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13)
마음이 이끄는 대로-113화(113/134)
#113.
국왕과 이재는 오전부터 몹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지하 감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간밤에 1기사단이 수도의 수상한 사람들을 죄다 포박해서 잡아 왔기 때문이다. 제이드는 간략하게 보고했다.
‘저야 잘 모릅니다만,특별히 이상한 느낌을 주는 자는 없었습니다. 대부분 절도 행각을 벌이려던 자들입니다. 폐하께서 지시하신 바가 있어 전부 이쪽으로 데려오긴 했습니다.’
국왕은 모여 있는 자들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재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재 또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국왕이 고개를 젓자,이재는 희미하게 웃었다.
당신 생각이 맞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제이드에게 말했다.
“아무 이상 없어. 본인이 지은 죄에 맞는 처벌만 하면 될 것 같아.”
“왕후 말대로 해라.”
“예,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후,사람들은 하나둘 씩 국왕의 서재에 모여들었다.
중 요한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왕실은 현재 다이몬 본거지를 소탕하는 것과 왕제의 행방을 쫓는 것에 총력을 다하고 있었다.
양쪽을 동시에 칠 수 있는 그 한 순간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토벌군 총 책임자로 임명한 서부군 부대장은 국왕의 예상보다 훨씬 더 잘해 주고 있었다.
“폐하,서부 국경 부근에서 교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적군 이천을 섬멸했습니다만,저희 쪽도 삼 백여 명의 사상자가 나온 모양입니다.”
그 정도면 대승이었다. 로더릭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교전이 정확히 언제 벌어졌다고 하던가?”
“사흘 전 아침입니다.”
“다른 이상한 점은?”
“그런 얘기는 없었습니다.”
제이드는 국경에서 다급하게 날 아온 서신을 국왕에게 전달했다.
왕은 그것을 빠르게 훌고는 이재에게 건넸다.
그는 그녀에게 계속해서 시선을 주었다. 의견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이재는 몹시 신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저는 일리아스의 힘이 어디까 지인지 잘 몰라요. 하지만 지난밤 일리아스가 펼친 소환술은 보통 힘을 쏟은 건 아닐 거예요.”
이름난 무속인들도 한 번에 수 십의 영가를 불러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심지어 그가 소환한 건 전부 악귀들이었다.
“카이엔 내에 은둔하고 있어서 교전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몰랐을 가능성이 일단은 가장 크겠지만, 알았더라도… 힘을 아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이재는 머리를 공략한다는 소년 왕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건 곧 국왕이 세운 계획이 방향성 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는 걸 뜻하기도 했다.
토벌군이 심각한 타격을 입거나 최악의 경우,전멸하게 되더라도 국왕만 살아 있으면 카이엔은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카이엔 은 병력의 우위를 완벽히 점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건군이 섬멸되면,다이몬은 다음올 기약하기가 어렵다.
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때 문이다.
군사가 없는 나라는 유지 될 수 없었다.
그러니 일리아스 측은 재건군이 토벌당하기 전에 국왕을 해하려 고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쪽의 승부수는 국왕의 명운 하나였지만,이쪽은 두 가지를 기 대해 볼 수 있었다. 왕제와 일리아스를 치거나,그 전에 압도적인 병력으로 재건군을 궤멸시키거나.
국왕은 단장들과 군부 측 인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서부군 부대장이 병력을 추가 요청하는군”
“예, 저도 확인했습니다.”
로더릭은 픽,웃었다.
“서부군 부대장이 말이야. 생각 보다 의지가 있는 자였나 보군.”
“………”
“중앙군을 삼천 더 배정하겠다. 왕실에선 언제나 성과를 보인 것에 대한 답을 주겠다고 전해라.”
“예,폐하.”
국왕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회의 종료를 선언했다.
사람들은 회의 결과에 대한 이 야기를 주고받으며,서재를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가 자리를 뜨는 와중에 제이드는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국왕도 이재도 그런 그를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폐하,로슈록 지방에서 왕제로 추정되는 인물이 목격됐다고 합니다.”
제이드가 사람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기다린 건 작전을 세우기 전,최대한 보안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왕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 말은 검문소를 다 통과했단 뜻인가?”
“일전에 저희가 급습을 꾀하기 전,이미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국왕은 계속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몹시 외람된 말씀이지만,검문 소를 거치지 않은 영지 간 이동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왕제께선 학자이고,카이엔 내부 사정에 밝습니다.”
“……신빙성은 있는 첩보인가?”
기사단장은 그 말에는 선뜻 대 답하지 못했다.
원칙대로라면 국왕에게는 정확한 정보만이 전달 되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 왕실은 단 하나의 단서도 지나칠 수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불확실성을 감수 하고서라도 기사단을 파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재는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녀는 붕대를 감은 손으로 국왕의 팔목을 잡았다.
“폐하,그거 제가 한번 확인해 봐도 될까요?”
국왕과 기사단장은 말없이 이재 를 바라보았다.
한때 왕후의 놀이터라고 일컬어 졌던 후원 풍경은 변함이 없었다.
점을 치기 위해 갖고 온 물건들 을 주섬주섬 늘어놓고 있는 이재도 그대로였다.
지난번과 유일하게 달라진 건 조금 더 많은 수의 기사들이 모여들었다는 점이었다.
모두 국왕 의 측근들로,상당히 안정적이라고 소문난 왕후의 활 솜씨를 구 경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대감과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이재의 태도 또한 꽤 여유로웠다.
오로지 한 명,짐승 피가 담긴 통을 바라보고 있는 국왕만이 건조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재는 남편을 힐끔거리다가 웃 음을 꾹 늘러 참았다.
그녀도 이 틀 연속이나 무모한 짓을 할 마음은 없었다.
언제 무슨 일이 벌 어질지 모르니, 작은 콩알은 가진 힘을 아껴야만 했다.
“부인,손 조심하고.”
“알았어요.”
“……내가 대신 쏴 주고 싶은데. 그렇게는 안 되는 거지?”
“네,걱정하지 말라니까요.”
이재는 활시위에 활을 걸었다. 어제도 수십 발을 쏘았으니,시험 사격같은 건 필요 없었다.
하지 만 이재는 자신이 정말 괜찮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과녁에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어김없이 정중앙에 박혔지만,감탄의 시선은 등 뒤에서만 쏟아졌다.
국왕은 여전히 건조한 시선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지금 네가 명사수인 걸 몰라서 이러는 걸까?’ 하는 눈이었다.
이재는 머쓱하게 웃으며 얼굴을 긁적였다.
그러고는 가져온 종이 위에 짐승 피로 진을 그리기 시 작했다.
그녀가 완성된 종이를 들어 올 리자,데보라는 얼른 그것을 받아 들었다.
데보라는 과녁판에 종이 를 고정했고,이재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화살촉에 자신의 기를 실었다.
‘신이여, 간구하는 인간에겐 부디 답을 주십시오. 왕제와 일리아스,그들 중 하나라도 지금 로슈 록에 있습니까.’
이재가 연달아 날린 화살은 과녁 이쪽저쪽에 어지러운 모양새 로 꽂혔다.
그러나 일전에도 이 자리에 있었던 몇몇 기사들은 뭔가를 알아 보았다.
저건 질서가 없는 게 아 니었다.
모든 화살은 지난번과 똑같은 자리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진을 응시하던 이재는 돌아섰다.
그녀는 고개를 두어 번 저으며 말했다.
“제이드,거긴 없어.”
“……처음부터 없었다는 겁니까?”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제이드는 순간적으로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뜬구름 잡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이재는 조금 더 친절하게 부연해 주 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 중간에 이동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없어.”
제이드는 여전히 곤혹스럽다는 얼굴이었다.
그도 지난밤 화살이 허공에서 뚝 부러졌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은 바 있었다. 국왕의 말을 못 믿는 것 또한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왕후에 대한 풍문 까지 꿰고 있었다.
접견을 할 때 는 대체로 듣고만 있지만, 나이답지 않게 사람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이 상황이 어색하기만 했던 것이다.
“왕후 폐하. 송구합니다만 저도 이게 제 일인지라 무례를 무릅쓰고 여쭙겠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응,물어봐.”
“……그거 확실한 겁니까?”
“음,질문은 정확했던 것 같은 데. 이 정도면 확실한 거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국왕 은 인상을 찌푸렸다.
제이드의 말 에 불신이 서린 것을 느꼈기 때 문이다.
왕후한테 저런 식으로 말 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당사자인 이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이 정도 의심은 너무 당연한 거 라고 여기고 있었다.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건 무속 인의 세계가 훨씬 더했다.
“제이드,사적인 질문해서 미안한데,요즘 만나는 여자 있지 않아?”
제이드는 마치 오밤중에 귀신을 만난 사람처럼 옴찔했다.
누가 봐도 있다는 뜻이었다.
“왕후 폐하께서 그, 그걸 어, 어떻게 아십니까?”
제이드는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거렸고,이재는 흠,하며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국왕의 표정은 순식간에 변했다. 왕은 이재가 이런 걸 가지고는 허언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애인 있었어? 어떻게 그런 얘기도 안 해?”
“아니,그게 만난 지 얼마 안돼서… 그리고 사실은 곧 헤어질 것 같습니다.”
이재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미소를 감추었다.
“싸웠어?”
“그렇다기보단,뭐,예……. 그렇습니다.”
그는 모든 걸 체념한 사람처럼 시인했다.
“제이드 같은 사람이 크게 그릇된 일을 하진 않았을 거고, 그냥 좀 섭섭하게 했나 보네.”
그러자 제이드의 얼굴은 다소 침울해졌다.
“예,그런 것 같습니다.”
“잡고 싶으면 한번 잡아 봐. 나는 이런 말은 잘 안 하는데, 제이드는 그 사람이랑 이런 식으로 끝날 인연은 아닐 거야.”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재는 다시 한번 제이드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일단 그의 상에는 지금 사람에 대한 기운이 강하게 들어와 있었다. 귀인이 찾아올 것 같기도 하다.
이재 같은 사람한테 그런 영감이 순간적으로 느껴질 정도면,그 냥저냥 스쳐 갈 인연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제이드가 알아서 하는 거지만 귀한 인연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아서 그래.”
“그런 겁니까.”
제이드는 좀 복잡한 눈치였으나 국왕은 말을 보탰다.
“잘 좀 해라.”
“………”
“이 여자구나 싶으면 네가 맞추고 노력을 하라고. 그럼 뭐 큰일이라도 나나?”
이재를 둥 뒤에서 끌어안고,정수리에 턱을 된 국왕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친우를 바라보았다.
콩 알만 한 자기 아내를 방패로 삼은 듯한 모습이었다.
남편의 어조에서 이상한 웃음기를 느낀 이재는 굳센 팔뚝을 살짝 때렸다.
“아니,폐하는 왜 남의 연애사를 듣고 놀리고 그래요? 친구면서.”
“부인,사내놈들끼리는 원래 다 이러고 놀아. 큰 의미 없어.”
그리고 귀를 종긋 세우고 있던 기사들은 어느 순간 기웃기웃하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왕후가 저런 이야기를 꺼내니 괜히 솔깃했던 것이다.
갑자기 야외에선 상담소가 열릴뻔했다.
하지만 국왕은 허튼수작 하지 말라고 사나운 경고성 시선 을 보냈다.
뒤에 있던 데보라는 훨씬 더했다.
그녀는 돈 안 낼 거면 신전 가서 기도나 하라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무튼 이제 내 말 믿어 주는 거야? 난 원래 확신이 안 서면 얘기 잘 안 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런 말에는 진짜 무서운 책임이 따르거든.”
“예,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정말로 실례가 많았습니다.”
잠시 헛기침을 하던 제이드는 다시 공적인 화제로 말을 돌렸다.
“왕후 폐하, 그럼 혹시 일리아스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까?”
이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쓴웃음을 홀렸다.
그녀가 방금 한 건 보는 것처 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점괘는 원래 한 달에 한 번 내놓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저 정도 질문은 이재의 능력 밖이었다.
그리고 국왕은 곧바로 눈썹 사 이를 좁혔다.
그가 아는 아내는 본인이 도와줄 수만 있다면,버거워도 꾸역꾸역 했을 사람이었다. 설령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더라도.
“제이드,왕후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
“………”
“뭐 맡겨 놓은 거 내놓으라는 둣 요구하지 말라고. 당연한 것처럼 부담 얹지 말란 말이다.”
“아니,폐하. 범위를 특정해야 상대를 여우 몰듯이 몰 거 아닙니까.”
“왕후 애칭 그딴 데다 쓰지도 말고.”
“……저 그냥 아무 소리 안 하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약간 자신없는 표정올 짓고 있던 이재는 자신을 감싼 국왕의 팔을 떼어 냈다.
그녀는 제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난 그런 것까진 못 해.”
“그래도 아직 카이엔에 있는지 정도는 지금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
“………”
“한번 해 볼게.”
이재는 바닥에 내려놓은 활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