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12)
마음이 이끄는 대로-112화(112/134)
#112.
눈부신 승리를 거두었지만,성 안 분위기는 다소 싸늘했다.
아까 부터 국왕이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붕대를 감은 이재의 손을 바라봤다가, 외면하기를 반복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붕대에서 계속 핏물이 배어 나오자 시종들을 노려보았다.
“의원 언제 와.”
“저,방금 부르러 갔습니다.”
“그러니까 언제 오냐고 묻…”
순간 욱하려던 로더릭은 한 차 례 인내했다.
이재가 그의 손목을 가만히 잡았기 때문이다.
로더릭은 한숨을 후우,쉬고는 시종들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의원이 언제 오는지 나한테도 좀 알려 줄래?”
예지자도 아닌데 그런 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시종들이 우물쭈물하자,데보라는 그 꼴을 보며 참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왕후궁에선 이미 한참 전에 의원을 부르기 위해 사람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재가 손을 찌 른 순간 바로 음직였다.
데보라는 이렇게 눈치 없는 인간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게 늘 창피하기만 했다. 그녀는 결국 시종장을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폐하.”
“뭐.”
“왕후궁에서 한참 전에 사람을 보냈으니 금방 올 것입니다.”
순간 표정 관리에 실패한 시종장이 데보라를 쏘아보았으나,그녀는 언제나처럼 도도하기만 했다.
국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마를 매만졌다.
그리고 몇 번째일지 모 를 한숨을 푸욱 쉬었다.
“하아.”
“폐하,왜 자꾸 한숨을 쉬고 그 러세요.”
이재가 속없는 사람처럼 웃으며 묻자,로더릭은 잠시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정말 돌아 버리겠다는 얼굴이었다.
“너,네가 지금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한 건지 알기나 해?”
“손톱만큼 찔린 건데 뭐가 위험 해요.”
“그런 것만 위험하다는 게 아니다. 자상은 피가 멎어도 살이 썩는 경우가 간혹 있단 말이다.”
“폐하,그럴 때는 독한 술을 부어 주면 돼요.”
이재가 별거 아니라는 둣 말하자,국왕은 막 헛웃음을 홀렸다.
그러다 무섭게 정색을 하더니 끝내 울컥하고 말았다.
“어디서 그런 건 또 주워듣고 온 건지.”
“………”
“누가 우리 콩알한테 전쟁터에 서나 쓰는 방법을 홀리고 다녔나!”
국왕이 언성을 높이자,사람들 은 모두 찔끔해서 고개를 조아렸다.
웃고 있는 건 혼자서만 국왕을 안 무서워하는 이재뿐이었다.
그녀는 국왕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폐하,제가 실컷 화나게 해 놓고 이런 말 해서 죄송한데요.”
“………”
“그래도 해도 되나요?”
“하아……. 하고 싶으면 해 보든가.”
“밤중에 화내지 마세요.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게 사람 기운에 정말 안 좋은 거라서 그래요.”
밤은 사람의 감정이 유독 흔들리기 쉬운 시간대였다.
원귀가 괜히 맹렬하게 사람을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악의는 그런 순간만 기다린단 말이에요.”
“………”
“그리고 한번 잠식되면, 그때부턴 밤낮도 중요하지 않게 돼요. 시간만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열심히 가는 거예요.”
시간은 사람이 힘들 때마저도 너무 정직했다.
그게 가끔은 얄궂 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 멈추지 않는 지엄함이 사람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종들과 기사들은 이재의 말을 가만히 경청하고 있었다.
시녀들은 너무 익숙하다는 얼굴로 또 시작하셨구나, 고개를 끄덕일 뿐 이었다.
그리고 국왕은 아까보다 더 큰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는 사실 어이가 없었다.
이재가 본인은 피를 홀렸으면서,남을 염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지금 이 상황에 설마 나를 걱정하는 건가?”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얘를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
“………….”
“빨리 아무나 나와서 나 대신 얘기 좀 하자. 이쯤 되니까 나도 한 번은 이겨야겠다.”
그러나 시종들과 기사들은 몹시 난처한 표정이었다.
아니,폐하도 못 이기는 친왕파 단신 좌장을 저희가 이길 턱이—.
모두는 그저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시선을 피했고, 때마침 의원이 도착했다.
밤중에 시녀들에게 끌려오다시피 한 의원은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지켜보던 국왕도,데보 라도 점점 미간을 좁혔다.
‘뭘 꾸물거려?’ 하는 얼굴이었다. 의원은 이재가 불쑥 손바닥을 내밀자 멈칫했지만, 곧 조심스럽게 붕대 를 풀었다.
그리고 상처를 소독하던 의원은 점점 의아해지고 말았다.
그는 무 심결에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곳은 성이었다. 기사들의 몰골이 저렇게 멀쩡한데, 왕후 혼자서만 상처를 달고 있는 상황이 몹시 이상했던 것이다.
“저,어쩌다가…… 누가 왕후 폐하께 이런……”
이재는 그 중얼거림에 즉답했다.
“내가 그랬는데.”
“서,설마 자해를 하셨단……”
의원은 간신히 말을 삼켰지만, 충격을 받은 그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국왕을 향했다.
왕후가 이런 짓을 벌일 만한 원흉이 남편밖에는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폭한 모습을 자 주 봐 온 의원으로서는 당연한 사고의 흐름이었다.
물론 로더릭은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헛웃음을 홀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래,다 내 잘못이다. 내 아내가 저러는 건,내가 천하의 개 자식이라서 그래.”
“………”
“그래도 같이 살기 싫다고 집은 안 나가줘서 참 감사한 일 아닌가?”
“………”
“우리 왕후가 원래 아량이 있어.”
의원은 몹시 당황하며 고개를 조아렸고,이재는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로더릭이 웃음이 나오냐는 둣 바라보자, 그녀는 간신히 표정을 수습했다.
그리고 뒤늦게 의원에게 해명했다.
“정확히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진 모르겠는데, 폐하는 잘못 없어. 이건 내가 실수해서 다친 거야.”
“……예. 제가 쓸데없는 말이 많았습니다.”
국왕의 눈치를 살피던 의원은 소독을 마무리하고 약을 바른 뒤, 재빨리 붕대를 감았다.
하지만 환부를 다시 한번 확인한 국왕의 기분은 아까보다 훨씬 저조해진 듯했다.
그는 이마를 매 만지다가 의원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흉터는.”
“예?”
“저 쪼끄마한 손에 흉이라도 지면, 볼 때마다 불쌍해서 눈은 뜰 수있겠나?”
“……관리만 잘해 주시면 흉터가 남을 정도는 아닙니다. 혹시 조금 남더라도 희미해서 눈에는 잘 안 될 겁니다.”
“그 말 진짜여야 할 거다.”
“예,저도 그건 장담할 수 있습니다.”
국왕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치료를 마친 의원은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로더릭은 그때부터 이재에게 본격적으로 항의성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는 할 말이 가득한 얼굴로 턱을 괴었고,방 안 공기는 다시 한번 무거워졌다.
성 사람들은 우린 이제 그만 나가 봐도 되는 거 아닐까? 하며 눈치만 살살 살폈다.
치료가 모두 끝났으니, 부부 싸움이 일어날 차례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수색을 나갔던 기사들은 아직도 귀환하지 않았고,국왕 부부는 이렇다 할 언질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이재가 조금씩 상 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폐하,지금 너무 늦었어요. 더 할 말 없으면 그만 자면 안 될까요?”
로더릭은 기다렸다는 둣 툭,내 뱉었다.
“미안하지만,부인. 난 지금은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아 버렸네.”
“뭐를요?”
“사람은 속이 상하면 잠도 안 오는 거였다.”
“그러지 말라니까 그러네. 지나 간 일을 마음에 담아 둬서 어쩔 건데요.”
“아,지난 일이라……”
국왕은 짙은 여운이 느껴지는 말을 중얼거렸으나,이재는 못 들은 척 외면했다.
그녀는 여전히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가장 먼저 시녀장에게 할 일을 일러 주었다.
“데보라. 촛불 켜 놓은 거 이제 다 꺼도 돼. 오늘은 아무 일 없을 거야.”
“예,왕후 폐하. 그럼 신속히 정리하겠습니다.”
데보라는 왕성에서 제일가는 눈치를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재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기회를 만들어 주자,모든 시녀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종장을 힐긋 바라보았다.
페하가 오늘 좀 심하게 언짢아 하시네? 속상하실 만도 하지.
그런데 너희 애들은 밤새 그러고 있을 거니?
데보라의 도도한 표정을 이해한 시종장은 점잖은 성품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욕했다. 시녀장은 깨끗이 무시하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이재는 이번에는 기사들과 시종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자신들도 그만 마무리해도 되는 건지, 국왕의 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국왕은 입을 열 기미가 없었다.
이재는 결국 왕을 대신해 서 열심히 눈짓을 주었다.
내일 얘기하고 그냥 다 나가 보라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머뭇 거리면서도 하나둘씩 방을 빠져 나갔다.
문이 닫히는 것까지 확인한 이재는 로더릭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물었다.
“폐하,계속 이렇게 삐져 계실 거예요?”
“어, 계속 이럴 거야”
“그만 좀 하세요.”
“………”
“알았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너무 이기고 싶어서 폐하 기분까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네요.”
그녀는 로더릭의 양어깨에 손을 짚고 볼에 가볍게 뽀뽀를 했다.
그러고는 자, 이제 됐지? 다 풀렸지? 하는 말간 얼굴로 말했다.
“다음부턴 저도 좀 온건한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하지만 국왕은 또 말이 없었다.
오히려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든 채, 그녀를 뚫어져라,바라볼 뿐 이었다.
왕이 아까보다도 심각한 표정을 하자,이재는 조금 난처해졌다.
역시 이런 걸로는 안 되나 싶 었기 때문이다.
혹은 너무 어린애같은 뽀뽀로 뭉개려는 얄팍한 속 내를 들켰나싶기도 했다. 몸은 안 상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은근 슬쩍 어긴 것도 사실이었다.
눈치를 보던 그녀는 머뭇머뭇하 다가 다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의 입술에다가 자신의 입술을 살짝 찍었다.
국왕은 한쪽 눈썹을 아까보다 더 높이 들어 올렸다.
“……내일 얘기하고 좀 자면 안 되겠어요?”
“………”
“네?”
“……그래,알았다.”
그 대답은 꼭 마지못해 나온 것처럼 들렸다.
그거라도 반가워 서 그녀의 얼굴은 금세 밝아졌다.
이재는 신이 나서 잠자리를 정 리하기 위해 이불을 털듯이 펼쳤다.
그러나 로더릭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근데 너,정말 잘 생각인가? 이래 놓고?”
“제가 뭘요?”
“네가 지금 가만히 있으려는 사람을 또 건드렸잖아.”
이재는 황당하다는 둣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쩌죠. 방금 제 신호를 좀 잘못 받으신 것 같아요.”
마음 풀라는 뜻이었지,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아니야, 난 아주 정확히 수신 했다.”
“폐하가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아니,아무튼 자꾸 화내니까 그런 거잖아요.”
“지난 일은 모르겠고,난 이런 걸로 내 부인 실망시키고 싶은 생각없다.”
이재는 뭐라는 거야,진짜 미치 셨나 봐,입을 가리며 웃다가 손목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그냥 이불을 뒤집어써 버렸다.
“너 사람 실컷 들었다 놨다,가지고 놀아 놓고 또 어디 가. 빨리 와.”
사람들은 바깥에서 여전히 마음 을 졸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우려와는 달리, 부부 싸움은 시작 조차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부의 대화는 순식간에 끈적해졌다.
국왕은 짐승의 향기를 강하게 풍기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