을 살폈다.
친왕파 귀족들은 당연히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상당수의 귀족들은 이 기 싸움을 홍미진진한 표정으로 보고있다. 즐거움까지 담겨있는 얼굴이었다.
“그 문제는 왕후의 의사가 제일 중요할 것 같군.”
“제 여식은 원래 그런 요청을 직접적으로 하지 못하는 성품입니다.”
“헤일리는 네 여식이기 이전에 카이엔 왕후다. 공적인 자리에서 는 호칭에 좀 더 신경 썼으면 좋겠군,던컨 공작.”
왕이 지적하자,공작은 입을 다물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제가 왕후 폐하를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렇습니다. 어릴 때부터 너무 귀애한지라…….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폐하.”
국왕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아아,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딸이라서……”
그대는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았나?
로더릭은 분명 그렇게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건 왕후의 명예와 직결되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던컨가와 최근 사이좋게 한 방 씩 주고받아 온 왕은 평소라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내키지 않아서 로더릭은 침묵했다.
이런 싸움에 능한 이리 떼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폐하,그럼 제가 왕후 폐하를 직접 뵙고 그 의향을 여쭐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게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로더릭은 말을 보탠 귀족의 얼굴을 흘긋 확인했다.
그러자 그는 움찔했지만,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는 눈치이던 왕은 고개를 끄덕 였다.
“접견의 기회는 열려 있지 않은가. 그걸 왜 나에게 묻는지 모르겠군.”
“폐하!”
다급한 외침은 국왕 측 귀족에게서 나왔다.
공작의 야심과 헤일리 던컨의 여린 성품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이었다. 그녀는 좋게 말하면 순진무구했고,나쁘게 말하면 아버지에게 순종적이었다.
변변찮은 반항 한번 해 보지 못한 헤일리가 살면서 유일하게 한 반항이 국혼 전날 벌인 소동이라는 건 아버지인 던컨 공작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던컨 공작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던 로더릭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귀족들이 고개를 숙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긴 회의는 끝났다.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왕을 뒤따르던 제이드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져 주신 겁니까?!”
“글쎄.”
“이럴 바엔 차라리 칼부림을 하십시오!”
머릿속이 사나울 때면 알아서 공식 일정을 자제해 온 로더릭은 그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차분한 눈으로 제이드에게 경고했다.
“네가 아무리 내 친우여도…… 보는 눈이 있을 때는 그 헛바닥을 적당히 조심하도록 해.”
“……예,폐하.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그러나 로더릭은 경고의 의미였을 뿐 딱히 불쾌한 건 아닌 듯했다.
그 중거로 그는 자신의 친우에게 툭, 내뱉었다.
“너,일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예?”
“헤일리 던컨에 대해 네가 올린 그 보고 말이다.”
기사단장은 다시 한번 ‘예?’ 하고 되물었지만, 로더릭은 답이 없었다.
그의 발걸음이 향하고 있는 곳이 왕후의 처소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둘씩 불안한 얼굴을 했다.
던컨 공작은 오늘 국왕의 심기를 사정없이 긁었고, 이 같은 때 왕후에 대한 그의 감정이 좋을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던 이재는 방문이 열리고 로더릭이 들어오는 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로더릭은 인상을 한 번 찌푸렸지만,그녀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신명 나게 튕겨 나가는 원혼 셋이었다.
아,이번 결계는 정말이지 홀륭해.
서당 개도 옆에서 십 년 이상 보고 들으면 사람이 되긴 되는군요.
할매는 이 업계의 톱티어였음이 분명해요.
혼자 감회에 젖어 있던 그녀는 뒤늦게 자신이 계속 누워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재가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로더릭은 검지로 그녀의 이마를 툭 밀었다. 그리고 의자를 쭉 끌어와 그녀 근처에 앉았다.
다소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
“너,몸이 그렇게 약해?”
“네?”
“복수하는 건가?”
“……무슨 말씀 하시는지 잘 모 르겠어요.”
“그날 내가 널 귀찮게 했다고 복수라도 하고 있는 거냐고.”
이재는 그제야 무슨 뜻인지를 이해했다. 물론 귀찮은 짓이었고 그것 때문에 몸져누운 것도 사실 이었다. 하지만 그가 시켜서 한 일은 아니었다.
이재는 난처한 기분으로 고개를 저었고,왕후의 곤란한 얼굴을 본 로더릭은 한숨을 쉬었다.
“네 아비가 공작가에서 사람을 보내겠다고 미쳐 날뛰고 있다.”
심각한 화제였지만 이재는 자신도 모르게 풋, 웃고 말았다. 절대 웃어서는 안 되는 화제에 그녀가 웃어 버리자 로더릭도 기가 막힌 둣 웃었다.
“네가 그런 말에 웃어 버리면 내가 너무 옹졸한 놈이 되잖나.”
이재가 표정을 수습하는 걸 빤히 보고 있던 로더릭은 물었다.
“붙여 줘?”
“………”
“그 사람들 붙여 줄까 묻잖아.”
국왕이 또 해서는 안 될 말을 해 버리자, 제이드는 그를 소리내어 부를 뻔했다.
그러나 로더릭은 왕후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올곧은 시선으로 로더릭을 바라 보던 이재는 눈꼬리를 살짝 접었다.
의미를 가늠하기가 힘든 미소였다.
“폐하는 저한테 또 선택권을 주시네요.”
“그래.”
“왜 그러시는 거예요?”
“글쎄. 모르겠군.”
사실은 이유가 있는 행동이었다. 왕후의 반응을 살피고 떠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던 이재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은 참 달콤한 거야.
“다시 한번 편지를 써서 보낼게요.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하게.”
그러자 로더릭은 고개를 돌려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역시 무언가를 묻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왕이 느끼는 이 미묘한 지점을 다른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혹시 공작의 또 다른 계획일까. 저 여자는 대체 무슨 속셈일까.
로더릭은 깊은 의심이 깃든 눈으로 이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미묘한 기분이 무엇 때문인지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었던 그는 한숨을 쉬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협탁 위에 있는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미처 완성하지 못한 천하대장군 이었다.
긴 원형 기둥에 끝이 뭉툭한 나무 조각을 본 왕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형태가 신체의 특정 부위를 무척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확인한 시녀들은 모두 망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들 머릿속이 말도 못하게 썩어 있었다.
아니겠지,생각하면서도 그는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지금 나한테 시위하는 건가?”
그들은 실질적인 부부관계를 맺은 적이 없는 그냥 법적인 부부였다.
그들이 국왕 부처이기 때문에 계속 이럴 수는 없겠지만 정략혼을 한 부부들 중에는 딱히 드문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왕후는 당당하게 답했다.
“시위요? 저건 그냥 제 취미 생활인데요.”
“………”
“이 팔찌도 제가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저 조각도 다시 주시면 안 돼요?”
“……뭐?”
“폐하가 가져가신 거 아닌가요? 저 보기보다 칼 잘 만져요.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좀 주세요.”
로더릭의 표정이 썩 좋지 않자, 눈치를 보던 이재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더 깎아야 되는데.”
“……이것보다 작아야 한다고?”
“네?”
“보통은 큰 쪽을 더 선호…… 됐다.”
내가 지금 저 유순한 얼굴을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러나 마른세수를 하던 로더릭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이재는 말했다.
“크다고 무조건 센 건 아닌데.”
“……그것도 맞긴 한데.”
내 건 좀 커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확인한 왕은 자신만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니라는 것에 다소 안도 했다.
“뭔진 잘 모르겠는데, 흉하니까 안 보이는 데 좀 치워 놔.”
저건 예쁘라고 놓는 게 아닌데. 그리고 흉하지 않은데.
하지만 이재는 우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국왕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자리를 지켰다.
그는 생각에 잠겼는데, 자신이 느끼는 이 이상한 기분의 정체를 추적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로더릭이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사람들은 모두 황당하단 얼굴을 했다.
국왕의 불면증은 하루 이틀 이어진 게 아니었다.
불면증에 좋다는 약을 수도 없이 먹었고,위험을 감수하고 침실 주변의 호위조를 물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왕후 폐하는 몸에 수면초를 발랐나. 벌써 이게 몇 번째야?
던컨가에 내려오는 야사가 진짜 인가?
이재 역시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입 모양만으로 제이드에게 물었다.
깨우는 편이 낫겠지?
자세가 너무 불편한 나머지 고꾸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국왕의 사람들은 모두 저렇게라도 자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지만, 이재는 누가 말리기도 전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그는 그 음성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재가 조심스럽게 무릎을 건드리자 금세 눈을 떴다.
로더릭이 눈을 깜빡깜빡하자,그의 푸른 눈동자는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남들 같으면 자다 일어나도 흐트러짐이 없는 그의 외모에 감탄했을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재는 또 그녀만의 독특한 감상에 젖었다.
‘아아, 지금 보니 초년에 살짝 굴곡이 있구나. 잘생긴 이마이긴 한데…. 하지만 지류는 언젠가 본류와 만나며 절대로 주류를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다. 당신은 코랑 턱이 너무 좋아. 말년으로 갈수록 더 좋아지는 관상이야.’
로더릭은 앉은 채로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분명 방금 전까지 중요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는데,자신이 졸았다는 게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도 사람이었다. 모처럼 찾아온 수면 욕구가 달콤했다.
이럴 때 쉬어 주지 못하면 또 한동안 지독한 불면에 시달릴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재에게 말했다.
“헤일리 던컨. 옆으로 좀 가 봐.”
그러자 왕의 시종들과 왕후의 시녀들은 어어? 하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슬금슬금 방 안을 빠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